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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畫報] ‘골프 女帝’ 박세리 隱退式…‘25年 정든 필드와 作別’ : 보다스튜디오

[畫報] ‘골프 女帝’ 박세리 隱退式…‘25年 정든 필드와 作別’

登錄 2016.10.14.
박세리, 25年 정든 필드와 作別…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서 隱退式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國民歌謠 ‘상록수’가 필드에 울리자 그의 눈시울이 이내 붉게 물들어갔다.

 13日 仁川 스카이72골프클럽에서 隱退式을 가진 韓國 골프의 開拓者 박세리(39). 그는 이날 美國女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에 出戰한 뒤 팬과 選手 等 數千 名이 지켜보는 가운데 18番홀 그린에서 25年 넘게 정들었던 필드와 作別했다.

 景氣 前 박세리는 “많은 분들 앞에서 울까 봐 걱정이다. 새벽 2時에 깼을 만큼 잠도 잘 못 잤다. 모든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자주 울컥거린다”고 말했다. 結局 그는 1番홀 티 박스에 오르기 直前 복받친 感情에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 박세리에게 1000餘 名의 갤러리는 團體로 粉紅色 목도리를 두른 채 “稅吏 最高”, “永遠히 사랑할게요”라며 應援을 보냈다. 박세리는 “競技에 잘 集中하다가 18番홀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하마터면 티샷을 못 할 뻔했다”고 말했다.

 7月 US女子오픈 以後 골프채를 잡지 않았던 박세리는 自身의 플레이를 보고 싶어 하는 國內 팬을 위해 苦心 끝에 國內 告別戰에 나섰다. 지난週 儒城CC에서 3個月餘 만에 18홀을 돌았던 그는 痼疾인 어깨負傷이 도져 사흘 동안 앓아누웠다. 이날 그가 남긴 스코어(80打)는 큰 意味가 없었다. 抛棄하지 않고 完走한 그에게는 拍手만이 쏟아졌다.



 隱退式에서 박세리의 業績을 담은 動映像이 흐르는 가운데 行事 參席者들은 미리 나눠준 ‘고마워요 SERI’라고 적힌 帽子를 흔들며 敬意를 표했다. 박세리는 永遠한 스승인 아버지 박준철 氏를 비롯해 박인비 최나연 等의 ‘稅吏 키즈’, 外國 選手들과 一一이 抱擁하며 연신 눈가를 훔쳤다. 박세리와 같은 時期에 國民 英雄이었던 박찬호는 “세리와 나는 先驅者라는 使命感을 가졌다. 稅吏는 꽃이 아니라 나무다. 勢利를 통해 맺은 꽃과 열매가 오늘의 韓國 골프를 만들었다”고 評價했다.

 박세리는 “優勝 못지않은 幸福한 瞬間이었다. 選手가 아닌 골프 人生의 後半戰을 始作하는 데 큰 힘을 얻었다. 有望株 育成의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初等學生 때 投砲丸, 100m 달리기 等 陸上 選手를 하다 初等學校 6學年이던 1989年 골프와 因緣을 맺은 박세리는 中3 때인 1992年 滿 14歲의 나이로 프로 大會인 라일앤스코트오픈에서 優勝하며 天才性을 보였다. 1996年 프로 데뷔 後 國內 투어 新人王과 賞金王을 휩쓴 그는 1998年 LPGA투어에 進出해 史上 처음으로 첫 勝과 두 番째 優勝을 모두 메이저 타이틀로 裝飾했다. US女子오픈에서는 5日 동안 92홀을 치른 끝에 ‘맨발 鬪魂’으로 頂上에 올라 外換危機에 힘들어하던 國民들에게 希望의 메시지를 傳達했다. LPGA투어 아시아 最多인 通算 25勝을 거둔 그는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代表팀 監督을 맡아 박인비의 金메달을 거들었다.

 박세리가 美國에 進出한 1998年 LPGA투어에 韓國 選手는 그밖에 없었다. 그가 告別 競技를 치른 이날 첫 라운드에는 78名의 出戰 選手 中 32名이 韓國人 選手였다. 이런 코리아 烈風은 박세리가 없었다면 不可能한 일이었다.

 

仁川=金鍾奭 記者 kjs0123@donga.com

박세리, 25年 정든 필드와 作別…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서 隱退式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國民歌謠 ‘상록수’가 필드에 울리자 그의 눈시울이 이내 붉게 물들어갔다.

 13日 仁川 스카이72골프클럽에서 隱退式을 가진 韓國 골프의 開拓者 박세리(39). 그는 이날 美國女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에 出戰한 뒤 팬과 選手 等 數千 名이 지켜보는 가운데 18番홀 그린에서 25年 넘게 정들었던 필드와 作別했다.

 景氣 前 박세리는 “많은 분들 앞에서 울까 봐 걱정이다. 새벽 2時에 깼을 만큼 잠도 잘 못 잤다. 모든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자주 울컥거린다”고 말했다. 結局 그는 1番홀 티 박스에 오르기 直前 복받친 感情에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 박세리에게 1000餘 名의 갤러리는 團體로 粉紅色 목도리를 두른 채 “稅吏 最高”, “永遠히 사랑할게요”라며 應援을 보냈다. 박세리는 “競技에 잘 集中하다가 18番홀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하마터면 티샷을 못 할 뻔했다”고 말했다.

 7月 US女子오픈 以後 골프채를 잡지 않았던 박세리는 自身의 플레이를 보고 싶어 하는 國內 팬을 위해 苦心 끝에 國內 告別戰에 나섰다. 지난週 儒城CC에서 3個月餘 만에 18홀을 돌았던 그는 痼疾인 어깨負傷이 도져 사흘 동안 앓아누웠다. 이날 그가 남긴 스코어(80打)는 큰 意味가 없었다. 抛棄하지 않고 完走한 그에게는 拍手만이 쏟아졌다.



 隱退式에서 박세리의 業績을 담은 動映像이 흐르는 가운데 行事 參席者들은 미리 나눠준 ‘고마워요 SERI’라고 적힌 帽子를 흔들며 敬意를 표했다. 박세리는 永遠한 스승인 아버지 박준철 氏를 비롯해 박인비 최나연 等의 ‘稅吏 키즈’, 外國 選手들과 一一이 抱擁하며 연신 눈가를 훔쳤다. 박세리와 같은 時期에 國民 英雄이었던 박찬호는 “세리와 나는 先驅者라는 使命感을 가졌다. 稅吏는 꽃이 아니라 나무다. 勢利를 통해 맺은 꽃과 열매가 오늘의 韓國 골프를 만들었다”고 評價했다.

 박세리는 “優勝 못지않은 幸福한 瞬間이었다. 選手가 아닌 골프 人生의 後半戰을 始作하는 데 큰 힘을 얻었다. 有望株 育成의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初等學生 때 投砲丸, 100m 달리기 等 陸上 選手를 하다 初等學校 6學年이던 1989年 골프와 因緣을 맺은 박세리는 中3 때인 1992年 滿 14歲의 나이로 프로 大會인 라일앤스코트오픈에서 優勝하며 天才性을 보였다. 1996年 프로 데뷔 後 國內 투어 新人王과 賞金王을 휩쓴 그는 1998年 LPGA투어에 進出해 史上 처음으로 첫 勝과 두 番째 優勝을 모두 메이저 타이틀로 裝飾했다. US女子오픈에서는 5日 동안 92홀을 치른 끝에 ‘맨발 鬪魂’으로 頂上에 올라 外換危機에 힘들어하던 國民들에게 希望의 메시지를 傳達했다. LPGA투어 아시아 最多인 通算 25勝을 거둔 그는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代表팀 監督을 맡아 박인비의 金메달을 거들었다.

 박세리가 美國에 進出한 1998年 LPGA투어에 韓國 選手는 그밖에 없었다. 그가 告別 競技를 치른 이날 첫 라운드에는 78名의 出戰 選手 中 32名이 韓國人 選手였다. 이런 코리아 烈風은 박세리가 없었다면 不可能한 일이었다.

 

仁川=金鍾奭 記者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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