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글, 이영비 그림, 992쪽, 한길사, 3萬6000원
李炳注는 1921年 태어났고, ‘東亞日報’ 姊妹誌 月刊 ‘신동아’는 1931年 創刊됐다.
東亞日報 日章旗 抹消事件으로 신동아가 强制 廢刊된 1936年, 李炳注는 晉州農業學校에 入學했다. 남달리 義憤이 强했던 李炳注는 이 學校에서 不當한 命令을 拒否하다 懲戒를 받고, 日本人 敎師의 暴行에 맞서다 제적당했다.
신동아는 1964年 復刊됐다. 李炳注는 5·16 軍事政變 直後 反國家行爲 嫌疑로 拘束돼 10年 懲役刑을 받고 1963年 12月 出監했다. 이 무렵부터 言論人에서 小說家로 運命的 轉換이 始作되었는데, 自由黨 時代를 그린 ‘山河’와 朴正熙 政權을 諷刺한 ‘그해 5月’李 신동아에 連載됐다.
自由黨과 朴正熙를 바라보는 李炳注의 視角은 左도 右도 아닌 批判的 知識人의 良心이었다. 李承晩을 向해 “카리스마와 마키아벨리즘의 化身”이라 評했고, 朴正熙를 두고 “功過로서 따질 問題의 對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 時節 進步 言論을 代表했던 ‘사상계’와 결이 다르고, 權力에 빌붙었던 숱한 御用 言論過度 確然히 갈린다. 살아 있는 權力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보자면, 新東亞와 李炳注는 같은 배를 타고 있었다.
‘이병주 評傳’의 著者 안경환은 1948年生이다. “大韓民國이란 나라가 만들어지던 時代에 태어났기에 한 世代 位인 ‘學兵 世代’의 罪意識을 고통스럽게 살필 수 있었다”고 그는 告白한 적이 있다. 著者의 눈에 비친 學兵 世代는 熱情이 넘친 엘리트였으나, 左와 禹, 父母와 子息 어느 쪽에서도 支持를 얻지 못한 非主流 孤兒였다. 著者가 10年 넘게 이병주와 因緣을 맺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文章으로 남지 않은 삶의 골짜기를 默默히 記錄한 理由다.
世上의 모든 評傳은 未完이다. 안경환의 ‘이병주 評傳’도 그러하다. 評傳 後半部를 裝飾한 李炳注의 個人事와 후세인들의 엇갈린 評判은 다음 世代의 몫이다. 獨裁者 전두환을 美化했던 李炳注의 末年 行步에 對해서도 著者는 餘地를 남겨두었다. 이쯤에서 “歷史는 山脈을 記錄하고, 나의 文學은 골짜기를 記錄한다”는 李炳注의 말을 새겨봄 직하다. “이병주 文學은 大韓民國 그 自體”란 最高의 讚辭를 보낸 韓國文學의 산證人 故 金允植 先生의 말씀도 함께!
프리랜서: 社交性·實力·마감
노정태 지음, 워크룸 프레스, 88쪽, 9000원
이 冊은 注目받는 論客이자 飜譯家로 知識 社會에서 가장 成功한 프리랜서로 통하는 著者가 내놓는 豫備 프리랜서를 위한 實用書다. 프리랜서로 社會生活을 始作한 著者가 最近 10餘 年間 不安定하면서도 魅力的인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오며 겪은 經驗을 反芻해 적어 내려간 에세이다. 著者는 프리랜서로 成功하려면 “絶對로 마감, 마감, 마감을 지켜야 한다”고 强調한다. 實力, 社交性, 마감 세 가지 中에서도 으뜸은 마감이라는 것. 프리랜서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當場 이 冊부터 읽자.
디지털知能
박유현 지음, 한성희 옮김, 김영사, 348쪽, 1萬6500원
디지털 時代의 成功 與否는 技術에 휘둘리지 않고 技術을 어떻게 잘 利用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卽 AI가 推薦하는 情報를 無條件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AI가 推薦하는 情報 가운데 眞實과 거짓을 가려내고, 脈絡을 考慮해 情報의 有意味性을 判斷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떤 力量을 키워야 할까. 著者는 디지털 時代가 高度化될수록 디지털 技術을 理解하고 倫理的으로 利用하는 能力인 디지털 知能 ‘DQ’를 키워야 한다고 强調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