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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幻想劇場] 光海君을 壓倒한 明나라 譯官의 實體|新東亞

2022年 1 月號

[幻想劇場] 光海君을 壓倒한 明나라 譯官의 實體

  • 윤채근 단국대 敎授

    入力 2022-01-1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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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채근 단국대 敎授가 우리 古典에 記錄된 敍事를 現代 感性으로 脚色한 짧은 이야기를 連載한다. 歷史와 小說, 過去와 현대가 어우러져 讀者의 想像力을 刺戟할 것이다.
    漢陽 敦義門 西北쪽 慕華館에 到着한 明나라 使臣團은 마치 도둑처럼 숨죽인 채 宿所에 旅裝을 풀었다. 그들은 朝鮮人 服裝을 하고 있었다. 朝鮮 王이 보낸 迎接事는 저물녘이 돼서야 겨우 나타나 明나라 譯官 駐隆起를 몰래 불러냈다.

    “週 對人! 우리 事情을 天使 어르신께 잘 말씀해 주시오. 알다시피 後金에서 보낸 使臣段이 太平館을 먼저 차지한 채 벌써 보름 넘게 버티고 있소이다. 太平館보다야 허름하지만 이곳도 머무실 만할 거요. 그렇다고 우리 大闕을 내드릴 순 없지 않소이까?”

    쓸쓸한 微笑를 머금은 隆起가 달빛이 들지 않는 建物 그늘 속으로 몸을 감추며 對答했다.

    “朝鮮 狀況은 잘 알겠습니다만, 이런 待接은 서운합니다. 비록 正式 使節團이 아닌 密使지만 그래도 우린 皇帝께서 보낸 勅使입니다.”

    “잘 알다마다요. 한데 後金人을 疏忽히 待接하지 말라는 金賞의 嚴命이 계셨소이다. 게다가 只今 오신 天使께선 密使 아니시오? 비밀스러운 任務를 띠고 오신 게 아니시오? 朝鮮 服裝에 바닷길로 오신 거 하며, 아무튼 兩國의 衝突을 막기 위해서요.”



    한참 너스레를 떨던 迎接事는 急히 가마를 불러 돌아가려 했다. 明나라 使臣을 하늘에서 온 使臣이란 뜻으로 天使라 부르며 極盡히 떠받들던 옛 態度와는 딴판이었다. 隆起가 急히 물었다.

    “景福宮에는 언제 갈 수 있습니까?”

    가마에 오르려다 말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 迎接事가 속삭였다.

    “景福宮은 壬辰年 戰爭 때 다 타버리고 나서 그대로 放置돼 있소이다. 金賞께선 昌德宮에 머물고 계시오. 世上이 참 많이 바뀌었지요?”

    고개를 끄덕인 隆起가 떠나려는 가마를 向해 急히 소리쳤다.

    “하나만 더 물어봅시다! 내 예전에 壬辰年 戰爭 때 水軍으로 參戰했다가 사귄 朝鮮人 벗이 하나 있는데, 安否가 궁금합니다.”

    멈춘 가마 위에 앉은 채 微妙한 表情이 된 迎接事가 물었다.

    “그분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

    “權韠입니다. 우리 名君 基地가 있던 漢江鎭에서 만나 자주 노닐었습니다.”

    迎接事는 물끄러미 隆起를 바라봤다. 한참을 相對를 觀察만 하던 그가 들릴 듯 말 듯 對答했다.

    “그는 죽었소.”

    불타 버린 慕華館의 唯一한 生存者

    불은 霎時間에 번져 明나라 使臣이 묵던 慕華館 客舍 全體를 태워버리고 아침에야 가까스로 꺼졌다. 밖으로 脫出하려던 使臣 一行은 누군가에 依해 門마다 設置된 자물쇠에 가로막혀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唯一한 生存者는 駐隆起였다.

    隆起는 漢江 周邊 地理를 손바닥 안처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잠을 설치던 그는 옛 親舊 權韠의 집이 있던 麻布나루 현석村을 向해 無酌定 말을 몰았다. 朝鮮 風景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지만 民心은 사나워져 있었다. 길을 묻는 그에게 어느 누구도 親切하지 않았다. 잿더미에 다시 지어진 民家는 戰亂 前보다 높이가 顯著히 낮아져 있었는데, 언제든 버리고 避難할 수 있어 쓸모없는 겉치레를 最大限 省略한 듯했다.

    權韠의 집은 主人이 바뀌어 있었다. 安氏 姓을 가진 새 主人은 多幸히 權韠의 죽음에 對해 昭詳히 말해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門을 열었다.

    “그 兩班 壬辰年 亂離 한참 뒤 江華島에 숨어 사셨습니다. 親舊시라니 大國 분께서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워낙 술 좋아하시고 注射도 甚하시지 않았겠습니까? 洞네 사람들이 다 머리를 절레절레했습죠. 그래도 漢陽 뜨르르한 兩班이 罪 親舊였으니 대단한 겁죠. 어느 날 江華島로 가셔서 오래도록 보이지 않았는데, 또 갑자기 돌아오셔서는 똑같이 술로 날을 보내시더라 이 말입니다.”

    “술 때문에 죽은 거요?”

    “아니오! 나라님께 밉보여 棍杖을 세게 맞으시고, 거 뭐야, 아무튼 멀리 귀양을 가다가 興仁門 밖 客店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좋아하던 술 한 동이를 單숨에 들이켜고 말이죠.”

    작은 酒案床을 차려 退마루에 내온 집主人은 심심하던 次에 잘됐다는 눈치였다. 濁酒 한盞을 걸친 隆起가 다시 물었다.

    “性品이 曠達했으니 벼슬을 抛棄하고 布衣(布衣)로 산 건 理解가 가오. 하지만 王에게 미움을 받을 일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소만.”

    한참을 손만 비비던 相對가 목소리를 낮춰 對答했다.

    “술김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勿論 전 그분 그런 點을 좋아했습니다만, 그 兩班 타고난 反骨 아니셨습니까? 아무나 맘에 안 들면 막 辱해 대고 말입니다. 나랏님 妻男과 戚이 지셔서 怨讐가 됐다지 뭡니까? 쇤네가 아는 건 뭐 그 程度까지입니다.”

    隆起는 먼동이 터올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말고삐를 잡았다. 다시 敦義門 쪽을 向하려는데 집主人이 마을 어귀까지 배웅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시 戰爭이 터지지는 않겠습죠? 싸움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大國 분께서 이런 賤한 데까지 다 와주시고, 이제 正말 太平聖代가 始作되려나 봅니다!”

    쫓기는 異邦人

    慕華館을 찾은 刑曹參判 柳希奮은 屍身이 한 區 빈다는 말에 激忿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잠자코 지켜보던 迎接事가 살며시 다가와 속삭였다.

    “떼놈 한 놈쯤 뭐가 問題겠습니까? 駐융기라는 그 譯官인데 밤에 官訴를 벗어났다고 합니다. 可及的 조용히 處理하시지요.”

    相對 가슴을 벌컥 밀어제친 喜분이 외쳤다.

    “내가 뭐가 무서워 조용히 處理해야 되지? 내가 누군데? 누군데, 잉? 그 子息이 權韠이 親舊라고 했다며? 朝鮮말을 잘하니 숨기도 잘할 거 아냐? 그놈을 빨리 잡아! 잡으라고, 잉?”

    한숨을 내쉬고 몇 걸음 물러선 迎接事를 向해 捕卒 하나가 다가왔다. 捕卒로부터 무언가 報告받은 迎接事가 唐慌한 表情으로 喜분에게 急히 말했다.

    “놈을 發見하긴 했는데, 놓쳐서 쫓고 있답니다. 이 近處까지 왔다가 西敎 쪽으로 逃走하고 있다고 합니다. 參判께서는 어서 主上께 이 事實을 高하셔야 될 듯합니다. 일이 커질 수도 있겠기에.”

    迎接事를 노려보던 喜분이 가래 낀 소리로 말했다.

    “나와 妹兄은 以心傳心으로 통해. 그거 알지, 잉? 이 일은 絶對 커지지 않아.”

    慕華館을 벗어난 喜分은 곧바로 昌德宮 人情錢을 찾았다. 光海君은 妻男인 유희분의 說明을 들으며 繼續 沈默했다. 여간해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王은 心氣가 몹시 不便해 보였다. 不安해진 喜분이 고개를 조아리며 덧붙였다.

    “正式 謝絶度 아닌 密使들이었습니다. 가뜩이나 後金 使臣들이 눈을 벌겋게 뜨고 우리 쪽을 廉探하고 있지 않습니까? 朝鮮도 이쯤에서 그들에게 信義를 보여줘야 된다 이겁니다. 게다가 火災가 났다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明나라에는 適當히 둘러대고 다음에 正式 使節이 오면 이番엔 그쪽도 極盡히 對해 주면 될 일이라 생각됩니다.”

    눈을 감고 있던 光海君이 느릿느릿 말했다.

    “妻男이 놓친 게 있어요.”

    고개를 들어 聳上을 멀뚱히 쳐다보는 喜分을 向해 王이 다시 천천히 속삭였다.

    “그들, 密使들 말입니다. 우리 朝鮮을 다시 세워준 恩惠, 그러니까 그들 말로 ‘再造之恩’을 갚으라는 要求를 하려 또 온 것이었나요?”

    “그렇지 않을까요?”

    “제대로 모르겠다? 그건 제대로 알고 일處理를 해도 했어야지.”

    喜분이 이番엔 목청을 돋워 말했다.

    “그거야 불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軍資金과 援兵을 보내달라거나, 아니면 喉衿과의 關係를 끊으라는 것이었겠지요! 그게 어디 可當키나 합니까? 只今 後金의 氣勢로는 名을 치고도 남을 程度 아닙니까?”

    고개를 숙이고 오래도록 말이 없던 왕이 차분하게 말했다.

    “只今 쫓고 있다는 明나라 譯官 말인데, 반드시 살려 내 앞으로 데려오세요.”

    “當場 죽여 입을 틀어막아야 합니다. 그깟 譯官이 무슨 所用 있겠습니까?”

    갑자기 벌떡 일어선 왕이 주먹을 움켜쥐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後金이 아무리 무서워도 名은 如前히 大國이에요. 난 熟議를 거치지 않은 일은 決코 하지 않아요. 빨리 잡아 後患을 없애되, 朝鮮에 온 理由는 알아야겠어요. 살려서 데려오도록 하세요.”

    漢江鎭의 再會

    西郊 山中턱에 孤立돼 左捕廳 捕卒들에게 生捕되기 直前에 놓인 隆起는 말을 버리고 뛰기 始作했다. 혈기왕성하던 젊은 時節, 漢陽 구석구석을 누벼본 그는 西郊에서 마포나루에 이르는 샛길을 잘 알고 있었다. 艱辛히 包圍網을 뚫고 내달리는 그의 귓전으로 空氣를 가르며 날아드는 화살 소리가 들렸다. 出動한 朝鮮 弓手들은 틀림없이 그를 죽일 心算이었다.

    그저 살려는 本能에 따라 現석촌 權韠의 옛집을 向해 달리던 그는 어느 瞬間 追擊病 소리가 사라졌음을 깨닫고 걸음을 멈췄다. 그의 등 뒤로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몸을 낮춘 隆起는 이番엔 自身의 前方을 疑心에 차서 노려보았다. 亦是 寂寞만 감돌고 있었다.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現석촌 어귀로 돌아온 그는 絶望에 빠져 골목길 구석에 몸을 숨겼다. 當場 살자고 그곳에 이르렀지만 朝鮮 어디에도 安全한 곳은 없었다. 문득 人기척이 느껴져 火急히 몸을 돌리자 지난밤을 함께 새운 집主人 安氏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둘은 말을 잊고 한참을 마주 보고만 있었다. 安氏가 먼저 말했다.

    “天運이군요. 살아 계시다니! 절 따라 오십시오.”

    安氏는 江邊을 따라 빠른 速度로 걷고 또 걸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隆起는 그저 默默히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익숙한 風景이 나타났다. 朝鮮에 派兵돼 가장 오랜 期間 駐屯했던 漢江鎭이었다. 安氏는 隆起를 漢江鎭 酒店 한 곳에 引繼하곤 말했다.

    “여기 계시면 도와주실 분이 찾아올 겁니다. 제겐 아무것도 묻지 마십시오. 只今부턴 본 것도 들은 것도 없는 몸입니다.”

    安氏가 사라지고 다시 홀로 남은 隆起는 불타버린 慕華館에 잠들어 있던 使臣段이 念慮돼 견딜 수가 없었다. 朝鮮 王이 後金과 名을 對等하게 다루며 줄타기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只今 事態는 到底히 理解할 수 없었다. 暫時 後 酒店 入口가 살짝 열리며 朝鮮人 한 名이 操心스레 들어섰다. 隆起가 自身도 모르게 속삭였다.

    “그대는 이안눌, 이 承旨 아닌가?”

    다가온 相對는 가볍게 隆起를 껴안고 맞은便에 앉아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일세. 살아 있으니 이리 만나는군.”

    반가운 마음을 뒤로한 채 隆起가 多急히 물었다.

    “都大體 어젯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긴 한숨을 내쉰 안눌이 팔짱을 끼며 속삭였다.

    “자네를 이리 데려온 안막둥이란 者는 우리 집 外擧奴婢일세. 그 者 德分에 자네 到着 消息을 正午 무렵 알았지. 한데 闕內各司에 있는 親舊들로부터 異常한 消息이 들려오는 거였어. 慕華館에 火災가 나고 西敎 쪽에선 追擊 騷動이 벌어졌다고 말이야.”

    “追擊은 어느 瞬間부터 中斷됐네.”

    “中斷된 게 아니야. 잘 들어보게. 慕華館 火災는 朝鮮 王이 시킨 게 아닐세. 王의 妻男인 유희분이란 탐욕스러운 自家 後金으로부터 큰 賂物을 받고 저지른 일이야. 後金은 朝鮮과 名을 離間질하기 위해 끝없이 努力해 왔거든. 그런데 이걸 눈치챈 王이 直接 大闕 禁軍을 動員해 자네를 生捕하도록 命을 내렸어. 捕盜廳 軍卒들이 그래서 撤收한 거네.”

    “그럼 곧 禁軍이 나를 찾아내겠군?”

    고개를 끄덕인 안눌이 焦燥한 音聲으로 對答했다.

    “그렇다네. 이番 密使가 派遣된 理由를 알아낼 때까진 자넬 살려둘 걸세. 하지만 王이 自己 妻男을 죽일 순 없을 테니, 그다음엔 이番 事件 證據를 말끔히 없애려들겠지.”

    “禁軍들이 이곳으로 오나?”

    슬픈 表情으로 다시 고개를 끄덕인 안눌이 천천히 對答했다.

    “난 失勢한 사람이야. 只今 大闕의 要職이란 要職은 모조리 北人이 차지하고 있네. 자넬 지킬 힘이 내겐 없어. 代身 或是나 하여 안막둥을 麻浦路 보내 자넬 한番 찾아보라 했지. 德分에 天運으로 이렇게 둘이 한盞 나눌 時間만은 벌었네.”

    “禁軍은 언제 오나?”

    “안막둥이가 只今쯤 大闕에 發告를 했을 걸세. 하지만 내가 잘 아는 武官에게 하라 해뒀네. 可及的 천천히 와도 좋다고 하라 했어. 우리의 옛 友情을 곱씹을 만큼 천천히 오라고.”

    우리 기쁜 젊은 날

    [GettyImage]

    [GettyImage]

    두 次例 倭軍의 侵略이 無爲로 끝나고 朝鮮엔 다시 平和가 찾아왔다. 南山자락 墨跡洞에 살던 李安訥은 麻布나루의 가난뱅이 權韠과 戰亂 以前부터 竹馬故友였다. 둘은 漢江鎭 酒店을 巡禮하며 날을 이어 通音하곤 했다. 浙江省 出身 明나라 水軍 將校를 만난 건 그 時節이었다.

    自身을 駐隆起라 紹介한 將校는 처음엔 筆談으로 두 사람과 交際를 始作했지만 漸漸 朝鮮語 工夫에 빠져들었다. 明敏했던 隆起는 마침내 朝鮮語를 完璧히 驅使할 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셋은 國籍을 超越해 忘年之友(忘年之友)를 맺고 漢陽 都城을 몇 年 동안 휘젓고 다녔다.

    朝鮮 支配者들은 그토록 險한 戰亂을 겪고 나서도 黨爭을 멈추지 않았다. 西人이던 權韠은 官僚의 삶을 깨끗이 抛棄한 채 黨色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名門家 子弟인 안눌은 그럴 수 없어 벼슬살이를 始作했는데, 그런 그를 權韠은 承旨라고 놀려댔다. 平生 賃金 옆에서 맑은 눈과 밝은 歸路 살라는 뜻이었다.

    안눌이 外職으로 漢陽을 비워도 權韠과 隆起의 郵政은 繼續됐다. 그러다 끝내 名君의 最終 回軍이 決定됐고, 隆起는 自發的으로 朝鮮에 落伍하기로 決心했다. 朝鮮에 殘留한 名君은 大槪 派兵 中에 사귄 朝鮮 女人과 함께하기 위해 그런 選擇을 하곤 했다. 隆起島 例外는 아니었다. 絶江에 本妻가 있었음에도 朝鮮에서 만난 因緣을 버릴 수 없던 그는 煩悶으로 나날이 시들어갔다.

    隆起의 煩悶은 다른 悲劇으로 인해 끝을 맺었다. 그의 朝鮮 정인이 꽃다운 나이에 病死한 것이다. 한 줌 바람처럼 마른 隆起는 마음을 朝鮮半島에 남겨둔 채 어느 봄날 故鄕으로 돌아갔다. 隆起의 歸鄕을 보지 못한 안눌은 權韠이 쓴 小說 한 卷을 받아 보고서야 그 內幕을 알았다. 한 名君 將校가 朝鮮에 派兵되기 前 두 名의 故鄕 女性과 벌인 癡情을 다룬 ‘周生傳(周生傳)’이었다.

    小說을 다 읽은 隆起가 두 눈이 充血된 채 안눌에게 물었다.

    “이게 權韠이 내게 남긴 게 맞나?”

    고개를 끄덕인 안눌이 微笑를 띠며 對答했다.

    “맞네. 자네 얘기라고 했어. 그 親舊 워낙 諧謔이 넘치지 않았나?”

    “난 이 朱氏가 아닐세. 붉을 週(朱) 者의 그 朱氏네.”

    “音은 같지 않나? 小說에 나오는 明나라 女人들 이름도 꼭 明나라式 이름은 아니잖은가? 그게 小說의 妙味 아닐까? 어쨌든 언젠가 자넨 돌아올 거고 그때 꼭 傳해 달라는 付託을 받았었네.”

    “내 반드시 돌아온다 말하긴 했지. 그렇다고 이런 野史를 지어 날 놀려먹다니.”

    “여러 番 읽어봤네만, 그야말로 風流家火 아닌가? 두 女人의 사랑을 同時에 얻어내다니.”

    말없이 冊을 어루만지던 隆起가 울먹이며 다시 물었다.

    “都大體 어쩌다 그 한창 나이에 죽었나? 王의 妻男 때문이었나?”

    “안막둥이가 말해 줬나? 맞네. 權韠 그 親舊, 유희분과 여기 漢江鎭 酒店에서 偶然히 만났다지 뭔가. 金賞의 妻男으로 悖惡질이 좀 甚했어야지. 是非가 붙자 激忿한 權韠이 柳希奮을 두들겨 팼다고 하네. 그 뒤로 유희분이 復讐할 機會만 노리고 있었던 거지. 諷刺詩 한 수가 빌미가 돼 棍杖과 流配刑을 받았지.”

    두 사람은 深夜의 어둠을 按酒 삼아 盞을 나누었다. 어느새 微明이 다가오자 禁軍 발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隆起는 야릇한 웃음을 머금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李 承旨. 내가 다녀올 동안 기다려주겠나?”

    어리둥절한 表情의 안눌이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내 자넬 살릴 힘이 없다고 이미 말했지 않은가?”

    帝國의 마지막 불씨

    獨對는 해가 中天에 떠오를 무렵 인정전에서 이뤄졌다. 光海君은 신중하지만 斷乎하게 물었다.

    “對答만 明確하다면 살려줄 거야. 朝鮮이 나라가 좁지 度量이 좁은 건 아니니까.”

    고개를 끄덕인 隆起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 朝鮮 王을 쳐다보았다. 두 눈은 부리부리해 野心이 많아 보였고, 입은 좁고 아래로 휘어져 인색하다는 印象을 줬다. 누구도 믿지 못해 외로울 像이었다. 王이 물었다.

    “비록 譯官에 不過하지만 한때는 朝鮮에 派遣된 水軍 將校였고, 또 네 姓氏는 明나라 皇帝와 똑같구나, 그렇치? 너희 使臣의 任務가 무엇이었느냐?”

    隆起가 천천히 對答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아뢰겠사오니, 訴請 하나를 들어주십시오.”

    王의 눈썹이 꿈틀대더니 이내 망설임 없는 斷乎한 應答이 돌아왔다.

    “내 妻男 유희분이 얘기냐? 오호라! 네가 죽은 權韠의 親舊였다고 들었다. 그 復讐心이 대단하겠구나, 그렇치? 한데 어쩌겠냐? 권필이는 내가 죽인 게 아니었어. 第 花甁에 스스로 술 마시고 卽死했지. 그게 아니라면, 뭐 내 妻男이 慕華館에 불이라도 질렀다고 疑心하는 거냐?”

    隆起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權韠의 일은 제가 歸國한 以後의 일이니 論할 問題가 아닙니다. 다만 그게 누구든 慕華館에 불을 지른 者를 밝혀내 處罰해 주십시오.”

    오래도록 隆起를 노려보던 왕이 쌔근대는 아기 숨을 몰아쉬더니 속삭였다.

    “네 態度가 아주 不遜하다. 그리 어리석어 보이진 않는데도 말이지. 普通 믿는 구석이 있을 때나 그렇게 굴지. 한데 萬에 하나 犯人이 유희분이가 맞는다 해도, 내가 妻男을 處罰할 사람으로 보이니? 丁寧 그리 보이냐? 곧 죽을 놈이 告할 말이 없으니 마지막으로 蠻勇을 부리는 거냐?”

    두 눈을 지그시 감은 隆起가 明나라 말로 말하기 始作했다. 唐慌한 왕이 소리쳤다.

    “朝鮮語로 말해라!”

    隆起가 같은 말을 朝鮮語로 되풀이했다.

    “나 돌아가신 大明皇帝이신 萬曆帝의 後孫 駐隆起는 朝鮮 王에게 暫時 投託(投託)하겠노라. 이는 至嚴하신 皇帝의 勅命이니 丁寧 어기지 말 것이며 番國으로서 尊命大義를 지키길 바라노라.”

    隆起의 말을 멈추게 한 王이 벌떡 일어서서 물었다.

    “勅書가 있느냐?”

    “慕華館을 다 태웠으니 있을 理가 있습니까? 使臣을 보내 確認해 보시면 될 일입니다.”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있던 王이 자리에 앉으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番 密使의 任務가 바로 너를 護衛하는 거였느냐?”

    고개를 끄덕인 隆起가 對答했다.

    “맞습니다. 只今 皇帝께선 皇室 血族을 各 地域에 보내 未久에 닥칠 患亂에 對備하고자 하십니다. 朝鮮이 名의 運數를 도울 날개가 되는 것이나, 어찌 보면 皇室과 한배를 타는 것이기도 합니다, 明과 後金, 果然 어느 便이 最後의 勝者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相對를 뚫어져라 觀察하던 王이 물었다.

    “皇室 後孫이 어찌 壬辰年 戰爭에 水軍으로 參戰했나?”

    “皇族으로서 衷心을 갖고 기꺼이 參戰했습니다. 진린 都督을 도와 朝鮮 南海岸에서 活躍했고 戰爭 막바지엔 漢陽에서 普及을 擔當했습니다. 朝鮮을 좋아하고 朝鮮語를 잘하니 皇室에 불려가 갈 곳을 定하라 하기에 바로 朝鮮을 擇했습니다. 大命題國이 後金을 무찌르면 조용히 돌아갈 것이니, 그동안 숨어 起居할 곳이나 마련해 주십시오.”

    작은 한숨을 내쉬며 왕이 속삭이듯 물었다.

    “皇帝께서 朝鮮으로 遷都라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인가?”

    “이곳 亦是 대명天下이니 그리 될 수도 있겠습니다.”

    朝鮮의 王이 고개를 숙이고 깊은 想念에 빠져들었다. 까치 한 마리가 반가운 손님이라도 되는 양 仁政殿 뜨락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광해군 #明나라使臣 #壬辰倭亂 #周生傳 #新東亞

    * 이 作品은 權韠의 ‘周生傳’ 一部를 모티프로 創作한 것이다.


    윤채근
    ● 1965年 忠北 淸州 出生
    ● 고려대 國語國文學 博士
    ● 檀國大 漢文敎育學科 敎授
    ● 著書 : ‘小說的 主體, 그 誕生과 轉變’ ‘漢文小說과 欲望의 構造’ ‘神話가 된 天才들’ ‘論語 感覺’ ‘每日같이 明心寶鑑’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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