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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동아미디어그룹의 지나온 발자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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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04.01 創刊

日帝는 1919年 3·1獨立運動에 큰 衝擊을 받고 ‘文化政治’를 標榜해 이듬해
1月 동아일보 朝鮮日報 시사신문 等 3개지를 許可했다. 當時 사이토 朝鮮總督은 이에 對해
日本人들이 抗議하자 “동아일보는 朝鮮 民族의 뱃속에서 끓어오르는 가스를 排出시키는 굴뚝이야.
가스를 排出시키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 끝내는 暴發하게 되거든...”이라고 對答했다는 逸話가 있다.
인촌 金性洙 先生 等 創刊 主導 人士들은 當初 3·1運動 1周年인 1920年 3月 1日子로 創刊하려
했으나 資金不足으로 한달 後인 4月 1日 타블로이드판 夕刊 4面 體制로 創刊했다. 當時
發行部數는 1萬 部 程度, 購讀料는 한 部에
3錢(只今의 約 900원)이었다. 民族主義 民主主義 文化主義를 斜視(社是)로 내걸었다. 이
創刊精神은 只今도 本報 1面 左側 上段에 東亞日報 로고와 함께 固定 配置되고 있다.

1920 04.01 最初의 社屋

서울 종로구 화동에 있던 大韓帝國 學部大臣 이용태의 기와집을
月貰 120원(1원은 只今의 約 3萬 원)에 賃貸해 첫 社屋으로
使用했다. 社長室과 서고만 別室로 마련하고 그 밖의 部署는 한
房에 합친 壅塞한 規模였다. 社長, 編輯監督, 週間 以外에 論說半
및 編輯局 22名, 營業局 17名, 工場 22名, 雜務 9名 等 總 74名에
支局網은 全國 5個 都市에 設置했다.
俸給은 週間 120원, 國葬 100원, 部長과 論說半 70~80원, 記者
60~80원 等이었고 記者에게는 月 125원의 取材費가 別途로
支給됐다. 當時 한 달 旅館費가 20~25원 程度였으니 꽤 높은
水準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20 10 記者 3名 殉職

本報는 創刊 以後 特別取材를 위해 海外에 派遣한 記者 3名을 잃었다.
1920年 10月 中旬 日本軍이 北間島 一帶의 朝鮮人 2200餘 名을 無差別 虐殺했다는
消息을 듣고 장덕준 記者가 自願해 룽징(龍井)으로 가 日本領事館과 討伐軍司令部를
相對로 取材를 벌이다가 投宿 中이던 旅館에서 11月 初 行方不明됐다. 當時 여러 情況과
現地人, 家族 等의 證言에 依하면 日本軍이 그를 誘引해 銃殺한 것으로 推定된다.
우리나라 新聞史上 最初의 殉職記者로 記錄됐다.
또 백광남 記者가 1966年 11月 베트남戰爭에 從軍記者로 派遣돼 取材 中 交通事故로
殉職했으며, 이중현 寫眞記者가 1983年 10月 전두환 大統領의 東南아시아 巡訪을 遂行
取材 中 버마(現 미얀마)의 아웅산墓所 爆發事件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 3名의 寫眞은 現在 本報 編輯局에 나란히 걸려 24時間 本報 記者들의 新聞製作
活動을 默默히 지켜보고 있다.

1926 12.10 光化門 時代 開幕

1926年 12月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 地上 3層짜리 社屋을 完工해
創刊 6年 半 만에 光化門 時代를 열었다. 이 建物은 그 後 3個
層이 增築돼 忠正路 社屋 入住 以前까지 동아일보 社屋으로
쓰다가 現在는 일민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忠正路 社屋에는 1992年 移徙해 이듬해 朝刊化에 이어 全面
가로쓰기, 컴퓨터製作시스템(CTS) 構築 等 新聞社(新聞史)에 남을
큰 變化를 맞았다. 現在의 社屋 동아미디어센터에는 1999年 12月
31日 入住해 21世紀와 함께 第2의 光化門 時代를 열었다.
세종로 네거리는 創刊 當時부터 現在까지 변함없는 象徵性을
지니고 있다. 卽 朝鮮總督府와 軍政廳, 景武臺, 靑瓦臺에 이르는
最高의 權府(權府)를 肉眼으로 가까이 볼 수 있는 距離에 두고
있어 權力을 監視 批判 牽制하는 言論의 役割과 맞아떨어진다.
그런 理由로 仁村 先生이 굳이 이곳을 固執했다는 이야기가 傳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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