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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위의 워너비 허미정|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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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위의 워너비 허미정

EDITOR 김지은

2020. 01. 07

2019年은 그야말로 大韓民國 골프 女帝들의 해였다. LPGA 27個 大會 中 折半이 넘는 15個 大會를 휩쓸며 2015年과 2017年에 이어 歷代 우리나라 選手의 最多勝 타이記錄을 達成한 것. 特히 돋보인 것은 2勝을 達成한 허미정 選手의 活躍이었다. 챔피언 트로피와 함께 故國으로 돌아온 그를 만났다.

지난해 9月 30日, 大韓民國 골프界에 朗報가 날아들었다. 허미정(31·대방建設) 選手가 美國女子프로골프(LPGA) 투어 인디 위민 人 테크 챔피언십에서 優勝을 차지한 것이다.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브릭야드 크로싱 골프클럽에서 열린 이 大會에서 그는 마지막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4個를 追加하며 21언더파 267打를 記錄했다. 賞金 30萬 달러(約 3億6千萬원)보다 값진 것은 生涯 첫 ‘와이어 투 와이어’, 卽 大會 始作부터 끝까지 한 番도 先頭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競技를 主導하여 爭取한 ‘完璧한’ 勝利라는 點이다. 그는 그보다 한 달 앞선 8月,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에서도 優勝컵을 거머쥐었다. 

LPGA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 事務局에서 主催하는 公式 大會로, 草創期인 1950年代에는 美國 選手들이 主를 이뤘지만 1990年代 以後부터는 다양한 國籍의 選手들이 參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박세리 選手가 1998年 LPGA 入門 첫해에 4勝을 거두고 10年 茶가 되던 2007年에는 名譽의 殿堂에 오르는 榮譽를 안은 바 있다. 以後로도 박지은, 金美賢, 한희원 等 大韓民國 골프 歷史를 이끈 傑出한 人物들이 大擧 LPGA로 進出해 勝戰譜를 남겼으며 現在는 허미정을 비롯해 世界 랭킹 1位 고진영과 박인비, 朴城炫 等 내로라하는 選手들이 猛活躍하며 골프 最强國으로서의 面貌를 이어가고 있다.

골프 演習場은 나의 놀이터

지난 8월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 우승 직후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는 허미정 선수.

지난 8月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 優勝 直後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는 허미정 選手.

허미정의 골프 人生은 初等學校 3學年 時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를 따라 구경 삼아 간 골프 演習場에서 흉내 내듯 골프채를 휘둘러본 것이 始作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채만 휘둘렀는데도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父母님께 ‘배워보고 싶다’고 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父母님은 제가 그냥 趣味로 한番 해보고 싶어서 한 얘기려니 생각하셨을 거예요. 때마침 父母님의 일터 近處에 제가 다닐 만한 작은 골프 演習場이 있었거든요. 두 분이 맞벌이를 하고 계셔서 어린 저를 마땅히 맡겨둘 데도 없었던 터라 機會가 좋았죠. 그날부터 每日 放課 後엔 父母님의 일이 끝날 때까지 거기서 골프만 쳤습니다.” 

父母님에게 골프 演習場은 어린 虛 選手를 安心하고 맡길 수 있는 最適의 場所였다.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파고드는 性格인 그에게도 골프場은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實力은 自然스레 늘었고, 試合에 나가볼 機會도 생겼다. 처음부터 巨創하게 ‘將來 希望:골프 選手’라고 가슴에 품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차곡차곡 時間이 쌓이다 보니 自然스레 프로 選手의 길을 걷게 되었다. 



허미정의 프로필은 宏壯히 華麗하다. 2001年 12歲에 女子 주니어 常備軍으로 入團해 猛活躍을 펼쳤고, 5年 뒤인 2006年부터는 國家代表로 가슴에 太極 마크를 달고 그린을 누볐다. LPGA 데뷔 첫해인 2009年에는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生涯 첫 優勝을 裝飾하기도 했다.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순조로웠다. 골프밖에 모르고 살아온 그이기에 너무나도 當然히 누려야 할 榮光의 瞬間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最高의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孤獨感, 어린 時節의 그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견뎌야 하는’ 瞬間들이 徐徐히 그의 마음을 좀먹기 始作했다. 

“어린 나이에 골프를 始作한 게 長點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커요. 또래들과 함께 經驗해야 할 많은 것들을 놓쳤으니까요. 周邊을 보아도 너무 어릴 때 골프를 始作해 熱情的으로 달려온 選手들이 더 빨리 選手 生活에 厭症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늦은 나이에 골프를 始作해 빛을 發하는 選手들이 많은 것도 그런 理由겠죠. 제 境遇에도 주니어 選手 時節엔 아무것도 모르니까 마냥 좋고 신났거든요. 아버지와 같이 다니며 재미있게 친 게 全部니까요. 그런데 프로가 되고선 重壓感에서 벗어날 수가 없더라고요. 後援社에도 報答을 해야 하는데, 그 報答이란 것이 結局 成跡밖에 없으니까요.” 

재밌어서, 無酌定 좋아서 始作한 골프지만 이미 未來를 定해버린 듯 한 가지에만 沒入해버린 幼年期는 成人이 된 그에게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缺乏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親舊들과의 小小한 追憶, 學校生活에서 얻을 수 있는 크고 작은 經驗들, 또래들과 함께 어울리며 克服해가는 成長痛 같은 것들. 그는 “다시 열 살 꼬꼬마 時節로 돌아간다면 ‘골프만 하면서 자란 幼年期’를 ‘골프도 하면서 자란 幼年期’ 程度로 조금은 나눠 쓰고 싶다”고 했다. 

遺傳的으로만 따지면 그는 작고 雅淡한 體軀여야 마땅하다. 家族들 中 누구도 키가 큰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골프 選手들 사이에서도 눈에 띌 程度로 늘씬한 몸에 쭉 뻗은 팔다리를 가지고 있다. 

“中學校 때 키가 크려면 라면, 피자, 콜라 이런 것들을 모두 끊어야 한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그 뒤로 몇 年間 아예 그런 飮食들엔 눈길도 주지 않고 버텼어요.” 

어릴 적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도 5個月 동안은 시키는 대로 마냥 똑딱볼(골프채를 左右로 흔드는 姿勢)만 치며 버텼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基本技는 서른에 새로운 全盛期를 맞을 수 있는 滋養分이 되었다. 只今도 그는 體力訓鍊 때면 옆에서 “한 個만 더!”를 외치는 트레이너가 있건 없건 힘에 부쳐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運動을 繼續하곤 한다. 結局 勝負는 빨리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것에서 決定 난다. 

“始作하자마자 풀스윙부터 가르쳐달라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마음은 다 똑같을 거예요. 빨리 배워 필드에 나가보고 싶고, 當場에라도 멋지게 풀스윙을 날리고 싶고. 하지만 長期的으론 基本技를 잘 다져놓는 게 重要합니다. 機會가 되면 골프를 始作하시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무엇에서건 앞뒤 재지 않고 스스로를 限界値까지 몰아붙이곤 하는 性格이 없었다면 只今의 그가 있었을까 싶다. 누군가에겐 거저 얻은 幸運 같겠지만, 힘들다고 툴툴대거나 뒤돌아서 울지 않아도 괜찮았던 건 그 누구도 代身할 수 없는 自身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結婚이 膳物한 生涯 最高의 시즌

골프는 至毒하리만치 孤獨한 스포츠다. 드넓은 그린 위 라이벌이라곤 오직 한 사람, 自己 自身밖에 없기 때문이다. 별다른 팀워크가 必要한 일도, 누군가를 탓할 만한 狀況도 만나기 어렵다.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選手는 없었어요. 勿論 저보다 멋지고 훌륭한 選手는 많지만, 골프라는 運動 自體가 至極히 혼자만의 게임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던 거 같아요.” 

프로의 世界는 빛과 空氣가 遮斷된 眞空의 世界처럼 空虛하고, 무거웠다. 視野에 들어오는 다른 選手들의 퍼팅, 스치듯 보게 되는 스코어, 그 刹那의 瞬間이 엄청난 威力으로 멘탈을 치고 들어올 때마다 그는 벼랑 끝에서 버티듯 呼吸을 골랐다. 

“競技 때는 저 自身에게만 集中하려 努力해요. 그래도 正말 緊張되는 瞬間이 있죠. 그럴 땐 深呼吸을 해요. 들이마실 때는 코로 들어오는 空氣를, 내뱉을 때는 입술로 빠져나가는 空氣를 느끼는 거죠. 그렇게 모든 感覺을 空氣의 흐름에 集中하다 보면 어느새 雜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平穩해지더라고요.” 

默默히 견디거나 모든 걸 내려놓아야 끝이 나는 悽絶한 혼자만의 싸움, 두 番째 優勝의 機會는 5年 뒤인 2014年 요코하마 타이어 LPGA 클래식에서야 찾아왔다. 뛸 듯이 기뻤지만 또 한便으론 두려웠다. 優勝의 기쁨보단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승부욕이 온몸의 細胞를 銳敏하게 刺戟했다. 

“프로 入門 以後로는 골프에 關한 모든 것들이 무겁고 深刻해졌어요. 골프가 正말 재미있고 신나는 運動이란 걸 프로가 된 後 오랫동안 잊고 지냈거든요.” 

허미정이 最近 눈부신 活躍을 이어가는 데는 든든한 男便의 存在를 빼놓고 說明할 수 없다. 그는 2018年 1月, 프로 골퍼 가운데는 이른 나이인 29歲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親하게 지내는 언니를 만나러 釜山에 잠깐 내려갔는데 兄夫가 저와 잘 어울릴 거 같다며 後輩를 불러냈어요. 그때가 밤 11時쯤이어서 잠깐 얼굴만 보고선 바로 大田으로 올라왔죠. 그 뒤로 4週間 LPGA 아시안 스윙에 參加해야 했거든요.” 

그냥 스쳐 지나는 因緣으로 끝나도 全혀 異常하지 않았을 만남이었다. 한 해에도 몇 次例, 海外 곳곳으로 시즌 투어를 다녀야 하는 그에게 安定的인 戀愛는 말도 안 되는 奢侈였다. 

“아시안 스윙 期間 동안은 每日 映像 通話와 카카오톡 메시지로 安否를 주고받았어요. 그러다 시즌이 끝나고는 最大限 많이 만났죠.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웠거든요. 시즌이 始作되면 또 떨어져 지내야 하니까.” 

만남이 거듭될수록 確信은 커졌다. 함께할 수 있는 時間이 많지 않은 두 사람에게 結婚만큼 좋은 選擇은 없었다. 마음이 躁急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디서든 堂堂하게 함께할 수 있는 ‘口實이 必要했다’는 게 맞겠다.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結婚을 좀 더 빨리할 걸 그랬나 싶을 程度”라고 했다. 

“結婚을 하고 나서 골프에 對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골프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내 篇’李 한꺼번에 많이 생겼기 때문인 거 같아요. 男便이 3兄弟 中 막내인데 媤父母님뿐만 아니라 아주버님, 兄님들도 모두 골프를 좋아하세요. 2019年 프랑스 에비앙 챔피언십 때는 媤宅 食口들 모두가 함께 應援해주러 오셨거든요. 예전에도 勿論 아빠가 함께하시긴 했지만 이젠 내 便이 훨씬 더 많이 생긴 거니까 마음이 한결 便해졌죠.” 

“스트레스 받지 말고 便히 하라”는 媤父母님의 따뜻한 激勵는 限껏 움츠려 있던 그의 마음에 勞困한 햇살처럼 살가웠다. 

지난 2019年 8月,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그는 男便과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感激의 瞬間을 함께했다. 

“正말 잊을 수 없는 瞬間이었어요. 마지막 홀에서 優勝 퍼팅을 날렸을 때, 온몸에 戰慄이 흐르더라고요. 날씨가 宏壯히 안 좋기도 했고, 惡條件 속에서 競技를 치르다 보니 많이 힘든 狀況이었거든요. 競技 내내 엎치락뒤치락 한 打 差異, 동타를 이어나가는 바람에 選手들 모두 엄청 緊張하면서 치른 大會였죠.” 

團地 5年 만의 優勝, 1百13個 大會 出戰 만에 되찾은 頂上의 자리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結婚은 그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숨 막힐 듯 옥죄던 成跡에 對한 負擔, 골프에 對한 硬直된 마음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價値觀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여유롭고 너그러워졌다. 비집고 들어갈 틈 없던 競爭心은 다른 選手들의 宣傳에 眞心으로 기뻐하고 拍手 칠 수 있는 同僚 意識으로 바뀌었다. 男便과 함께 다시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되찾은 幸福이었다. 

“가장 기뻤던 건 男便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거예요. 正말 꿈만 같았죠. 平素에도 男便이 제 競技를 보러 왔을 때 優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얘길 자주 했는데, 實際로 그렇게 된 거니까요. 그런 惡條件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競技를 펼쳐나갈 수 있었던 것도 男便이 지켜보고 있다는 든든함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結婚과 함께 찾아온 勝利의 女神은 다음 달 인디 위민 人 테크 챔피언십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只今의 幸福은 6年 前 頂上의 자리에 섰을 때와는 결이 完全히 다른 幸福이다. 이제는 試合을 치르는 동안에도, 試合이 끝난 다음에도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든 瞬間이 즐겁고 便安하다. 다른 選手가 더 잘하면 眞心으로 기쁜 마음이 들고, 後輩가 좋은 結果를 가져오면 正말 祝賀할 줄 아는 마음의 餘裕도 생겼다. 同僚 選手들과 쇼핑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수다를 떠는 것도 前에 없이 즐겁다. 요즘 들어 부쩍 더 스타一理視하고 멋있어진 것 같다 싶어 그것도 結婚 德分인가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시즌을 치르고 나면 늘 몸무게가 5kg쯤 빠지더라고요. 아니 시즌 오프 期間 동안 금세 5kg 程度가 불어버린다고 해야 할까요.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먹을 수 있을 때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다 보니 몸무게가 딱 그만큼 늘었다가 또 줄었다가 하는 거 같아요.” 

몸무게가 늘면 確實히 힘은 좋아지지만 몸이 鈍해지는 것 같고, 살이 빠지면 感覺은 銳敏해지지만 體力은 달린다. 兩쪽 모두 장단이 있으니 어느 쪽이 더 좋다 잘라 말하긴 그렇다. 한 가지 確實한 건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이어오던 이 패턴에 끼어든 사람이 생겼다는 거다. 이제는 혼자서 끼니를 解決해야 하는 시즌 동안에도 每日 아침 映像 通話로 서로의 食事를 걱정하고 챙기는 것이 日常이 되었다. 

“男便은 좋은 習慣을 참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저는 뭐든 잘 까먹는 便인데 男便은 하나하나 仔詳하게 잘 챙기는 스타일이랄까요. 그래서 코스에서 먹을 만한 것들을 미리 챙겨주기도 하고, 洗濯機가 없는 試合場에서는 손빨래度 거들어주려고 하고 그래요. 이런 小小한 것들이 저에겐 宏壯히 큰 힘이 됩니다.” 

2019年 한 해, 그女와 함께 했던 勝利의 女神은 올해 또 어떤 모습으로 그女를 꿈꾸게 할지 사뭇 期待가 되는 瞬間이다.

企劃 金明熙 記者 寫眞 지호영 記者 뉴스1 디자인 최정미 場所提供 慶州 블루원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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