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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야” 파킨슨病 앓는 醫師가 말하는 ‘希望’|新東亞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야” 파킨슨病 앓는 醫師가 말하는 ‘希望’

삶에 바람 불면 맞으며… 여기 있다, 김혜남

  • 김혜원 高麗大 미디어學部 4學年

    khw1109@korea.ac.kr

    入力 2022-07-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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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과 삶이 共存하는 書齋

    • 患者들에게 答하는 마음으로 쓴 冊

    • “苦痛이 사그라지는 時間이 꼭 와”

    • e메일 住所 ‘sunboy’

    김혜남의 서재. 책장을 두 겹으로 구성했다. 가장 앞에 있는 책꽂이에 약과 함께 그녀의 책들이 보인다. [김혜원]

    김혜남의 書齋. 冊張을 두 겹으로 構成했다. 가장 앞에 있는 冊꽂이에 藥과 함께 그女의 冊들이 보인다. [김혜원]

    눈앞에 冊이 가득하다. 大略 900~1000卷은 될 것 같은데, 保管할 空間이 모자랐는지 두 個의 冊張을 한 겹 더 세웠다. 옛날 漫畫房 或은 DVD 貸與店에서나 볼 법한 二重 冊張이다. 앞에 놓인 왼쪽 冊꽂이를 쳐다봤다. 視線 높이에는 綠色, 粉紅色, 楕圓形, 原形으로 色과 模樣이 다양한 藥이 놓여 있다. 아래 칸을 봤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必要 없는가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죽고 싶다는 말은 懇切히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 / 千 個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者의 죽음 /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죽음의 에티켓

    約 아래에는 죽음에 關한 冊들이 놓여 있다. 反面 藥이 놓인 곳 위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關해 쓴 그의 冊들이 꽂혀 있다. 죽음과 삶이 共存하는 이곳은 김혜남의 서재다.

    “한 발짝씩 떼다 보면 어느새 目的地”

    1959年生 김혜남은 精神分析 專門醫이자 作家다. 2014年까지만 해도 大衆은 그를 ‘글 잘 쓰는 醫師’로 알았다. 2015年 以後에는 修飾語가 하나 더 붙었다. 글 잘 쓰는 파킨슨病 醫師. 김혜남은 2001年, 파킨슨病 診斷을 받았다.

    그로부터 20年間, 김혜남은 冊 열 卷을 냈다. ‘서른 살이 心理學에게 묻다’ ‘心理學이 서른 살에게 答하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 職場, 結婚, 집, 關係에 對한 問題로 憂鬱과 不安을 안고 있는 現代人에게 김혜남의 冊은 큰 慰勞가 된다. 그의 冊들은 數十萬 部씩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讀者들은 主로 ‘共感 간다’ ‘따뜻하다’ ‘慰勞가 됐다’는 書評을 남긴다. 精神分析 專門醫로서 가진 知識과 사람에 對한 洞察力이 더해진 德分이다.

    精神分析學會 初代 會長 조두영은 김혜남에 對해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直觀은 나보다 10年은 앞선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혜남의 이야기가 感動을 주는 것은 김혜남 本人이 마음과 몸의 苦痛을 겪고도 希望을 말한다는 事實 때문일 것이다.



    김혜남이 처음부터 글을 쓸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다. 精神分析 專門醫에 그치지 않고 美國으로 留學을 갈 計劃이었다. 學問的 訓鍊을 받고 精神分析家가 되는 것이 그의 目標였다. 그렇게 國立精神病院(現 國立精神健康센터)에서 12年間 精神分析 專門醫로 일하고 나와 個人 病院을 차린 지 1年도 안 된 때에 파킨슨病 診斷을 받았다.

    파킨슨病은 도파민을 分泌하는 神經細胞를 잃어가는 病이다. 갈수록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몸이 떨리거나 筋肉이 굳는다. 發病 原因은 밝혀진 바 없고 뚜렷한 治療法도 없다. 病이 惡化되면 憂鬱症, 癡呆, 偏執症(被害妄想)을 겪을 수 있다. 衝擊에 누워 있던 김혜남은 한 달 만에 다시 일어나 일을 했다. 診療를 보고 醫師로 일하며 患者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冊을 썼다. “患者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지 答하는 마음으로” 썼다.

    2014年 1月, 김혜남은 診斷받은 지 13年 만에 끝내 病院 運營을 접어야 했다. 療養次 濟州島로 내려갔다. 어느 날 밤, 小便이 마려워 일어났는데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등에서는 땀이 뻘뻘 나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몇 番이고 넘어질 뻔하며, 化粧室을 바라봐야 했다. 문득 발을 쳐다보았다. 한 발만…. 김혜남은 한 걸음 내디뎠다. 한 발만 더…. 그렇게 化粧室에 到着했다. 2015年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며 김혜남은 이때를 回想했다.

    “먼 곳 바라보지 말고 只今 서 있는 자리에서 내 발을 내려다보며 한 발짝씩 떼다 보면 어느새 目的地에 到着한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들에게, 自身과 비슷한 處地에 있을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6番째 冊을 썼다.

    할 수 있는 일, “지푸라기라도 덮는” 日

    김혜남은 8番째 冊 以後로 “健康이 안 좋아져서 글을 못 쓴다” 했다. 그때 박영미 포르體 出版社 代表가 冊 出刊을 提案했다.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던’ 어른들을 위한 冊이다.

    “(워킹맘으로 지내며) 나 요즘 너무 사는 게 힘들다고 아무것도 아니고 쓸모없는 存在로 느껴진다고 그러니까, 아마 거기에 感化되신 것 같아요.”

    그렇게 박영미가 김혜남을 인터뷰하면서 9番째 冊이 나왔다.

    지난해 12月, 10番째 冊이 나왔다.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김혜남은 原稿를 “口述로 修正”했다. 김혜남은 더는 冊을 못 낼 것이라 말한다. 몸은 繼續 무거워지고 있다. 午後 세 時 半이면 疲勞가 쌓여 낮잠을 자야 한다. 때로 너무 아프다.

    하지만 김혜남은 한 가지는 分明히 안다.

    “그냥 고통스러울 때는, 世上의 어떤 생각을 해도 고통스러워. 苦痛 앞에서는 아무것도 이길 수가 없어. 無氣力해. 그런데 苦痛은 사그라지는 時間이 있거든. 그때 그 時間이 주어진 것은, 監査하고 즐기면 되는 거야. 苦痛의 意味를 찾고, 이럴 必要도 없고. 내가 밤에 잘 때, 팔다리가 꼬여. 더럽게 아파. 그럴 때는 아파하는 수밖에 없어, 어떡해. 그런데 기다리면서 아파하는 거야. 이 苦痛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必要한 藥을 먹고 뭐 하고, 이러면서 얼음찜질을 하고, 이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거야. 내 苦痛에 對해서, 그러면 苦痛이 사그라지는 時間이 꼭 와. 다시 고통스러운 時間이 또 오겠지만. 그러면 그 時間을 그냥, 또 나에게 주어진 時間이니까, 感謝하면서 즐겁게 지내려고 努力하는 거지.”

    김혜남은 삶에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事實을 안다. “엎드려 있다고 해도 찬 空氣가 흙모래가 입안에 들어갈 것이고, 바위 뒤에 숨는다고 찬 空氣가 따뜻한 空氣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김혜남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지푸라기라도 덮는” 日. 김혜남에게는 運動이다.

    “運動을 繼續해서, 내 筋肉을 繼續 키워서 繼續 걸을 수 있게끔. 繼續 腦를 刺戟하려고 하는 거. 내가 苦痛을 輕減시킬 수 있는 最善의 努力을 한다, 그다음에는 기다리는 거지.”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30年 知己 親舊 류분순이 그 努力을 안다. “파킨슨이, 均衡感覺이 잘 안 생겨요. 그러니까 繼續 앉게 되고, 기운이 없으니까 눕게 되고 하니까 筋肉이 자꾸 消失되지, 안 걸으니까. 그러니까 當然히 筋肉을 키우는 그런 物理的인 運動이 必要한데, 이 親舊는 이제 너무 熱心히 하는 거지.”

    午後 세 時 半이 넘었다. 인터뷰를 마친 김혜남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류분순이 그女를 도와 일으켜 세웠다. 김혜남은 천천히 일어났다. 앞으로 쭉 뻗은 팔을 류분순이 잡았다. 류분순이 微笑 지었다. 親舊의 어깨에 팔을 걸친 김혜남은 천천히 門 앞으로 걸어갔다. 160㎝가 될까 말까 하는 작은 키와 살짝 처진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매끄러운 褐色 마룻바닥에 맨발이 스윽스윽 스쳤다. 門턱 없는 訪問을 지난 김혜남이 천천히 寢室로 向했다. 房門을 닫고 짐을 整理하는데 밖에서 누구 것인지 모를 ‘음음’ 하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沙漠의 소리

    김혜남이 어떤 사람이냐는 말에 반건호 慶熙大 精神醫學科 敎授는 김혜남의 e메일 住所를 아느냐고 물었다. 갸웃거리자 그가 웃으며 說明했다. “썬보이거든요, 썬보이.” 이름의 ‘慧’를 發音이 類似한 해로 바꾸고, 南녘 남을 뜻하는 漢字도 少年으로 바꿔서 e메일 아이디를 ‘sunboy’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김혜남 先生님의 이미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아주 밝고 에너지가 많고, 해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따뜻하게 비춰주고.”

    2015年까지만 해도 왜 살아야 하는지, 묻는 質問에 알 수 없다 答하던 김혜남은 2017年 冊에 沙漠 그림과 함께 글을 남겼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세요.
    저 모래 속에서 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를.
    저 메마르고 뜨거운 모래 속에서도
    生命은 웅크리고 때가 되길 기다리고 있고,
    或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法을 배우느라
    操心스러운 行步를 繼續하고 있는 저 소리를.
    죽음의 땅에서 生命의 讚歌를 부르는 이 아이러니,
    그러나 그것은 바로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親切한 神의 소리입니다.

    살아야 하는 理由에 對한 自身의 答을 찾은 것이냐고 묻자 김혜남이 答했다.

    “그렇지. 우리는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야. 삶을 살고 있으니까, 재미있게 살고 있는 거고. 재미있게 살고 있으니까, 남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거고. 남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으니까, 世上을 따듯하게 반길 수 있는 거고.”

    김혜남의 목소리 亦是 누군가를 위한 沙漠의 소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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