沿革
동아일보와 동아미디어그룹의 지나온 발자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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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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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刊號 發行 創刊辭
總會 發起人 代表 金性洙, 初代社長 박영효, 社屋은 서울 화동 138番地(舊 中央學校) 韓屋建物로 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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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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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創刊號 發行
‘主旨를 宣明하노라’에서 동아일보는 ‘民族의 表現機關임을 自任하노라, 民主主義를 支持하노라, 文化主義를 提唱하노라’라는 創刊精神을 千名. 創刊1號는 배大판(倍大版) 8面, 第2號부터는 夕刊 4面으로 發行
-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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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差別反對 地上 캠페인 始作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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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1次 武器停刊(1920.09.26~1921.01.10)
社說 ‘祭祀問題를 提論하노라’에서 日本이 神聖視하는 3種 神器를 批判했다는 理由로 停刊
-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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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1回 全國女子庭球大會 開催
國內 最初의 女子 公開 스포츠를 始作. 동아일보는 以後 女性雄辯大會도 開催하는 等 女性의 地位向上을 위해 努力
-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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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2次 武器停刊(1926.03.07~1926.04.20)
國際農民本部가 보내온 3.1節 記念 메시지 揭載로 政間
-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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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化門 社屋 竣工
“朝鮮總督府를 監視하기 위해 동아일보가 光化門 네거리에 자리해야 한다”는 인촌 金性洙 先生의 뜻에 따라 光化門 社屋 竣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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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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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의 時 ‘東方의 등側’ 揭載
일찍이 亞細亞의 黃金時期에/ 빛나던 燈燭의 하나인 朝鮮/ 그 燈불 한番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東邦의 밝은 빛이 되리라/ 引渡의 詩聖 타고르는 나라를 잃고 失意에 빠져있던 朝鮮民衆의 가슴에 希望을 심어주기 위해 동아일보에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