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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 마음대로 우기기 政權이 동아리 水準 나라 만들었다”|신동아

2022年 4 月號

“‘이니’ 마음대로 우기기 政權이 동아리 水準 나라 만들었다”

김대환 前 勞動部 長官·勞使政委員長

  • 金賢美 記者 khmzip@donga.com

    khmzip@donga.com

    入力 2022-03-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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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退化 與黨’과 ‘不妊 野黨’이 탄생시킨 尹錫悅 大統領

    • 0.73%p 車는 天佑神助? 大韓民國엔 九死一生

    • 尹, 大衆性 있고 콤플렉스 없는 것이 長點

    • 前任 政府 非理 끝까지 搜査, 法은 特定人 앞에 멈춰 서면 안 돼

    • 保守 價値는 獻身, 나라 위해 몸 던질 사람 안 보여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조영철 기자]

    김대환 前 勞動部 長官. [조영철 記者]

    “잘못되고 있다는 現實의 가르침에도 不拘하고 언제나 잘돼 간다고 우겨온 ‘이니言 우기제’가 이를 더욱 惡化시켰다. 인디언의 祈雨祭는 精誠이라도 있고 끝이라도 맞추지만 이니言의 우기제는 精誠은 고사하고 끝마저도 맞춰놓지 못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마냥 우김으로써 이 地境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政派的 次元에서 보면 自業自得(自業自得)이지만 國家的 次元에서는 엄청난 歪曲이다.”(김대환 外 12人 지음, ‘大韓民國 板이 바뀐다’)

    인디언 祈雨祭는 失敗하는 法이 없다. 비가 내릴 때까지 祈雨祭를 지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文在寅 支持者(이니言)들은 5年 내내 無條件 잘돼 간다며 우기기로 一貫했지만 끝내 단비는 내리지 않고 오히려 가뭄만 심해졌다. ‘非正規職 제로’를 외친 政府에서 非正規職 比率은 더 늘었고(2017년 32.9%→2021年 38.4%), 靑年 4名 中 1名이 事實上 失業 狀態에 있으며, 2021年 調査에 따르면 32%의 家口가 지난해보다 所得이 줄었다.

    抽象的 期待가 具體的 失望으로 바뀐 5年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所得主導成長이었다. 文在寅 政府가 호기롭게 國政 最優先 順位로 公表한 所得主導成長은 成長과 分配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줄 神妙한 處方처럼 보였다. 所得主導成長을 뒷받침하기 위해 ‘3年 內 最低賃金 1萬 원’을 내걸자 支持者들은 歡呼했다. 그러나 經濟學者의 눈에는 理論的으로나 現實的으로나 致命的 缺陷을 隱蔽한 政治的 슬로건에 不過했다. 專門家들이 “不實한 土臺에 기초한 文 政府의 經濟政策은 成長은커녕 分配마저도 놓치는 結果를 招來할 것”이라고 警告해도 文在寅 政府는 귀를 막았다. 統計에 責任을 돌리고 統計廳窓을 更迭했지만 主要 經濟指標가 下降 길로 접어드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노무현 政府에서 勞動部 長官을, 朴槿惠 政府에서 經濟社會發展勞使政委員會 委員長을 歷任한 김대환(73) 인하대 名譽敎授는 文在寅 政府 5年을 評價하며 “抽象的 期待가 具體的 失望으로 바뀐 5年”이라고 했다.

    “人氣迎合的 經濟政策으로 財政支出 原則이 毁損되고, 規制가 强化되면서 經濟成長 엔진이 식어가고, 나라와 家計 빚이 늘어가는 가운데 不平等이 深化되고 있다. 이제 그들만의 祝祭는 멈추어야 한다. 致命的 誘惑을 떨쳐버리고 活路를 摸索해야 한다. 무엇보다 成長 엔진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우리 社會經濟 全般의 革新이 必要하다. 要素投入 段階를 通過하여 革新의 段階에 進入했지만 如前히 머뭇거리고 있는 우리 經濟의 政策基調를 革新成長으로 完全히 轉換해야 한다.”



    貌色의 1次 結果物이 1月 末에 出刊된 ‘大韓民國 板이 바뀐다’이다. 김대환 敎授가 各 分野 專門家 12名을 이끌고 國家 革新 方向을 담은 冊의 出刊을 企劃한 것은 지난해 下半期. 各 黨의 大統領 候補가 決定되기 前이었지만 그들만의 祝祭를 멈추게 하려면 손 놓고 次期 大統領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어쩌면 與黨이든 野黨이든 政治權에 對한 期待値가 낮았던 點도 執筆을 서두르게 했다.

    金 敎授는 “退化(退化) 與黨과 不妊(不姙) 第1野黨이 내놓은 마초 大統領 候補들” “陣營論理와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이 地境으로 만들어놓은 傲慢한 바보들”이라며 旣成 政治權을 批判했다. 차라리 ‘한 番도 經驗해 보지 못한’ 世上에 對한 國民의 憤怒가 板을 바꾸는 熱情으로 昇華될 거라고 期待했다. 비록 得票率 0.73%포인트 差였지만 政權交替는 國民的 憤怒의 結果物이었다. 大統領選擧 이틀 뒤인 3月 11日 김대환 敎授를 만났다.

    所得主導成長, 2年 내내 拙速 警告해도 귀 막아

    得票率 0.73%포인트 差로 尹錫悅 候補가 當選된 것은 文在寅 政府를 審判하면서 次期 政府의 傲慢을 미리 牽制하는 絶妙한 國民의 選擇인가.

    “아쉽다. 政權審判論이라면 좀 더 確實한 結果가 나왔어야 했다. 文在寅 政府가 지난 5年 동안 民主主義의 常軌를 벗어나는 行爲를 얼마나 많이 했나. 더군다나 相對는 歷代 민주당이 내세운 候補 가운데 가장 瑕疵가 많은 人物이었다. 아무리 黨 次元에서 掩護하고 庇護해도 政權交替라는 큰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隔差가 너무 적어 끝까지 不安했다. 이로 인해 向後 우리 社會의 葛藤이 增幅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어떤 이는 이番 大選 結果를 天佑神助라고 하는데 나는 九死一生이라고 말한다.”

    與黨이 막판 追擊에 成功한 要因은 무엇이라고 보나.

    “政權이 자리와 돈을 가지고 세력화했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이番 大選에서 敗北하는 瞬間 자리와 돈이 날아가기 때문에 切迫할 수밖에 없다. 政權을 잡으면 權力 强化를 통해 惠澤을 입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一種의 牌거리가 形成된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敎授는 執權黨과 支持者들이 鞏固하게 結託하는 것을 ‘코퍼레이트 파시즘(Cooperate Fascism)’이라고 하더라. 파시즘인지 아닌지는 봐야겠지만, 이런 牌거리 政治에서는 一部 損害 보는 사람이 있어도 利得을 보는 사람들을 自己便으로 삼으면 되기 때문에 支持率이 흔들리지 않는다. 例를 들어 最低賃金을 急激하게 올리면 自營業者는 힘들게 되지만 그로 인해 賃金이 上昇하는 사람이 統計上 200萬 名이다. 이들이 繼續 政權을 支持하면서 兩極化는 深化된다. 그래서 韓國 社會의 民主主義는 民主主義라기보다 寡頭支配(oligarchy)에 가깝다. 政治化된 市民團體도 너무 많아서 걱정했다. 그럼에도 日常에서 사람들을 接해 보면 이番만큼은 바꿔야 한다는 熱望이 더 剛했다.”

    民心을 어떻게 聽取했나.

    “지난해부터 中道·保守 知識人들이 모여 ‘일자리連帶’와 ‘萬民討論會’를 열었다. 全國을 돌며 포럼을 열었는데 6月 光州에서 열린 湖南 萬民討論會에서 카페 社長 배훈천 氏가 所得主導成長, 最低賃金, 週 52時間制 等 經濟 政策을 辛辣하게 批判해 注目을 받기도 했다. 湖南 地域에서도 少數이긴 하지만 이番 大選에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결氣가 느껴졌다. 期待했던 20% 得票率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尹錫悅 當選者가 歷代 保守政黨 候補 最初로 12.75%라는 두 자릿數 得票率에 45萬 票假量 얻은 것은 대단한 成果라고 본다. 湖南에서 少數의 사람들이 强固한 地域 構圖를 깨기 위해 얼마나 努力하고 苦生했는지 알 수 있다.”

    陳腐한 進步, 보스注意에 빠진 保守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은 노사정위원장으로도 일했다. [조영철 기자]

    김대환 前 勞動部 長官은 勞使政委員長으로도 일했다. [조영철 記者]

    民主黨은 退化政黨, 國民의힘은 不妊政黨이라고 批判한 理由는 뭔가.

    “오래前부터 나는 우리나라 進步는 ‘진부’이고, 保守主義는 ‘보스(boss)’注意라고 말해 왔다. 進步의 基本 프레임이 19世紀 末 20世紀 初 西歐 産業社會의 獨占資本 段階에 머물러 있어 退化政黨이라고 한 것이다. 民族主義, 土着倭寇 같은 陳腐한 프레임을 가지고 進步라고 自處하는 것 自體가 웃기는 일이다. 反面 보스(boss)主義者들은 權力者에게 줄 대기 바쁘다. 脈絡은 다르지만 박근혜라는 보스를 끝까지 保護하지도 못한 義理 없는 보스主義者다. 大統領이 彈劾되자 黨名까지 바꿔버리지 않았나. 오죽하면 朴槿惠 大統領이 ‘政治를 처음 始作할 때부터 함께했던 이들이 모든 짐을 제게 지우는 것을 보면서 삶의 無常함을 느꼈다’고 했다.

    國民의힘 쪽 關係者를 만날 때마다 當身들은 밥을 지어 뜸 들여서 숟가락으로 입에 넣어줄 때까지 기다릴 사람들이라고 指摘했다. 어렵고 힘들 때 누군가 와서 解決해 주기만 바란다. 손에 물 묻히고 흙 묻히고, 쓰러질 程度로 獻身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내가 京畿道에 사는데 選擧運動 막바지까지 投票에 參與하라고, 支持해 달라고 끊임없이 督勵 電話를 한 쪽은 민주당이었다. 民主黨 地域區 議員들에게 李在明 支持 宣言 1萬 名씩 받아오라고 했다고 들었다. 그동안 國民의힘은 뭐했나. 督勵 電話도 사흘에 한 番 올까 말까였다. 安逸함이 體質化된 政黨이다. 電線이 形成되면 黨職者들이 最一線에 나서야 하는데 만날 ‘國民들만 믿는다’고 떠든다. 이番에도 尹錫悅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黨內에서 大統領 候補를 키워내지 못하는 政黨이 不妊政黨 아니고 뭔가.”

    참여연대 參與社會硏究所 所長, 김대중 政府 大統領諮問 政策企劃委員會 經濟勞動分課 委員長, 노무현 政府 大統領職引受委員會 經濟2分課委員會 幹事, 2004~2006年 勞動部 長官職을 歷任했다. 朴槿惠 大統領 時節 3年間 勞使政委員長을 맡은 것을 除外하면 進步 陣營과 因緣이 더 많다.

    “이제까지 나는 保守 쪽에 票를 준 적이 한 番도 없다. 朴槿惠 大統領이 勞使政委員長에 임명했을 때에도 나는 當身을 찍지 않았다고 率直히 밝혔다. 유럽 基準으로 보면 나는 中道進步다. 하지만 스스로 進步라고 말한 적이 없다. 進步, 保守라는 區分 自體가 不便하다. 나는 現實主義者日 뿐이다. 아무래도 進步 陣營과 親分이 많아서 文在寅 政府의 出帆도 愛情을 갖고 지켜봤지만 5年을 돌아보니 이 사람들이 나라를 동아리 水準으로 運營하더라. 所得主導成長에 對해서도 처음에는 致命的 誘惑이라고 批判하다가 나중에는 理論的으로도 現實的으로도 맞지 않는, 말도 안 되는 政策이라고 正面으로 反對했다. 個人的으로 親分 있는 靑瓦臺와 與圈 核心 人士들에게 意見을 傳達하면 2017年엔 ‘熱心히 하겠다’고 對答하더니 2018年엔 ‘섭섭하다’는 反應이 왔다. 2019年 무렵엔 아예 無視했다. 칼럼 쓰는 게 무슨 意味가 있겠나 싶어 中斷했다. 일자리連帶와 萬民討論會를 始作했다.”

    切迫함·집요함·행동력 다 不足한 國民의힘

    政權交替 成功 要因을 寄與度에 따라 點數를 준다면?

    “政權交替論 50點, 尹錫悅 人物論 40點, 國民의힘 組織力 10點이다. 이番 大選에선 政權交替라는 큰 흐름이 國民의 熱望이었고, 이 흐름을 뒤엎을 만한 要因을 찾기 어려웠다. 마침 그러한 熱望에 符合될 수 있는 尹錫悅이라는 ‘商品’이 登場했다. 무엇보다 多幸인 것은 時間이 갈수록 尹 候補가 ‘大衆性’까지 獲得했다는 點이다. 콤플렉스 없는 大統領, 새로운 類型의 指導者라는 期待感을 갖게 했다. 그래서 40點이다. 國民의힘에는 좋은 點數를 주기 어렵다. 初期 尹 候補를 對하는 國民의힘 議員들 態度가 아주 曖昧模糊했다. 競選 過程이나 選擧 캠페인에서 尹 候補가 100% 欣快하게 支援을 받지는 못했다고 본다. 나중에 當選 可能性이 보이니까 숟가락 얹으려 모여들었다. 다만 尹 候補가 끝까지 제3지대에 머물렀다면 當選이 可能했을까를 考慮해 10點을 준다. 비록 敗했지만 李在明 候補 쪽을 評價하면 政權再創出論 20點, 민주당 組織力 60點, 李在明 人物論 20點이 되지 않을까. 切迫함, 執拗함, 行動力에서 國힘이 민주당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10年 만에 引受委가 構成된다. 노무현 政府 引受위에 參與한 經驗으로 尹錫悅 政府의 引受委 組織과 運營에 對해 助言한다면?

    “노무현 當選者는 引受委에 政治人을 넣지 않았다. 名目上 임채정 委員長과 김진표 副委員長을 임명했지만 幹事는 나를 包含해 이정우, 金秉準, 권기홍 等 모두 學者들이었다. 盧 當選者의 政策 컬러를 反映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當時 政治的으로 민주당 동교동系와 距離를 두기 위한 方策이었다. 盧 大統領이 ‘동교동系 머슴을 하기는 싫다’고 말씀하신 것이 記憶에 남는다. 그러나 政策이라고 하는 것은 於此彼 政治的 過程을 통해 나타나니 政界와 學界의 適切한 調和와 按排가 必要하다. 白面書生들로만 채워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尹 當選者가 黨內 事情을 모르다 보니 ‘尹核關’이 자주 擧論되는데 이들 中에는 最小 두 名 程度만 包含시키면 된다. 안철수 委員長, 權寧世 副委員長 괜찮다. 引受委員들은 各 部處別로 漏落 없이 密度 있게 보고 받고 새 政府에서 繼續해야 할 事業 等을 가려낸다. 不足하면 別途 報告를 받는데 다만 이 事實이 흘러나가지 않게 操心해야 한다. ‘다시 報告하라’는 말 한 마디에도 政府와 言論은 敏感하게 反應한다. 그만큼 말操心해야 하고 모든 事案은 代辯人을 통해 公式 發表되도록 해야 한다. 벌써부터 尹錫悅 政府에서 最低賃金, 國民請願이 사라진다는 流言蜚語가 돌지 않나.

    引受위는 具體的인 政策을 發表하기보다 비전과 方向만 보여주면 된다. 새 政府 名稱이 ‘國民統合政府’라는 말이 나오는데 文民政府, 國民의 政府, 參與政府 같은 名稱을 쓸지 李明博 政府, 朴槿惠 政府, 文在寅 政府의 例를 따를지 引受위에서 最終 決定한 뒤 統一해서 써야 한다. 그리고 引受위에 參與한 學界 出身들은 되도록 새 政府에서 立脚하지 않는다는 原則을 定하는 게 좋다.”

    引受委員들 立脚 欲心부터 버려야

    引受委員들의 入閣이 왜 問題가 되나.

    “引受위가 政界 進出의 通路로 變質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當選者는 ‘國民人事 提案제’를 통해 國民이 直接 長官을 推薦하게 했다. 推薦書가 數千 通이 들어왔다. 學界 出身 引受委員들에게 우리는 全部 빠지자고 提案했고 모두 同意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오히려 몇몇은 自己 이름이 빠질까 봐 戰戰兢兢했던 것 같다. 새 政府 彫刻 때에는 政府 經驗도 있고 經綸도 있고 國民들로부터 信望받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나는 盧 當選者의 立脚 勸誘에 ‘政府 經驗이 없다’고 拒絶하고 學校로 돌아갔다. 記者들이 따라다니며 ‘果川으로 街시냐, 세종로로 街시냐’고 묻기에 ‘仁川(當時 在職하던 大學 住所地)으로 갑니다’라고 對答했다. 2003年 貨物連帶 罷業으로 全國 物流가 痲痹되는 일을 겪은 뒤 2004年 部分 改閣 때 勞動部 長官으로 들어갔다.”

    大統領의 人事 原則은 무엇이라고 보나.

    “引受위 마지막에 盧 當選人이 暫時 남으라고 하더니 人事 協議를 했다. 胸中에 둔 人物들에 對해 意見을 求했다. 大部分 내가 아는 사람들이어서 기탄없이 말씀드리되 마지막에는 ‘當選人께서 腹案이 있고 넓게 생각하고 여러모로 苦悶하셨을 테니 제 意見은 參考만 하십시오’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胸中의 人物을 다 起用했더라. 그 人事를 貶毁할 생각은 없지만 그中에 憂慮되는 人物도 있었고 實際로 나중에 問題가 됐다. 亦是 人士가 어려운 거구나 싶었다.”

    새로운 人事도 重要하지만 前 政府에서 해놓은 人事를 어떻게 整理하느냐도 큰 課題다. 尹錫悅 大統領 就任 前 公共機關의 所謂 ‘알박기 人事’가 指摘되고 있다.

    “政權 末 連任에 成功하면 몇 年은 保障되니 親政府 人士들 챙겨주기가 盛行하는 것 같다. 노무현 政府는 任期 保障을 約束했고, 李明博 政府는 高位公務員에게 一括 辭表를 내게 했고, 朴槿惠 政府는 하지 않았고, 文在寅 政府는 一括 辭表는 아니었지만 事實上 많이 쫓아냈다. 尹錫悅 政府는 裁量權을 달라 해서 서로 눈치 볼 것 없이 一括 辭表를 내도록 하는 게 맞다.”

    3月 10日 尹 當選者는 첫 記者會見에서 “大庄洞 疑惑에 對한 强力한 搜査가 必要하다는 立場에 變함이 없느냐”는 質問에 “大庄洞 얘기는 오늘은 좀 안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政治 報復이라는 말을 의식해서인가.

    “實定法에서 嫌疑가 捕捉됐다면 반드시 搜査해야 한다. 오히려 搜査 中인 事件에 政治的으로 介入해선 안 된다. 尹 當選者가 ‘그런 모든 問題는 시스템에 依해서 가야 할 問題 아니겠나’라고 對答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 오히려 選擧 캠페인 中에 李在明 쪽에서 ‘大庄洞 몸통은 尹錫悅’이라고 뻔뻔하게 우기는데도 왜 제대로 對應하지 못했는지 理解가 안 되더라. 大庄洞 疑惑 事件 말고도 蔚山市長 選擧 介入 等 權力 앞에서 멈춰진 事件들은 徹底하게 搜査해야 한다. 設令 文在寅 大統領이라도 搜査를 받아야 한다. 法은 가다가 쉬고, 가다가 잠자고, 누구 앞에서 멈춰 서서는 안 된다. 萬若 그렇게 된다면 大韓民國은 近代國家가 아니다.”

    尹 當選者가 强性勞組의 不法行爲에 對해 嚴正한 法 執行을 强調하면서 不必要하게 勞動界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指摘이 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指導者의 姿勢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니까 大統領이 되겠다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機會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분들에게 물었다. 國民에게 무엇을 해주겠다가 아니라 只今 나라가 이런 狀況인데 國民 여러분이 이렇게 協助해 달라고 말할 勇氣가 있는가. 그럴 自信이 없으면 하지 마시라.”

    듣기 싫어도 두 番 듣고, 萬機親覽 誘惑에서 벗어나야

    김대환 전 장관은 인수위원들에게 “입각 욕심부터 버리라”고 조언했다. [조영철 기자]

    김대환 前 長官은 引受委員들에게 “立脚 欲心부터 버리라”고 助言했다. [조영철 記者]

    民主黨의 敗因은 不動産과 일자리 政策의 失敗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失敗를 反復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文在寅 政府는 끝없이 남 탓을 했다. 코로나 탓, 날씨 탓, 統計 탓까지 했지만 結局 政策의 失敗다. 일자리 政策은 勞動市場 全體를 보는 眼目에서 세워야 한다. 非正規職 제로 만들면 勞動市場이 活力을 얻는다고? 아니지 않았나. 오히려 더 硬直됐다. 最低賃金 올리면 좋아진다고? 일자리만 없어졌다. 文在寅 政府는 눈앞에서 잘못되는 것을 보고도 아니라고 우기면서 狀況을 더 惡化시켰다. 政策에 對한 評價 自體가 陣營論理에 갇혔기 때문이다. 代表的인 것이 不動産政策이다. 政策의 失敗를 認定하는 瞬間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생각할 만큼 理論的 基盤이 脆弱했다. 잘못됐다는 現實을 認定하면 改善의 餘地가 있음에도 여기서 물러나면 政權이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實物을 알고 政策을 세워야 한다. 새 政府에서 供給 늘린다고 再開發은 再開發臺로 늘리고, 稅制 풀고, 追加 供給하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겠나.”

    리더가 傲慢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가.

    “眞言을 對하는 態度다. 大統領에게 한 番쯤 勇氣를 가지고 進言할 수는 있지만, 같은 얘기를 두 番 하기는 正말 힘들다. 내 經驗을 얘기하면 盧武鉉 大統領 때 行政首都 移轉과 關聯해 憲法不一致 判決이 난 後 現在 決定에 따르는 式으로 덮고 가자고 했으나 追後 再推進돼 또 反對했더니 脫權威主義의 象徵과도 같은 大統領께서 ‘長官님은 아직도 저를 가르치려고 드십니까’라고 했다. 다시는 그 問題는 얘기할 수 없었다. 尹錫悅 當選人은 어떨까. 같은 事案에 對해 두 番 進言했을 때 왜 그렇게 反對하는지 물어보고 對話할 사람이라고 본다. 意見을 주고받은 뒤에도 大統領의 뜻이 그러하면 尊重하면 된다. 側近이 進言하는 것 自體를 못마땅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두 番째는 萬機親覽(萬機親覽)의 誘惑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한番은 盧 大統領께 ‘자꾸 말씀이 길어지고 衒學的이 되십니다’라고 했다. 國務會議를 하면 大統領이 모든 發言을 메모했다가 한 張씩 찢어가며 一一이 코멘트를 했다. 任期 後半部로 갈수록 甚해진다. 모든 大統領의 共通 現象이다.”

    尹 當選人을 가까이에서 만날 機會가 있었나.

    “지난해 7月 6日 大田 유성구청 隣近 호프집에서 열린 ‘文在寅 政府의 脫原電 政策’ 萬民討論會에 尹 當選人이 參席하고 싶다는 連絡을 해 왔다. 大統領 出馬 宣言 後 첫 民生 行步여서 言論의 注目을 받았지만, 자칫 討論會 雰圍氣가 흐트러질 수 있어 難色을 표했더니 隨行員들이 事情을 했다. 代身 조용히 들어와 適當한 時點에 얘기할 機會를 주겠다고 하니 約束을 지켰다. 가까이서 遭遇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宏壯히 謙遜하고 原典에 對한 工夫가 많이 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따로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以後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가 찾아오면 주려고 緋緞 주머니 세 個가 아니라 A4 用紙 석 張은 써놓았다. 아직 傳達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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