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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걷는 時間[동아廣場/김금희]|東亞日報

엄마와 걷는 時間[동아廣場/김금희]

  • 東亞日報
  • 入力 2021年 11月 10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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伴侶犬이 떠난 뒤 일흔 엄마와 釜山行
가끔 다투더라도 엄마와의 旅程은 繼續될 것
많이 걸으며 서로 삶의 오랜 目擊者가 되길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客員論說委員·小說家
오랫동안 기르던 伴侶犬이 떠난 뒤 엄마와 자주 어디를 다니기 始作했다. 며칠 前에는 釜山을 함께 갔다. 釜山行은 엄마에게 남다른 意味였다. 十 代의 엄마가 꿈을 위해 나가본 大都市였고 아이들을 낳고 길렀지만 結局 生計를 위해 떠났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故鄕과 自己 家族을 떠난 사람의 모습, 새로운 都市에 살면서도 지우지 못하는 移住(移住)의 感覺은 엄마에게서 늘 鮮明히 느껴졌다. 그 不安과 슬픔은 아마 내게도 일렁이는 波濤를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釜山으로 가기 前 엄마는 十 代 時節 이야기를 꺼냈다. 技術을 배우기 위해 學院을 다녔다는 것이었다. 부산역 바로 앞이었는데 授業을 마치고 나와 보니 허리까지 잠길 程度로 洪水가 나 있었다고. 그 물살을 헤치고 나와 姨母네 집 다락房에서 잠을 請하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나는 엄마와 자주 對話를 나누는 便이어서 그 이야기를 왜 只今에야 할까 疑訝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의 失敗와 連結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結局 技術을 익히지 못해 資格證을 따지 못했고 工場 就職을 選擇했다고 했다. 깊은 물살을 헤쳐서 돌아온 어느 여름밤, 結婚한 언니네 다락房으로 올라가야 했던 十 代 아이가 맞닥뜨렸던 失敗는 얼마나 선득한 추위로 記憶되었을까. 누가 들을까 숨죽여 울었던 밤은 오늘에야, 오랜만에 가는 釜山 旅行을 앞두고 말로 傳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釜山이 失敗의 記憶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出退勤 時間이면 버스 數十 臺가 서서 靑年들을 태우고, 三交代로 工場이 돌아갔다며 엄마는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說明했다. 勿論 그건 아주 오래된 記憶, 내 世代들의 體感과는 먼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許諾된 좁은 半徑의 體感에 갇히지 않기 위해 他人과 對話하고 冊을 읽고 感情과 理解를 動員해 그것을 ‘實感’하기 위해 努力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이番 旅行이 서울에서 釜山으로 간 것이 아니라, 釜山에서 다시 釜山으로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해서 간 旅行은 意味深長했던 내 마음과는 다르게 으레 있는 旅行地의 記憶을 만들어가며 흘러갔다. 豫約한 宿所는 막상 가보니 어떠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어도 取消되어 있었다. 多幸히 房이 남아 있어 금세 解決은 됐다. 엄마는 記憶 속 초량 市場을 다시 確認하고 싶어 했다. 인터넷에서 夜市場 情報도 봤다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姨母를 만나고 돌아온 뒤 우리는 함께 부산역에서 초량동으로 걸었지만 떠들썩하고 華麗한 夜市場 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팬데믹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면서도 아쉬워했다. 그러는 동안 家族들의 크고 작은 葛藤들이 對話 속에 떠올랐다가 쓸쓸히 사라졌다. 旅行地에 가서 마음이 日常에서 놓여나면 으레 그렇듯 깊은 속마음의 傷處가 드러나지만 그것을 治癒할 方法을 當場 찾지 못하는 것도 旅行地의 儼然한 限界였다. 그래도 엄마는 다리 위에서, 釜山 名物인 곰장어 앞에서 熱心히 寫眞을 찍었고 나중에는 부산역 앞에서 마스크를 잠깐 벗고 웃으며 記念寫眞을 남겼다.

우리는 그렇게 잘 지내다가 다음 날 서울驛에 到着해 다투고 말았다. 欲心을 부려 샀던 生鮮들 때문이었다. 엄마는 굳이 그 짐을 들겠다며 固執을 부렸고, 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一層이 아니라 閑寂한 위層에서 點心을 먹겠다는 固執을 꺾지 않았다. 結局 엄마는 짐을 들고 올라가다가 火를 냈고 나는 나대로 抑鬱한 面이 있어 참지 않았던 것이다. 暫時 冷冷했던 우리는 비빔밥이 나오자 삭삭 비비면서 그래도 和解를 摸索했다. 엄마는 나와 다니기 위해 公園을 걸으며 體力을 기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十 分만 걸어도 몰라보게 달라져 있을 거라고 熱烈히 呼應했다.

그런데 그 밤, 나는 엄마에게 變化만 要求한 듯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엄마가 나이 들면서 나는 엄마를 保護해야 할 사람으로 여겼고 걱정도 늘어났던 거였다. 反面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自己가 그 짐을 들겠다고, 할 수 있다고 壯談했던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認定해야 할 것은 흘러가버린 ‘時間’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크고 엄마가 먹고살기 위해 갖은 努力을 하는 동안 지나간 時間과 그것이 일으킨 變化. 家族의 막내라고 여겼던 伴侶犬이 떠난 뒤 우리는 時間이 無限定 주어지지 않는다는 事實을 아프게 體感했다. 그러니 가끔 다투더라도 엄마와의 旅程은 繼續될 수 있을 것이다. 자주 듣고 많이 걸으면서 서로의 삶의 오래된 目擊者가 되는 일, 그것은 더 以上 미룰 수 없는 우리의 重要한 責務처럼 느껴지니까.

김금희 客員論說委員·小說家
#伴侶犬 #엄마 #旅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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