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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코로나19 英雄, 看護師들의 오늘|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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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코로나19 英雄, 看護師들의 오늘

오홍석 記者

2022. 06. 21

2019年 12月 中國 우한에서 처음 發見된 뒤 2年 넘게 世界를 뒤덮었던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恐怖가 漸次 사라지고 있다. 2020年 初부터 强度 높게 進行돼온 社會的 距離두기 措置는 大部分 解除된 狀態. 5月 2日 室外 마스크 着用 義務까지 緩和돼 이제는 日常에서 코로나19로 인한 制約을 느끼기 힘들다.

하루 新規 確診者 數 또한 3月 17日 62萬1328名으로 頂點을 찍은 뒤 꾸준히 減少해 6月 中旬 基準 1萬 名 以下를 維持하고 있다.

우리가 只今의 平和를 누리기까지 코로나19 集中治療 病床에서, 重患者室에서, 또 選別診療所에서 바이러스와 맞서 싸웠던 ‘戰士’들은 只今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두운 터널 끝에서 빛을 바라보며, 暫時 잊고 지냈던 우리의 英雄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어요”

유수정 간호사가 근무하는 서울의료원 본원 간호사들이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유수정 看護師가 勤務하는 서울醫療院 本願 看護師들이 病棟으로 向하고 있다.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꽤 오래前 얘기 같네요.”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醫療院 本院에서 만난 유수정(42) 看護師가 窓밖을 내다보며 한 말이다. 有 看護師가 22年째 일하고 있는 서울의료원은 2020年 2月 서울市로부터 코로나19 感染病 專擔 病院으로 指定됐다. 以後 올 5月 末 指定이 解除되기까지 2年 3個月間 이 病院에 入院한 코로나19 患者가 8814名에 이른다. 그 길고 끝이 보이지 않던 時間 동안 有 看護師는 이 病院 11層 ‘112甁洞’에서 일했다.



한때 목숨이 頃刻에 달린 感染病 患者들이 몸을 依託했던 이곳은 이제 一般 患者를 받을 수 있는 空間으로 施設 變更을 하고 있다. 陰壓 隔離 病室(空氣의 壓力 差異를 利用해 病室 內部 空氣의 外部 流出을 막는 病室)이었던 房에서 移動式 陰壓氣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陰壓期에 連結해 病室 內部 空氣를 밖으로 내보내는 데 쓰던 파이프만 남아 熾烈했던 過去의 痕跡을 斟酌하게 했다. 새로 漆한 壁에서는 옅은 페인트 냄새가 났다.

팬데믹 期間 유수정 看護師에게 112病棟은 戰爭터였다. 主任看護師인 그는 平素 午前 8時 30分 出勤해 午後 5時 30分 退勤했다. 그러나 코로나19 危機가 닥치면서 一般 看護師와 같이 3交代 勤務를 始作했다. 8時間 勤務 中 3時間 동안은 레벨D 防護服에 M95 마스크를 쓰고 PAPR(電動式 呼吸裝置)까지 着用한 채 患者들을 만났다. 特히 致命率이 높았던 델타 變異 流行 期間에는 重症 患者가 늘어나 防護服을 입은 채 5時間씩 勤務하는 날도 許多했다.

유수정 간호사가 2년 3개월 동안 사투를 벌인 음압병동은 일반 환자를 받기 위한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유수정 看護師가 2年 3個月 동안 死鬪를 벌인 陰壓病棟은 一般 患者를 받기 위한 補修工事가 한창이었다.

病棟 勤務가 끝나도 일은 繼續됐다. 곧바로 샤워를 한 뒤 7層 看護師室로 가 後輩 看護師들을 指揮했다. 實時間 모니터를 통해 患者를 觀察하다 緊急 狀況이 發生하면 누구보다 빨리 防護服을 챙겨 입고 病棟으로 向하는 날도 많았다.

“(非常 狀況이) 하루에 두 番도 생기고 세 番도 생기고 그랬죠.”

有 看護師가 설핏 웃으며 한 얘기다. 인터뷰 始作 前까지만 해도 홀가분해 보였던 그의 얼굴은 記者와 함께 112病棟을 찾으면서부터 달라졌다. 지난 2年 3個月이 눈앞에 스쳐 가서인지 萬感이 交叉하는 表情이었다. 그는 “처음엔 코로나19街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다”며 지난 時間을 回顧했다.

서울의료원은 팬데믹 初期부터 서울市의 感染病 對應 前進基地 구실을 했다. 2020年 5月에 터진 ‘梨泰院發(發) 集團 感染’ 患者들이 이곳으로 移送됐고, 델타 變異 바이러스가 流行할 때는 重患者가 몰려들었다. 지난겨울 오미크론 變異로 確診者가 暴增했을 때는 正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有 看護師는 “病床이 비는 일이 드물었다. 患者가 退院하면 卽時 다른 患者로 베드가 채워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 對應에 바쁜 渦中에도 서울의료원은 社會 脆弱階層 一般 患者 診療까지 봤다. 有 看護師는 “서울의료원은 公共病院 本然의 業務인 社會 脆弱階層 診療 또한 멈추지 않았다. 우리 病院이 오갈 데 없는 患者를 治療할 最後의 堡壘라고 생각하고 人力이 받쳐주는 限度 內에서 患者를 最大限 受容했다”고 說明했다.

서울醫療院 本願은 없는 人員을 쪼개 江南 分院에 醫療陣을 派遣하고 選別診療所와 生活治療센터까지 運營했다. 코로나19 患者가 쏟아져 들어올 때는 弘報課·院務課 職員 等 非醫療 人力까지 選別診療所와 生活治療센터 業務에 投入됐다. 有 看護師는 “그 힘겨운 瞬間을 어떻게 이겨냈느냐”는 質問에 “날마다 혼자 ‘곧 끝날 거야’라고 되뇌며 버텨냈다”고 答했다.

“일곱 살 아들에게 가장 未安했어요”

조일지 看護師(42)는 京畿 수원시 靈通區 원천동에 位置한 亞州大病院 重症 患者 治療 病床 파트長이다. 그는 지난해 6月 코로나19 關聯 業務에 投入되고 두 달이 지난 뒤부터 最近까지 줄곧 코로나19 重患者를 돌봤다.

코로나19 病原體는 主로 弊를 攻擊해 體內 酸素 供給을 어렵게 만든다. 코로나19 重患者는 에크모(ECMO·患者의 血液을 몸 밖으로 뽑아 酸素를 注入한 뒤 다시 體內로 넣어 心臟 및 肺의 機能을 도와주는 裝置)나 人工呼吸器의 도움을 받아야 呼吸이 可能한 狀態에 빠지는 境遇가 많다. 무거운 裝備에 묶이다 보니 擧動이 어렵고 大部分의 時間을 寢牀 위에서 보내게 된다. 이들을 擔當하는 看護師는 醫療 處置와 投藥뿐 아니라 排便, 配食을 챙기는 等 患者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봐야 한다. 兆 看護師는 “重患者室에 勤務하다 보니 應急 患者가 發生하면 防護服을 입은 채 30分씩 心肺蘇生術(CPR)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며 當時 記憶을 떠올렸다.

고된 業務에 離脫하는 同僚도 많았다. 兆 看護師가 코로나19 關聯 勤務를 始作할 當時엔 看護師 7名이 重患者 14名을 管理했다. 以後 全國的으로 確診者가 增加함에 따라 重患者는 늘어났지만 看護師는 충원되지 않았다. 看護師 1名이 患者 3~4名 異常을 돌보는 일이 非一非再했다. 特히 오미크론 變異가 流行할 때는 醫療陣 感染이 續出해 人力 空白이 더욱 컸다고 한다. 그나마 버티던 看護師들마저 加重되는 疲勞와 業務 負擔을 버티지 못하고 辭表를 提出하는 일이 反復됐다. 兆 看護師는 “어려움이 커질수록 ‘나는 버텨야 한다’는 責任感이 더욱 强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얘기다.

“저 때문에 코로나19 病原體가 病院에 들어오면 큰일이잖아요. 그런 일을 막으려고 지난 2年間 休暇 한番 제대로 못 갔어요. 돌아보면 일곱 살, 열네 살 두 아들에게 참 未安해요. 特히 우리 막내는 2年 넘게 집에만 있다 보니 이제는 家族끼리 어디 가는 것 自體를 語塞하게 여기더라고요. 말씀드리다 보니 더욱 未安해지네요.”

하광은(42) 看護師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位置한 서울特別市東部病院(東部病院)에서 일한다. 팬데믹 以前 그의 補職은 호스피스 看護師였다. 서울醫療院과 마찬가지로 서울市 傘下 公共病院인 東部病院은 팬데믹 初期만 해도 社會 脆弱階層 對象 診療를 繼續하느라 코로나19 患者는 많이 받지 않았다. 그러나 2020年 12月 確診者가 폭증하자 保健福祉部와 서울市는 東部病院度 感染病 專擔 病院으로 指定했다. 이로 因해 露宿人을 包含해 東部病院에 入院 中이던 一般 患者 모두가 다른 病院으로 移送되거나 退院 措置됐다. 호스피스 病棟 患者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下 看護師는 當時를 떠올리며 “臨終이 臨迫한 患者들이 다른 施設로 옮기는 過程에서 돌아가실까 봐 많이 걱정됐다”고 말했다.

以後 下 看護師가 勤務하던 호스피스 病棟은 東部病院 코로나19 狀況室로 改造됐다. 下 看護師는 이 狀況室과 코로나19 病棟, 生活治療센터 等을 오가며 일했다. 오랜 時間 호스피스 病棟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患者를 지켜봤음에도, 팬데믹 期間의 죽음은 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호스피스 病棟에서는 마지막 瞬間을 最大限 家族과 함께 보내도록 한다. 그런데 팬데믹 初期 코로나19 患者들은 家族 面會도 못 하고 葬禮도 못 치르지 않았나”라며 “患者가 使用한 遺品, 特히 個人的인 記錄이 많이 남아 있는 핸드폰조차 遺族이 가져가지 못하는 狀況을 보며 特히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전유경 간호사가 사용한 검사키트.

전유경 看護師가 使用한 檢査키트.

전유경(26) 看護師는 서울 鍾路 탑골公園 臨時 選別診療所에서 지난해 12月부터 6個月 동안 契約職으로 勤務했다. 每日 아침 出勤하면 防護服을 입고 午前 3時間, 午後 3時間에 걸쳐 診斷檢査를 實施했다. 前 看護師는 “나를 包含한 選別診療所 同僚들은 每瞬間 檢査받는 사람들에게 評價받는 位置에 있는 듯 느껴지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美國에서 檢査할 때는 안 아프던데 여기는 왜 이렇게 아프냐” “나 아프라고 일부러 깊숙이 쑤시는 거냐” 等 檢査받으러 온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말이 前 看護師의 마음을 찔렀다.

한겨울에는 핫팩을 붙여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한겨울에는 핫팩을 붙여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겨울에는 寒波도 醫療陣을 고통스럽게 했다. 等에 핫팩을 붙이고 防護服을 입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露宿人들이 밤마다 選別診療所 텐트 안에 들어와 몸을 녹이는 것도 問題였다. 저녁에 아무리 깨끗이 淸掃를 해놓고 退勤해도 이튿날 아침 出勤하면 選別診療所 안에 大小便 냄새가 振動했다. 오미크론 變異로 確診者 數가 頂點에 達한 올 2, 3月은 特히 選別診療所가 가장 바쁜 時期였다. 前 看護師는 “同僚 6名이 하루 平均 900名 以上을 檢査했다”며 “나 혼자서 하루에 250名을 檢査한 날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선별진료소에서 근무중인 전유경 간호사.

서울 鍾路區 탑골公園 選別診療所에서 勤務中인 전유경 看護師.

取材 過程에서 勤務 經歷 20年이 넘은 베테랑 看護師를 多數 만났다. 이들은 “2015年 메르스 流行 等 여러 感染病 事態를 겪어봤지만 코로나19만큼 힘들었던 적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看護師 1名이 管理하는 患者 數, 防護服을 着用한 채 勤務하는 時間 等의 基準이 定해져 있지 않다 보니 現場에서 極限을 體驗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버티지 못하고 일터 떠나는 看護師들

業務 强度에 더해 看護師들을 고통스럽게 한 건 一部 患者들의 無禮한 行動이었다고 한다. 서울醫療院 유수정 看護師는 “어떤 患者는 看護師에게 ‘나는 每日 아침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야 한다. 가져다 달라’고 要求하기까지 했다”며 “看護師를 시중드는 사람 程度로 여기는 患者가 많아 힘들었다”고 吐露했다. 選別診療所에서 勤務한 전유경 看護師는 “술에 醉한 채 찾아와 코로나19 檢査를 해달라고 亂動을 피우는 사람부터 엉덩이를 툭 치고 가는 사람, ‘看護師들이 싸가지가 없다’며 辱을 하고 國民申聞鼓에 持續的으로 民願을 넣는 사람 等 別別 사람이 다 있었다”고 밝혔다. 東部病院 하광은 看護師는 生活治療센터에서 非對面 業務를 할 때 記憶을 떠올렸다. “受話器 너머로 暴言을 쏟아붓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런 일을 反復的으로 겪다 보니 나중에는 몸보다 精神이 먼저 지쳤다”는 것이다.

肉體 疲勞에 感情 勞動까지 隨伴되다 보니 現場을 떠나는 看護師가 적잖았다. 유수정 看護師는 “팬데믹 期間 동안 서울醫療院에서만 200名이 넘는 看護師가 辭表를 썼다”고 말했다. 亞州大病院 조일지 看護師도 “코로나19 危機를 겪으며 많은 後輩가 病院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의 얘기다.

“後輩들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며 처음엔 어떻게든 다독이려고 努力했어요. ‘看護師로 21年間 勤務한 나도 只今처럼 힘들었던 적이 없다. 너희들이 힘든 건 當然하다. 그래도 우리 歷史的인 瞬間에 看護師로서의 使命을 다하자.’ 第 說得에 고개를 끄덕이는 後輩들도 있었지만, 떠나려고 마음먹은 이들을 붙잡기엔 力不足이었죠.”

일터를 떠난 看護師를 代替하기 위해 新規 看護師를 採用하면, 現場에서 이들을 敎育해야 하는 中堅級 看護師들 業務는 더욱 加重됐다. 조일지 看護師는 “患者 2名 보기도 벅찬 新規 看護師가 5名, 10名씩 돌보다 보니 또 辭表를 提出하는 惡循環이 벌어지곤 했다”고 말했다.

看護師 人力 離脫 막기 위해서는

醫療 現場의 人力 不足은 팬데믹 期間 동안 持續的으로 提起된 問題다. 지난해 9月 民主勞總 醫療連帶本部는 感染 病棟 人力 不足을 呼訴하며 서울市廳 앞에서 서울大病院, 보라매병원, 서울醫療院에 提出된 看護師 辭職書 674張을 뿌리는 示威를 벌이기도 했다.

病院看護社會가 調査한 ‘最近 5年間 病院 看護師 辭職率’에 따르면 2018年 13.9%에서 2020年 14.5%로 높아졌다. 特히 新規 看護師의 1年 內 辭職率이 50%에 達한다. 看護師 免許 所持者 相當數가 病院에서 勤務하지 않는 것도 現實이다. 大韓看護協會 調査 結果 올해 3月 末 現在 看護師 免許者는 48萬1443名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醫療機關에서 勤務하는 臨床看護師는 50.9%인 24萬5021名에 不過한 것으로 把握됐다. 記者와 만난 看護師들은 “只今 이 問題를 풀지 않으면 앞으로 닥쳐올 또 다른 醫療 危機 狀況에서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일지 看護師가 提案하는 한 가지 解法은 看護師 1名이 專擔하는 患者 數를 法律로 定하는 것이다. 全國保健醫療産業勞動組合이 지난해 3月 發表한 資料에 따르면 韓國에서 看護師 1人이 擔當하는 患者 數는 16.3名으로 美國(5.3名), 英國(8.6)에 비해 越等히 높다. 兆 看護師는 “이런 環境에서는 看護師가 번아웃에 빠져 職業을 抛棄할 수밖에 없다”고 指摘했다. 유수정 看護師는 “코로나19를 이겨내는 데 크게 貢獻한 公共病院 看護師들의 處遇가 많이 劣惡한 것도 問題”라는 意見을 냈다. 그의 말대로 公共病院은 코로나19 對應에 中樞的인 구실을 했다. 國民健康保險公團에 따르면 지난 2年間 政府가 指定한 感染病 專擔 病院 87個所 中 62個所(71.3%)가 公共病院이었다. 이들 病院은 코로나19 入院患者의 3分의 2 以上(68.1%)을 治療했다. 有 看護師는 “코로나19를 겪으며 部分的으로 手當 改編이 이뤄지긴 했지만 如前히 公共病院 看護師의 處遇는 다른 醫療機關에 비해 턱없이 不足하다”며 “處遇 改善 없이는 公共病院을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또다시 닥칠지 모르는 팬데믹에 對備하려면 感染病 專擔 病院이 必要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일지 看護師의 意見이다.

“韓國의 醫療 力量은 매우 優秀하지만, 民間 病院 依存度가 지나치게 높다. 感染病 팬데믹으로 確診者가 폭증하면 제대로 對應하기 어려운 게 現實이다. 이番 오미크론 變異 때 主要 醫療機關이 事實上 痲痹되는 狀況이 發生하지 않았나. 앞으로도 팬데믹이 反復될 것이라는 警告가 많은 만큼, 더 늦기 前에 中央에서 컨트롤 타워 役割을 할 感染病 專擔 病院을 設立해야 한다.”

#코로나看護師 #陰壓病棟 #重患者室 #選別診療所 #여성동아

寫眞 게티이미지 오홍석·지호영 記者 
寫眞提供 전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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