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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父 “어릴때 살 빼라고 野球 시켰는데 푹 빠져버렸어요”|스포츠동아

최정 父 “어릴때 살 빼라고 野球 시켰는데 푹 빠져버렸어요”

入力 2015-01-02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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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정은 지난해 12月 氣象캐스터 出身의 나윤희 氏와 結婚했다. 최정은 “結婚하고 나니 혼자 멍 때리지 않아서 좋고 (아내와) 같이 있다는 것 自體가 氣分좋다”고 말했다. 최정의 아버지 최순묵 氏는 “너무 幸福하다”며 며느리에 對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仁川|김민성 記者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父親 최순묵氏가 말하는 내 아들 최정

初等學校 3學年때 살 빼라고 野球 許諾
4學年때 6學年 主戰 밀어내더라고요
SK 入團 草創期 2軍서 輾轉
그땐 아들 競技 보고나면 많이 속상했죠
요즘엔 ‘謙遜하라’고 더 쓴소리 합니다
車 사준다는 것도 말렸어요
感謝하며 좋은 일 하는 데 쓰라고요

SK 內野手 최정과 나윤희(뒷줄 왼쪽 2番째와 3番째)의 結婚式 날 찍은 家族寫眞. 앞줄 오른쪽 끝이 최정의 아버지 최순묵 氏. 寫眞提供|올제 스튜디오


SK 擔當記者로 있으면서 選手 아버지들을 인터뷰할 機會가 꽤 있었다. SK 김광현, 이재원의 아버지 等을 만나며 그 選手의 바른 人性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란 것을 實感했다. SK 최정의 아버지 최순묵 氏는 요즘 아들에게 “謙遜해라. 感謝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프리에이전트(FA) 歷代 最高額 契約(4年 86億원)을 했다고 變하지 말라는 忠告다. 아버지는 “아들은 아들의 人生이 있고, 나는 내 人生이 있다. 나는 取材에 한 番도 應하지 않고 모두 拒絶했다”며 인터뷰를 거듭 固辭했다. 겨우 承諾을 해 만남은 이루어졌으나 끝내 寫眞撮影은 許諾하지 않았다. 긴 對話를 마친 날 늦은 밤, 아버지는 長文의 文字를 記者에게 보내왔다. ‘謙遜하게 살도록 잘 가르치겠습니다’라는 文章 속에는 감추려 했어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愛情이 묻어났다.


● 살 빼라고 시켰던 野球

아버지는 京畿道 城南에서 高校 英語先生님으로 在職하고 있다. 33年째 敎職에 몸담으며 夫人과 함께 최정 최평 崔沆 3兄弟를 키웠다. 이 中 둘째만 法學을 工夫하고, 맏이 최정과 막내 崔沆은 SK 野球選手다. 아버지는 三兄弟가 ‘평’탄하고 ‘正’직하게, ‘項’上 友愛를 갖고 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처음에 아버지는 큰 아들 정이에게 運動시킬 생각이 全혀 없었다. 初等學校 3學年 때 IQ가 140이 나올 程度로 工夫도 잘해 班長도 했다. 다만 아들이 뛰어노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것은 알았다. 4.2kg 優良兒로 태어난 정이는 어렸을 때 살이 쪄서 ‘살로만(소시지 이름)’이라는 別名으로 불렸다. 이런 아들이 “學校에서 野球部員 募集을 한다”며 原書를 들고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살이나 빼라고 시켰던 野球였는데 아들이 흠뻑 빠져버렸다. “하다가 그만 둘 줄 알았는데 4學年 때 6學年 主戰을 밀어내더라고요. 1年도 안 되어서 景氣도 最優秀 選手가 됐어요. 대일초등학교 이성필 監督님이 ‘野球에 素質 있습니다’ 하더라고요.” 蹴球팬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을 따라 野球팬으로 그렇게 ‘轉向’했다.


● 아들 몰래 많이 울었던 아버지

一旦 野球를 시킨 뒤 아버지는 아들의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았다. “6學年 때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했을 때 제가 魂을 냈어요. 정이가 마음이 착해서 父母님 慰勞하는 마음으로 견뎌내더라고요.”

敎師 月給으로 세 아들을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貯蓄 한番 못한 形便이니 아들 뒷바라지도 변변히 못했다. 눈이 오면 學校 運動場에 눈 치워주러 나가는 게 고작이었다. 아들 競技도 가서 본 記憶이 거의 없다. 홈런 쳤을 때 連絡 받으면 잘한 줄 알았다.

아들이 高校(水原 裕信高)時節부터 여기저기서 注目을 받고, SK의 1次地名을 받고 入團하자 바로 1軍 有名選手가 될 期待에 잠깐 들떴던 것도 事實이었다. 그러나 草創期 아들은 2軍을 轉轉했다. 어쩌다 1軍에 올라가도 代打로 잠깐 나갔다 바로 2군으로 내려간 적도 있었다. “아들이 2軍에서 競技할 때 몰래 가끔 가서 본 적이 있어요. 2군에서 競技 보는데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돌아올 때 울었어요.” 한番은 아들이 大邱 三星戰 때 1軍 呼出을 받았다. 그날 밤 정이는 9回 代打로 나선 뒤 다시 2軍行 봉고차를 탔다. 父母님은 뜬눈으로 보낸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 有名 野球選手 아버지로 산다는 것

그런 試鍊을 딛고 최정은 韓國 프로野球 特級選手 班列에 올라섰다. 오히려 아버지는 아들이 野球를 잘할수록 “謙遜하라”고 쓴소리를 더 많이 한다. 아버지는 “정이가 長男이라 그런지 생각과 行動이 신중해요. 동생들한테 말은 안 해도 이끌어주고요”라고 아들 몰래 아들자랑을 한다. 얼마 前 아들은 結婚이라는 큰 膳物을 父母님께 안겨줬다. 아버지는 “너무 幸福하다”며 며느리에 對해 大滿足했다. 公益勤務 中인 막내 崔沆에 關해 아버지는 “兄보다 意志가 剛해서 잘 適應할 것”이라고 말했다.

有名野球 選手 최정의 아버지로 사는 것에 對해 아버지는 “저는 좋기보다는 不便해요”라고 率直한 心情을 말했다. 누구의 아버지로 불리기보다 平凡한 先生님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최정의 SK 殘留에 “키워준 팀인데 感謝해라”라는 아버지의 勸誘가 決定的이었던 것은 알려지지 않은 事實이다. 그 말은 했지만 아버지는 契約에 關해선 묻지도 않았다. “정이가 ‘球團에서 잘해줬다’고 電話가 와서 그런 줄만 알았어요. 正確한 額數는 저도 뉴스보고 알았어요.”

아들은 FA 大舶契約 記念으로 車를 바꿔주겠다고 約束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좋은 일 하는데 쓰라”고 아들을 말렸다. 아버지의 勸誘에 따라 최정은 不遇한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쓸 計劃이다.


■ SK 최정은?



▲生年月日=1 987年 2月28日

▲出身校= 對日初-평촌중-裕信高

▲신장, 體重= 180cm, 84kg, 우투右打

▲프로入團= 2005年 SK 1次地名(契約金 3億원)

▲國家代表 經歷= 2009年 WBC, 2010年 광저우아시안게임, 2013年 WBC 國家代表

▲首相內譯= 2004年 李榮敏 打擊上, 2008年 韓國시리즈 MVP, 2011∼2013年 3窶籔 골든글러브

▲2014年 成績= 82競技 打率 0.305 14홈런 76打點 7盜壘

▲通算 成跡= 1040競技 打率 0.292 168홈런 634打點 119盜壘

김영준 記者 gatzby@donga.com 記者의 다른記事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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