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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묻는다, 信義와 名譽·自由는 무엇인가|신동아

2022年 1 月號

로마가 묻는다, 信義와 名譽·自由는 무엇인가

[황승경의 Into the Arte] OTT드라마 ‘바바리안’ & 映畫 ‘더 이글’

  • 황승경 公演 칼럼니스트·公演藝術學 博士

    lunapiena7@naver.com

    入力 2022-01-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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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人事 慘事로 始作된 로마 最惡 敗戰史

    • 아우구스투스의 아픈 손가락 바바리안

    • 背信으로 끝난 아르미니우스의 榮光

    • 갑자기 사라진 로마 9軍團 미스터리

    • 失族과 9軍團 敗殘兵들의 乾坤一擲

    영화 ‘바바리안’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映畫 ‘바바리안’ 스틸컷. [넷플릭스 提供]

    이탈리아 留學 時節에 都市 곳곳에 남아 있는 燦爛한 로마 遺跡들을 바라보면 2000年을 넘나드는 歷史 속 로마인들의 智慧가 느껴졌다. 테베레 江邊의 작은 都市國家가 어떻게 이런 大役事를 이룰 수 있었을까.

    로마帝國은 身分이 낮거나 異民族일지라도 能力이 있다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人材들을 품었다. 德分에 로마인들은 이탈리아半島를 統一하고 地中海를 掌握해 갈리아(프랑스), 브리타니아(英國), 바이에른(獨逸)을 아우르는 大帝國을 形成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敵에게는 殘酷하리만큼 嚴格했지만 一旦 ‘우리 便’이라고 여겨지면 화끈하고 破格的으로 待遇해 相對를 融和시켰다. 로마帝國에서 能力을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軍隊였다. 政治·社會的으로 困境에 빠진 로마인들은 軍隊에서 反轉을 꾀해 立地를 다졌다. 出衆한 異民族은 어릴 때부터 로마에 보내 差別 없이 로마帝國의 充實한 軍人으로 성장시켰다. 비록 出身은 다르더라도 그들이 충성할 曺國은 로마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征服 때부터 定着된 이 油畫 制度는 그러나 獨逸人 게르만족에게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制度였다. 이는 넷플릭스 6部作 獨逸 시즌 드라마 ‘바바리안’(2020)에서 볼 수 있다. 反面 로마帝國을 담은 映畫 ‘더 이글’은 다른 方式으로 로마의 神의, 自由, 名譽를 다룬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觀客이 判斷할 몫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아픈 손가락 바바리안

    영화 ‘바바리안’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映畫 ‘바바리안’ 스틸컷. [넷플릭스 提供]

    넷플릭스 6部作 獨逸 드라마 ‘바바리안’은 로마帝國을 相對로 壓勝을 거둔 先祖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古代 로마帝國은 게르만 地域 中 南쪽에 位置한 現 바이에른 地域을 맨 처음 占領했다. 바이에른을 指稱하는 ‘바바리아’가 全 게르만 地域을 의미하게 된다. 書記 9年, 게르만 不足 聯合은 로마戰爭史에 두고두고 남을 뼈아픈 敗戰을 안겨줬다. 太平聖代 大帝國을 建設하기 始作한 古代 로마는 이 戰爭으로 3個 軍團이 殘惡하게 살육당하는 前無後無한 恥辱을 經驗해야 했다. 初代 皇帝 아우구스투스의 풍요로운 黃金時代에 게르만에서 들려오는 로마軍 虐殺 風聞은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하게 殘酷했고, 이는 로마를 恐怖에 떨게 했다. 그래서 ‘바바리아’는 ‘野蠻’ ‘未開’라는 旣存 意味에 ‘蠻行’ ‘殘忍’이라는 意味가 追加됐다고 歷史家들은 傳한다. 堂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紀元前 63~紀元後 14)는 病弱해서 카이사르처럼 軍隊를 이끌고 戰場을 누빌 수 없었다. 그래서 自身의 忠僕 아그리파를 戰場에 보냈고, 아그리파 死後에는 自身의 量아들들을 戰場에 보내 自身의 立地를 다졌다. 이집트에서부터 東方에 이르기까지 次例次例 全勝을 올리지만 問題는 게르만 地域이었다. 그는 카이사르 相續者라는 後光 德分에 權力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그에게 카이사르는 恒常 넘어야 할 山이었다. 게르만 征服에 拍車를 加한 것도 카이사르의 갈리아 征服을 凌駕하려는 計算이 깔려 있었다.

    野心滿滿하게 戰爭을 始作했지만 속절없이 時間과 稅金만 쓰면서 虛送歲月瑕疵 民心은 요동치기 始作했다. 작은 養아들이 戰場에서 落馬 事故로 死亡하자마자 後日 2代 皇帝가 되는 큰 養아들 티베리우스까지 보낼 程度로 그는 게르만 征服에 執着했다. 티베리우스의 赫赫한 專攻으로 獨逸 北部 엘베江 流域까지 進出한 로마軍隊는 13個 軍團 10萬 名의 大軍이었다. 게르만은 50個가 넘는 크고 작은 部族들이 으르렁거리며 亂立해 있었고, 로마의 屬州로 있으면서도 친(親)로마파와 反(反)로마派로 나뉘어 서로를 極度로 不信했다.



    로마 亦是 이곳을 完全하게 平定한 것은 아니었다. 게르만 地域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火藥庫였지만 强力한 軍事力으로 制壓할 수 있었다. 書記 6年, 발칸반도에서 大大的인 叛亂이 일어나자 이를 討伐하기 위해 티베리우스는 直接 8個 群團을 이끌고 발칸반도로 向했다. 豫想外로 叛亂 鎭壓까지 4年이나 걸리자,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만보다는 발칸에 集中 支援했고, 게르만에서는 征服보다는 現狀維持에 焦點을 맞췄다. 그래서 安定的인 行政官僚人 푸블리우스 바루스(紀元前 46~紀元後 9年)를 게르만 總督으로 임명했다.

    예전 아우구스투스는 政治的 計算으로 自身의 딸과 아그리파를 婚姻시키려 아그리파를 妊娠한 아내와 離婚시킨 적이 있는데, 이때 배 속 胎兒가 바루스의 夫人이었다. 個人的인 未安함도 있었지만 시리아 總督 時節에 行政 能力을 立證했기에 아우구스투스는 바루스를 信任했다. 이에 破格的으로 行政뿐 아니라 軍事力까지 全權을 委任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바루스가 등골까지 빼먹는 過度한 稅金으로 怨聲이 藉藉한 冷血漢이란 點을 看過했다. 後日 敗戰을 責任지고 自決하는 바루스에게는 副官 아르미니우스가 있었다. 드라마 ‘바바리안’ 主人公이 바로 아르미니우스다.

    背信으로 끝난 아르미니우스의 榮光

    아르미니우스는 게르만의 케루스키 不足 族長 아들로 태어났지만 忠誠 誓約의 證票로 동생과 함께 로마에 볼모로 끌려간다. 始作은 人質이었지만 로마는 이들을 眞正한 로마인으로 탈바꿈시켰고, 아르미니우스는 市民權뿐 아니라 記事 階級까지 받았다. 歷史 속의 아르미니우스는 처음부터 로마에 抵抗할 心算이었는지도 모른다. 反面 드라마 ‘바바리안’에서는 다시 故鄕으로 돌아온 아르미니우스가 겪었을 苦惱와 葛藤을 深度 있게 보여준다. 드라마는 아르미니우스(로런스 루프 分)가 뿌리를 찾아가는 過程을 더욱 劇的으로 나타내기 위해 그를 바루스(가에타노 아로니카 분)의 養아들로 設定한다. 로마군 指揮官으로 錦衣還鄕해 故鄕에 온 아르미니우스는 오랜만에 家族, 親舊들과 邂逅하지만 背信者로 낙인찍혀 목숨을 威脅받는 地境에 이른다. 同族을 懲罰해야 하는 任務를 附與받은 로마軍 아르미니우스는 平和를 위해 여러 妙策을 講究하지만 養아버지 바루스에게 平和는 眼中에도 없다.

    드라마에서는 어릴 적 소꿉親舊로 後日 아르미니우스와 婚姻하는 투스넬라의 比重이 꽤 크게 그려진다. 獨逸 與專社로 扮한 투스넬라(盞 구르소 分)는 犬猿之間인 部族民을 一一이 包攝하는 重且大한 役割을 하며 戰場에 參與해 歷史的 勝利에 一助하기도 한다. 아르미니우스는 于先 合法的인 方式으로 各地에 흩어진 部族들을 하나의 共同體로 엮었다. 逆說的으로 바루스의 無慈悲한 暴政은 게르만 部族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連結고리로 作用하며 反(反)로마 前線을 만든다. 아르미니우스는 발칸반도로 向한 主力 軍隊가 抵抗 勢力에 발이 묶여 돌아오지 못하는 只今이 로마軍隊를 이 땅에서 몰아낼 適期라 判斷했다. 鬱蒼하고 濕한 自然環境을 利用하면 3個 軍團(17·18·19軍團)과는 해볼 만하다고 判斷했다. 아르미니우스는 게르만 聯合部族들이 토이토부르크 숲에 集結해 蜂起한다는 거짓 諜報를 바루스에게 긴히 報告한다. 獨逸의 地形과 氣候에 無知한 로마軍은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아르미니우스의 戰術에 휘말려 敵陣 한복판에 밀려들어와 進退兩難에 빠진다. 바루스는 行政官僚이지 武官은 아니다. 더구나 戰鬪 經驗이 없는 初步 軍人이 大多數였다. 絶對的인 數的 優位에도 모든 로마軍의 攻擊은 悽慘히 失敗했다. 드라마는 영광스러운 첫 勝利로 自由를 얻는 게르만 民族의 歷史的인 瞬間을 記錄한다. 여기에서 시즌1은 끝나고 시즌2의 이야기가 기다린다.

    영화 ‘바바리안’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映畫 ‘바바리안’ 포스터. [넷플릭스 提供]

    게르만 部族聯合軍은 2萬 名 가까이 되는 로마 兵力뿐 아니라 駐屯地 隣近 民間人들까지 끔찍하게 殺戮하며 雪辱한다. 아우구스투스가 20年 동안 차근차근 進行시켰던 게르만 征服의 꿈은 물거품이 됐고, 로마의 名譽는 큰 傷處를 입게 된다. 아르미니우스는 토이토부르크 숲 大勝 以後 물과 기름 같은 部族들을 同盟으로 糾合하지는 못했지만 以後 持續된 로마의 大大的인 攻勢를 猛烈하게 막아냈다. 書記 16年, 아르미니우스는 로마軍을 라인江 以南으로 完全하게 撤收시킨다.

    權不十年(權不十年)이던가. 書記 21年, 그의 影響力이 剛해지는 걸 두려워한 親族들에 依해 그도 暗殺되는 運命을 맞는다. 그의 王座는 親로마派였던 그의 조카에게 돌아가고 그의 王國은 다시 로마와 和親을 맺는다. 이 때문에 外勢 侵略에 對抗한 아르미니우스의 功績은 歷史 속에 묻혀버린다. 아르미니우스의 이야기가 歷史에 조망된 것은 19世紀에 불어닥친 獨逸 民族主義 烈風德分이었다. 獨逸 知識人들은 不屈의 抵抗 意識을 鼓吹시키기 위해 그의 이야기로 文學, 演劇, 繪畫 等의 많은 藝術 作品에 등장시켰다. 그러나 나치 時期까지 活潑하게 이어진 그에 對한 作品은 나치의 멍에가 씌워져 暫時 멈춰졌고, 75年 만에 自由라는 主題로 드라마 ‘바바리안’으로 다시 찾아왔다.

    로마帝國, 나치…黃金 禿수리 揮帳의 名譽

    영화 ‘더 이글’ 스틸컷. [Focus Features 제공]

    映畫 ‘더 이글’ 스틸컷. [Focus Features 提供]

    영화 ‘더 이글’ 스틸컷. [Focus Features 제공]

    映畫 ‘더 이글’ 스틸컷. [Focus Features 提供]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兄弟’가 建國한 로마帝國의 象徵은 늑대가 아니라 禿수리다. 로물루스 머리에 禿수리 12마리가 보여 1200年 동안 로마가 繁榮할 것이라는 信託(神託)이 있었다는 建國神話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禿수리 文樣을 國家의 象徵으로 삼고 神聖視했다. 歷史的으로 유럽의 霸權을 暫時라도 쥐었던 國家는 모두 로마帝國의 黃金 禿수리 文樣을 揮帳으로 내걸었다. 로마軍隊는 모든 大隊마다 軍團의 黃金 禿수리 揮帳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軍人에게는 목숨보다도 貴한 名譽를 象徵했다.

    映畫 ‘더 이글’(2011)은 이러한 로마軍의 名譽와 로마軍과 異民族의 信義를 다루고 있다. 映畫는 서기 120年, 브리타니아(現在의 英國)섬에서 始作한다. 最高의 繁榮을 누리는 로마帝國의 領土는 나날이 膨脹돼 現在의 스코틀랜드 地域까지 進出했지만, 스코틀랜드 켈트 原住民인 픽트族의 抵抗은 만만치 않았다. 골칫거리인 픽트族을 制壓하기 위해 로마 9軍團이 派遣됐다. 로마의 브리타니아 征服이 始作된 43年부터 브리타니아에서 駐屯한 로마 9軍團은 主力 部隊였다. 進軍한 最强 戰鬪 部隊院 6000名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黃金 禿수리 揮帳과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어떠한 痕跡도 없었다. 全滅됐다거나 逃走했다는 等의 여러 所聞만 茂盛할 뿐이다. 로마 9軍團 미스터리를 다룬 다른 映畫로는 ‘센츄리온’(2010), ‘마지막 軍團’(2007) 等이 있을 程度로 사라진 로마 9軍團은 後世의 많은 興味와 關心을 받았다. 9軍團이 사라진 다음 해에 報告를 받은 히드리아누스 皇帝는 北進 計劃을 撤回하고 섬 中部에 120km에 이르는 堅固한 防壁을 쌓아 境界線을 構築할 것을 命했다. 自然스럽게 防壁 以南으로만 로마의 影響力이 集中됐고 北쪽 스코틀랜드와는 별다른 接觸이 없어졌다.

    영화 ‘더 이글’ 포스터. [Focus Features 제공]

    映畫 ‘더 이글’ 포스터. [Focus Features 提供]

    失族과 9軍團 敗殘兵들의 乾坤一擲

    그로부터 20年이 지난 140年, 頻繁한 異民族 侵入으로 將校들의 忌避 地域이었던 南部 브리타니아 地域에 젊은 將校 마커스(채닝 테이텀 分)가 自願한다. 그는 失踪된 9軍團 第1大隊를 統率하고 黃金 揮帳을 맡았던 大隊長 아퀼라의 아들로, 家門의 名譽를 되찾으러 아버지의 땅으로 뛰어든 것이다. 透徹한 軍人 精神으로 武裝한 그는 兵士들을 살리기 위해 홀로 敵陣에 뛰어드는 바람에 큰 負傷을 입고 名譽 除隊한다. 失意에 빠진 어느 날, 그는 모든 것을 諦念한 奴隸 戰鬪社 에스카(제이미 벨 分)를 보고 東변상련을 느껴 그의 목숨을 救해 준다. 이를 契機로 에스카는 그의 奴隸가 된다.

    마커스는 로마 9軍團 揮帳이 스코틀랜드 北쪽 어느 部族의 寺院에 偶像으로 모셔져 있다는 所聞을 接한다. 스코틀랜드 部族民 出身인 에스카를 帶同한 마커스는 히드리아누스 防壁을 넘어 未知의 땅으로 向한다. 9軍團이 失足의 襲擊을 받아 짐승처럼 悲慘하게 屠殺당했고, 그 戰鬪에는 奴隸 에스카의 不足 또한 合勢했다는 事實을 안 마커스는 에스카를 크게 詰責한다. 그 過程에서 그들은 失足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에스카는 基地를 發揮해 마커스를 自身의 奴隸로 紹介한다. 失足 마을에 招待받은 에스카는 歡迎받지만 猝地에 영문도 모른 채 奴隸가 된 마커스는 고달프기만 하다. 部族民의 境界를 느슨하게 만든 에스카는 機會를 노린다. 祝祭가 끝난 새벽, 에스카는 마커스를 풀어주고 로마 揮帳을 되찾아 히드리아누스 防壁으로 逃走한다. 에스카는 民族보다는 忠誠을 盟誓한 信義로 自身의 名譽를 지켰다. 神聖한 偶像을 도둑맞은 失足의 最强 戰士들의 憤怒는 하늘을 찌르고, 以內 이들을 追跡한다. 마커스는 다리 負傷이 도져 限界에 부딪히고, 에스카에게 自由를 주고 揮帳을 로마에 傳해 달라고 付託한다. 에스카는 揮帳을 다시 마커스의 품속에 안겨주고는 어디론가 急히 뛰어간다. 失足이 거의 마커스를 따라잡을 무렵, 마커스의 視野에 20年 前 戰鬪에서 도망쳐 목숨을 扶持하던 9軍團의 敗殘兵들이 잡힌다. 에스카가 데리고 온 그들은 잃어버린 名譽를 되찾기 위해 失足과 壯烈한 戰鬪를 始作한다. 聖스러운 揮帳을 지키려는 한판 勝負에서 이긴 마커스는 로마軍과 失足 모두의 葬禮를 치러준다.

    各其 다른 視角에서 로마의 異民族 征伐을 다룬 두 作品은 우리에게 信義와 名譽, 그리고 自由에 對한 原初的인 물음을 던진다.

    #황승경 #바바리안 #더이글 #映畫 #新東亞

    황승경
    ● 1976年 서울 出生
    ● 이탈리아 레被逮國立音樂院 디플럼, 韓國藝術綜合學校 專門士, 成均館大 公演藝術學 博士
    ● 國際오페라團 團長
    ● 前 이탈리아 盧베 放送局 리포터, 月刊 ‘英카페’ 編輯長
    ● 著書 : ‘3S 보컬트레이닝’ ‘無限한 想像과 놀이의 變奏’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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