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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美娜, 當身은 自由다” [양형모의 萬터뷰]|스포츠동아

“孫美娜, 當身은 自由다” [양형모의 萬터뷰]

入力 2023-10-16 12: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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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다!”
移徙를 한 番 할 때마다 더벅머리 總角 비듬 떨구듯 冊들을 버리고 다녔지만, 이 冊은 冊欌 한 구석에 고이 꽂혀 있었다.
‘스페인, 너는 自由다’. 2006年 1刷를 찍은 冊인데, 내가 갖고 있는 것은 2010年 版으로 54刷였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였다. 當時 아나운서에서 旅行家이자 作家로 變身한 孫美娜氏가 서울대 講演을 할 때 인터뷰를 하면서 膳物 받았다.

孫美娜 作家가 最近 이 冊을 再出刊(코알라컴퍼니 出刊)했다. 17年 만에 새로운 表紙를 입고, 업그레이드되어 다시 讀者의 곁으로 돌아왔다.
스포츠동아 忠正路 社屋 1層 카페에서 손 作家와 긴 時間 인터뷰를 했다. 如前히 그는 豁達하고, 많은 말을 했으며, 더 없이 健康해 보였다. 無線 마이크 두 個를 꺼내 한 個를 건네고, 다른 한 個를 내 옷깃에 달았다. 인터뷰, 아니다. 萬터뷰 始作!


-2006年 出刊됐으니 17年 만의 再出刊입니다. 앞서 14卷의 冊을 내셨는데요. 아무래도 讀者들이 가장 많이 記憶하는 冊은 亦是 ‘스페인, 너는 自由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只今까지 몇 部나 나갔는지 알고 계시나요?
“한 40萬 部 가까이 나간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손 作家께 받았던 冊이 2010年 54刷판이더라고요.
”저도 한 70刷까지는 세다가 그 다음은 모르겠어요(웃음). 當時에는 讀者 분들께 사인해 드리다가 손목 靭帶가 나갔을 程度였으니.“


-17年 前까지만 해도 未來가 不透明한 狀況에서 젊은이들이 ”一旦 나가자“하고 海外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손 作家께서는 이 方面의 先頭走者, 1世代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요즘은 旅行客뿐만 아니라 유튜버, 블로거 等 너도나도 엄청 海外로 나가고 있는데요. 이런 世態를 보며 感懷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選擇을 했는데 世上이 오히려 反對로 바뀌어 있으면 ‘내가 잘못된 選擇을 했나’ 이럴 텐데요. 多幸히 ‘於此彼 가야 되는 길을 좀 빨리 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저는 늘 後輩들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孫美娜가 特異하지 않은 世上이 왔으면 좋겠다’. 꼭 남들을 따라서, 같은 길을 가지 않아도 괜찮은 世上.“

”選擇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제가 튀는 活動을 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왔어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自己 主體的으로 人生의 選擇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데에 對해 나도 좀 影響을 미쳤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했는데 그래도 조금은 그런 方向대로 世上이 變化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좋아요. 너무 보기 좋은 것 같아요.“

”勿論 安定的인 職場에서 平生 몸 담고 일하시는 분들에 對해 저는 無限한 리스펙트를 갖고 있습니다. 그와는 別個로 世上이 變化하는데 ‘나만 안 變할 거야’ 하는 건 제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社會的인 構造라든가 科學技術의 發展, 交通의 發展, 일터의 패턴 等 여러 가지 環境이 바뀌고. 우리가 어떤 것에 價値를 두고 살아가느냐. 結婚을 하느냐 마느냐. 이런 게 다 바뀌고 있잖아요.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現象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젊은 親舊들 만나서 얘기도 더 해보고 싶고. 저는 宏壯히 반기고 있어요.“


-젊은 親舊들하고 얘기하실 機會는 많지 않나요? 講演도 있고.

”一般的인 會社를 다니시는 분들보다는 훨씬 많지만, 그래도 講演場에서 만나는 거 말고 좀 더 親密하게 對話를 해보고 싶은데요. 그런 機會는 아직까지 많진 않아요. 그래서 좀 만들어보려고 해요. 궁금해요.“


-인스타그램을 보면 海外, 特히 스페인은 우리가 캠핑이나 國內 旅行 가는 느낌으로 가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맞아요. 거의 大田, 大邱, 濟州島 가듯이 다녀오죠. 집 같아요. 眞짜로“


-冊의 後記들이나 事緣들을 많이 椄하실 텐데요. ‘이 冊을 보고, 또 作家님의 삶을 보고 이렇게 勇氣를 얻었어요’. ‘저도 뭐 이런 힘을 얻었어요’. 이런 것은 엄청나게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勇氣를 내서 이렇게 해서, 正말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라는 것도 있겠죠?
”宏壯히 많죠. 가장 最近에 있었던 일은 스페인 出張 갔을 때에요. 인스타그램으로 現地에서 번개를 했어요. 아무래도 旅行을 오신 분들이고, 本人들 計劃도 있을 테니 어렵겠지만 그래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자고 한 거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讀者 분들이 오셔서 그날 제가 저녁을 쐈거든요. 바르셀로나 食堂에서 麥酒 한盞, 치킨 시켜놓고 재미있게 놀다가 冊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마치 告解聖事를 하는 時間처럼 되어 버렸죠(웃음).“


-眞實 게임 雰圍氣가 되어버린 거군요.
”처음 얘기를 하신 분께서 ‘저는 20番밖에 안 읽었거든요’ 이러면서 울기 始作하셨어요. 自身이 너무 힘들었을 때 이 冊을 읽고 勇氣를 내서 只今 留學을 와 있는 분이었죠. 스페인하고 아무 相關이 없는 분이었는데 留學을 와서 博士 學位 取得을 準備하고 있는 젊은 女性 政治學徒셨습니다.“

”또 다른 분은 中學校 때 이 冊을 읽었다고 해요. 스페인이라는 곳을 全혀 모르다가 이 冊을 읽고 靈感을 받아 外高를 가고, 大學에서 스페인語를 專攻해 只今은 스페인에 있는 구글에서 일하고 계시는 中이라고 했어요. 또 어떤 親舊는 스페인에 와서 人生의 伴侶者를 만나 스페인 사람이랑 結婚해서 살고 있다고 했고요. 그러니까 正말 많아요.“


-스페인 國王으로부터 勳章을 받으실 만하셨군요(손 作家는 올해 3月 스페인 國王 펠리페 6歲가 授與하는 市民十字勳章을 받았다. 이 勳章은 民間으로서 받을 수 있는 最高의 名譽라고 한다).
”하하하! 아참, 제가 眞짜 感動 받았던 事緣이 하나 있어요. 얼마 前에 서울驛에서 커피를 사려고 들어갔는데 五十代 中盤쯤 돼 보이는 男子 분이 다가오시더라고요. ‘私的인 時間을 보내고 계신데 妨害를 하고 싶진 않았지만 꼭 할 얘기가 있다’고 하셨죠. 그래서 들어보니, 本人의 中學生 아들이 彷徨하고 있었는데 이 冊을 읽고 完全히 달라졌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하시면서 ‘우리 아들을 꿈꾸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죠.“



-正말 感動的인 이야기입니다.
”그렇죠. 너무 感動인 거예요. 그러면서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을 테니 繼續해서 이 일을 해주셔야 된다’고. 그 분은 소프트웨어 會社를 經營하는 社長님이셨어요. 名銜을 주시면서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뭐든지 돕고 싶다’고 하셨죠. 저도 冊에 사인을 해서 아드님께 膳物로 보내드렸어요.“

”얼마 前에 인스타그램에서 댓글 이벤트를 했거든요. 正말 冊에 모두 싣고 싶을 程度였어요. 事緣들이 너무 感動的이어서 겨우 골라야 했으니까요. 너무 感謝하죠.“


-2006年度에 世上에 나온 ‘스페인, 너는 自由다’를 17年 만에 다시 出刊하신 거잖아요. 이건 어떤 意味인가요?
”昨年에 산티아고길을 다녀오고, 제 스스로 內面의 變化도 많았고, 나이도 이제 뭔가 좀 새로운 챕터가 始作되는 氣分도 들고. 코로나 끝나고 요즘 스페인으로 旅行 가는 사람들도 많고. 이 冊은 스페인 旅行記가 아니라 事實 ‘勇氣’에 關한 冊이거든요. 孫美娜의 成長期이기도 하지만 孫美娜 個人의 成長期라기보다는 大韓民國에서 30代를 살아가고 있던 한 女性이 어떻게 勇氣를 얻어 갔는가에 對한 이야기 같아요.“

”그래서 이 冊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靈感을 받아 變化가 생겼다면, 核心은 제가 볼 때는 容器인 것 같아요. ‘엘 카미노(산티아고 巡禮길을 다녀온 後 直接 監督을 맡아 製作한 映畫)’가 慰勞였다면 이건 容器에 關한 冊이거든요. 只今이 그런 게 必要한 時期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理由로 새丹粧해 보고 싶었어요.“


-17年 前의 冊이라고는 하지만 只今 봐도 全혀 낡은 느낌이 없더라고요.
”이 冊을 같이 만들었던 編輯者가 읽고 나서 ‘稀罕하다. 옛날 冊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너무 가슴이 설렌다’는 거예요. 只今 읽어도 너무 좋대요. 이런 冊은 이 모습 그대로 젊은 사람들이 한番 읽어보면 좋겠다고. 周邊에 膳物하고 싶다는 얘기들도 많이 해주셨고요. 只今도 다른 冊 사인會를 할 때 ‘스페인, 너는 自由다’를 덤으로 가져오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하도 읽으셔서 너덜너덜해진 冊도 많이 ¤고요. ‘우리 딸도 읽었으면 좋겠다’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고. 甚至於 ‘符籍으로 所藏하고있다’는 分도 … (웃음).“


-아예 ‘스페인, 너는 自由다’ 2篇을 쓰실 생각은 안 하셨나요?
”했죠. 그건 어쩌면 몇 年 後. 가우디 聖堂이 完工될 때쯤 해서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가우디 聖堂이 2026年에 다 지어진대요. 한 세 卷쯤이 세트로 되지 않을까요?“


-2006年度에 나온 이 冊을 起點으로 孫美娜라는 사람의 前과 後가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人間 孫美娜’의 側面에서 본다면 어떤 點이 달라졌을까요?
”個人的인 希望事項은 그때와 只今의 저는 많이 안 달라진, 그 어떤 核心的인 저의 面貌가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17年 前의 저는 確實히 풋풋하지만 그래도 많이 變하지 않았다는 생각은 率直히 들어요. 철이 안 들었단 얘기죠(웃음). 그 사이에 正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人生의 희노애락이랄까 이런 것도 좀 더 알게 되고. 그리고 좀 더 어른이 됐겠죠. 그럼에도 저는 個人的으로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때나 只今이나 그대로이신 것 같기도 하고요.
”뭐가 달라졌냐고 막상 물어보시니까 잘 모르겠어요(웃음). 如前히 그냥 철없고 精神 없고 失手 많이 하고.“

”어쩌면 한 가지가 있다면 그때보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좀 더 많아졌겠죠. 나이를 먹으면 아는 것이 많아져서 怯도 많아지고 勇氣가 사라지죠. 그래서 어쩌면 아까부터 제가 勇氣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이 冊을 다시 한 番 새로운 모습으로 世上에 내놓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根底에는 저에게 只今 이게 必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뭔가 한番 只今쯤 燃料를 다시 注入해주고 싶은 나이이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어찌 보면 30代 딸과 50代 엄마가 같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네요. 30代 때 이 冊을 읽었던 女性이 엄마가 돼서 30代가 된 딸에게 膳物로 줄 수 있는 ….
”둘 다 必要할 때인 것 같거든요. 女子의 나이가 30代 넘어갈 무렵에는 社會的으로 많이 부딪히는 것도 있고, 韓國에서 살다 보면 커리어的으로도 苦悶을 하게 되고. 現實과 꿈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苦悶하는. 事實 큰 問題잖아요. 요즘 뭐 그런 苦悶 안 하는 大韓民國 젊은이들이 있을까요? 男子 분들도 마찬가지로 苦悶이겠지만. 그런 時點을 한 番 거치고 그 다음에 結婚을 하든 안 하든, 애 엄마가 되든 안 되든, 이제 쭉 막 熱心히 살았는데, 또 한 番 苦悶하는 視點 中 하나인 것 같거든요.“

”그런 時期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冊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제 스스로에게 들었고, 저에게도 勇氣 한 點이 必要해서 이 冊을 다시 한番 들여다보게 되고, 編輯者랑 읽으면서 ‘우리끼리 할 말은 아니지만 只今 읽어도 좋구나’ 싶어서(웃음).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理由가 있구나’, ‘사람들이 勇氣를 얻는 데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이 冊의 美德이라면 아무래도 孫美娜라고 하는 有名人이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30代 初盤의 나이에 스페인으로 날아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成長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代理滿足을 얻는 것이 가장 크겠죠. 그렇다고 해서 이 冊이 ‘當身이 只今 하고 있는 일은 價値가 없으니 다 때려치고 떠나세요’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죠. 絶對 아니죠! 이 冊의 에필로그 그러니까 맨 마지막 챕터를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오거든요. 1年 있다가 스페인에서 돌아와서 이 冊을 쓰고 있는데, 제가 여기서 告白을 해요. ‘내 삶은 變한 게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저는 只今 結果的으로는 이렇게 좀 다른 삶을 살게 됐지만, 처음 스페인에서 돌아와서 바로 會社를 그만둔 것도 아니고. 偶然히 冊이 이렇게 이제 다른 길을 열어준 結果가 됐지만 저는 오히려 제 자리에서의 幸福을 찾아서 왔거든요. 그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만두고 떠나라가 아니고 오히려 反對되는 이야기에요. 現實에서 뭔가 幸福과 自由를 찾을 수 있는 힘을 주는. 그 役割을 했던 것 같고, 그것이 讀者에게 傳해진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이게 어떤 意圖를 가지고 讀者에게 뭘 傳達해야지 하고 저랑은 상관없는 일을 傳達한 게 아니라, 그냥 이 얘기가 結局은 저이기 때문에 저의 變化가 다른 분들에게 轉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7年 前 讀者들과 只今 讀者들이 다른 點은 이제 스페인을 다녀온 經驗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겠죠. 스페인을 다녀 온 사람들이 이 冊을 읽으면서 느끼는 點도 다를 것 같습니다.
”다른 필터로 찍은 寫眞을 보는 氣分으로, 스페인을 또 다른 모습으로 觀察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똑같은 經驗은 안 했지만 ‘이 사람이 이랬는데’, ‘아! 나는 이런 經驗을 했었지’ 하며 追憶을 쌓을 수도 있는 거고.“


-17年 前에도 이런 質問을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에이, 손미니니까 그게 可能한 거지“라는 것 말이죠.
”많이 받았죠(웃음). 前 다른 재주는 없는데 사람 親舊 사귀는 재주는 있는 것 같거든요. 얼마 前에 私的인 모임에서 윤종신氏를 만났는데요. 저한테 “너는 네가 가진 最高의 才能이 뭔지를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는 거예요.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能力이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그게 뭐냐고 했더니 ‘누구든지 보면 사람을 끄는 어떤 게 있다“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事業을 크게 하셨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웃음).
“말씀하신 대로 ’손미나니까 그렇지‘라는 部分도 있을 거예요. 누구나 갑자기 길에서 누굴 만났는데 그 사람이 平生 베프가 되고, 집에 招待를 받고. 이렇게 막 이어지지는 않죠. 근데 또 어떻게 보면 그게 저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엄청난 魅力이 있다기보다는 제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좀 더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便이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해요.”

“좋든 나쁘든 그냥 저는 이렇게 열려 있는 사람인 거고, 그랬을 때 더 많은 機會가 쏟아져 들어오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傷處받는 일도 많지만 또 그中에 좋은 일도 있는 거고. 뭐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런 部分을 캐치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뭐 이 사람이니까 그렇겠지‘라는 視角이 아니라 좀 더 마음의 變化가 일지 않을까요?”


-그렇죠. 冊에도 나오지만 當時 만났던 스페인 사람들은 韓國의 有名人이 自己들과 떠들고 밥 먹고 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잖아요. 그러다가 韓國 사람들이 와 가지고 사인 받는 걸 보고 눈치 챘다는 얘기.
“그렇죠. 맞아요.”


-一般人 ’孫氏‘로 그냥 갔던 거 아닙니까?
“그걸 願해서 간 것도 있었죠. 當時 國內에서는 파파라치가 따라다닐 程度였기 때문에 좀 疲困했거든요. 그런 面에서 스페인은 便安한 곳이긴 했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뭐 아나운서라고 하면 宏壯히 바른 生活만 해야 되고 ….”



-確實히 그런 이미지가 있었죠.
“放送에서 뉴스할 때 팩트를 傳하는 사람이라는 것에서 派生돼 가지고 道德的으로 完璧한 사람이어야 될 것 같은. 期待値가 너무 높으니까 저희는 모든 行動이 조심스러웠거든요. 每日 아침마다 일어나서 定해진 時間에 쌩쌩한 모습으로 視聽者를 만난다는 것도 繼續 反復되는 일이니까. 제 自身을 위해 時間을 쓰면서 조금은 匿名의 삶이 그리웠었기 때문에 저의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生活을 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그걸 알게 된 거죠.”


-아나운서라는 職業은 確實히 그런 面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先輩, 組織에서도 그런 것을 强要하는 雰圍氣였나요?
“只今 생각하면 웃긴 일들도 많았어요(웃음). 藝能 같은 데 關心 많고 튀는 後輩들이 들어오면 혼나기도 하고. 옷차림 團束도 많았어요.”


-손 作家님은 아나운서이면서도 演藝面에 記事가 늘 나오는, 事實上 演藝人 같은 存在셨죠.
“맞아요. 藝能 프로를 많이 했죠. 개콘에도 나왔으니까. 只今도 잊혀지지 않은 記憶이 하나 있어요. 이 冊이 나왔을 때 제 知人 PD가 있었거든요. 高等學校 때 親舊죠. 洞네 親舊. 洞네 동아리 밴드도 했었고. 근데 이 冊이 나오고 만났을 때 그 親舊가 ’야! 나는 이 冊을 읽고 너무 기쁘다‘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네가 放送局 아나운서가 됐다고 해서 祝賀할 일이지만 한便으로는 팔딱팔딱 막 살아있는 물고기 같던 네가 剝製가 되는 것 같아서 좀 속상했다‘는 거였죠. 그런데 冊을 읽어봤더니 그대로더라는 거예요. ’네가 冊 안에 있었고, 그게 너무 반가웠다‘라면서 ’어릴 적 親舊로서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어요. 只今도 記憶이 생생해요.”


-17年 前이니까 可能했던 거 같아요. 只今은 韓國의 有名 放送人이 스페인에 가면 다 알아볼 거 같습니다.
“그러게요. 只今은 스페인에 韓國사람들이 正말 많아요. 하긴 거의 每日 直航으로 韓國人들을 실어 나르니까.”


-이 冊을 再出刊하기 爲해 다시 읽어보시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무엇일까요?
“이걸 어떻게 說明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 人間的으로 제가 나이를 더 많이 먹고 말하자면 어른이 되어서 조심스럽고 더 두려운 것도 생긴 反面 한便으로는 저는 제가 많이 變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럼에도 不拘하고 이 冊을 읽다 보면 그냥 30代 또 다른 버전의 제가 이 안에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마치 사랑에 빠진 少女처럼 뭘 보고도 感動하는. 感情이 豐富한 거죠. 只今은 그게 안 돼요(웃음).”

“이 冊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풋풋했던 마음을 다시 찾게 된 것. 歌手 移籍 氏가 推薦辭를 써줬어요. 여기 보면 女子 아이가 있다고. ’孫美娜‘라는 女子 아이가 이 안에 있다고 하는 건데, 스스로도 自己를 30代 그러니까 ’어린 孫美娜 女子아이‘라고 부르는데, 왜 그런지 알겠다. 純粹한 童心이 글 속을 闊步한다. 이런 얘기였거든요.”

“아직 다 익지 않은 과일 같은 그런 모습의 제가 이 글 속에 있더라고요. 반가웠어요. 저는 읽으면서 반갑고, ’아 이럴 때도 있었구나‘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新鮮한 에너지를 再充電한 거죠. 例를 들면 제가 오렌지 주스라면 좀 짜놓은 지 돼서 뭔가 시원한 느낌이 덜하게 된 거죠. 근데 거기다 새로운 오렌지를 하나 짜서 집어넣은 것 같은, 그런 氣分이 들더라고요.”


-이 冊을 單純하게 旅行 情報서나 旅行 案內書라고 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고 보면 손 作家께서는 自己 안으로의, 內面으로의 旅行에 對한 冊도 쓰셨죠.(어느 날, 마음이 不幸하다고 말했다, 2020).
“그렇죠. 關心이 많았죠. 우리가 健康하고 아름다운 삶을 維持하기 위해서는 飮食도 잘 먹어야 되고, 좋은 皮膚를 갖고 싶다면 線블록도 熱心히 바르고 뭐 이런 過程들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旅行도 마찬가지인 거죠.”

“이를테면 旅行이라는 거야말로 우리를 성장시키기 때문에 그 刺戟을 받으러 가는 거죠. 便安한 데 가서 좋은 호텔에서 잘 먹고 뭐 이런 旅行. 事實 그건 觀光이겠죠. 그게 아니라 眞짜로 내가 旅行을 가서 뭔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나고, 무슨 事件이 생겨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것도 있었어‘ 이렇게 좀 新鮮한 刺戟을 받았을 때, 나도 몰랐던 或은 잠자고 있던 내 自我가 다시 나에게 活氣를 주고 變化를 시켜주고 터닝 포인트도 만나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되는 게 實際 旅行이라면 이것은 밖에서의 刺戟이고, 내 마음이 그걸 잘 따라가고 있는지에 對한 省察이 同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同伴되지 않는 그런 旅行은 다녀와서 다시 原點으로 ….
“우리가 늘 旅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旅行의 窮極的인 目的이 뭐냐 그러면 저 같은 境遇는 적어도 가서 돈을 쓰고 재미있게 놀고 파티를 하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勿論 그것도 旅行의 一部지만) 그렇게 刺戟을 받고 돌아와서 그게 어떻게 내 人生에 내 삶에 내 日常에 變化를 줄 것인가. 어떻게 내 周邊 사람들을 더 幸福하게 할 것인가. 이런 데 도움이 돼야 되잖아요.”

“그렇게 되려면 밖에서 가져 온 것을 김치 묵히듯이 내 안에서 소화시킬 必要가 있는 거 같아요. 이 두 가지가 竝行이 됐을 때 正말로 旅行의 시너지가 난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 便입니다. 내 自身을 만나고 내가 成長하고. 근데 外部에서 刺戟을 딱 받고 ’띵‘하고 왔을 때는 몰라요.”

“마치 산티아고길의 끝에 到着하는 그 瞬間에 始作된다고 하는 것처럼 旅行의 眞짜 始作은 돌아왔을 때인 것 같거든요. 가서 보고, 刺戟 받고, 재미있고. 그때도 感動일 수 있지만 돌아와서 이것을 잘 곱씹고, 이것이 내 日常과 어떻게 버무려지느냐에 따라서 이게 眞짜 旅行을 간 價値가 있는 건지 돈만 쓰고 다니는 건지. 그렇기에 돌아와서 내면적인 省察과 내 日常과의 椄木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對한, 그런 묵히는 時間과 努力이 必要한 거죠.”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이 두 旅行이 다른 게 아니네요.
“그렇죠. 結局은 같은 거예요.”


-또는 旅行을 가더라도 同時에 두 個의 旅行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한테는 그래요.”


-代表的인 게 산티아고길이었겠군요. 겉과 안. 두 旅行이 합쳐진 旅行.
“그래서 너무 좋았던 거죠. 근데 저에게 있어서의 旅行은 그렇게 觀光만 했던 적은 事實 없어요. 제 冊을 보면 여러 나라를 다니고 있는 것 같지만 여러 나라의 旅行記를 썼다고 表現하긴 좀 어려운 部分이 있어요. 어느 곳으로 가든 그것이 제 內面의 成長과 同伴된 挑戰이었던 것 같아요. 例를 들어 뭐 스페인은 바르셀로나에 가서 碩士를 하면서 ’30살 女子도 勇氣 있게 살아갈 수 있어‘ 이런 自信感을 얻어왔다면, 페루 冊(페루, 내 靈魂에 바람이 분다, 2015)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어떻게 하면 人間이 삶과 죽음의 境界에서 잘 克服하고 살 수 있을까에 對한 省察이 있었고, 프랑스 冊(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2013) 같은 境遇는 小說家로서 ’내가 萬若에 마이크를 놓고 펜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하면 한 番 더 여기서 成長할 수 있을까‘에 對한 苦悶이 있었죠.”

“藝術的인 作業을 해보고 싶다는 것 때문에 事實 날씨도 別로 안 좋고 러프韓 都市에 일부러 저를 던져놓고, 遂行하듯이 살았거든요. (第 旅行과 冊에는) 그런 過程들이 하나하나 다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코로나 期間에도 冊을 2卷 썼는데 그런 冊들이나 마음에 對한 에세이도 저에게는 旅行이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人生의 어떤 契機나 턴이 있을 때마다 冊이 한 卷씩 나왔네요.
“맞아요. 저한테는 메디테이션 같은 過程이었던 거니까요.”


-冊을 한 卷씩 남김으로써 經驗을 그냥 갖고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던 거군요. 손 作家께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게 바로 이런 能力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或是 日記 같은 걸 쓰세요?
“씁니다. 記錄하는 게 習慣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每日 뭔가를 써놓는 걸 하셨던 거예요?
“네. 저희 집은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四角形으로 된 坐式 테이블을 놓고 네 食口가 各各 모서리에 앉았어요. 그렇게 앉아서 같이 冊도 읽고 글도 쓰고. 이런 게 집안의 文化였어요. 家族끼리 便紙도 많이 쓰고. 日記帳을 서로 膳物하기도 하고.”


-獨特하면서도 어쩐지 부러운 家族文化입니다.
“父母님께서 저희에게 좋은 習慣을 들여 주셨죠.”


-作家로서 旅行家로서 事業家로서, 또 먼저 勇氣를 낸 先輩로서 요즘 MZ世代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키워드로 表現한다면?
“너무 많은데요. 근데 이거 若干 잘못하면 꼰대 같은 소리가 될 수도 있어서(웃음). 只今은 뭔가 보이는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더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보이는 건 많은데 眞짜 롤모델은 없어요. 情報도 너무 많고 모든 사람이 다 인플루언서高 모든 사람이 다 저널리스트高 모든 사람이 다 뭐 …. 都大體 나는 어느 方向으로 가야 되는 건지. 근데 막 世上은 宏壯히 혼란스럽고.”


-自身이 뭘 하고 싶은지 안다는 게 宏壯히 어려운 일이죠.
“내가 누구指導 모르겠는 거예요. 오히려 너무 많이 펼쳐져 있다 보니까 꽉 막혀가지고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어디로 나가야 될지를 모르는 거죠. 그냥 멈춰져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저는 갖고 있어요.”


-메뉴가 너무 많은 메뉴板을 놓고 苦悶하는 決定障礙 같은 걸까요.
“그러니깐요. 우리가 그 안에서 어쨌든 살긴 살아야 되잖아요. 그렇다고 삶을 抛棄할 거 아니니까. 저는 우리 親舊들이 너무 當場의 結果物 같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조금 멀리 보고 내가 어떤 方向으로 가야겠다라는 것을 좀 잡아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른바 ’멀리보기‘ 키워드라고 해야 할까요?
“옛날에 우리 때는 ’20年 後를 想像해 봐야 돼‘라고 했는데 只今은 그건 아니죠. 왜냐하면 世上이 너무 빨리 變하기 때문에. 예전에 講演을 가면 20年, 10年 後를 바라보고 이런 걸 計劃해라 같은 얘기를 大學生들이 해줬는데 事實 저도 그렇게 안 하는데요.”

“이제는 短期 計劃이 맞아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게 當場 來日만 생각하는 삶을 사는 거는 아니거든요. 나라고 하는 배가 자유롭게 航海하는 거는 좋다 이거예요. 근데 燈臺가 어디 있는지는 그래도 봐야 沈沒하지 않으니까. 그걸 잘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요즘 時代가 어렵다고는 해도 精神 바짝 차리면 虎狼이 窟에 끌려가도 산다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빛이 잘 보이는 것이거든요. 自己의 觀點이나 생각에 反轉을 하다 보면 只今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狀況에서도 希望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런 걸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손 作家께서도 17年 前 멀리 보셨기 때문에 갈 수 있었던 거겠죠.
”그렇죠. 저도 事實 모두가 가지 말라고 그랬죠. 無條件 저를 支持하는 家族을 除外하고는 거의 다였어요. 뭐 저의 라이벌들은 좋아했겠지만(웃음). 제가 사라지니까 좋았겠죠.“


-家族이 가장 크게 反對했을 것 같은데, 아니었군요.
”저희 家族은 좀 特異해서 그냥 ’뭐 네가 苦悶한 게 맞겠지‘ 若干 이런 雰圍氣. 근데 그런 치어리딩은 重要한 것 같아요. 남들이 아니라고 해서 너무 거기에 끌려가지도 말고 自己의 어떤 主觀을 갖기 위해 努力했으면 좋겠어요. 좀 멀리 보고.“

以後에도 인터뷰는 좀 더 이어졌지만, 冊과는 關聯이 없는 이야기였기에 이곳에 揭載하지는 않기로 한다. ’1萬字 인터뷰‘를 콘셉트로 하고 있는 ’양형모의 萬터뷰‘는 인터뷰이의 育成을 可及的 最大限 살리고, 記事量의 制限이 없는 온라인의 長點을 살려 ’기~인 인터뷰‘로 整理하는 것이 特徵이지만 孫美娜 作家와의 인터뷰는 正말로 1萬자가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손 作家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李 自身의 唯一한 才能이라고 했다. 勿論 그의 外貌가 出衆하고, 그의 이야기가 넷플릭스 시리즈만큼이나 재미있어 절로 빨려 들게 되는 것이 事實이지만 直接 만나 對話를 하다보면 그만의 獨特한 ’香氣‘에 五感이 들뜨게 된다.

그 香氣의 正體는 일찌감치 把握하고 있었다. 그것은 自由의 香氣.
그가 只今 自由下든 그렇지 않든, 그 香氣는 穩全히 살아 그와 함께 하는 瞬間과 空間을 차곡차곡 채운다. 사람들은 그 自由의 香에 醉해 自身도 모르게 한 발짝씩 그에게 다가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그것은 自由의 香氣.
孫美娜, 當身은 自由다!

양형모 記者 hmyang0307@donga.com 記者의 다른記事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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