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民을 위해 服務하라’ ‘딩氏 마을의 꿈’ 等의 小說로 中國 社會의 ‘隱蔽된 眞實’을 다뤄온 作家 옌롄커(閻連科·62)가 中國 高度成長의 裏面을 이야기한 ‘炸裂地(炸裂誌)’(子音과모음·사진)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作品이 過去의 ‘稀微한’ 記憶에 想像力을 더해 文學的 眞實에 到達했다면 이 小說은 ‘익숙한’ 現實을 透視하고 分析해 現在를 뚜렷하게 보는 데 集中했다. 13日 ‘딩氏 마을의 꿈’의 옮긴이 김태성 氏의 飜譯으로 e메일로 만난 옌롄커는 “炸裂지가 現在를 다루고는 있지만 1949年(中國 建國) 以後 모든 過去는 現在가 되고 있고, 모든 現在는 過去의 飜譯”이라고 말했다. 大飢饉과 文化大革命, 共産黨 1黨 體制, 마오思想 等을 다룬 以前 作品들이 드러낸 ‘어둡고 잊혀진’ 眞實은 繁榮을 謳歌하는 現在에도 反復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炸裂지에 小品으로 登場하는 冊曆(冊曆)李 “宿命을 象徵한다”며 “中國 歷史는 恒常 宿命과 輪廻 속에 있다”고도 했다. 炸裂지는 1980年 改革開放政策 以後 中國의 ‘者例’(炸裂·炸裂의 中國式 發音)라는 마을이 寸(村)→陳(鎭)→縣(縣)→市(市)→性(省)으로 커가는 過程을 쿵氏, 朱氏 집안의 對立, 두 집안 男女의 葛藤, 쿵氏 4兄弟 間의 混亂으로 엮어냈다. 그 成長의 그늘에서 人間의 사랑, 欲望과 淫亂함, 邪惡함이 拜金主義 集團主義 官僚主義 軍國主義와 赤裸裸하게 交叉한다. 그러나 結論에서는 ‘虛妄함’이 짙게 배어난다. “그 虛妄함이 오늘날 中國과 中國人의 精神的 狀態이자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人間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現代의 땅과 未來의 道路 위를 날아다니는 껍데기가 되어 있어요. 國家에서 個人에 이르기까지 夢遊의 狀態에 빠져 있습니다.” 夢遊 狀態의 中國人을 象徵하듯 小說에서 主人公 몇 名을 除外하고는 大部分 매우 受動的으로 그려진다. 作家는 “中國에는 個人이 거의 存在하지 않는다”고 그 理由를 밝혔다. “사람은 반드시 集團과 國家 안에 存在해야 합니다. 個人의 生命과 運命은 集團과 國家의 意志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最大限 思想, 言論, 行動을 統一해야 하지요.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退治의 過程에서 보듯 個人(人)은 人民이 되고, 人民은 抽象的 槪念이 됩니다. 個人의 生命이 離脫하고 隱蔽돼 人間의 意味와 價値가 없어지게 됩니다.” 中國 一部 讀者가 “現代 社會 發展 過程에서의 도둑과 娼女들을 썼다”고 우스갯소리를 할만큼 이 作品에서 女性은 性(性)을 武器로 삼는 典型性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女性은 팜파탈度 要不渡 아니다. 人間의 疏外와 疏外됨, 歪曲과 歪曲됨이라고 해야 正確할 것이다. (小說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歪曲되거나 疏外되고 있다”고 說明한다. 그가 認識하는 (中國의) 삶의 現實, 삶 自體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小說에서는 人間과 自然이 능청스러운 虛風과 極度의 誇張, 反語法을 통해 積極的으로 交感한다. 이는 글쓰기에 對한 文學的 實驗이자 文學的 事由(思惟)인 ‘信實(神實)主義’에서 起因했다고 作家는 말한다. “리얼리즘을 包含한 旣存의 어떤 文學的 觀念도 眞情으로 中國人과 中國의 現實을 表現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많고 깊고 不條理한 ‘눈에 보이지 않는 眞實’ ‘眞實 밑에 감춰진 眞實’ ‘미처 發生하지 않은 眞實’이 있기 때문입니다. 信實主義는 쉽게 體感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外面的 眞實보다는 내면적이고 精神的인 ‘內在的 眞實’을 더 重視하지요. 生活의 現實이나 眞實이 아니라 精神 或은 靈魂의 眞實입니다.” 現實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춰진 이 세 가지 眞實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信實注意가 必要하다는 指摘이다. 이달 初 코로나19 擴散에 對한 中國 政府의 對應과 情報 統制를 强度 높게 批判하는 글을 國內 季刊誌에 실었던 옌롄커는 10日 시진핑 國家主席이 우한을 訪問해 事實上 ‘勝利’를 宣言한 것에 對해 “勝利로 理解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災難 앞에서 人類는 永遠히 勝利를 얘기할 수 없어요. 疫病이 물러간 뒤에는 어떻게 해야 巨大한 災難이 中國과 人類를 또다시 襲擊하지 못하게 할지 反省하고 省察하고, 苦悶하고 赦宥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中國의 繁榮은 否定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그 過程에서 恒常 깨어 있어 뭔가를 冷徹하게 思惟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文學의 義務”라고 强調했다.민동용 記者 mindy@donga.com}
PDF紙綿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