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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舊에게 주머니 털어주고 洞네 女學生 짝사랑한 純情派 尹錫悅”|週刊東亞

週刊東亞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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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舊에게 주머니 털어주고 洞네 女學生 짝사랑한 純情派 尹錫悅”

切親 3人이 記憶하는 尹… “大汎과 덤벙은 銅錢의 兩面” "非好感 꼬리票 안타까워"

  • 전주영 동아일보 記者

    aimhigh@donga.com

    入力 2022-02-25 0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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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서울대 법대 1학년 A반 대성리 MT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 제공‧이철우]

    1979年 서울大 法大 1學年 A班 대성리 MT에서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 候補(왼쪽에서 두 番째). [寫眞 提供?李喆雨]

    “어느 社會든지 그 社會가 存立·發展하기 위해서는 眞理를 밝히고 正義를 세우고, 良心을 守護하려는 者들이 꼭 必要한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꼭 그러한 者가 되라는 義務는 附與받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良心이 있는 以上 우리가 바로 그러한 者가 되어야 한다는 事實을 깨닫고 나서도 그 試鍊이 두려워 逃避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어울리는 가운데 默示的으로 約束하지 않았느냐. 서로 激勵하면서 不毛(不毛)의 烈士(熱砂)를 걸어가자! 그것이 우리의 至上 命令이라는 信念을 가지고 一切의 誘惑을 뿌리치면서.”(1981년2월 10日 석열이 龍落에게)

    “大學生 尹, 칸트 哲學에 心醉”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오랜 친구인 신용락 법무법인 원 변호사,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철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왼쪽부터)가 2월 18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원 사무실에서 학창 시절 추억이 담긴 사진과 편지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지호영]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 候補의 오랜 親舊인 신용락 法務法人 원 辯護士, 李喆雨 연세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 李喆圭 法務法人 바른 辯護士(왼쪽부터)가 2月 18日 서울 江南區 法務法人 원 事務室에서 學窓 時節 追憶이 담긴 寫眞과 便紙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지호영]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학창시절 친구 신용락 법무법인 원 변호사에게 보낸 1981년 2월 10일 편지. [사진 제공‧신용락]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 候補가 學窓時節 親舊 신용락 法務法人 원 辯護士에게 보낸 1981年 2月 10日 便紙. [寫眞 提供?신용락]

    5·18光州民主化運動이 일어난 이듬해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 候補는 切親 신용락 辯護士에게 이런 便紙를 보냈다. 서울大 法大 2學年生이던 尹 候補가 5·18光州民主化運動 直前 서울大 模擬裁判에서 전두환 當時 保安司令官에게 無期懲役을 宣告해 避身한 以後. 尹 候補는 哲學, 社會科學, 歷史를 폭넓게 工夫하고는 그해 가을부터 親舊들에게 決然한 다짐을 담은 便紙를 썼다.

    이 便紙를 公開한 신용락 辯護士(62·司法試驗 28回)와 李喆圭 辯護士(61·司試 34回), 李喆雨 연세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61), 이렇게 尹 候補의 切親 3人이 3·9 大選을 앞두고 ‘親舊 尹錫悅’에 對해 直接 입을 열었다. 이들은 “尹錫悅에 對해 眞實이 알려지지 않고 人品에 非好感 꼬리票가 붙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세 親舊는 各各 初校 때부터, 高校 때부터, 그리고 大學生 時節 斜視 9首를 함께했다. 그리고 尹 候補가 第1野黨 大選 候補가 되는 것을 지켜봤다. 이들이 본 尹 候補는 어떤 사람인지 小小한 이야기까지 들어봤다.

    -1981年 2月 10日 尹 候補가 보낸 便紙는 어떤 脈絡인가.

    申 辯護士: “大學校 2學年 말이었다. 석열이는 模擬裁判 餘波로 江原 江陵에 避身을 갔다 오더니 ‘法學을 工夫하기에 앞서 世上을 먼저 알아야겠다’고 했다. 哲學과 社會科學, 歷史를 工夫하고는 칸트 哲學에 心醉해 있었다. 석열이는 大學 2學年 무렵 삶의 哲學을 굳혔던 것 같다. 只今까지 初志一貫 다른 눈치안 보고 良心의 命令대로 살아왔다는 게 대단하다.”

    申 辯護士는 尹 候補와 서울 冲岩高, 서울對 法大 動機다. 判事 時節 進步 性向 法官 모임인 ‘우리法硏究會’에서 活動했다. 水原地法 判事를 歷任한 뒤 法務法人 원(代表 강금실·윤기원) 辯護士로 活動 中이다. 술을 잘 먹지 못해 尹 候補를 집에 데려다 주던 ‘뒤處理半’이었다고 한다.



    -尹 候補는 어릴 적 어떤 사람이었나.

    申 辯護士: “석열이는 親舊들에겐 ‘鳳’이었다. 만나면 一旦 自己 주머니부터 먼저 털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本人 돈이 모자라면 다른 親舊들이 돈을 보태는 式이었다. 9首를 하는 동안 親舊들, 10年 위아래 先後輩들과 그렇게 지냈다. 후덕한 父母의 品性을 닮았다.”

    李 敎授: “석열이와 서울 대광初 1學年 1班에 같이 入學했을 때 나는 班에서 第一 작았고, 석열이는 第一 컸다. 작은 키를 걱정한 우리 어머니는 석열이에게 나를 保護해달라고 했고, 석熱 어머니와도 切親이 됐다. 석열이는 리더십이 强했다. 學級新聞 編輯長을 했는데 普通 꼼꼼한 게 아니었다.”

    汎進步學者인 李 敎授는 尹 候補와 서울 대광初, 서울大 法大 同期로, 友黨 李會榮 先生 孫子인 이종찬 前 國精院長의 아들이다. 尹 候補가 政治에 入門하는 過程에서 言論에 나와 尹 候補를 위한 發言을 했다. 競選과 大選 過程에서 政策本部에 參與해왔다. 親舊들은 이 敎授에 對해 “初等學生 때 석열이, 석열이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은 罪로 석열이를 도우며 奴隸生活을 하고 있다”고 弄談처럼 말한다. 李 敎授는 尹 候補를 ‘돌돌이’(석熱의 ‘昔’에서 나온 初等學生 때 別名)라고 부른다.

    “덤벙덤벙 行動한 것 같은데 속은 아니더라”

    신용락 변호사가 1981년 2월 10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로부터 받은 편지와 윤 후보와 함께 찍은 서울 충암고 3학년 3반 3총사 사진. [지호영]

    신용락 辯護士가 1981年 2月 10日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 候補로부터 받은 便紙와 尹 候補와 함께 찍은 서울 충암고 3學年 3班 3총사 寫眞. [지호영]

    1979년 서울대 법대 1학년 A반 대성리 MT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에서 네번째)가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른쪽에서 세번째)와 블루스를 추고 있다. [사진 제공‧신용락]

    1979年 서울大 法大 1學年 A班 대성리 MT에서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 候補(오른쪽에서 네番째)가 李喆雨 연세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오른쪽에서 세番째)와 블루스를 추고 있다. [寫眞 提供?신용락]

    -尹 候補가 成長하면서 가장 큰 影響을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李 敎授: “아버님 윤기중 연세대 名譽敎授는 존경스러운 분이다. 올곧은 原則主義者이며 성실한 學者시다. 2013年 國精院 댓글 搜査로 석열이가 法務部 懲戒를 받았을 때 아버님에게 ‘行政訴訟을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근데 아버님은 ‘에이, 안 되지. 그건 툭 털고 가야 한다’고 했다. 석열이度 訴訟하지 않았다. 2019年 曺國 前 法務部 長官 搜査 때 光化門에서 ‘曺國 退陣’ 集會가 열렸다. 아버님과 食堂으로 移動하려고 光化門 앞을 지나갔다. 사람들이 熱烈히 尹錫悅을 應援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오히려 ‘나라가 分裂돼 큰일이다’라고 했다. 그 程度로 치우침이 없는 분이다. 석열이度 아버님으로부터 그걸 물려받았다.”

    이 辯護士: “석열이 父母님에게 每年 1月 1日 歲拜하러 가는 85學番 後輩가 있다. 地方에서 올라와 考試工夫를 할 때부터 그랬다. 석열이네는 陽曆설을 쇘다. 後輩는 홀로 서울에 있으니 석열이 어머님이 밥을 해 먹였다. 후덕하고 마음의 餘裕가 있는 집이다.”

    部長判事 出身인 李喆圭 法務法人 바른 辯護士는 尹 候補와 같은 스터디그룹에서 工夫한 ‘9修 親舊’ 서울大 法大 動機다. 尹 候補가 大邱地方檢察廳 初任 檢事이던 時節, 이 辯護士는 大邱地方法院 初任 判事였고 尹 候補와 같은 下宿집에서 함께 지낸 술친구다.

    -司試 9首를 해서 無能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申 辯護士: 工夫 方法은 非效率的이었다. 冊 한 張 넘기고 째려보고, 갸웃하다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생각을 整理하는 式이었다. 그런데 記憶力이 氣가 막혔다. 親舊들 사이에선 ‘尹錫悅 正答설’이 있다. 어울렸던 親舊들 記憶이 헷갈릴 때 석열이는 생생하게 記憶해냈다. 석열이가 大選 候補까지 되는 걸 보고 大器晩成(大器晩成)의 意味를 깨달았다. 처음부터 큰 그릇으로 태어났고 그걸 채우는 데 時間이 걸렸다.”

    이 辯護士: “考試를 오래했다니까 無能, 閑良처럼 보는 視角도 있는데 석열이 머리 좋다. 試驗은 要領이고 集中인데, 석열이는 學問的으로 파고들었다. 試驗日이 다가오고 全部 發惡하듯 아등바등할 때 이 親舊는 後輩들이 물어보면 신나게 答을 알려주고 餘裕가 있었다. 춥고 배고플 때 그 사람의 眞正한 性品을 알 수 있다. 석열이度 不確實한 未來를 껴안고 무척 춥고 배고팠을 것이다. 그러나 그 時節에도 恒常 周邊 親舊, 後輩들을 챙겼다. 마음의 餘裕, 純粹함이 참 부러웠다. 석열이가 그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尹 候補와 술은 어떤 關係인가.

    이 辯護士: “술을 많이 마시긴 했다. 新林洞 考試生活 때 내가 ‘按酒만 다 먹고 가자’고 하면 석열이는 후딱 남은 燒酒를 다 마시고 燒酒를 한 甁 더 시킨 뒤 새로운 燒酒甁을 비우기 前 반드시 按酒를 다 먹고 또 按酒를 시켰다. 그렇게 按酒 注文과 燒酒 注文을 번갈아했다. 석열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1983년 2월 서울대 법대 37회 졸업식. 한경 외국계 금융회사 임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용락 법무법인 원 변호사, 고(故) 윤홍근 변호사(왼쪽부터). [사진 제공‧신용락]

    1983年 2月 서울對 法大 37回 卒業式. 韓經 外國系 金融會社 任員,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 候補, 李喆雨 연세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 신용락 法務法人 원 辯護士, 고(故) 윤홍근 辯護士(왼쪽부터). [寫眞 提供?신용락]

    -‘쩍벌남’ ‘列車 구둣발 論難’ 等으로 尹 候補를 權威的이라고 보는 視線도 있다.

    申 辯護士: “學窓 時節 쓴 日記帳엔 ‘석열이는 덤벙덤벙 無分別하게 氣分대로 行動한 거 같은데 속은 그게 아니다. 亦是 그 녀석은 크다. 뭐 하나 할 놈이다’라는 文句가 있다. ‘大凡’과 ‘덤벙’은 銅錢의 兩面이라고 본다. 偏見이 없고 다른 사람 눈치를 안 보는 게 本人 品性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人間的이며 疏脫한 게 석열이다. 權威的이라는 것은 檢察總長 出身 때문에 漠然히 덧씌워진 이미지다.”

    -結婚은 왜 늦었을까.

    申 辯護士: “누구에게나 結婚은 運命이다. 석열이는 大學校 2學年 때까지 같은 洞네 女學生을 짝사랑하고 괴로워하던 純情播多. 아저씨 스타일로 親舊와 술을 좋아하다 보니 女子親舊에게 人氣가 있을 理 없었다. 9首를 하고 檢査 生活하며 地方을 돌아다니다 보니 結婚 適齡期를 놓쳤다. 몽달鬼神 되는 줄 알았는데 뒤늦게 띠동갑과 結婚하는 幸運이 있었다. 周邊에선 나이 差異가 커 反對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데 석열이가 眞心으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 나이에도 純情이 있구나’ 하고 感歎했다.”

    -親舊들이 보는 尹 候補의 夫人 김건희 氏는 어떤 사람인가.

    李 敎授: “‘曺國 搜査’ 當時 석열이와 엄청 싸웠다. 2019年 9月 曺國 候補者 國會 人事聽聞會 날이자 夫人 鄭慶心 前 東洋代 敎授를 檢察이 不拘束起訴한 날이었다. 이미 석열이랑은 對話가 안 되는 狀況이라 ‘聽聞會가 열리는 狀況에서 起訴한 것은 不適切했다’고 건희 氏에게 爆彈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건희 氏는 答狀하기 싫었을 텐데도 ‘ㅠㅠ’라고 答狀을 보내며 氣分을 맞추려 했다. 그 後에도 强한 意見 差異를 드러내기보다 ‘기다려보시지요’ 하는 式으로 나를 진정시켰다. 化通하면서도 沈着한 사람이다.”

    서울 대광초 졸업식 사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왼쪽에서 두번째)와 재미철학교수인 고 김원유 교수(맨 왼쪽),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왼쪽에서 세번째), 이승우 담임선생님(맨 오른쪽). [사진 제공‧이철우]

    서울 대광初 卒業式 寫眞.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 候補(왼쪽에서 두番째)와 재미哲學敎授인 故 김원유 敎授(맨 왼쪽), 李喆雨 연세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왼쪽에서 세番째), 李承雨 擔任先生님(맨 오른쪽). [寫眞 提供?李喆雨]

    서울 충암고 3학년 3반 삼총사였던 신용락 변호사, 윤기원 변호사,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왼쪽부터). [사진 제공‧신용락]

    서울 충암고 3學年 3班 三銃士였던 신용락 辯護士, 윤기원 辯護士,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 候補(왼쪽부터). [寫眞 提供?신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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