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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컬렉터가 사랑한 完璧主義者! ‘도도새 作家’ 김선우|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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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컬렉터가 사랑한 完璧主義者! ‘도도새 作家’ 김선우

글 이진수 記者

2022. 03. 08

畫家가 職場人 出勤 時間보다도 이른 午前 5時부터 그림을 그린다면 믿을까. 도도새를 그리는 김선우가 그렇다. 평창동 作業室에서 만난 그는 “最高의 狀態에서 좋은 作業이 나온다고 믿는다”고 했다.



2月 12日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파른 언덕에 位置한 갤러리 가나아트센터를 찾았다. 스타일 좋은 2030 트렌드세터가 다 모인 느낌이다. 이들의 目的은 單 하나, 美術界 떠오르는 스타 作家 김선우(34)의 도도새를 迎接하는 것이다. 가나아트센터에서는 1月 27日~2月 27日 한 달間 김선우 個人展 ‘파라다이스(Paradise)’를 열고 있다. 中年 訪問客이나 단골 컬렉터들이 主로 찾던 갤러리에 젊은 사람이 북적이는 風景이 낯설다. 作家의 힘을 實感케 하는 經驗이었다.

김선우는 지난해 9月 28日 서울옥션 ‘가을 세일’ 競賣에서 ‘모리셔스 섬의 日曜日 午後(A Sunday on La Mauritius)’가 1億1500萬원에 팔려나가며 話題를 모은 作家. 이 金額은 推定價보다 7倍나 높은 것이다. 現在 김선우가 韓國 美術界에서 얼마나 뜨거운 이름인지를 證明한 事例다.

美術 愛好家들이 김선우 하면 同時에 떠올리는 키워드는 도도새다. 印度洋 모리셔스 섬에 살다 1681年 人間의 無分別한 捕獲으로 滅種한 새. 김선우는 이 새 聯作을 통해 大衆的 名聲을 얻었다. 그의 作品에는 횃불을 들고 있는 도도새, 배를 타는 도도새, 멍하니 누워 있는 도도새 等 多樣한 도도새가 담겨 있다. 이 새가 태어나는 곳, 서울 평창동 作家의 아틀리에를 찾았다. ‘스튜디오 도도’라는 이름이 붙은 作業室 안에 들어서자 통窓 너머로 洞네가 한눈에 내다보였다. 잘 整頓된 물감과 冊床, 스케치 컬러 番號가 꼼꼼히 적힌 그림을 보며 對話를 나누기도 前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챘다.

지난해 ‘모리셔스 섬의 日曜日 午後’ 作品 競賣 以後 作家님에 對한 大衆的 關心이 부쩍 커졌어요. 지난해 作品 값이 가장 많이 오른 作家 中 한 분으로 꼽히셨죠.

感謝한 일이에요. 제 職業의 價値는, 사람들이 제 作品의 價値를 認定해줄 때 생기잖아요. 제 그림에 많은 분이 共感해주시는 것 自體가 宏壯히 기쁘죠. 한便으로 負擔도 돼요. 요즘 作家로 살면서 한 番도 겪어보지 못한 狀況을 마주해서요.



展示場에 오는 大衆 反應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一旦 찾아오는 분이 크게 많아진 걸 體感해요. 다만 年齡帶로 보면 元來 20~40代 比較的 젊은 분들이 제 作品을 좋아하셨던 터라 큰 變化는 없는 것 같아요.

最近 ‘英 컬렉터’가 美術市場에 大擧 登場하면서 作家님 같은 1980~90年代生 젊은 作家들이 注目을 받고 있어요.

宏壯히 좋은 現象이라고 생각해요. 過去에는 美術 分野 進入障壁이 높았잖아요. 왠지 고급스러운 文化일 것 같아서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려니’ 하며 避해버리는 분도 많았고요. 最近엔 많이 달라졌어요. MZ世代 作家들은 疏通을 좋아해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等을 통해 作家와 大衆이 直接 對話를 나누니 美術에 對한 境界가 많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美術 文化가 定着돼가는 거죠.

作家님도 SNS(@dodo_seeker)를 活潑히 使用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이제 SNS 使用은 選擇이 아닌 必須인 것 같아요. 요즘 大衆은 作品이 좋으면 그 作家가 누구일지 궁금해하잖아요. 앞으로 大衆과의 疏通이 더 重要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疏通을 해야만 作家가 살아남게 될 거고요. 그러다 보니 ‘나를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나의 어떤 面을 보여드려야 하나’ 같은 苦悶거리도 생겨요.

로얄 살루트, 신한카드 等 여러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度 하셨어요. 對外 活動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偏見 없이 協業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美術 作家가 大衆과 境界를 허무는 가장 좋은 方法 中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藝術의 大衆化·日常化’인 거죠. 제 正體性을 크게 해치지 않는 限 다양한 協業을 통해 “美術은 다가가기 쉬운 것”이라는 걸 大衆에게 알려드리고 싶어요.

對外 活動이 作業에 도움이 되는 側面도 있나요

‘내 作業이 이렇게 擴張될 수 있구나’같이 새로운 可能性을 보는 契機가 돼요. 또 個人的 知識이나 經驗도 많아지고요. 로얄 살루트랑 作業을 하려면 술에 對해 알아야 하잖아요. 저는 事實 술을 안 하는 사람이에요. 못 마시는 건 아니고 안 맞아서요. 그런데 위스키라는 술이 궁금했고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요즘 作家님 이름 앞에 ‘競賣 市場이 키운 作家’라는 修飾語가 붙곤 해요. 大衆的 成功에 嫉妬心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昨年에는 負擔感이 宏壯히 甚했어요. 競賣市場에 제가 그림을 내는 게 아니잖아요. 누군가 再販賣를 하는 거죠. 처음에는 氣分이 좋았어요. 옛날에 그린 作品 價値가 높아졌고, 사람들이 “김선우 作家가 成長했다”고 해줬으니까요. 그런데 좋은 일이 있으면 어두운 面도 있다고, 저에 對해 이런저런 뒷말을 하는 분도 계신 것 같더라고요. 어느 瞬間 ‘나는 그림을 그릴 뿐인데 왜 이것에 對해 안 좋은 얘기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只今은 제 그림을 眞心으로 좋아하는 분들이 더 많다는 事實을 깨달았어요.

나는 法을 잊은 새, 도도새를 그리는 理由

Sunset beach, 2021년 作

Sunset beach, 2021年 作

이番 展示 主題가 ‘파라다이스’예요. 저는 그 前에도 作家님 그림을 보면서 恒常 ‘地上樂園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 그림 속에 갇힌다면 天國에 갇힌 氣分이겠지’ 하면서요(웃음). 主題 選定 理由가 궁금해요.

사람마다 自己가 꿈꾸는 樂園이 있을 거예요. 저는 ‘도도새’ 主題에 맞춰서 作業하면서 제가 그리는 空間이 正말 누군가 懇切히 願하는 理想鄕, 꿈의 樂園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이番 主題 파라다이스는 固定不變의 場所가 아니에요. 언제든 變할 수 있죠. 個人의 價値觀에 따라 無限히 달라질 수 있는 ‘力動的인 可能性의 바다’라는 意味에서 이 主題를 定했어요. 또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때문에 요즘 많이들 답답하시잖아요. 어떻게 보면 어두운 時代인데, 이런 現實과 對比되는 主題를 통해 밝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作家님한테 樂園은 어떤 곳일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곳이죠.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사람이에요.

이제 作家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도도새 聯作을 始作한 契機가 있나요.

大學生 때부터 ‘새 머리 人間’을 그렸어요. 머리는 새, 몸통은 살아 있는 人間인 存在를요. 새는 自由로운 動物이잖아요. 그런 자유로움을 抛棄하고 人間 몸에 갇힌 모습이 저와 現代人을 代辯하는 것 같더라고요. 周圍 親舊들을 보면 學生 때는 自由奔放하다가도 社會에 나갈 무렵이 되면 하나씩 꿈을 抛棄해요. 三星 같은 大企業에 들어가거나, 公務員 試驗을 보는 것으로 目標를 좁혀나가죠. 可能性에 限界를 짓고 스스로를 過小評價하는 게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如前히 무엇이든 試圖할 수 있는 나이이고, 우리 앞엔 다양한 길이 있으니까요. 우리는 살면서 繼續 正常的인 삶·家族·人生에 對한 어떤 틀을 强要받잖아요. 그게 다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르게 사는 데 對한 苦悶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것들을 ‘새 人間’을 통해 表現했죠.

도도새는 언제 처음 登場한 건가요.

제가 大學 卒業하기 直前, 江原道 襄陽郡에 있는 ‘일현美術館’에서 作家를 對象으로 公募展을 열었어요. 自身이 現在 하고 있는 作業을 발전시키는 데 必要한 旅行 計劃을 세워 보내면, 優秀한 志願者를 選拔해 正말 旅行을 보내준다는 거였죠. 이 公募展을 準備하다가 인터넷에서 偶然히 도도새에 對한 이야기를 봤어요. 도도새가 滅種된 理由는 나는 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는 內容이었죠.

元來 모리셔스 섬에는 사람이 없었대요. 그러니 도도새는 굳이 날 必要가 없었던 거예요. 그렇게 飛行 能力을 잃은 狀態에서 1505年 포르투갈 사람들이 섬에 들어왔고, 도도새를 濫獲하기 始作하자 꼼짝 없이 滅種되고 만 거죠. 그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어요. 마침 날지 못하는 새 人間을 그려왔으니까 ‘이거 얘기 되겠다. 現地에 가서 硏究를 해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모리셔스 旅行 計劃을 세우신 거예요.

네. 바로 그 섬에 가보고 싶다는 計劃書를 提出해 選定됐어요. 2015年 여름에 한 달間 現地에 가서 作品 硏究를 했죠. 제 人生을 完全히 바꾼 旅行이에요.

이렇게 誕生한 김선우의 도도새 聯作에는 그가 ‘새 人間’을 그릴 때부터 마음에 품어온 바로 그 메시지가 담겨 있다. “當身의 無限한 可能性을 抛棄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라”는 것 말이다.

횃불을 든 도도새처럼 自由롭고 거침없게

그동안 發表한 作品 가운데 特히 좋아하는 도도새 모습이 있으신가요.

횃불을 들고 있는 도도새요. 어두운 것을 밝히고, 무엇인가 찾아내고, 어디론가 떠나잖아요. 저는 旅行을 좋아해요. 世上을 새롭게 볼 수 있는 機會를 주는 點이 좋아서요. 물 한 盞을 마셔도 서울에 있을 때와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雰圍氣가 다르잖아요. 모리셔스 섬은 特히 그랬어요. 저에게 여러 가지로 衝擊的인 經驗을 膳賜했죠. 그래서 探險을 떠나는 도도새의 形象에 가장 愛着이 가요.

가장 愛着이 가는 그림을 꼽아주신다면요.

只今은 저한테 없는 그림인데요. 제가 獨逸 베를린의 한 호스텔 房에서 그린 드로잉이요. 모리셔스 섬에 다녀온 뒤 어떻게 作業을 해나갈지 苦悶이 많았어요. 그때 運 좋게 다른 公募에 當選돼 베를린 往復 航空券을 얻었죠. 돈도 ‘百’도 없는 作家는 展示 機會를 얻기 힘드니까, 美術館이나 갤러리에서 公募展을 열 때마다 포트폴리오를 準備해 提出하면서 1年 내내 入社 支援하는 氣分으로 살아요. 그때도 포트폴리오를 여러 個 準備해서 바리바리 싸들고 베를린에 건너갔죠. 싸구려 호스텔에 묵으면서 一週日 동안 저를 알리려고 온갖 갤러리를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거짓말 안 하고 100錢 100敗를 當했어요. 그림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나가라”며 門前薄待하더라고요. 自尊心이 傷하고 힘도 들어서 自己 卑下를 많이 했어요. ‘韓國에서도 안 되는데 여기서 안 되는 게 當然하지’ 하면서요. 그런데 아무 所得 없이 돌아오기는 아무래도 아쉬운 거예요. 뭘 하면 좋을까 窮理하다 보니 宿所 近處 公園에서 日曜日마다 플理 마켓이 열리더라고요. 元來는 장사를 하려면 許可를 받고, 一定額의 돈도 내야 하는 곳이었는데 전 그런 것도 몰랐어요. ‘아무나 장사를 해도 되는 거겠지’ 하고는, 宏壯히 추울 때였는데 길바닥에 앉아 호스텔에서 그린 그림을 팔았어요. 한 張當 10유로씩 받았는데 잘 팔리더라고요. 그때 한 드로잉이 只今 作業의 重要한 뼈대가 됐어요.

美大에 가려면 入試 美術을 해야 하잖아요. 定型化된 條件에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게 답답하지는 않으셨어요.

너무 싫었어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그림을 못 그려서 大學 入試에서 한 番 떨어졌어요. 再修를 했죠. 美大에 들어가려면 따라야 하는 그림 形式이 있는데 그게 저랑 안 맞았어요. 大學에 가서도 初盤엔 많이 힘들었고요. 大學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희 學校에는 어떤 物體를 똑같이 그리라는 授業이 있었거든요. 그게 싫었어요. 모델을 보고 따라 그리는 授業도 싫었고요. 1學年 때는 正말 ‘개판’으로 다닌 것 같아요. 專攻 授業 時間에 映畫 보러 가고 그랬죠. 甚至於는 前科 申請까지 하려고 했어요.

美大生이 어느 過勞요.

英文學科요. 글 쓰고 冊 읽는 걸 좋아해서요. 그러다가 ‘軍隊 갔다 와서 생각하자’ 하고는 軍隊에 갔어요.

東國大 西洋畫科를 나오셨죠.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니까 간 거지 ‘大韓民國 最高의 作家가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간 건 아니에요. 그러다 大學 3學年 때 學校 恩師님인 변웅필 作家님을 만났어요. 自己 信念을 이미지로 表現하며 살아간다는 게 正말 멋있더라고요. 그분께 作家의 삶을 배운 것 같아요. 제가 重要하게 생각하는 스승 두 분이 계신데 한 분이 便 作家님, 다른 한 분이 오원배 敎授님이에요. 吳 敎授님께는 作家에게 반드시 必要한 성실한 態度에 對해 배웠죠. 學部 時節 저희에게 一週日에 드로잉을 200張씩 그리라고 시키셨어요. 처음엔 힘들다고 속으로 辱도 했는데 그때 드로잉을 많이 하는 習慣이 잡힌 것 같아요. 完結된 作品을 만드는 건 마음속에 떠다니는 文章을 모아 하나의 冊으로 엮는 것 같은 過程이거든요. 敎授님이 저희에게 그 訓鍊을 시켜주신 거죠.

말씀을 들어보면 宏壯히 誠實하게 作業을 하시는 스타일로 보입니다. 아까 둘러보니 作業 中인 그림에 컬러 番號를 細細히 적어놓으신 게 눈에 띄더라고요.

저는 午前 5時쯤 作業室에 나와서 午後 5時까지 12時間 程度 있다가 退勤해요. 밤에는 잠을 자고요. 밤새워 일하고 다음 날 컨디션이 무너지는 걸 嫌惡할 程度로 싫어해서, 저한테는 이런 패턴이 잘 맞아요. 學校 다닐 때도 夜間作業을 한 番도 안 해봤어요. 요즘 ‘미라클 모닝(일찍 일어나 午前 時間을 길게 보내는 生活 習慣을 일컫는 新造語)’이라는 말이 流行이잖아요. 일찍 일어나는 것에 ‘奇跡’이라는 單語를 붙이는 데는 理由가 있다고 생각해요. 새벽은 世上 누구에게도 妨害받지 않아도 되는 純粹한 時間이에요. 集中이 가장 잘되는 時間을 作業에 投資하는 게 제 作品에 對한 尊重이라고 생각해요.

Paradise of Dodo, 2022년 作

Paradise of Dodo, 2022年 作

作業 方式은 어떤가요.

저는 普通 스케치 段階에서 모든 게 決定 난다고 생각해요. 스케치를 하는 瞬間 머릿속에 完成作이 있어서 그다음부터는 거의 純粹한 勞動이에요. 그래서 들인 習慣이 作業하면서 冊을 읽는 거예요. 正確히는 오디오 북을 듣죠. ‘作業 時間=讀書 時間’이어서 1年에 한 100~ 200卷 程度 읽어요.

作業室에 對한 質問을 이어가 볼게요. 作業室이 평창동에 있네요.

3年 前 가나아트센터에서 運營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參與해 近處에 있는 單獨住宅 2層 房을 作業室로 썼어요. 그때 지내보니 洞네가 마음에 참 좋더라고요. 大衆交通으로 오기 힘든 地域이라 그 前에는 와본 적이 없거든요. 이렇게 갤러리도 많고 自然 親和的인 곳이 서울에 있는 줄 몰랐어요. 富者 洞네라 좀 乖離感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예쁜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氣分이 좋아지잖아요. 昨年에 레지던시 契約이 끝나서 다른 地域으로 移徙를 하려고 좀 알아봤는데 다 煩雜하고 눈에 안 찼어요. 한番 좋은 걸 經驗하고 나면 다시 옛날로 못 돌아가잖아요(웃음). 마침 前에 事務室로 使用됐던 이 자리가 나와서 作業室을 꾸리기로 마음먹었죠. 近處에 아무것도 없어서 생각보다 비싸지는 않아요. 여기서는 便宜店에 가려 해도 車로 10分이 걸리거든요. 그래도 事務室로 쓰던 空間이라 에어컨도 있고, 인테리어도 새로 할 게 아무것도 없어서 “正말 좋다” 하며 契約했어요.

作家님의 첫 作業室은 어디였나요. 作業室의 歷史가 궁금해요.

이 主題로는 참 할 말이 많은데, 大學校 3學年 때 卒業 展示會를 마치고 “作家가 되겠다”고 집에 말씀드렸어요. 父母님이 “1원도 줄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네가 하고 싶은 일이니 알아서 하라”고요. 當然하고 맞는 말씀이에요. 집에 支援해줄 餘力이 있다 해도 成人인데 그럴 理由가 없죠. ‘내가 알아서 하면 되겠다’ 싶어 홀가분했어요. 다만 모아놓은 돈이 없어 좀 漠漠하긴 했죠. 그런 마음을 담아 SNS에 푸념을 좀 했어요. “作業하고 싶은데 돈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얘기요(웃음). 그때 言論社 쪽에 就職한 先輩가 連絡을 줬어요. 알고 보니 그 兄은 作業室을 다 찾아놓은 狀態에서 就職이 된 거예요. 서울 恩平區 불광동 連署市長에 있는 半地下 約 3.3㎡짜리 空間이었죠. 저한테 “나 일하니까, 月貰 조금 내고 여기라도 잠깐 써라” 하더군요. 그게 첫 作業室이 됐어요. 거기 3~4個月 있었네요.


그다음에 서울 乙支路에도 계셨다고요.

서울 中區廳에서 公募를 통해 作家들한테 空間을 支援해주는 프로젝트를 했거든요. 都市再生을 目的으로 하는 ‘디자인 아트 프로젝트’였죠. 乙支路4街에 鐵工所 골목이 있잖아요. 商人들이 떠나면서 거기 빈 空間이 많이 생겼어요. 그걸 中區廳이 빌려서 作家한테 다시 빌려주는 方式이었어요. 제게 주어진 건 車도 못 들어가는 아주 좁은 골목에 있는, 미닫이門이 달린 작은 房이었죠. 化粧室도 없고 콘센트 구멍 두 個랑 水道꼭지가 하나 있었어요. 겨울엔 물감이 얼어서 물 끓여 녹여가며 作業했죠. 3年을 있었는데 石油暖爐를 使用하는 게 眞짜 힘들었던 記憶이 나요. 化粧室도 地下鐵驛에 있는 걸 써야 해서 正말 못 견딜 때까지 참고 또 참았고요. 돌아보면 젊으니까 그렇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얻은 건 많으셨겠어요.

그때 “(그림이) 運命이다”라는 걸 깨달았죠. 正말 힘든데 繼續 作業室에 있고 싶은 거예요. “내가 正말 하고 싶은 걸 찾았다”는 確信이 들었어요. 또 하나 거기서 얻은 것은 公共 藝術 事業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對해 알게 된 거예요. 藝術家들이 書類 行政 作業에 宏壯히 弱하거든요. 저는 그때 官과 協業하며 그 分野에 對해 感을 갖게 됐어요. 所重한 經驗이죠.

그다음에 합정동 쪽으로 作業室을 옮기셨다고요.

地方自治團體 事業이었기 때문에 一定 時間이 지나면 乙支路 作業室을 떠나야 했어요. 그 무렵 집에서는 제가 正常的인 職業을 갖지 않는 데 對해서 조금씩 不便해하시는 게 느껴졌고요. ‘집도 떠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로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그때 합정동에 싸게 나온 半地下房이 있기에 그리로 들어갔어요. 집 兼 作業室로 삼아 2年을 살았는데, 그 집에서 처음 여름을 나던 해가 생각나네요. 暴雨가 엄청나게 왔어요. 그러자 마치 映畫 ‘寄生蟲’(2019)에서처럼 化粧室 똥물이 逆流하는 거예요. 물 퍼내고 잠기고 그런 經驗을 했죠. 그림이 다 젖어서 그때 作品을 正말 많이 버렸어요.

김선우는 도도새 그림이 사랑을 받게 되기까지 自身이 거쳐온 길을 淡淡히 돌아봤다. 暖房도 안 되는 작은 作業室, 똥물이 逆流하는 半地下房을 옮겨 다니면서도 그림에 對한 꿈을 놓지 않은 김선우는 2016年 젊은나래청년작가상, 2018年 아트인블록 크리에이티브 콘테스트 奬勵賞, 2019年 三星 #BESPOKE랑데뷰 디자인 公募展 優秀賞 等 온갖 賞을 휩쓸며 조금씩 大衆에 이름을 알렸다. 只今 그에게 쏠린 關心은 한 階段씩 부지런히 걸어 올라온 努力의 産物인 셈이다. 이제 그는 名實相符 韓國 젊은 作家 그룹의 代表 選手가 됐다.

다른 作家들과도 많이 疏通하며 지내시나요. 얼마 前 하태임 作家님과 서로 作業室에 訪問하셨던데요.

다른 젊은 作家들에 比하면 疏通이 적은 便이에요. 제가 MBTI 檢査를 해보면 完全 I(內向)로 나오거든요. 사람을 잘 안 만나요. 제 女子 親舊도 作家女서, 女子 親舊까지 包含하면 다른 作家와 每日 疏通한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웃음). 하태임 作家님은 元來 알고 지내던 분은 아니에요. 作家님이 어느 날 제 作品을 購入하셨다며 팬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한테 ‘大先輩’인 正말 ‘大作家’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感謝하고 感動도 받았어요. 까마득한 後輩를 그렇게 對하실 수 있다니, 正말 존경스러워요.

作品을 鑑賞하는 데 正答은 없겠지만 大衆이 내 作品을 어떻게 봤으면 좋겠다, 或은 展示場에서 어떤 感情을 갖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같은 바람이 있을까요.
제가 도도새를 통해 꿈과 自由, 可能性에 對해 이야기하잖아요. 大衆이 도도새에 感情 移入을 하면 作家로서 보람을 느껴요. 이미 滅種된 새가 제 그림을 통해 다시 誕生해 全혀 다른 이야기를 傳達하는 存在가 됐으니까요. ‘도도’에는 ‘바보’라는 뜻도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도도새를 보고 날지도 못하는 새가, 逃亡도 안 가서 그런 이름을 붙인 거래요. 저는 도도새를 ‘바보 새’보다는 可能性을 가진 存在로 여겨주시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올해 計劃에 對해 말씀해주세요.

4~6月 프랑스 파리에 가게 됐어요. ‘시테 레지던시’라고 世界 作家들이 모여 各自 作業을 하는 施設이에요. 거기서 3個月 동안 作業을 하게 될 텐데 正말 설레고 신이 나요. 모리셔스에서 큰 變化를 겪은 것처럼 이 經驗이 제게 또 어떤 轉換點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도도새 #김선우 #가나아트 #프린트베이커리 #여성동아

김선우 作家 ‘밀리의 書齋’ 오디오 北 推薦

1 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유럽에 對한 實際 이야기가 흥미로운 冊
2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道具들’ 成功한 사람들의 루틴을 인터뷰한 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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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상균의 ‘메타버스’ 메타버스 時代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理解하기 좋은 冊





이진수 記者의 비하인드 아틀리에
美에 社는 記者. 藝術 作品의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空間이 좋아서 갤러리에 간다. 참을性이 없지만 根性은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 先生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世界 곳곳 아틀리에 探險을 繼續할 참이다.

寫眞 金度均
寫眞提供 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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