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賢姬 國民權益委員長이 7月 27日 國會 政務委員會에 出席해 議員들의 質疑에 答하고 있다. [東亞DB]
監査院 特別調査局은 7月 28~29日 國民權益委員會의 公職紀綱에 對한 豫備監査를 實施한 데 이어 8月 1日 本監査에 着手했다. 監査院은 “權益委 提報事項 等이 있어 特別調査局에서 公職紀綱 關聯 監査에 着手한 것”이라고 言論公知를 통해 밝혔다. 提報의 主要 內容은 全賢姬 權益委員長의 勤態와 關聯된 것으로 傳해졌다. 유병호 監査院 事務總長은 國會 業務報告에서 더불어民主黨 金南局 議員이 ‘國會에서 前 委員長 去就 問題를 指摘하자마자 監査院이 監査에 들어갔다’고 指摘하자 “權益위는 內部 提報 事項이다. 到底히 默過할 수 없는 內容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對해 文在寅 政府에서 任命된 前 委員長은 自身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計定을 통해 連日 批判 메시지를 내며 强하게 反撥하고 있다. “監査院 定期 監査는 通商 2~5年 週期로 이뤄지는데 지난해 監査를 받은 權益委가 現 政府의 ‘標的’이 됐다”는 要旨의 主張이다. 文在寅 政府가 任命한 機關長의 進退를 놓고 與野의 氣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前 委員長은 齒科醫師 出身 法曹人이라는 異色的 經歷을 가졌다. 1964年 慶南 統營 出身인 前 委員長은 釜山 데레사女高와 서울대 齒大를 卒業하고 齒科醫師로 3年間 일했다. 1993年 法 工夫를 始作한 그는 1996年 第38回 司法試驗에 合格해 辯護士가 됐다. 國民의힘 鄭美京 最高委員, 陳善美 前 女性家族部 長官, 李正姬 前 統合進步黨 代表 等이 司試 動機다. 前 委員長의 ‘갑작스런’ 前職(轉職) 背景은 무엇일까. 前 委員長은 2002年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不利益과 不正에 맞서 相對的 弱者를 保護하고 社會活動에 積極 參與해 第2의 自我實現을 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學窓時節 이른바 理科(理科)보다 門과(文科)에 關心이 많았으나 母親의 勸誘로 齒大에 進學했다고 한다. “그 當時(自身의 學窓時節)엔 女子가 安定的인 職業을 얻으려면 無條件 理科에 가야 한다는 雰圍氣였으니까 굳이 어머니를 怨望하고 싶지는 않아요. 어쨌든 只今은 醫師 經歷이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當時 辯護士로 活動하던 前 委員長의 말이다.
法曹界에서 前 委員長은 ‘醫療事件 專門辯護士’로서 活動했다. 1999年 辯護士로 開業한 後 대한치과의사협회 顧問辯護士, 대한의사협회 法制理事와 ‘民主社會를 위한 辯護士 모임’(民辯) 環境委員·女性人權委員 等을 지냈다. ‘辯護士 全賢姬’의 存在感을 刻印시킨 것은 大韓赤十字社 血液院의 에이즈(AIDS) 및 B·C型 肝炎 汚染血液 流通事件. 當時 大韓赤十字社와 一部 製藥社의 管理 不實로 에이즈 바이러스에 汚染된 血液製劑가 流通됐다. 結局 이를 投與 받은 一部 血友病 患者가 에이즈에 感染됐다. 前 委員長은 2001~2011年 患者와 遺家族들을 代理해 大法院으로부터 血友病 治療劑와 에이즈 感染 間의 相關關係를 立證 받았다. 損害賠償 訴訟까지 이어진 긴 訟事에서 前 委員長은 被害者 側으로부터 印紙代를 받지 않고 도리어 私費를 들였다고 한다.
北 漁民 强制 北送 疑惑에 “直接 呼訴해야” 答辯 論難
이 같은 活動을 바탕으로 前 委員長은 2008年 第18代 國會議員 選擧에서 統合민주당 比例代表로 國會에 入城했다. 2016年 20代 國會議員 選擧에선 민주당 系列 政黨의 不毛地라 불리던 서울 江南乙 地域區에 더불어민주당 候補로 公薦돼 再選 議員이 됐다. 第19代 大選 當時 文在寅 候補 캠프에서 職能特報丹粧을 지냈다. 2020年 21代 國會議員 選擧에서 江南을 地域區를 발板으로 3選에 挑戰했으나 國民의힘 朴珍 議員(現 外交部 長官)에 敗했다. 같은 해 6月 長官級인 國民權益委員長에 就任해 現在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7月 27日 國會 政務委員會에 出席한 前 委員長은 最近 論難이 된 ‘海洋水産部 公務員 이대준 氏 被擊 事件’ ‘北韓 漁民 强制 北送 疑惑 事件’ 等에 對해 權益委가 이렇다 할 立場을 내지 않는 背景에 對해 “權益이 侵害받은 國民이 直接 呼訴해야 權益委가 나설 수 있다”라고 말해 論難을 빚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