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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黨은 민주당과 싸워야 한다”|신동아

2022年 7 月號

“正義黨은 민주당과 싸워야 한다”

칼 세이건 좋아하는 ‘立體的 反骨’ 조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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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2-06-2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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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慣性的인 것은 잘 못 참는다

    • 黨內 ‘檢搜完剝’ 贊成論 納得 못 해

    • 進步는 無作定 正規職化 외쳐야 하나?

    • 좋아하는 保守는 유승민과 천하람

    • 工學的 計算에 빠져버린 進步政黨

     6월 7일 ‘신동아’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조성주 전 정의당 서울 마포구청장 후보. [조영철 기자]

    6月 7日 ‘신동아’와 인터뷰 後 寫眞 撮影을 위해 포즈를 取한 조성주 前 正義黨 서울 麻浦區廳長 候補. [조영철 記者]

    落選者를 만나러 망원동에 간다. 그것도 4.48% 得票한 사람을. 當事者도 계면쩍은 듯 첫마디가 “왜 저를 인터뷰해요?”다. 열 名쯤 있어도 좁지 않을 事務室에 (前職) 候補만 덩그러니 있는 걸 보고 “그러게요”라고 答할 뻔했다. 簡易 冊床 하나를 함께 옮겨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인터뷰 途中 不動産仲介人이 顧客을 데려와 事務室을 둘러봤다. 곧 賃借 契約이 끝난다고 했다. 이제 와 告白하면 이런 雰圍氣에서 進步 政治에 對해 論한 게 자못 그로테스크했다.

    이 사람은 生來的으로 反骨(反骨)이다. 世上에는 두 部類의 反骨이 있다. 平面的인 反骨, 立體的인 反骨. 正義黨의 조성주(44)는 後者다. 沈想奵을 잇는 進步 政治人이라 잘라 말하면 마치 밥을 짓다 만 느낌이 인다. 오래前 ‘2世代 進步 政治’를 喝破했던 조성주 自身부터 滿足하지 않을 게 分明하다.

    學生運動을 했지만 運動圈이 으레 가는 길로 가본 적이 없다. 政治·歷史·社會學徒가 櫛比한 進步政黨에서 異質的이게도 칼 세이건을 좋아하는 天文學度다. 그조차 2年만 다니고 中退했다. 이미 國會 保佐陣으로 일하고 있는데 天文學과 卒業狀이 무슨 意味가 있을까 싶어 관뒀단다. 이것이 父母도 어찌하지 못한 날것 그대로의 氣質이다.

    ‘蒼白한 푸른 點’

    그만두긴 했어도 天文學度의 正體性은 몸에 새겨져 있다. 그를 만나 오랜만에 ‘蒼白한 푸른 點(Pale Blue Dot)’이라는 文句를 들었다. 1990年 美國 航空宇宙局(NASA)의 太陽系 探査船 보이저 1號가 찍어 보낸 寫眞에서 地球는 하나의 작고 푸른 點에 不過했다. 칼 세이건은 같은 題目의 冊에 “그 작은 點을 對하면 누구라도 人間이 이 宇宙에서 特權的 地位를 누리는 唯一한 存在라는 幻想이 헛됨을 깨닫게 된다”고 썼다. 宇宙에서 보면 人類 歷史를 風靡한 數十 가지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點조차 되지 않는다.

    “가끔 그런 弄談을 해요. 여기서는 이런 게 差異라고 생각하지만 天體物理學에서는 몇 億 光年 程度 떨어져야 差異라고. 敎條主義로 沒頭해서 보는 것보다는 좀 떨어져서 넓은 視角으로 새로운 可能性을 찾는 데 설레는 것 같아요. 慣性的인 것은 잘 못 參考요.”



    職業 勞動運動家의 길을 擇하지 않은 것도 慣性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요.

    “네. 2006年 國會에서 인턴 生活을 始作했을 때 宏壯한 흥미로움을 느꼈어요. 여기서 宏壯히 많은 變化가 일어나는구나. 앞으로도 政治 쪽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죠. 내가 直接 政治人이 된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參謀나 政治業界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出馬한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靑年유니온을 만들면서 直接 政治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勞動階級 家庭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仁川에서 自動車 琉璃를 만들었다. 조성주가 7年 前 쓴 ‘正義黨 代表 出馬宣言文’의 두 番째 文章을 빌리자면 “아침 7時부터 밤 11時까지, 每日 反復되는 夜勤에도 月給은 단돈 20萬원”이던 勞動者였다. 單칸房에 살았고 賃金 引上이 된 뒤에야 13坪 아파트로 移徙 갔다. 아들은 秀才였다. 조성주가 다니다 萬 學校는 延世大다.

    연세대까지 갔는데 學生運動을 했으니 父母님이 失望하지 않았나요.

    “反對했죠. 싫어했고 저러다 관두겠지 하셨죠. 進步政黨 活動 始作할 때도 反對했어요. 勿論 決死反對하고 이런 타입(type)은 아니었어요. 제가 於此彼 말을 듣지도 않을 거라고 알고 계셔서 그랬는지.”

    只今은 諦念하신 건가요.

    “그런 지 꽤 됐죠. 어쨌든 제가 서른 以後에 靑年유니온 活動도 하고, 國會 保佐陣으로도 繼續 일하고, 서울市(勞動協力館)에서도 일하고 난 뒤에는 認定하시는 것 같아요. ‘쟤는 무언가에 휩쓸려 다니지 않고 自己 길을 가고 있다’고요.”

    조성주가 37歲에 正義黨 代表에 挑戰한 건 事件이었다. 그는 2015年 7月 全黨大會 當時 1次 投票에서 17.1%를 얻어 盧會燦(43%), 沈想奵(31.2%) 候補에 이어 3位를 記錄했다. 高地를 占領하지는 못했으나 ‘黨의 次世代’라는 象徵 資本을 거머쥐었다.

    그런 그가 이番에 麻浦區廳長에 出馬한다고 했을 때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立體的인 反骨이라면 麻布는 立體的인 自治區다. ‘麻龍城(麻布·용산·城東)’으로 불리듯 高速 成長하는 곳이지만 어딘가 江南 3區와는 결이 다른 곳. 서울 어느 自治區보다 다양한 正體性이 共存하는 地域. 文化(홍대)와 尖端(디지털미디어시티)李 交叉하는 場所.

    그는 이番 選擧에서 正義黨이 唯一하게 낸 서울 地域 基礎團體長 候補였다. 그는 7760票를 얻었다. 當選된 박강수 國民의힘 候補와 落選한 유동균 더불어민주당 候補 間 票差는 3397票였다. 兩黨 候補 間 票差보다 두 倍 많은 票를 얻었으니 宣傳이라고 할 수도 있다. 勿論 진 건 진거다.

    ‘鄭淸來 王國’과 싸웠지만…

    麻浦區廳長 選擧 結果를 어떻게 自評합니까.

    “期待보다 낮은 得票率인데, 黨 全體가 低調한 得票率을 記錄해서 區廳長 候補 力量으로는 克服하기 어려웠어요. 正義黨에 宏壯히 어려운 選擧였어요. 正義黨이 ‘檢搜完剝’ 法案을 민주당과 같이 通過시켰잖아요. 麻浦區廳長 選擧運動하는 渦中에 檢搜完剝 法案이 通過되고 나니 雰圍氣가 확 바뀌더라고요.”

    地域 民心이 달라지던가요.

    “예. 出勤 人事 때부터 有權者 사이의 雰圍氣가 확 바뀌었다는 게 느껴졌어요. 캠페인 核心은 민주당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건 正義黨 地域區 候補들이 湖南이 아니고서는 잘 採擇하지 않는 戰略이거든요. 그래서 ‘鄭淸來 王國을 解體하겠다’고 했는데, 事實 제가 좋아하는 式의 政治的 表現은 아니에요. 그래도 어쨌든 민주당 權力을 審判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奏效했던 것 같아요. 4.48%를 얻었는데 兩黨 候補 間 票差보다는 높은 得票잖아요.”

    ‘鄭淸來 王國 解體’는 속된 말로 먹힌 슬로건 같은데요.

    “저는 그렇게 봐요.”

    選擧運動을 해보니 實際로 ‘鄭淸來 王國’의 壁이 좀 느껴지던가요.

    “이番에 麻布乙 地域區 쪽에 나온 區議員·市議員 候補들은 鄭淸來 議員하고 찍은 寫眞을 플래카드에 넣었어요. 冷靜하게 얘기하면 地方選擧 캠페인을 한 게 아니라 ‘鄭淸來 議員 5線 캠페인’을 한 셈이죠. (鄭 議員은) 宏壯히 센 목소리를 代表하는 분이잖아요. 그 點을 攻掠한 게 맞았다고 봐요.”

    鄭 議員으로 대표되는 民主黨과 角을 세운 效果다?

    “그래야 正義黨이 獨自的인 基盤을 마련할 수 있죠. 그게 없으면 우리를 왜 찍어줘야 하는지 有權者를 說得하기가 어렵잖아요.”

    麻布는 오랫동안 民主黨 텃밭으로 꼽혔는데 이番에 國民의힘 候補가 區廳長에 當選됐잖습니까. 投票率이 낮아서인가요.

    “다른 데는 現役 區廳長들이 投票率이 낮은데도 不拘하고 이겼잖아요. 성동구에서는 민주당 現役 區廳長이 크게 이겼고요. 麻布에서 오랫동안 民主黨이 獨食해 오는 過程에서 革新이 없었고, 特히 慣性에 젖어 있는 게 累積된 結果로 보여요. 市民들이 正義黨에도 4.48%를 줬는데, 麻布에서 민주당에 對한 審判이 作動했다고 볼 수 있죠.”

    麻浦 地域 政治人 面面을 보면 鄭淸來·姜容碩·孫惠園 等 ‘입김’ 센 스피커들이 많죠.

    “포퓰리즘 政治의 代表的인 곳이죠.(웃음) 麻布는 젊고 多樣性도 있는 都市예요. 中産層도 많고 繼續 發展하는 곳이고요. 정작 여기서 排出된 政治人들은 剛한 言語를 통해 極端的인 强性 支持者들한테 어필하는 政治를 해왔습니다. 初期에는 그것이 젊은 層에 먹혔을지 몰라도 이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繼續 麻布를 據點 삼아 地域 活動을 할 생각입니까.

    “麻布에 出馬한다고 했을 때부터 決心한 거예요. 2年 後 總選에 當然히 出馬할 거고요. 區廳長 選擧에서 選擧對策本部長을 한 張惠英 議員도 麻布에 出馬할 겁니다.”

    두 사람이 麻布甲, 麻布乙로 나눠서 出馬합니까.

    “누가 甲, 누가 乙에 出馬할지는 모르나 그런 計劃을 세우고 애初에 이番 選擧를 치른 겁니다. 麻布에서 民主黨 權力에 對해 明確하게 戰線을 그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때 민주당 2中隊 效果 누렸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오른쪽에서 네 번째)를 비롯해 정의당 대표단이 6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을 마친 뒤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뉴스1]

    여영국 正義黨 代表(오른쪽에서 네 番째)를 비롯해 正義黨 代表團이 6月 2日 서울 汝矣島 國會에서 열린 中央選擧對策委員會 解團式을 마친 뒤 地方選擧 敗北의 責任을 지고 總辭退했다. [뉴스1]

    正義黨은 이番 地方選擧에서 초라한 成績表를 받았다. 正義黨이 낸 廣域·基礎議員 當選者는 8名에 그쳤다. 4年 前에는 37名의 當選者가 나왔다. 代身 院外 政黨人 進步黨은 蔚山 東區廳長 選擧에서 金宗壎 候補가 이겼고, 廣域·基礎議會 選擧에서도 20名이 當選됐다. 여영국 代表를 비롯한 正義黨 指導部는 地方選擧 敗北의 責任을 지고 總辭退했다.

    正義黨이 院外 進步黨에도 뒤졌습니다.

    “宏壯한 危機죠. 地方選擧 때문에 생긴 危機는 아니에요. 大選 以前부터 累積돼 있다가 이番에 確認된 거죠. 政治 路線, 組織 路線, 政黨의 社會的 基盤 等 세 가지 面에서 다 危機예요.”

    正義黨 指導部가 總辭退했으니 黨에서도 深刻한 危機意識을 느낀다는 傍證인데요.

    “두 가지 點을 꼭 말하고 싶어요. 하나는 政治 路線인데요. 正義黨이 最近 5年間 ‘민주당 2中隊論’을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正義黨이 地方選擧에서 最高 成跡을 얻은 게 촛불集會 直後인 2018年 地方選擧예요. 文在寅 政府 人氣가 높을 때 민주당 옆에 서서 민주당 2中隊로 最高 效果를 누렸어요. 그건 正義黨 實力이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에 醉해 온 거죠.”

    造成주는 率直했다. 껄끄러운 質問도 대충 넘기지 않았다. 깨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果敢하게 挑發했다. 누구를? 自己便을. 正義黨 黨員들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민주당 2中隊’다. 바로 그 黨의 次世代로 꼽히는 人物이 “民主黨 2中隊 效果를 누렸다”고 診斷했으니 破格이라고 할 만하다.

    “正義黨이 민주당과 檢搜完剝 法案을 통과시키면 地域 選擧 못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黨內 絶對 多數의 리더級 人士들이 地方選擧 勝利를 위해 檢搜完剝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主張하는 거예요. 納得할 수 없었죠. 민주당 2中隊에 對한 評價는 이番 地方選擧로 내려진 겁니다. 또 하나는 組織 路線 얘기인데요. 저는 有權者들이 進步黨을 代案 政黨으로 여기고 찍어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黨內 一角에서 進步黨과 統合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둘은 같은 進步 系列의 正當일 수는 있어도 種類가 다른 政黨이죠.”

    正義黨 내 過去 NL(民族解放 系列) 出身들이 仁川聯合이라는 하나의 系派로 存在하는 게 現實이잖습니까. 그분들이 進步黨에 前向的 立場을 가질 수도 있겠네요.

    “그분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舊 NL’이라는 이념적 親和性보다는 오히려 다른 點을 重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뭐죠.

    “進步黨의 多數가 只今 民主勞總에 强力한 力量을 行使하고 있어요. 민주노총이 오랫동안 正義黨과 進步黨 사이에서 決定을 못 한 채 하나의 進步政黨에 힘을 몰아주지 못하고 있잖아요. 正義黨이 가뜩이나 地域 基盤이 弱한데, 組織 勞動이라는 베이스마저 없으면 앞으로 잘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憂慮가 큰 것 같아요. 저는 생각이 달라요. 民主勞總 組合員 사이에는 李在明 議員이나 民主黨 支持者가 壓倒的으로 많아요. 正義黨과 進步黨이 억지로 합쳐 民主勞總 組合員들한테 ‘우리 支持해 주십시오’라고 해도 안 통할 겁니다. 民主勞總 組合員들에게 進步政黨 分裂은 關心事가 아니에요. 왜 民主黨으로 (選擧에) 안 나오느냐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正義黨이 민주당과 뭐가 다른지 明瞭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正義黨이 민주당 議題에 끌려다니기만 한 것 아닙니까? 正義黨만의 議題가 없으니 有權者들은 繼續 심상정 議員만 보게 되는 것일 테고요.

    “맞아요.”

    民主黨과 角을 設定하기 위해 一旦 黨內 鬪爭부터 해야 한다는 主張처럼 읽힙니다.

    “네. 黨內에서 말로는 모두 ‘우리는 민주당과 다른 政黨’이라고 얘기하지만, 檢察改革이 進步의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同意할 수 없어요. 노회찬 前 代表가 얘기했던 檢察改革과 只今 민주당이 내세운 檢察改革은 完全히 달라요. 盧 前 代表가 뭐라고 했습니까? (冊床을 탕탕 치며) 法이 萬人이 아니라 萬 名 앞에서만 平等하다고 했잖아요. 只今 檢搜完剝이 萬人을 위한 法과 무슨 關係가 있죠? 그러니까 進步의 政策과 어젠다度 이제는 낡은 거예요.”

    “심상정 議員이 피날레를 내려줬다”

    매끄럽고 明快하며, 論爭的이다. 무엇보다도 찰지다. 이렇게 進步를 叱咤하는 正義黨 人事가 있었나. 이즈음 깨달았다. 이 사람은 타고난 政治人이다. 酒類(主流)의 文法을 踏襲하지 않고 自己만의 戰線을 긋는 데 能한 그런 政治人.

    “나쁜 檢察이 있죠. 그러나 檢事들 99%는 職場人이에요. 오히려 그게 더 問題일 수도 있거든요? 公益的 價値를 喪失해 가고 그냥 職場人이 돼버린 檢事…. 그 사람들이 民生 事件을 어떻게 處理했는지, 賃金 滯拂 問題를 어떻게 處理했느냐 等이 市民한테 더 重要한 檢察 問題 아닙니까? 曺國 事態 때도 特히 敎育 問題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거예요. ‘아니 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라는 얘기가 進步 內에서 나오기 始作하면서 스스로 組織 基盤을 무너뜨린 거죠. 進步가 어젠다를 革新하지 못한 채 어느새 민주당과 差別性이 없어진 겁니다.”

    이 사람에게 正義黨의 뼈아픈 대목을 繼續 묻고 싶어진다. 이 사람도 속에 담아둔 말이 무척이나 많아 보인다.

    過去 韓國 進步政黨의 주된 支持層은 中産層 화이트칼라였습니다. 이들이 漸漸 민주당과 密着해 가면서 正義黨이 固定 支持層을 잃은 것 아닙니까.

    “맞아요. 거기에는 世代 效果도 있어요. 40~50代 화이트칼라가 過去에 민주노동당 等 進步政黨을 오랫동안 支持해 왔죠. 그런데 이들한테 進步 政黨이 (民主黨과) 다른 政黨으로서 實力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거죠. 그럼 當然히 민주당을 選擇하게 되죠. 그런데 30代 以下는 달라요. 이들에게는 民主黨이 반드시 代案은 아니에요. 다만 이 사람들에게는 旣存의 進步 어젠다로 接近하기가 어렵습니다. ‘민주노총? 무슨 相關이야’ 이런 歲대잖아요. 젠더 問題에 훨씬 敏感하게 反應하고요. 정작 進步政黨이 이들을 全혀 攻掠하지 못했죠.”

    민주당에서는 어쨌든 朴志玹 前 非常對策委員長 같은 人物이 ‘586 勇退論’을 얘기합니다. 正義黨에서도 世代交替 主張이 十數年째 나오는데, 어떻게 世代交替를 해야 합니까.

    “오히려 危機일 때 비전을 놓고 競爭해야 해요. 저는 自然스럽게 새 리더십이 出演하면서 새로운 進步 政治를 만들어갈 거라고 봐요. 그러지 않으면 門 닫아야 되는 狀況이고요. 저는 人爲的 勇退論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자연스럽게 내 힘으로 (위世代를) 물러나게 하겠다는 表現이 맞겠네요.”

    그는 9月 열리는 全黨大會에서 黨代表 選擧에 出馬하겠다고 했다. 激烈한 路線 鬪爭이 벌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大選으로 1期 正義黨은 門을 닫은 거예요. 심상정 議員이 피날레를 내려준 겁니다. 2期는 다음 리더십들이 새로 열어가 보자는 거죠. 只今의 危機는 豫想했던 挫折이죠. 이제 여기서 出發하면 됩니다.”

    그間 韓國에서 進步政黨이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은 理由로 擧論된 要因은 分斷 및 冷戰體制였습니다. 정작 冷戰 以後 태어난 世代도 正義黨을 注目하지 않는 게 現實인데요.

    “韓國 社會가 分斷돼 있는 건 現實이니까 그런 要因도 一定 部分은 있겠죠. 그런데 그것이 進步政黨이 成長하지 못한 理由라는 主張에는 同意하기 어렵습니다. 全 世界 大部分의 資本主義 國家는 基本的으로 保守 쪽으로 若干 다 기울어진 運動場이에요. 資本主義 經濟라는 게 그렇게 作動할 수밖에 없다는 點을 저는 認定해요. 그럼에도 不拘하고 執權하는 進步 傾向 政黨들은 사민主義를 비롯해 다른 價値를 함께 發展시켰어요. 마치 韓國만 宏壯히 특수한 狀況에 處한 것처럼 얘기하는 건 一種의 自己辨明이자 알리바이죠.”

    進步의 禁忌

    조성주 전 후보는 지방선거 당시 마포구청장 선거운동에서 “민주당 권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했다. [조영철 기자]

    조성주 前 候補는 地方選擧 當時 麻浦區廳長 選擧運動에서 “民主黨 權力을 審判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奏效했던 것 같다”고 했다. [조영철 記者]

    586 旣得權을 解體해야 한다는 主張에 對해서는 어떤 立場인가요.

    “全大協 出身 586 政治人들이 最近 20年間 大韓民國 政治에서 革新的이거나 進步的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자리 維持, 權力 維持에 더 沒頭했죠. 暴力的 팬덤 政治에 더 沒頭한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市民들이 學生運動 出身 人士들을 宏壯히 이른 나이에 政治權으로 보내줬던 理由는 韓國 政治를 바꿔보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거죠. 더 큰 視角으로 보면, 産業과 勞動市場 變化 過程에서 大企業과 公共部門을 中心으로 하는 內部 勞動市場에서 特定 世代가 宏壯히 큰 惠澤을 받았어요. 그에 反해 다음 世代는 달라진 條件 탓에 힘들어졌는데, (586 政治人들이) 이와 같은 隔差 解消에 나서지 않는 거죠.”

    進步를 標榜한 文在寅 政府에서 오히려 不平等이 深化했다는 指摘이 많습니다.

    “同意해요.”

    正義黨이 文在寅 政府 時期에 不平等이 深化했다는 指摘을 제대로 했느냐는 疑懼心도 드는데요.

    “그러니까요. 民主黨이 잘못해 不平等이 深化한 게 아니냐는 얘기를 正義黨이 해줬어야 했는데 못 했죠. 黨內에서 同意하지 않는 분도 많을 텐데, 저는 文在寅 政府 最低賃金 政策이 失敗했다고 생각해요. 低賃金 勞動者 比率이 改善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첫해 16% 引上을 定해 놓고 이듬해 또 두 자릿數 올렸잖습니까. 最低賃金은 올해도 오르고 來年에도 올라야 하는 賃金이에요. 文在寅 政府가 그렇게 해버리면서 앞으로 못 올리게 됐어요. 첫 해 8% 引上하고 算入 範圍나 週休手當 問題부터 整理해 갔으면 國民的 反撥이 그렇게 크지 않았겠죠. 그런 苦悶 없이 16% 引上해 놓고 算入 範圍 整理하려 하니까 組織 勞動과 自營業者는 反撥하고 일자리 安定資金으로 3兆~4兆 원씩 넣게 됐잖습니까. 雇傭安全網에 3兆 원을 넣었으면 1年이 아니라 數年間 不安定 勞動者들의 生活을 책임질 수 있는데.”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革命에 關한 省察’에서 變革이 秩序 破壞와 混亂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에 暫定的 解決策과 漸進的 變化를 志向해야 한다고 했다. 조성주가 認定하건 안 하건, 그의 말을 듣다 보면 妙하게 버크의 保守主義가 떠오른다. 窮極的이라는 單語보다 暫定的이라는 單語가 조성주의 進步와 脈이 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본디 進步의 世界에서는 旗발로 내 便 네 便이 갈린다. 조성주는 그 ‘旗발 놀이’가 너무나도 싫다.

    “그게 只今 韓國 進步의 한 象徵이죠. 鮮明性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 거예요. 進步政黨일수록 이럴 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어야 했는데, 똑같이 얘기했잖아요. 正義黨은 ‘最低賃金 더 올렸어야지’라고 하는데,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이즈음 다른 사람의 이름을 言及하고 싶다. 朴用鎭. 前職 민주노동당 代辯人. 現在 公式 職銜은 民主黨 議員. 非公式으로는 ‘조금迫害’의 一圓. 朴用鎭은 禹晳熏(經濟學者), 金世淵(前 國會議員)과의 對談集 ‘리셋 大韓民國’에서 “非正規職을 全部 撤廢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그 누구도 더 以上 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敷衍했다.

    “政治人들이 國民들에게 但只 非正規職이라는 理由만으로 겪고 있는 不當하고 不合理한 差別을 없애주겠다, 그리고 差別하면 꼭 處罰하겠다고 約束해야만 옳습니다.”

    ‘非正規職의 正規職化’에 토를 다는 것은 進步의 禁忌(禁忌)다. 조성주의 생각을 알고 싶다. 朴用鎭의 發言을 그대로 傳達한 後 물었다. 이 대목에서 그의 答辯이 唯獨 길었는데 우리 社會가 귀담아들을 얘기라 생각해 可及的 要約을 最少化했다.

    非正規職 問題에 對한 朴用鎭 議員의 主張에 對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共感하는 바가 커요. 非正規職이라는 單語가 穩全한 學術 用語는 아니에요. 正規職이 아니어서 非正規職이죠. 그럼 正規職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 雇傭安定性의 意味는요? 이番 週에 일하고 다음 週에 쉬는 플랫폼 勞動者는 失業者인가요? 그러니까 너무 다양해진 거예요. 2000年代 初盤 만들어진 非正規職이라는 單語가 不安定 勞動 濫用 問題를 是正하는 效果는 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例를 들어) 플랫폼 勞動者를 모두 정규직화하는 게 答인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오히려 社會安全網을 촘촘히 짜고 그 나름대로 룰을 세팅해 줘야 합니다. 프리랜서 勞動에서도 지켜야 할 룰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3個月間 業務를 하기로 했는데, 클라이언트 事情으로 2個月 만에 終了했으면 남은 賃金 줘야 할 거 아니에요. 이런 룰을 세팅해 줘야 하는데, ‘正規職化’라는 主張이 그런 論議를 다 납작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서울市에서 (勞動協力官으로 일하며) 非正規職의 正規職化를 많이 다뤄봤어요. 正規職化는 會社의 職員이 되는 건데, 그럼 福祉나 賃金 隔差는 어떻게 할 거냐는 問題가 딸려 와요. (정규직화하는 職務의) 業務가 다 다르잖아요. 우리는 職務給 體系도 아니니 모두가 가장 위를 봐요. ‘나도 가장 많이 받는 저 사람처럼 받아야지’ 이렇게 돼버리니 모두가 위를 向해 疾走해요. 그러니 正規職化로 正規職이 된 뒤에 다음 正規職化에는 反對해요. 正規職 사이의 賃金 隔差가 정의롭고 公正한지에 對해 進步의 答이 없는 狀況에서 그냥 無酌定 正規職化를 때려 넣으니까 안에서 葛藤이 생기죠. 葛藤은 나 몰라라 하고 政治는 빠지는데, 正말 나쁜 거죠.”

    “그게 票는 아니에요”

    그러니 20代들은 ‘非正規職 正規職化’를 公正의 問題로 바라보게 됐고요.

    “그렇죠. 다만 저는 同意하지는 않아요. 그런 論議의 마지막은 ‘너 工夫 못했잖아’가 돼버리더라고요.(웃음)”

    起承轉 ‘能力主義’가 되죠.

    “어떻게 世上을 그것으로만 評價하겠어요. 適切치 않죠. 다만 勞動市場의 工程에 關해 얘기할 때 全 世界的 大原則은 同一 勞動 同一 임금입니다. 우리는 그것조차 안 되잖아요.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企業에 들어가느냐가 賃金을 決定하는 거 아닙니까. 이 狀況에서 進步가 말하는 ‘非正規職의 正規職化’는 該當 企業 正規職이 받는 賃金과 福祉만큼 (非正規職에) 해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公共部門 및 特定 大企業과 나머지 企業 사이의 賃金과 福祉의 隔差가 너무 큰 거죠. 中小企業 正規職보다 大企業 非正規職이 더 많이 받잖아요. 그럼 中小企業 正規職 處地에서 ‘正말 非正規職이 問題냐’ 물을 수 있죠.”

    同一 勞動을 해도 高賃金을 받는 職場은 大體로 勞組가 센 곳이죠.

    “그렇죠.”

    그러니 아이러니하게도 組織 勞動者가 上位 中産層이 된 셈 아닙니까.

    “맞습니다. 2019年 勞動硏究院 調査를 보면 國民의 65~70%가 勞動組合이 必要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75~80%가 只今의 勞動組合이 나를 위한 勞動組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市民들이 보는 韓國의 組織 勞動은 그들끼리만 좋고 그 效果는 다른 데로 發現되지 않는 것이죠.”

    ‘公共部門 强化’에 딴소리를 하는 것도 進步의 禁忌다. 民間에 맡기면 ‘市場의 失敗’가 일어날 것이라는 오랜 問題意識이 累積된 結果다.

    靑年들은 公共部門의 ‘公共性’보다 ‘處遇’에 傍點을 찍고 있는 게 現實입니다. 그렇다 보니 仁川國際空港公社 같은 좋은 職場에 들어가려는 싸움이 ‘戰爭’처럼 돼버렸고요. 이런 狀況에서 公共部門 强化는 少數에게만 좋은 일자리에 들어갈 機會를 주는 結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進步가 公共部門에 對해서도 自己만의 어젠다를 가져야 해요. 自己 內容을 바꿔야 합니다. 只今 公共部門은 좋은 職場이 돼 있죠. 果然 높은 賃金을 주면 公益性이 發現되는가…. 제 생각에는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에는 오히려 그 높은 賃金과 處遇가 公益性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作動하는 게 아닌가 싶고요. 다른 式의 大改革이 必要하다고 생각합니다.”

    公共部門 革新은 保守의 어젠다인데, 進步도 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進步政黨은 公共部門이 더 强化돼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革新하지 않으면 어떻게 强化를 主張하겠습니까. 社會에 寄與하는 程度가 더 커지려면 더 革新해야죠. 冷靜하게 말하면 公共部門이 神의 職場이어서는 公益性을 發揮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進步가 내세우는 公共部門 革新案에는 賃金 改編 問題도 담길 수 있습니까.

    “當然히 擧論해야 한다고 봐요. 저는 公共部門 職務及第는 바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職務及第는 業務 難易度와 性格, 要求되는 技術, 知識·經驗 等에 따라 賃金을 差等化하는 方式이다. 技術職, 事務職, 單純勞務職 等 職務에 따라 賃金 테이블을 따로 마련하다 보니 一部 職群에서는 賃金 下向 調整 可能性이 있다. 이에 그間 公共部門 勞組는 職務及第 導入을 두고 “保守體系 改惡 試圖”라고 反對해 왔다.

    職務及第를 主張하면 公共部門 組織 勞動이라는 正義黨의 주된 支持層을 잃게 되지 않을까요.

    “正말 그럴까요? 正義黨이 組織 勞動에서 票를 받았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勿論 (組織 勞動에 該當하는) 그 10%가 무슨 社會惡은 아니잖아요. 그런 건 아니지만 進步政黨 得票 戰略 或은 組織化 戰略의 核心을 80%에 맞춰야죠.”

    이른바 ‘組織 밖의 勞動’에….

    “네. 組織 안에 있는 勞動에 (得票 戰略을) 맞춰서는 저는 勝算이 없다고 생각하고 社會的으로 有用하지도 않다고 봐요. 政治 後援金 받을 때 어려운 點은 있겠죠.(웃음) 韓國 政治가 政治 後援金 받기 眞짜 힘든 構造거든요. 목돈으로 당길 수 있는 勞組나 協會가 아니면 有權者들이 個別 議員을 後援하는 文化가 자리 잡은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正義黨처럼 가난한 政黨이 힘겨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게 票는 아니에요.”


    側音地心을 잃다

    或是 保守 政治人 中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劉承旼이요. 오래前부터 劉承旼 前 議員(國民의힘)을 保守 政治人 中에 좋아합니다.”

    只今 좀 어려운 狀況에 處했는데….

    “個人的 팬心으로는 안타까워요. 또 다른 사람으로는 이番에 國民의힘 革新委員으로 들어간 천하람 辯護士도 좋아해요. 센 單語를 쓰지 않으면서도 合理的으로 保守의 이야기를 하고, 또 進步 쪽과도 疏通할 수 있는 분이더라고요. 湖南에서 繼續 出馬하는 勇氣도 있고.”

    過激한 單語를 쓰는 걸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進步主義者 以前에 民主主義者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共同體의 善을 위해 일하는 民主主義者라면 相對를 攻擊하는 센 單語와 極端的인 行爲는 하지 말아야죠. 勿論 그게 어렵죠. 사람들은 다 센 걸 좋아하니까.(웃음)”

    그를 만나러 가기 前부터 마지막 質問으로 무엇을 던질까 數없이 苦悶했다. 그러다 偶然히 심상정 議員이 2013年에 出刊한 著書 ‘失敗로부터 배운다는 것’의 한 句節을 接했다.

    “안톤 체호프의 作品에 나오는 사람들. 人間이 이렇게 懦弱하고 陋醜하고 複雜하구나. 그런 存在들을 보면서 慰勞를 느낍니다. 저는 그 마음의 正體가 人間에 對한 惻隱之心이라고 봅니다. (中略) ‘進步政黨과 民主黨의 差異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제 答은 이것입니다. ‘人間이 處한 삶의 條件에 對한 惻隱之心이 있느냐, 그리고 그것에 對해 共同의 責任感을 느끼느냐.’ 이것입니다.”

    이 句節을 紹介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只今도 이런 區分이 有效하냐고.

    “(暫時 뜸 들이다) 只今은 進步政黨이 그걸 다시 가져야 할 때 같은데요.(웃음) 오히려 正義黨이 그걸 너무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요…. 우리도 너무 工學的인 計算이나 合理主義에 빠져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드네요.”



    인터뷰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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