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핀란드 알土臺 MBA 課程을 履修하던 2007年 8月이었다. 핀란드 헬싱키 現地에서 2週間 工夫할 機會가 있었다. 그때 携帶電話 企業 ‘노키아’를 찾았다. 案內하던 女職員의 목소리에서 自信感이 느껴졌다. 그럴 만한 게 노키아는 핀란드 國內總生産(GDP)의 4%, 핀란드 全體 輸出의 約 25%를 차지했다. 時價總額은 헬싱키 證市의 70%였다. 핀란드 經濟는 노키아에 絶對的으로 依存했다. 偶然의 一致이겠지만, 記者가 訪問한 2007年이 노키아의 最大 全盛期였다. 같은 해 6月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携帶電話 市場의 版圖는 바뀌기 始作했다. 노키아는 새 흐름을 가벼이 봤다. 아이폰보다 더 많은 機能을 갖췄고, 自動車가 그 위를 지나가도 부서지지 않을 程度의 耐久性을 가진 自社 携帶電話에 陶醉해 있었기 때문이다. 2008年 以後 노키아의 賣出額과 營業利益은 垂直 落下했다. 結局 2014年 4月 核心인 携帶電話 事業 部門을 마이크로소프트(MS)에 賣却했다. 노키아의 墜落에 핀란드 經濟도 휘청했다. 핀란드의 携帶電話 輸出은 2007年 3070萬 臺(69億 달러)에서 2012年 400萬 臺(9億 달러)로 줄었다. 핀란드 全體 輸出은 2008年에 前年 對比 0.2% 줄어들었고, 이듬해에는 31.3% 急減했다. 貿易收支는 2011年부터 2015年까지 5年 連續 赤字였다. 그런데 世上事 참 妙하다. ‘노키아가 죽으니 핀란드가 살아났다’는 評價도 나왔다. 핀란드는 過去부터 硏究開發(R&D) 投資 比率이 높고, 敎育 競爭力도 世界 1, 2位를 다툴 程度였지만 企業 實績은 神通치 않아 ‘핀란드 패러독스’라는 말까지 생겼다. 創業을 躊躇하는 文化, 高率의 法人稅 等이 問題로 꼽혔다. 하지만 노키아의 沒落이 危機感을 불러왔고, 그 危機感이 핀란드 패러독스를 解決했다. 노키아는 2008年 以後 1萬 名 以上의 工學 人材들을 構造調整했는데, 그들은 中小企業과 스타트업으로 흘러갔다. 漸次 危險을 甘受하고 創業에 挑戰하는 文化가 생겨나기 始作했다. 大學들은 産學協力을 통해 學生들의 創業 活動을 激勵했다. 政府는 벤처캐피털을 造成해 新生 企業에 資金을 供給했다. 헬싱키技術大學 學生 3名이 創業한 로비오는 2009年 앵그리버드 모바일 게임으로 大成功을 거뒀다. 2010年 設立된 슈퍼셀은 戰略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의 成功으로 設立 4年 만에 約 2兆 원의 賣出을 올렸다. ‘노키아의 沒落이 핀란드의 利益이 되다’(월스트리트저널, 2011年 8月), ‘大企業이 쓰러질 때 企業家精神이 살아난다’(하버드비즈니스리뷰, 2013年 3月) 等 評價가 나왔다. 韓國의 半導體 産業 不振을 보면서 10年도 더 지난 핀란드의 追憶이 떠올랐다. 半導體가 不振하니 韓國 輸出은 8個月 連續 赤字다. 貿易收支도 15個月째 赤字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輸出로 먹고사는 韓國에 致命打라 할 수 있다. 올해 成長率은 1%臺로 豫想되는데, 外換危機와 같은 經濟 衝擊 없이 1%臺 成長率을 보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少數 大企業이나 特定 産業에 依存한 經濟 生態系는 危機에 脆弱할 수밖에 없다. 다만 핀란드 事例가 보여주듯 危機 狀況이 오히려 韓國의 痼疾病을 고칠 機會가 될 수도 있다. 特히 半導體와 中國에 對한 過度한 輸出 依存度는 時急하게 解決해야 한다. 半導體가 무너지자 韓國도 같이 무너질지 아니면 오히려 成長할지, 只今 그 갈림길에 서 있다.박형준 經濟部長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