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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準備했어도…눈앞에 닥친 退職은 두렵기만 하더라”[서영아의 100歲 카페]|東亞日報

“그토록 準備했어도…눈앞에 닥친 退職은 두렵기만 하더라”[서영아의 100歲 카페]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5月 1日 07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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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人生 2幕
32年 勤續 포스코맨이 後輩들에게 傳하는 말

5月 末 退職을 앞둔 박성하 氏(57)는 요즘 부쩍 心亂하다. 올 初부터 석 달 程度 알 수 없는 腹痛에 시달렸다. 病院에서는 온갖 檢査 끝에 逆流性 食道炎이라고 했다. 여기 더해 자주 神經質的이 되고 熟眠을 取할 수 없었다. 冊이나 新聞도 차분히 읽기 힘들 程度. 스스로 찾아낸 原因은 코앞으로 다가온 退職이었다. ‘내가 아침마다 出勤할 곳이 사라진다는 事實에 不安해하고 있구나….’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 선 박성하 씨. 그는 1990년대 초 포스코센터 건립추진본부에 배치돼 이 건물 건설에 참여했다. 이훈구 기자 ufo@domga.com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 선 박성하 氏. 그는 1990年代 初 포스코센터 建立推進本部에 配置돼 이 建物 建設에 參與했다. 이훈구 記者 ufo@domga.com

○ 스스로 定한 退職, 슬금슬금 찾아오는 憂鬱과 不安
退職은 穩全히 自身의 決定이었다. 32年 間 한 會社에 다녔고 지난해 名譽退職을 申請했다. 停年을 3年 半 程度 당겼고, 只今은 退職 前 1年의 休暇를 쓰는 中이다. 會社는 給與는 勿論 自己啓發 休職費까지 支給해줬다. 그는 이 期間 冊(‘職場人 自己經營 프로젝트’··바이북스)도 한 卷 썼다. 冊에서도 “내 退職 時機는 내가 定한다”며 큰소리쳤는데, 정작 退職을 한달 앞둔 只今 자꾸 憂鬱하고 不安해진다.

“經濟的으로 準備돼 있고 退職 後 일거리들度 장만해놨는데, 이런 心理 狀態는 뜻밖이었습니다. 自由를 渴望하던 過去의 제가 無色했죠. 會社를 完全히 떠난다는 것이 마치 긴 時間을 함께 한 家族이나 親舊와 헤어지는 느낌이랄까. 비슷한 處地 아니라면 共感하기 어려울 거예요. 저도 不過 1年 前까지도 退職하는 先輩들의 하소연이 體感되지 않았으니까요.”

事實 朴氏만큼 退職을 제대로 準備한 사람도 드물다. 退職 準備하는 期間 쓴 冊이 그 證據物이다. 退職 後 使用하려 마련한 컨테이너 事務室에서, 21日 그를 만났다.

-題目 그대로, 職場人들에게 自己 經營을 勸하는 內容이죠?

“32年을 돌아보며 제가 얻은 結論은 ‘自己 삶은 스스로 經營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걸 職場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하라는 거죠. 經歷 管理하고, 스펙 쌓고, 財테크도 試圖하고…. 쉽게 말해 ‘딴짓’을 많이 해보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그렇게 해왔고 後悔가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파이어族’을 말하지만 ‘經濟的 自由’도 職場에 몸담고 누리면 됩니다.”

퇴직 후를 대비해 박 씨가 마련한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공간은 작지만 냉난방이 완비돼 있다고 자랑한다. 이훈구 기자 ufo@domga.com
退職 後를 對備해 朴 氏가 마련한 컨테이너 事務室에서. 空間은 작지만 冷暖房이 完備돼 있다고 자랑한다. 이훈구 記者 ufo@domga.com

퇴직을 준비하며 낸 저서 ‘직장인 자기경영 프로젝트’ 표지
退職을 準備하며 낸 著書 ‘職場人 自己經營 프로젝트’ 表紙

○ 大企業이라는 큰 雨傘
1984學番인 그는 말하자면 386(586) 世代다. 고려대를 卒業하고 포스코에 入社해 弘報, 新事業企劃, 海外營業, 日本駐在원, 國內營業, 物流, 建設, 敎育, 安全部門 等 다양한 業務를 經驗했다. 在職 中 日本 쓰쿠바대와 리츠메이칸臺에서 2年間 留學했고, 고려대에서 碩士와 博士學位(韓日 原子力 安全政策 比較)를 받았다. 滿 50歲인 2015年 學位에 挑戰해 2019年 박사모를 쓴 晩學徒였다. 포스코에서는 팀長(次長)까지 올랐는데, 그는 스스로 成功한 職場人이라고 自負한다.

“잘나가는 同僚들처럼 乘勝長驅하며 任員이 되지는 못했지만, 제 自身이 꽉 찬 人生을 살았다고 느낍니다. 여느 中年들과 달리 제 時間을 充分히 제 것으로 運營했습니다. 職場에 다니며 오랜 꿈이던 博士學位를 땄고 留學도 다녀왔습니다. 4年間 日本 오사카에서 駐在員으로 勤務하며 充分한 海外生活을 누렸고 財테크에도 나름 成功했습니다. 두터운 人間關係도 만들었다고 自負합니다.”

-모든 職場이 포스코처럼 좋은 條件은 아니라는 反論이 있을 듯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희 會社에서도 저처럼 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自身에게 會社란 무엇인가요.

“고마운 存在죠. 제게 일터를 提供해주고 給與를 줘 家庭을 이루어 幸福하게 살게 해줬습니다. 會社는 束縛도 하지만 제가 世上을 배우고 成長할 많은 機會를 줬습니다. 다만 막상 會社 밖에서의 삶을 準備하려 하니 32年間 해온 業務 中에 가지고 나와 쓸모 있는 것은 하나도 없더군요. 管理職이라 더 그럴 겁니다. 포스코의 生産職 先輩들은 停年 退職 後 거의 100% 再就業을 하더군요.”
○ 成功的인 財테크는 堂堂한 職場인 生活에 도움
그는 職場人에게 積極的인 財테크를 勸한다. 理由는 “꿈을 이루고 餘裕를 즐기고 現實에서 堂堂해지기 위해서”.

-財테크에 成功했다고 하시는데 어느 程度인가요.

“不動産과 年金으로 老後 걱정 안 해도 될 程度는 됩니다. 退職 앞두고 現役時節의 2~3倍假量 所得이 들어오도록 財務設計를 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個人的 成長背景이 作用한 듯하다. 그는 6살 때 父親을 여의고 어머니 혼자 5男妹를 키워내는 모습을 보며 일찌감치 經濟的 自立心을 키웠다. 學生時節부터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大學 때 親舊가 집을 사는 모습을 보고 新鮮한 衝擊을 받고 ‘나도 어서 財産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親舊의 親戚이 運營하는 不動産에 時間 날 때마다 놀러가 이런저런 助言과 情報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職場人의 財테크는 레버리지를 活用한 時間과의 싸움이라는 말로 要約했다.

“可及的 팔지 않을 生産資産을 買入하되 10年 뒤를 바라보고 貸出을 利用해 長期 投資해야 합니다. 市場은 이런 投資를 背信하지 않습니다. 特히 不動産의 境遇 짧은 未來는 豫測하기 힘들어도 結局은 物價가 오르듯 그 價値가 올라갑니다. 流動性이 낮으니 不必要한 浪費를 줄일 수 있어요. 株式처럼 收益이 날 때마다 팔아서 돈으로 바꾸기 쉽지 않으니까요. 每달 月給 받는 職場人들은 굳이 서둘러 收益을 實現할 理由가 없죠.”

實際로 그가 20代 後半에 會社 貸出과 傳貰를 끼고 산 개포동의 15坪짜리 아파트는 30餘 年이 지난 只今도 保有中이다. 現在 再建築에 들어가 來年 2月 入住할 豫定인데, 그 사이 市場價値는 30~40倍 올랐다. 그는 以後로도 機會 닿을 때마다 不動産을 사 모았다. 모두 10年 以上 長期投資였고 時間은 背信하지 않고 收益을 가져다주었다.

1991년 광양 근무 당시의 박씨(가운데)와 동료들. 30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박성하 씨 제공
1991年 光陽 勤務 當時의 朴氏(가운데)와 同僚들. 30年의 歲月은 많은 것을 變하게 한다. 박성하 氏 提供

1992년 포스코센터 건립추진본부 근무 당시. 박성하 씨 제공
1992年 포스코센터 建立推進本部 勤務 當時. 박성하 氏 提供

○ 職場人 財테크는 레버리지를 利用한 時間과의 싸움
“‘돈을 버는 方式’보다 ‘돈을 쓰는 方式’이 돈을 벌게 해준다고 봅니다. 돈을 쓴다는 게 ‘消費習慣’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時間의 흐름과 함께 價格이 오를 수 있는 것에 돈을 쓰느냐, 價格이 떨어지거나 費用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에 돈을 쓰느냐의 差異입니다. 價格이 오늘 수 있는 것은 生産 資産인데, 不動産, 株式, 美術品, 著作權 같은 게 代表的이죠. 저는 生活費 除外하고 남은 돈을 不動産과 年金貯蓄에 投資했습니다. 價値가 오르고 資本所得이 생기면서 不動産을 하나 둘 늘려 資産 덩어리를 키워갔죠. 이런 資産들은 時間이 흐르면서 내 努力과 相關없이 무언가를 生産해주는데 그 生産物의 價値는 내 것입니다. 내가 그 資産의 主人이기 때문이죠.”

-일하지 않고 所得을 얻는 構造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내 돈이 돈을 벌게 한다’는 意味입니다. 巷間에서는 罪惡처럼 말하는 ‘不勞所得’李 生産資産이 創出하는 所得인 셈이죠. 非勤勞所得은 特히 老後를 생각할 때 重要합니다. 非勤勞所得까지 가려면 △節約과 貯蓄을 통해 시드머니를 만드는 段階, △시드머니로 生産資産을 사는 段階, △投資規模를 키우는 段階, △所得 構造를 만드는 4가지 段階를 차근차근 밟아야 합니다.”

-늘 새 不動産에 投資하느라 家族에게 勤儉節約만 强調했다는 反省을 하셨던데요.

“아내의 不滿이 컸습니다. 지나고 보니 저도 後悔가 되고요. 삶에서 가장 重要한 게 무엇인지 잊었던 건 아닌가. 잘 살려고 財테크하는 건데 財테크를 위해 삶의 質을 抛棄한다는 건 本末이 顚倒된 거죠. 이제부터는 쓸 때는 쓰면서, 資産도 지켜가는 길을 찾으려 합니다.”

박씨는 포항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교육 비영리단체를 출범할 계획이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포항문화재단의 문화재생활동가들과 함께 주최한 유치원생 대상 안전교육 현장. 박성하씨 제공
朴氏는 浦項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安全敎育 非營利團體를 出帆할 計劃이다. 寫眞은 지난해 12月 浦項文化財團의 文化再生活動家들과 함께 主催한 幼稚園生 對象 安全敎育 現場. 박성하氏 提供

○ “너무 일찍 昇進 抛棄한 것 後悔”
이런 그가 職場生活을 마감하며 가장 아쉬운 點은 昇進을 너무 일찍 抛棄했다는 點. 그는 課長級이 된 30代 後半에 이미 停年이나 昇進, 任員 같은 것은 自身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을 딛고 일어서는 것도,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것도 適性에 맞지 않았다. 2000年代 初盤부터 끊임없이 사내벤처에 應募해 사내에서는 ‘곧 떠날 사람’이라는 認識이 퍼졌고 그 自身도 그렇게 생각했다. 일찌감치 財테크에 成功한 게 알려져 “뭐 하러 職場 다니냐”는 말도 자주 들었다.

如何튼, 出世에 對한 마음을 접으니 周邊이 다 便安해졌다. ‘이건 아닌데’ 싶은 指示에는 堂堂하게 意見을 披瀝했다. 經濟的으로 여유로웠고 돈 잘 쓰는 그를 同僚後輩들은 좋아해줬다. 하지만 人事철이 되면 憂鬱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와 보니 저도 조금만 버텼으면 只今쯤 任員이 되었겠더라구요. 한 30年 別 無理 없이 일하면 大部分 關係社에서라도 任員을 시켜주는 構造였어요. 勿論 이건 저희 會社만의 特徵일 수 있습니다. 如何間 너무 일찍 抛棄했다는 생각이고, 後輩들에게는 自身의 삶을 챙기되 昇進도 챙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會社. 退職을 바라보는 職場人들에게 그는 當付한다.

“退職 後에는 ‘갈 곳’이 重要합니다. 經濟的 準備와는 別途로, 現業에 있을 때 한 달에 한 番 꼴이라도 나갈 수 있는 곳을 세 곳 程度 만들어놓으라고 勸하고 싶습니다. 社會團體나 奉仕活動 等 價値 있는 일이면 더 좋겠죠. 退職한 뒤 始作하려면 스스로 自激之心이 생긴다고 할까, 쉽지 않습니다. 假令 어떤 奉仕團體에 50代 會社員이 加入하는 것과 60代 退職者가 加入하는 건 다르게 느껴진다는 거죠. 그 會社員이 退職 後에도 活動을 繼續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요.”

日本에서는 그걸 豫備隱退者의 ‘地域社會 데뷔’라고 表現한다. 大槪 自身이 사는 地域과는 緣을 끊고 살아온 ‘會社人間’들이 退職을 전후해 地域社會나 이웃과 連帶의 고리를 만들어나가는 努力을 말한다.

박 씨는 자신의 직장 생활 성공의 비결로 ‘수첩쓰기’를 든다. 32년간 거의 매일 일기 같은 수첩 쓰기가 이어졌다. 앞으로 그 
노하우를 블로그를 통해 일반 직장인들과 나눠주고 싶다고 한다. 사진은 박씨가 32년간 써온 수첩들 중 일부. 박성하 씨 제공
朴 氏는 自身의 職場 生活 成功의 祕訣로 ‘手帖쓰기’를 든다. 32年間 거의 每日 日記 같은 手帖 쓰기가 이어졌다. 앞으로 그 노하우를 블로그를 통해 一般 職場人들과 나눠주고 싶다고 한다. 寫眞은 朴氏가 32年間 써온 手帖들 中 一部. 박성하 氏 提供
○ 退職 後에는 ‘갈 곳’이 重要하다
정작 그는 무엇을 準備하고 있을까. 그가 내민 名銜에는 災難安全 벤처企業 ‘위드 세이프티(with safety)’의 代表理事, 文學博士라 새겨져 있다. 뒷面에는 고려대 글로벌日本硏究院 客員硏究員(社會災難安全硏究센터), 浦項市 文化財團 文化再生活動家, 災難安全硏究(原子力 安全), 에세이 作家라는 紹介가 羅列돼 있다.

그는 休職 中에도 每달 두 次例 浦項에 내려가 文化財團 일을 보고 포스텍 內에 마련된 벤처保育센터 ‘체인지업 그라운드’에서 創業을 準備하고 있다. 敎育部 傘下 韓國硏究財團의 學術硏究敎授에 支援했고 浦項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어린이들에게 安全文化를 깨우쳐 주는 非營利團體를 出帆할 計劃이기도 하다. 日本 고베에서 어린이 安全敎育 노하우를 배워와 傳授할 計劃이다. 블로그를 통해 그가 職場人들에게 꼭 勸하고 싶은 ‘手帖쓰기’ 노하우도 共有하려 한다.

“職場 退職이 社會에서의 隱退는 絶對 아닙니다. 個人的으로 人生 2幕은 남을 돕는 일, 意味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작게는 職場人들에게 第 노하우를 나눠주는 일부터 始作해, 只今 準備 中인 어린이 安全敎育 團體도 제대로 키워볼 생각입니다. 退職을 앞두고 意識的으로 많은 準備를 했지만 몸이 職場을 떠나는 두려움을 드러냈듯, 앞으로도 어려움이 적지 않겠지요. 그래도 언제나처럼 熱心히 살아야지요.”


서영아 記者 sya@donga.com
#人生 2幕 #名譽退職 #파이어族 #財테크 #不動産 #위드 세이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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