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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우리 모두의 어머니 ‘耆宿’|여성동아

LIFE STYLE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우리 모두의 어머니 ‘耆宿’

성지연 에세이스트, 國文學 博士

2022. 06. 19

박완서 作家의 聯作 小說 ‘엄마의 말뚝’은 分斷 文學의 代表 事例로 引用되곤 한다. 어머니 ‘耆宿’을 여기에만 가둬두는 것은 옳지 않다. 그女는 韓國 近現代史가 만들어 낸 소용돌이 가운데 自身의 말뚝을 세워나간 사람이다. 

박완서(1931~2011)

박완서(1931~2011)

韓國 小說을 꽤 읽었다. 그 小說에는 다양한 어머니가 登場한다. 어머니는 子息에게 모든 걸 내주는 存在거나 世俗의 價値를 代辯하는 存在다. 또 너른 품이 限없이 그리운 存在거나 家父長制에 애처롭게 시달리는 存在다. 그런데 박완서 作家의 ‘엄마의 말뚝’ 말고는 딱히 어머니의 이름이 기억나는 小說이 없다. 이 作品의 마지막은 어머니 이름이 ‘耆宿’임을 밝히며 끝난다. 그女의 이름을 남기는 意圖는 뭘까. 小說 內容을 한番 따라가 보자.

‘엄마의 말뚝’ 聯作에서 가장 强烈하게 記憶에 남아있던 部分은 두 番째 篇의 마지막이다. 어머니는 젊어서 男便을 잃었다. 딸인 話者(話者)의 樂園이었던 故鄕, 京畿道(現 黃海北道) 開豐郡 박적골에서였다. 어머니는 都市의 洋醫師에게 돈 들여 手術시키면 병든 男便을 살릴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結局 그는 아들 하나는 어떻게든 成功시켜보겠다고 바느질 솜씨 하나에 期待 서울로 떠났다.

어머니는 서울의 가난한 洞네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每日 長斫을 한두 段씩 사다 때야 했다. 눈이 쌓인 山洞네 비탈길을 오가야 하는 일이었다. 아들은 自己가 하겠다고 나섰다. 어머니는 拒絶했다. 張差 工夫 잘 해 큰일 하라고. 큰돈 벌어 孝道하라는 거였다.

그런 아들을 戰爭에 잃었다. 아들은 義勇軍으로 入隊했다가 脫出해 집안에 숨어 있었다. 집에 찾아온 人民軍에 依해 發覺돼 銃傷을 입고 죽었다. 어머니는 假埋葬했던 아들 遺骨을 火葬해서 開豐郡 땅이 보이는 江華島 北쪽 바닷가에서 뿌렸다. 딸은 어머니의 이런 行動이 모든 걸 빼앗아간 分斷이란 怪物에 抗拒하는 것이라 解釋한다.

이 場面은 우리 小說史에서 分斷 文學의 높은 境地를 보여주는 光景으로 읽혀 왔다. 個人의 삶은 歷史 안에 내던져지고, 歷史의 悲劇은 個人의 悲劇으로 나타난다. 바람에 날리는 뼛가루는 그 悲劇에 屈服하지 않으려는 個人의 悽絶한 意志다.



아들의 뼛가루를 날리는 어머니 ‘耆宿’은 果然 어떤 사람일까. 기숙을 分斷 問題에만 가둬두는 것은 옳지 않다. 기숙은 自己 자리에서 自身의 方法으로 人生을 開拓해나간 人物이다. 人生의 答은 서울에 있을 거라고 믿고 그곳에 말뚝을 박은 그런 사람이다.


어머니는 ‘新女性’李 되라고 하셨다

박완서 작가의 어머니 홍기숙 여사.

박완서 作家의 어머니 홍기숙 女史.

딸을 서울로 데려가던 어머니가 딸의 귀에 속삭인 건 ‘新女性(新女姓)’이었다. 事實 어머니는 新女性을 잘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딸이 都大體 뭔지 몰라 하니 서울로 가는 汽車에 타고 있는 女子들을 가리키며 說明해 나갔다. 히사시까미(긴 머리카락을 자른 後 비녀를 꽂지 않고 앞머리와 뒷머리를 둥글게 말아 올려 固定시킨 헤어스타일)로 빗은 머리, 통치마, 뾰족구두, 한도바꾸(핸드백) 같은 게 新女性의 表式이었다.

“新女性이란 工夫를 많이 해서 이 世上의 理致에 對해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女子란다.”

어머니가 내놓은 答辯이었다. 어마어마하다. 世上에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니. 시골에는 없는 것, 自身은 할 수 없던 것, 이 世上에 없는 것이었다. 新女性을 向한 꿈은 얼마나 힘이 센지 媤父母를 이기고, 딸도 이겼다. 期於이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머니는 本來 新女性과 距離가 멀었다. 新女性은 어머니에게 없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 어머니가 願하는 건 딸을 新女性으로 만드는 거였다.

媤父母의 反對는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갈 때보다 激烈했다. 孫子를 都市인 對處(大處)에 데리고 나가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하겠다는 며느리의 決心에는 希望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媤父母는 孫女를 新女性으로 만들겠다는 며느리의 意志에는 同意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成功을 위해 獻身했을 뿐 아니라 딸에게까지 成功을 期待했다. 아들의 成功을 위해 딸들에게 犧牲을 强要했던 旣成의 家父長主義와는 다르다. 子息의 成長에는 父母의 期待가 必要하다. 그 稀少한 資源을 어머니는 딸에게도 나눠줬다.

하지만 딸은 생각이 달랐다. 오빠가 成功이란 올가미에 걸려 樂園과 같은 박적골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대처가 自身에게는 新女性이란 올가미를 씌웠다고 봤다. 딸은 自身을 무언가로 만들려는 올가미가 무서웠다. 代身 긴 다紅치마, 紫朱고름 달린 노랑 저고리, 꽃신을 願했다. 차림새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新女性이 되고 싶지 않았다. 媤父母도 정든 孫女를 곁에 두고 싶었다. “무슨 수로 기집애꺼정 學校에 보내 보내길”하고 펄쩍 뛰었다. 어머니는 딸의 긴 머리를 잘라 斷髮머리로 만들어 딸과 媤어머니의 氣를 單숨에 꺾어버렸다.

어머니는 딸을 서울 四大門 案을 뜻하는 ‘門안 學校’에 입학시키려고 努力했다. 어머니에게 ‘問安’과 ‘門밖’은 重要하다. 어머니는 四大門 밖 현저동 이웃들을 常것 取扱했지만, 정작 自身도 門밖에 살아 ‘門밖 意識’이란 矛盾的 劣等感에 시달렸다. 그래서 딸을 門안 學校로 보내려고 成功하기 前에는 만나지 않을 거라 決心했던 親戚을 찾아다녔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딸은 先生님 앞에서 말할 親戚집 假짜 住所를 외워야 했고, 아이들 生間을 꺼내 먹는 문둥이가 있다는 山등성이를 넘어 學校를 다녀야 했다.

어머니는 期於코 서울에 집을 사 말뚝을 박았다. 獨立門 옆 현저동 꼭대기인 ‘門밖’에서였다. 말뚝은 집, 다시 말해 存在가 居處하는 空間을 隱喩한다. 어머니는 새로 장만한 집을 고치고 다듬으며 흐뭇해했지만, 同時에 自身이 살고 있는 洞네를 門밖이라고 업신여겼다. 어머니는 딸을 洞네 아이들과 떼어놓으려 했고, 딸은 洞네에서도, 學校에서도 親舊를 사귈 수 없었다.

딸은 어머니가 追求한 成功에 穩全히 同意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벗어나려던 박적골의 便에 가 있었고, 洞네 사람을 門밖 사람이라고 常것들로 부르는 어머니에게 不便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딸은 自身 안에 어쩔 수 없이 存在하는 ‘門밖 意識’을 批判的으로 돌아본다. 이 聯作 小說에서 가장 빛나는 部分이다.

母性 神話가 드리운 그늘

박완서 작가의 1971년 1974년 1975년 모습(왼쪽부터). 가운데 사진의 청년은 박 작가의 장녀 호원숙 작가다.

박완서 作家의 1971年 1974年 1975年 모습(왼쪽부터). 가운데 寫眞의 靑年은 朴 作家의 長女 好圓熟 作家다.

이제 딸도 自身의 家庭을 일궜다. 딸은 집에서 일어난 不祥事는 모두 自身이 집을 비운 사이, 바깥 재미에 빠져 집 생각을 한 番도 안 할 때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럴 때마다 섬뜩함이 찾아왔다. 한참 재미에 빠져 放心하다 섬뜩한 느낌이 들며 精神을 차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섬뜩함 自體를 사랑했다. 그 섬뜩함은 一瞬 無意味한 진구덩의 堆積에 不過한 나의 日常, 내가 主人인 나의 삶의 해묵은 먼지를 깜짝 놀라도록 아름답고 生氣 있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 섬뜩함에 對해 딸이 갖는 感情은 複合的이다. 分明 나쁜 일에 對한 豫感일 텐데, 그날이 그날 같은 無意味한 日常에 逆說的으로 빛을 비춘다고 했다. 倦怠가 幸福처럼, 먼지가 金가루처럼 빛나는 뜻밖의 삶의 祝福이라고까지 여겼다. 나만 없어 봐라, 같은 恐喝을 하며 살림의 終身 執權을 한다고까지 했다.

어머니가 子息들의 成功을 위해 自身을 돌보지 않고 일했다면, 딸은 日常에서 스스로가 主人이 되는 自身의 삶을 所重히 했다. 어머니가 ‘當爲로서의 삶’을 追求했다면, 딸은 ‘存在로서의 삶’을 내세운다. 그런데 當爲로서의 義務와 存在로서의 自由는 抛棄할 수 없는 삶의 두 가지 價値가 아닐까.

어쩌면 小說의 뒷面, 小說에 쓰이지 않은 瞬間들에 어머니는 暫時의 餘裕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딸이 안 볼 때, 아이들이 다 자고 周圍가 고요할 때, 그女는 自身을 돌보는 時間을 가졌을 거다. 그때 自我가 숨 쉴 조그마한 틈을 찾아냈을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의 말뚝’ 세 篇은 各各 1980年, 1981年에, 1991年에 나왔다. 그 後로 40年이 흘렀다. 아이와 家族을 위해 모든 것을 犧牲하는 母性이란 지나간 옛날이야기다. 그렇지만 如前한 神話다. 神話는 時間을 뛰어넘는다. 時間의 拘束을 받는다면 그건 神話가 아니다. 이만큼 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그 딸도 이 程度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神話인 줄 알면서도 그 神話를 여기의 삶에서 이루기 위해 自身도 모르게 努力한다. 그게 神話의 힘이다.

外部의 壓迫보다 더 强力한 게 內部의 壓迫이다. 神話는 慇懃슬쩍 內面으로 기어들어와 어찌하기 어려운 罪責感을 만들어 낸다. 이런 方式으로 母性의 神話는 모든 어머니의 神話가 되고, 拒否하기 어려운 ‘自己 搾取’가 된다. 오늘날 母性이 處한 그늘이다.

우리 社會에서 社會生活과 育兒를 竝行하기란 참 어렵다. 나의 어머니는 9年을 敎職에 몸담다 그만두셨는데, 둘째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언젠가 어린 나를 붙잡고 “올해가 10年째인데 이제는 學校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아쉬워하셨다. 나도 어렸지만 그때 동생들은 더 어렸다. 엄마가 내게 나눠줬던 期待만큼 해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못했다. 나 亦是 아이 키우고 살림하느라 相當한 時間을 보냈고, 社會에는 내가 돌아갈 자리가 없었다.

요즘 젊은 女性들은 엄마 노릇 하기가 좀 便해졌는지 모르겠다. 女性家族部의 ‘2021年 兩性平等 實態調査’를 찾아봤다. 家族生計를 男性이 主로 責任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比率이 29.9%다. 2016年 調査에선 42.1%였다. 職場生活을 해도 子女에 對한 주된 責任은 女性에게 있다는 答辯은 17.4%다. 2016年엔 53.8%였다. 5年 동안의 變化가 이 程度면 40年 前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돌봄 勞動의 고단함은 只今도 如前하다. 맞벌이 家庭이라도 女性의 돌봄 時間은 男性의 두 倍, 12歲 以下 兒童이 있는 境遇는 세 倍라니 말이다.

自身의 이름으로 便安하게 눕기

박완서 소설 ‘엄마의 말뚝’

박완서 小說 ‘엄마의 말뚝’

韓國 出産率이 經濟開發協力機構(OECD) 꼴찌인 것만 봐도 엄마 노릇하기란 如前히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엄마도 사람인데 엄마 노릇이 人生을 다 걸만큼 어려운 거라면 쉽게 마음먹을 일도 아니다. 엄마에게 미뤄 놓았던 돌봄 勞動을 어떻게든 덜어줘야 엄마들도 罪責感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을 거다.

“生前의 어머니는 깔끔한 代身 차가운 분이어서 한 番도 그렇게 곰살궂게 군 적이 없었음에도 不拘하고 어머니의 生涯만큼 먼 옛날의 作名이 나에게 그런 慰撫를 해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銜字는 몸 基己 者, 잘 숙宿 字여서 어려서부터 끝 字가 맑을 숙 者가 아닌 걸 참 異常하게 여겼었다.”

聯作 세 番째 篇의 마지막에서 딸이 어머니의 酸素를 보고 떠올리는 생각이다. 어머니는 新女性이 아니었지만 차가운 분이었다. 그에 對한 記憶이 외려 따듯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 世上에서 차갑기 만한 사람은 없다. 살아내려면 곰살궂기보다 冷靜해야 한다. 딸은 비로소 차가움 안에 있는 따듯함을 發見하게 됐다고 나는 읽고 싶다.

어머니는 生前에 오빠와 똑같이 化粧을 해 그때 그 자리에 뿌려달라고 했다. 아들의 뼛가루를 뿌리는 行爲가 怪物을 거역할 唯一한 手段이었다면 어머니의 마지막 所願을 들어드리는 게 맞다. 그런데 아들을 앗아간 分斷만 怪物인가. 어머니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怪物과 맞닥뜨렸을까. 먹고 사는 데 부딪히는 온갖 악다구니들 亦是 怪物이었을 거다.

오빠의 아이인 조카는 할머니, 그러니까 어머니의 平凡한 葬禮를 願한다. 딸은 조카의 方式에 못 이기는 척 同意한다. 엄마, 엄마의 고단한 삶을 여기서 접으세요. 所願을 안 들어드리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어머니는 充分히 熱心히 사셨어요. 이제 엄마 이름의 意味대로, 여기 저희가 마련한 땅에 便安히 몸을 누이셔도 돼요. 어머니를 떠나 보내드리는 딸의 心情은 이랬을 터다.

이 光景을 지켜보는 나도 慰安을 받는다. 어머니가 人生을 마무리하는 瞬間까지 고단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抑鬱하다. 마지막 瞬間만이라도 自身의 이름을 찾고, 그 이름을 새긴 말뚝 아래 便安히 잠든다는 생각만으로도 한결 便安한 心情이 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머니라면 그 누구라도 삶의 當爲와 存在가 안겨줄 수 있는 두 기쁨을 모두 누릴 資格이 있다. 박완서의 어머니도, 나의 어머니도 모두 그러하다. 엄마에게 電話라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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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연의 다시 만난 그女들
1970年 出生. 연세대 社會學科를 卒業하고 同大學院 國語國文學科 碩博士 學位를 받았다. 다양한 글쓰기를 하는 專業 에세이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寫眞 東亞DB 寫眞提供 김용호 世界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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