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골프 人氣 스타 김하늘(33)李 환한 微笑와 함께 告別 舞臺를 마무리했다. 김하늘은 13日 江原 春川市 라비에벨CC 올드코스(파72)에서 열린 韓國女子프로골프(KLPGA)투어 시즌 마지막 大會인 SK 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 2라운드를 마친 뒤 隱退式을 가졌다. 이날 4오버파 76打를 記錄한 그는 中間合計 9오버파 153打로 컷 通過에 失敗했지만 成績은 큰 意味가 없어 보였다.경기를 마친 뒤 김하늘은 김해림, 박주영, 안나린, 이소영 等 後輩들의 祝賀를 받으며 15年 투어 人生을 마무리했다. 강춘자, 김순미 等 KLPGA 高位 幹部들도 케이크를 傳達하며 韓國 골프를 빛낸 김하늘에게 對한 激勵를 아끼지 않았다. 김하늘은 最近 日本 舞臺에서 뛰느라 國內 大會 出戰權은 없었지만 大會 主催社인 SK텔레콤 側에서 김하늘이 KLPGA투어에 남긴 足跡을 勘案해 欣快히 招請에 나섰다.● 大衆的인 人氣 누린 元祖 골프 스타2007年 KLPGA투어에 데뷔해 新人賞을 차지한 김하늘은 ‘스마일 퀸’이라는 別名과 함께 뜨거운 人氣를 누렸다. KLPGA투어에서 8勝을 올리며 두 次例 賞金王을 차지한 뒤 日本女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도 6勝을 거뒀다. 2011年 KLPGA투어 最高 榮譽인 對象을 受賞하기도 했다. 김하늘은 “15年을 잘 버텼다. 골프가 잘 안돼 바닥에 있을 때도 있었지만 잘 치고 올라 왔다. 그럴 수 있었던 건 熱心히 訓鍊하고 努力해왔던 德分이다”고 所感을 밝혔다. 김하늘은 KLPGA투어가 大衆的인 關心을 받으며 暴發的인 成長을 할 수 있도록 寄與한 一等功臣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뛰어난 實力과 함께 特有의 親和力을 바탕으로 韓國 뿐 아니라 日本에서도 팬덤을 이끌기도 했다. ‘하늘 사랑’이라는 팬클럽을 갖고 있었는데 當時로서는 異例的인 現象이었다.● 88年 龍띠 클럽 黃金 世代 멤버김하늘은 韓國 골프의 黃金世代로 꼽히는 1988年 龍띠 그룹의 核心이기도 했다. 박인비, 이보미, 신지애, 이정은5, 오지영, 김송희, 김인경 等이 同甲내기다 1987年生이지만 같이 學校를 다닌 최나연度 動機다. 박세리의 影響을 받아 골프에 集中한 ‘歲리키즈’로 初中高 時節부터 熾烈한 競爭 關係를 통해 實力을 키웠다. 國家代表에 選拔되기가 하늘의 별따기에 比喩됐다.2005년 京畿 龍仁 태영CC에서 열린 韓國女子오픈에서는 當時 17歲 同甲내기 3名이 베스트 아마추어 1,2,3位에 올라 施賞式에 나섰다. 1位는 박인비였고, 2位가 이보미, 3位가 김하늘이었다. 김하늘은 錚錚한 動機들에 밀려 常備軍 한番 해본 일이 없다. “나이別로 代表 人員이 定해져 있거든요. 다른 騎手는 50點이면 太極마크를 달았는데 전 150占으로도 못 달았죠.” 過去 인터뷰에서 김하늘이 밝힌 주니어 時節 回顧다. 김하늘은 寢臺 맡에 늘 캐디백을 둔 것으로도 有名하다. 자기 前에 9番 아이언 빈 스윙과 퍼팅 練習을 빼놓지 않는다. 비록 주니어 時節 動機들에게는 밀렸어도 프로에서는 꽃을 피운 祕訣이다.● 不斷한 努力으로 이룬 ‘하늘色 꿈’김하늘은 잊을 수 없는 瞬間으로 2008年 5月 휘닉스파크 클래식에서 거둔 첫 優勝을 꼽았다. 當時 本報는 ‘하늘色 꿈’이 마침내 이뤄졌며 大書特筆했다. 마지막 라운드에는 自身의 이름처럼 늘 하늘色 옷을 입는 김하늘이 프로 대뷔 後 첫 勝을 따내며 날아갈 듯 했다고 傳했다. 優勝賞金은 요즘 챔피언이 받는 優勝 賞金의 30%도 안 되는 3600萬 원. 김하늘은 2007年 平生 한番 뿐인 新人王에 登極했지만 優勝 없이 따낸 타이틀이라 아쉬움이 컸다. 게다가 루키 시즌에 自身보다 먼저 프로에 뛰어든 同甲내기 신지애가 9勝을 올렸기에 스포트라이트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2015年 27歲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日本 舞臺에 뛰어든 것도 너무 잘한 選擇이었다고 回顧했다. 김하늘은 日本 進出 첫 해에 17個 大會를 치르는 동안 톱10 進入은 한番도 없었다. 賞金 랭킹이 60位圈에 머물며 50位까지 주는 다음 시즌 出戰權 維持도 힘들어 보였다. 골프를 관둘까 苦悶하며 눈물을 쏟는 날이 많았다. 새로운 투어에 適應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韓國 最强이었던 實力을 發揮하면서 K골프의 先頭走者로 注目받았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최경주가 進行하는 冬季 주니어 캠프에 參加해 어린 後輩들과 공을 치며 初心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김하늘은 2009年 大會 途中 갖고 있던 공을 모두 잃어버려 失格될 뻔한 事件으로 有名하다. 平素 功을 4個밖에 갖고 다니지 않다 荒唐한 經驗을 했다. 그는 “한 라운드에 공 3個面 充分했거든요. 6홀마다 한 番씩 바꾸고요. 그 後로는 3줄(9個)씩 갖고 다녀요” 하며 웃었다. 김하늘을 주니어 時節부터 지켜본 이정윤 우정힐스, 라비에벨 代表는 “努力과 肯定의 마인드가 김하늘을 只今껏 있게한 原動力인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러한 部分이 人生2幕에서도 빛을 發할 것으로 期待한다”고 말했다.● “좋은 모습으로 떠나고 싶었어요.”김하늘은 2年 前부터 隱退를 苦悶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코로나19 擴散으로 韓國을 오가는 게 어려워지면서 더 빨리 몸도 마음도 지쳤다. 골프場에 가는 게 더는 즐겁지 않게 되더라.”이번 進路 決定에는 高校 時節부터 김하늘을 아낌없이 後援해준 홍광표 크리스탈밸리컨트리클럽 會長(세란병원 院長)도 큰 影響을 미쳤다. 洪 會長은 “頂上에서 떠나고, 拍手칠 때 떠나는 게 좋다. 그래야 第2의 人生을 設計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얘기를 김하늘 프로에게 자주 해줬다. 最高까지 올라가본 만큼 只今이 適切한 타이밍이라고 봤다. 앞으로 人生이 더 幸福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洪 會長은 새 공을 購入하기 버거울 程度로 집안 形便이 어려워 “萬若 元來대로 再生된다면 傷處 난 골프공에 藥을 발라 쓰고 싶다”는 高校生 김하늘을 불러 同伴라운드를 한 뒤 後援을 決心했다. 한때 100萬 원의 經費가 없어 濟州에서 열린 大會에도 參加하지 못할 만큼 힘겨웠던 김하늘은 洪 會長의 後援 속에 國內 女子골프의 强者로 成長했다. ● “第2의 人生도 期待해 주세요”김하늘은 요즘 1988年 同甲내기 골프 選手들과 누구보다 親하게 지낸다. 며칠 前에는 박인비 周旋으로 隱退 祝賀 파티를 갖기도 했다. 非시즌에 海外旅行을 다니기도 하고 틈나는 대로 만나 食事도 하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고 한다. 2019年 이보미 結婚을 앞두고는 베트남 다낭으로 團體旅行을 다녀온 적도 있다. 김하늘은 “競爭 關係에 있는 라이벌이지만 코스 밖에선 서로 親하게 지낼 수 있다면 ‘조금 더 즐겁게 투어 活動을 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後輩들을 向한 助言도 빼놓지 않았다. “같이 투어에서 뛰는 同僚끼리 힘든 것도 共有하고 밥도 자주 먹으며 즐기면서 競技하면 더 幸福한 투어를 할 수 있을 것이다.”비록 選手는 관두지만 골프와 因緣은 繼續된다. 김하늘은 “選手 指導보다는 一般人 레슨을 할 생각이고, 골프 關聯 放送 일도 하려고 準備하고 있다”고 抱負를 밝혔다. 김하늘은 自身의 功을 識別하기 위한 볼 마크로 스마일 페이스를 그린다. “공을 보며 늘 웃으려고 해요. 징크스는 스스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화나는 瞬間을 맞아도 바로 잊어요. 쉽게 버려야 채울 수 있거든요. 肯定의 힘이 重要해요.” 김하늘은 프로 初年兵 時節 코오롱의 後援을 받았다. 工巧롭게도 告別競技를 치른 라비에벨CC는 코오롱그룹에서 運營하는 골프場이다. 라비에벨이란 뜻은 ‘人生은 아름다워’라는 意味다.김종석 記者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