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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 醫療, 언제까지 ‘突擊 앞으로!’만 외칠 건가”|주간동아

週刊東亞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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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大韓民國 醫療, 언제까지 ‘突擊 앞으로!’만 외칠 건가”

李國鍾 | 亞州大病院 京畿南部圈域外傷센터腸

  • 송화선 記者 spring@donga.com

    入力 2017-08-18 17: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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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밤 携帶電話 수신음에 잠이 깼다.

    ‘오늘 먼 길에 苦生 많으셨습니다. (中略) 患者는 살았습니다. 外科 李國鍾 賠償.’

    8月 15日 午前 1時 47分 到着한 문자메시지다.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머리로 한동안 ‘이게 무슨 소린가’ 생각했다. 記憶 저便에서 手術室로 걸어 들어가던 李國鍾 京畿南部圈域外傷센터腸(아주대 醫大 敎授·寫眞)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水原 아주대病院으로 그를 인터뷰하러 갔었지.’

    비로소 그날 있던 일이 하나둘 눈앞에 흘러가기 始作했다.





    “未安합니다, 只今 患者가…”


    李國鍾 敎授는 … 1969年生. 亞州大 醫學博士. 外科專門醫. 美國 UC샌디에이고와 英國 로열런던病院에서 외상外科 硏修를 받았다. 2011年 소말리아 海賊에게 被拉된 ‘三湖주얼리號’ 救出 作戰 當時, 銃傷을 입은 석해균 船長을 살려내면서 名聲을 얻었다. 以後 劣惡한 國內 重症外傷患者 治療 시스템 改善에 앞장섰다. 現在 亞州大病院 외상外科長이자 京畿南部圈域外傷센터長이다. 그의 事務室에는 ‘When you do your best, everyone benefits’(當身이 最善을 다하면 모두가 利益을 얻는다)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亞州大病院을 訪問한 應急醫學 專門家 제임스 던퍼드 UC샌디에이고 敎授가 이 敎授를 激勵하며 써준 메시지다.

    李 敎授를 만난 건 開所한 지 갓 1周年 된 京畿南部圈域外傷센터(外傷센터)의 成果에 對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李 敎授가 그동안 수많은 重症外傷患者의 生命을 救한 功勞로 最近 ‘포니情 革新賞’을 받게 된 데 對해서도 물어볼 참이었다.

    李 敎授는 2011年 ‘아덴灣 餘名作戰’ 以後 死境을 헤매던 석해균 船長을 劇的으로 살려낸 바로 그 醫師다. 當時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서 그는 줄기차게 ‘우리나라 外傷患者 診療 實態의 問題點’을 꼬집었다. 그 結實로 이듬해 應急醫療에 關한 法律(應急醫療法) 改正案이 國會를 通過했다. 그러나 言論이 ‘李國鍾法’이라고 부른 이 法에 따라 外傷센터가 建立되기까지는 그 後로도 한참이 더 걸렸다. 外傷센터 1周年 記念式이 7月 12日 열렸으니,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敎授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順調롭게 進行되지 못했다. 應急患者가 隨時로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外相은 物理的 壓力으로 인한 身體 損傷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 周圍에서 發生하는 事故가 大部分 外傷을 誘發한다. 李 敎授와 이야기를 始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建物 壁에 페인트를 漆하다 墜落한 70代 老人이 外傷센터로 실려 왔다. 李 敎授와 강병희 敎授, 허요 敎授 等 外傷센터 醫療陣이 곧 患者에게 달라붙었다. 記錄을 보니 事故가 接受된 게 午後 3時 5分, 患者가 外傷센터에 到着한 건 3時 13分이었다.

    外傷센터 트라우마 베이(Trauma Bay·外傷蘇生室) 寢臺에는 엑스레이(X-ray) 撮影 裝備가 設置돼 있다. 救急車에 실려 온 患者가 이 寢臺로 옮겨지자마자 醫療陣은 卽刻 臟器를 撮影해 損傷 部位와 程度를 살폈다. 醫療陣이 放射線 露出에 對備해 保護服을 입고 있는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리로 오는 患者는 卽刻 處置해야 하는 境遇가 많거든요. 專門醫가 最大限 빨리 狀態를 把握하고, 必要하면 卽時 手術에 突入할 수 있도록 萬般의 準備를 하고 있죠.”

    李 敎授가 說明했다. 그가 記者 쪽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건네기 始作했다는 건 患者 狀態가 分秒를 다툴 만큼 急迫하지는 않다는 걸 의미했다. 李 敎授에 따르면 사람은 참 쉽게 죽는다. 體重의 2%假量만 피를 쏟아도 生命이 危險해진다. 體重 70kg인 健壯한 男子도 1.5ℓ 出血에 死境을 헤매게 된다.

    “그 程度 피를 흘리는 데 얼마나 걸릴 거 같아요? 생각보다 훨씬 금세입니다. 그래서 피를 흘리는 患者는 되도록 1時間 안에 醫師를 만나야 해요. 專門家들이 事故 後 1時間 以內를  ‘골든아워(Golden Hour)’라고 부르는 理由죠.”

    李 敎授의 말이다. 그가 죽음 門턱에서 살려낸 患者 가운데는 2t짜리 鐵門에 깔린 이가 있었다. 달리는 乘用車 선루프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 事故를 當해 車 밖으로 튕겨나간 이도 있다. 이들은 뼈가 다 으스러지고 온몸의 臟器가 터졌지만 죽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들처럼 運이 좋지 못한 患者가 매우 많다. 保健福祉部 資料에 따르면 2010年 ‘豫防 可能한 外傷 死亡率’李 35.2%에 이른다. 美國(15%) 等 先進國에 비하면 ‘悽慘한’ 水準이다.

    좀 더 많은 이를 ‘豫防 可能한’ 죽음에서 救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李 敎授와 이에 對해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이番엔 서울 한 大型病院에서 患者를 보내겠다는 連絡이 왔다. 外傷센터에는 重患者室 40病床, 一般실 60病床이 있다. 一般 病院은 重患者室 比率이 10%도 안 되는 境遇가 많다. 이런 곳에 堪當할 수 있는 範圍를 넘어서는 患者가 오면 電源(轉院)을 하는 것이다.



    病院을 轉轉하는 患者들

    勿論 社會 著名人士나 高官大爵이 그 對象이 되는 境遇는 드물다. 李 敎授는 “얼마 前 交通事故로 重傷을 입은 公職者가 서울 有名 病院을 거쳐 外傷센터로 넘어온 일이 있긴 하다”고 韻을 뗐다. 알고 보니 患者가 事故 衝擊으로 意識을 잃은 데다 同行도 없어 該當 病院이 그의 ‘身分’을 確認하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例外 狀況을 除外하면 이른바 ‘VIP’는 普通 서울 有名 病院에서 治療를 받는다. 反對로 돈 없고, ‘빽’ 없고, 有名 病院에 ‘아는 醫師’ 한 名 없는 사람은 골든아워 안에 病院에 到着하고도 適切한 處置를 받지 못할 수 있다.

    “改服하면 바로 語레스트야! 잘못하면 우리가 덤터기 쓰고 病院은 訟事에 걸린다고!”

    2013年 放送된 KBS 2TV 드라마 ‘굿 닥터’에서 外科 課長이 新參 醫師에게 한 말이다. ‘어레스트’는 心停止(cardiac arrest)를 뜻하는 醫學 用語다. 當時 드라마에서 ‘어레스트 危險’에 處한 患者는 이미 5個 病院에서 手術을 거부당한 뒤 該當 病院까지 오게 된 어린이였다. ‘뭘 모르는’ 醫師가 그 아이를 手術하겠다고 나서자 課長이 빨리 다른 病院으로 보내라고 慫慂한 것이다. 主人公은 “그렇다고 患者를 다른 病院으로 보낼 순 없습니다. 그게 무서워서 應急患者 手術을 拒否합니까”라고 맞섰다.

    이 ‘픽션’은 지난해 9月 全北에서 더 慘酷한 ‘現實’로 모습을 드러냈다. 交通事故를 當한 두 살 어린이가 13個 病院에서 手術을 거부당한 뒤 끝내 死亡한 것이다. 이 아이는 事故 7時間 만에 ‘돌고 돌아’ 아주대病院에 到着했지만 손쓰기엔 이미 너무 늦은 狀態였다. 李 敎授가 外傷센터 所屬 看護師와 “(大型病院에서 보낸다는 그 患者) 우리가 받아야지”라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자, 當時 여러 言論이 떠들썩하게 報道했으나 어느새 잊힌 이 事件이 떠올랐다. 그때 政府는 “다시는 이런 일이 發生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重症外傷患者는 如前히 이 病院 저 病院을 轉轉한다. 그中 한 名이 몸을 依託하게 될 外傷센터 重患者室로 걸음을 옮겼다.

    高層建物에서 墜落하고, 車에 받히고, 凶器에 찔린 이들이 各種 醫療裝置를 주렁주렁 매단 채 40個 寢臺에 빼곡히 누워 있었다. 마지막 手術일이 8月 9日로 記錄된 한 患者는 이곳에 들어온 뒤 只今까지 手術을 네 番 받았다고 했다. 危機 狀況은 넘겼지만 이 男子가 제 발로 걸어 病室 門을 나설 수 있을지, 그러기까지 얼마나 더 時間이 必要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이들로 이미 重患者室이 가득 찼는데, 서울에서 넘어올 患者를 어떻게 또 받는다는 걸까. 이 質問에 李 敎授는 “새로 患者가 오면 그동안 여기 있던 患者 가운데 相對的으로 狀態가 나은 사람을 一般 病室로 옮긴다. 一般 病室도 꽉 차면 빈자리가 있는 다른 病棟의 協助를 얻어 그쪽으로 보낸다. 쉽지는 않지만 어쩌겠나”라고 했다.



    ‘李國鍾法’ 以後 5年

    이른바 ‘李國鍾法’으로 外傷센터에 對한 政府 支援이 始作되기 前까지 亞州大 외상外과는 1年에 數億 원씩 赤字를 냈다. 熱心히 하면 할수록 ‘돈 안 되는’ 患者가 늘고 收益은커녕 病院 赤字만 커지는데도 이 敎授는 繼續 患者를 받았다. ‘더는 못 버티겠구나’ 생각할 무렵 ‘昔 船長’李 살아났다. 言論에 이름이 오르내린 德에 外傷外科 醫師로서 生命이 좀 더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제 그 時間조차 얼마 남지 않았는지 모른다.

    李 敎授는 이날 인터뷰를 하면서 自身이 지쳤다는 걸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한 高位 公務員이 그가 없는 자리에서 “李 敎授는 좀 안타까워. 本人만 가만히 있으면 에브리보디가 해피할 텐데 그걸 몰라”라고 하더라는 말을 傳해 들었다고도 한다. 그를 둘러싼 周邊 視線이 차가워지는 사이, 이 敎授의 몸과 마음도 축났다. 그에 따르면 外傷센터 後輩 醫師 가운데 한 名은 1年에 네 番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看護師 辭職率은 年間 35%에 이른다. 李 敎授도 過勞와 스트레스로 왼쪽 視力을 거의 잃었다. 그는 “이건 到底히 持續할 수 없는 構造”라고 吐露했다.

    “政府에서 이番에 醫療 保障性 擴大를 얘기하는 걸 보고 뭔 소린가 싶었어요. 只今 醫療 現場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잖아요. 그런데도 큰 問題가 생기지 않는 건 前方 兵士들이 온몸을 던져 艱辛히 戰線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普及을 强化할 생각은 안 하고 ‘突擊 앞으로!’만 외치니, 그게 되겠습니까.”



    ‘The Closer, The Better Outcome’

    목소리를 높이던 李 敎授가 時計를 보더니 “아, 그런데 저녁은 드셔야죠”라며 말을 멈췄다. 어느새 午後 6時가 지나가고 있었다. 暫時 後 도시락이 配達됐지만, 채 包裝을 뜯기도 前  다시 그의 携帶電話가 울렸다.

    “어? 어. 가야지.”

    京畿 安城에서 40代 男子가 지게車에 깔렸다는 消息이었다. 이날 水原에는 굵은 비가 내렸다. 그러나 그는 헬기를 타고 患者에게 날아가기로 했다. 인터뷰는 다시 中斷됐다. 李 敎授는 그날 數次例 되풀이한 “未安합니다만, 只今 患者가…”라는 말로 諒解를 求하고는 헬멧과 ‘플라이트 서전(Flight Surgeon)’이라고 적힌 螢光 점퍼를 챙겨 들었다. 이番 발걸음은 病院 屋上 헬기場으로 向했다.

    李 敎授는 韓國 醫療界에 重症外傷外科라는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2000年代 初盤, 美國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UC샌디에이고) 醫大에서 이 分野를 배웠다. 當時 그에게 醫師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제임스 던퍼드 敎授는 “샌디에이고 땅 구석구석 어디 한 곳 내가 着陸하지 않은 데가 없다”고 할 만큼 수많은 헬기構造 經驗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軍醫官 出身으로 이 敎授에게 큰 影響을 미친 브루스 포텐子 敎授도 늘 그에게 ‘The Closer, The Better Outcome’(醫師가 患者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좋은 結果가 나온다)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그분들에게서 외상外科 醫師는 病院에서 患者를 기다릴 게 아니라 事故가 發生한 現場으로 最大限 빨리 달려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그래야 ‘골든아워’를 지킬 수 있고, 患者 生命을 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特히 醫療裝備가 갖춰진 헬기는 應急手術이 可能한 ‘움직이는 病院’이다. 李 敎授가 한 해 數百 番씩 헬기를 타고 患者에게 날아가는 理由다.

    그는 最近 한 大衆講演에서 2014年 4月 16日 歲月號 沈沒 當時 撮影 映像을 公開해 눈길을 끌었다. 事故 現場에서 가까운 全南 木浦 彭木港에 救助헬기가 줄지어 着陸해 있는 모습이었다. 李 敎授에 따르면 그날 줄잡아 5000億 원어치가 넘는 救助헬기가 그렇게 땅에 ‘앉아’ 있었다.

    “當時 海警이 救助헬기 離陸을 不許했거든요. 헬기가 뜨기 危險한 狀況이라고 判斷했을 수 있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배에 갇혀 있는데, 물속에서는 時間이 지날수록 低體溫症으로 死亡할 確率이 높아지는데 構造隊員 危險할까 봐 構造를 抛棄한다는 게 맞는 건가요.”

    李 敎授가 憤痛을 터뜨리며 한 얘기다. 조금 前까지만 해도 ‘이젠 지쳤다’며 고개를 떨어뜨리던 그의 눈빛에 금세 憤怒가 가득 찼다. 그리고 이내 그는 離陸 準備를 끝내고 搖亂한 프로펠러 소리를 내는 헬기에 몸을 실었다. 李 敎授가 携帶電話를 받은 건 午後 6時 30分, 醫療裝備가 든 백을 멘 채 헬기에 몸을 싣고 離陸한 건 6時 48分이었다. 헬기 出發과 同時에 地上에서는 患者를 맞을 準備가 始作됐다. 허요 敎授와 看護師 等 外傷센터 醫療陣 6名이 酸素呼吸器가 裝着된 寢臺를 헬기場 옆으로 옮긴 채 待機했다.

    “오늘도 저녁 먹기는 글렀어.”

    누군가 웃음 섞인 투정을 내놓았을 때야 비로소 이들에게는 이것이 ‘긴 밤’의 始作이 될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7時 11分 하늘 먼 곳에서 헬기가 되돌아오는 게 보였고, 이 敎授와 함께 到着한 患者는 卽時 地上 醫療陣에 둘러싸여 엘리베이터로 옮겨졌다. 이 男子가 트라우마 베이 寢臺에 눕혀진 건 7時 16分이다. 이때부터 트라우마 베이는 記者가 막 外傷센터에 到着했을 때와 다를 바 없는 風景이 됐다. 建物에서 墜落한 70臺가 到着했을 때처럼 醫療陣은 다시 患者에게 달라붙었고, 이 敎授는 손가락에 그 患者의 피를 묻힌 채로 헬기에서 進行한 應急 處置 內容을 브리핑했다. 달라진 點이 있다면 診斷 結果 이番 患者는 應急手術을 해야 할 狀況으로 判明됐다는 것이다. 李 敎授가 直接 手術室에 들어가기로 했다.

    “手術 時間이 얼마나 걸릴까요” 같은 質問은 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患者 經過를 觀察하고 徹底히 計劃해 進行하는 一般外科手術에서도 當初 斟酌과 다른 狀況이 펼쳐지는 일이 不知其數 아닌가. 막 負傷當한 患者를 실어온 狀況에서, 一旦 배를 열어 出血을 잡고 망가진 臟器를 꿰매 어떻게든 그가 生의 끈을 다시 붙들도록 해야 하는 外傷外科 醫師가 手術 時間을 斟酌할 수 있을 理 萬無했다.



    庶民 醫療를 爲한 ‘골든아워’

    手術室 門 앞에서 이 敎授와 急하게 人事를 나눴다. 아까 그와 함께 먹으려 했던 도시락엔 차마 손을 댈 수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이날 外傷센터에 실려 온 患者가 하나같이 平凡한 庶民이었다는 생각이 났다. 한 名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建物 壁에 페인트를 漆했고, 다른 한 名은 서울 有名 病院에서 버티지 못했으며, 또 한 名은 지게車에 깔렸다. 李 敎授가 “外傷센터야말로 우리나라에 꼭 必要한 最小限의 社會 安全網”이라고 强調한 게 實感났다.

    그리고 이튿날 午前 1時 47分, 그의 文字메시지를 받았다. 李 敎授가 지난 5時間餘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내내 手術室에 붙어 있었든, 아니면 豫告 없이 들이닥친 또 다른 患者와 씨름했든, 그는 그제야 ‘(安城) 患者는 살았습니다’라는 消息을 傳할 餘裕를 찾은 것이다.

    “이렇게 오래는 못 갈 거예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러다 헬기에 올라타던, 手術室로 들어서던 李 敎授의 모습이 次例로 떠올랐다. 그에게 끝내 1周年 된 外傷센터의 成果를 묻지 못했다. ‘포니情 革新賞’ 受賞 所感도 듣지 못했다. 外傷外科 醫師로서 時間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골든아워’가 끝나기 前 眞짜 庶民을 위한 ‘社會 安全網’을 만들 수 있을지 물어야 할 質問만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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