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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百 年 富者로 산 祕訣은 몸에 밴 ‘나눔’|신동아

2022年 5 月號

數百 年 富者로 산 祕訣은 몸에 밴 ‘나눔’

K-企業家精神 메카 ‘勝算마을’

  • reporterImage

    晋州=구자홍 記者

    jhkoo@donga.com

    入力 2022-05-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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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晋州는 몰라도 勝算은 안다

    • 三星, LG, 曉星 創業主가 함께 심은 ‘富者 소나무’

    • ‘三星’ ‘錦城’ ‘曉星’은 샛별 뜨는 방어산에서 由來?

    • 노블레스 오블리주 實踐으로 이웃의 尊敬과 사랑 받아

    • 許氏 門中 가르침의 標本 支神情 許浚 先生

    • 상남福祉會館 ‘不忘碑’와 옛 지數秒 ‘不忘塔’



    드론으로 촬영한 승산마을 전경. [홍중식 기자]

    드론으로 撮影한 勝算마을 前景. [홍중식 記者]

    “財産은 個人의 것이 아니라 社會를 위해 暫時 保管하는 것이다.” - GS 創業主 효주 허만정

    “信賴가 成功을 낳는다.” - LG 創業主 燕巖 具仁會

    “나는 企業經營의 80%를 人材養成에 쏟아왔다.” - 三星 創業主 湖巖 李秉喆

    “速度보다 ‘方向’이 重要하다.” - 曉星 創業主 만우 趙洪濟




    1921年 5月 9日 開校한 指數初等學校는 三星 李秉喆, LG 具仁會, 曉星 趙洪濟 創業主 等 韓國을 代表하는 글로벌 企業을 일군 創業主 여럿이 同門受學한 學校다. 指數초교가 3月 29日 韓國의 企業家精神을 傳授하는 ‘K-企業家精神센터’로 變貌했다. 指數초교가 자리 잡은 慶尙南道 진주시 지수면 勝算마을은 GS그룹과 LG그룹을 創業한 ‘金海 許氏’와 ‘能聲 丘氏’ 門中 人士들이 數百 年 前부터 뿌리 내리고 살아온 韓國의 代表的 富者마을이다. ‘富者의 기운’을 받으려는 이들을 위해 3月 22日 진주시는 ‘勝算에부자한옥’ 竣工式을 열었다. ‘K-企業家精神’의 메카로 탈바꿈하고 있는 勝算마을과 옛 指數初校를 3月 31日과 4月 1日 이틀에 걸쳐 구석구석 돌아봤다.

    晋州市 東쪽에 位置한 지수면은 東쪽으로는 咸安郡, 西쪽으로는 晋州市 대곡면, 北쪽으로는 宜寧郡에 接하고 있고, 南쪽으로는 진주시 사봉면에 면해 있다. 지수면은 東쪽 防禦産을 屛風삼아 太極 文樣을 그리며 휘돌아 흘러가는 西쪽의 南江 사이의 넓은 平野에 자리하고 있다.

    一齊, 勝山을 勝內로 改名

    東쪽에 防禦산이 位置해 있는 승산리는 東쪽이 높고 西쪽이 낮은 東高西低 地形이다. 방어산 外에 支神産科 審防産, 步量産 等 낮은 山들이 勝算마을을 감싸 안고 있다.

    山勢와 自然景觀이 秀麗한 승산리에는 일찍이 富者가 여럿 輩出됐는데 日帝强占期에는 獨立軍에 많은 軍資金을 提供하기도 했단다. 日帝는 勝算마을 富者들의 氣勢를 가두기 위해 ‘勝山’이란 地名을 ‘勝內’로 바꿨다. 光復 以後에도 한동안 勝내리로 通用되다 1990年代 中盤 ‘옛 指名 찾기’ 次元에서 마을 住民들의 歎願으로 元來 地名인 ‘승산리’로 復元돼 現在에 이르고 있다.

    勝算마을에는 GS그룹을 일군 ‘勝算 金海 許氏’와 LG그룹을 일으킨 ‘能聲 丘氏’가 일찍부터 集姓村을 이뤄 살아왔다. GS그룹을 일군 ‘勝算 金海 許氏’는 600年 前인 朝鮮 前期 1400年代 後半 虛追加 現在의 승산리로 移住한 以後 只今까지 뿌리내리고 살아왔다. 許氏 집안은 나라와 民族을 위해 꾸준히 일하고 통 크게 베푼 것으로 有名하다.

    ‘能聲 丘氏’ 집안이 勝算마을에 살게 된 것은 1700年代 初盤에 玄風, 高齡縣監을 지낸 구문유의 아들 舊班이 許氏 家門의 딸과 結婚하면서부터다.

    허氏와 丘氏가 數百年째 터 잡고 살아온 勝算마을은 朝鮮時代 漢陽에서 “眞珠는 몰라도 勝算은 안다”고 할 程度로 富者洞네로 有名稅를 떨쳤다. 장일영 晋州市 文化觀光解說師는 “GS와 LG그룹 創業主를 輩出해서 勝山마을이 富者마을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勝算은 朝鮮時代부터 萬石꾼과 千石꾼이 모여 살던 傳統的 富者마을이었다”며 “全盛期에는 마을에 기와집이 300채假量 있었다”고 紹介했다.

    勝算마을은 마을을 貫通하는 道路를 사이에 두고 윗마을에 指數面事務所, 아랫마을에 指數初等學校가 자리 잡고 있다. 指數초교는 學生 數 減少로 2009年 隣近 松亭초교와 統合돼 지수면 압사리에서 ‘指數初等學校’ 이름 그대로 學生들을 敎育하고 있다. 代身 지수면 승산리에 있는 옛 指數초교는 ‘K-企業家精神센터’로 變貌했다.

    옛 지수초교 교사 앞에 서 있는 ‘부자소나무’. [홍중식 기자]

    옛 指數初校 敎師 앞에 서 있는 ‘富者소나무’. [홍중식 記者]

    옛 指數初等學校에 들어서면 敎師 바로 앞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가 먼저 눈에 띈다. 1921年 指數初等學校 開校 當時 1回 入學生이던 LG 創業主 九人會 會長, 曉星 創業主 趙洪濟 會長, 三星 創業主 이병철 會長이 함께 심고 가꾼 나무다.

    이충도 지數秒 總同窓會 事務總長은 “‘富者소나무’는 開校 當時 學校를 같이 다녔던 이병철 三星 會長과 具仁會 LG 會長, 趙洪濟 曉星 會長께서 함께 심고 가꿨던 소나무”라며 “이 나무를 심고 가꾸며 企業家의 꿈을 키웠던 會長님처럼 여기를 찾아오신 모든 분이 富者가 되길 所望하는 마음에 ‘富者소나무’라고 이름 붙였다”고 紹介했다.

    指數初等學校는 李秉喆, 具仁會, 趙洪濟 會長 外에도 구자경 LG그룹 名譽會長, 허준구 GS그룹 名譽會長, 구태회 LS그룹 創業主, 허정구 삼양通商 會長, 허완구 勝算그룹 會長 等 國內 屈指 企業 創業家를 여럿 輩出한 名實相符한 大韓民國 企業人의 産室이다.

    K-企業家精神센터

    慶南 宜寧이 故鄕인 이병철 會長이 指數初校를 다니게 된 것은 이 會長 누이가 許氏 門中 허순구에게 시집오면서 勝算마을에 居住한 것이 因緣이 됐다. 慶南에서 普通學校로 일찍이 開校한 指數初校 入學을 위해 이 會長이 누님 宅에 머물며 1回 入學生으로 指數初校를 다녔던 것. 그러나 이 會長은 한 學期를 다닌 뒤 上京해 指數初校를 卒業하지는 않았다.

    글로벌 大企業 創業主를 여럿 輩出한 옛 指數初等學校는 올해 ‘‘K-企業家精神센터’로 變貌해 새로운 100年을 이끌어갈 ‘企業人’과 ‘創業 準備生’을 위한 敎育센터로 탈바꿈했다. 本館 1層 왼쪽에는 ‘K-企業家精神의 뿌리’라 할 수 있는 勝算마을 展示館이 마련돼 있다. 마을의 由來와 歷史, 周邊 景觀, 그리고 勝算마을에서 나고 자란 創業主 스토리를 寫眞과 映像 等 다양한 視聽覺 資料를 展示해 놓고 있다.

    승산마을 안내도.

    勝算마을 안내도.

    腸 解說師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龍의 形象을 한 山勢가 勝山마을을 휘감고 있다”며 “龍의 머리에 該當하는 防禦산이 勝山마을을 내려다보는 地勢”라고 說明했다. 방어산은 兵亂과 倭寇로부터 地域을 防禦했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勝算마을이란 이름도 방어산의 옛 이름인 勝魚山에서 由來했다. 勝算마을 東쪽에 位置한 방어산은 마을에서 볼 때는 ‘샛별’이 떠오르는 山으로 勝算마을에서 나고 자라고 工夫한 企業家가 일군 企業 이름에는 唯獨 ‘샛별’을 뜻하는 ‘星’이 많이 들어 있다. 代表的으로 ‘三星’ ‘錦城’ ‘曉星’이 있다.

    勝算마을은 風水地理家들이 富者를 내는 明堂자리라 일컫는 ‘金鷄抱卵型’이다. 鶴이 둥지를 틀어 알을 품고 있는 지歲인 金鷄抱卵型은 아이를 키우기 좋은 明堂을 뜻한다. 또한 風水地理에서 물은 財物을 뜻하는데, 勝算마을은 南江 支流인 지수천이 휘감아 도는데 물이 흘러 나가는 水口(水口)가 좁아 富의 기운은 꾸준히 들어오지만 流出은 적어 富者가 많다는 俗說도 傳해진다. 腸 解說師는 “勝算마을에는 代代로 富者가 많이 살았는데 舊韓末에는 萬石꾼 2家口, 千石꾼 14家口에 이를 程度로 當代 最高의 富者들이 모여 살았다”며 “部를 크게 일궜을 뿐 아니라 社會的 責任과 義務도 積極的으로 實踐했다”고 說明했다. 그는 “日帝强占期와 光復 以後 左右翼 對立, 그리고 6·25 戰爭을 거치는 동안 허氏와 丘氏 門中이 只今의 生家를 잘 保存할 수 있었던 것은 平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꾸준히 實踐해 와 이웃들로부터 尊敬과 사랑을 받았기에 可能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왼쪽 사진 왼쪽부터 쿠쿠전자 구자신 생가, LIG 구자원 본가, LG 창업주 구인회 생가. 오른쪽 사진은 생가 세 곳을 정면에서 촬영했다. [홍중식 기자]

    왼쪽 寫眞 왼쪽부터 쿠쿠電子 구자신 生家, LIG 구자원 本家, LG 創業主 具仁會 生家. 오른쪽 寫眞은 生家 세 곳을 正面에서 撮影했다. [홍중식 記者]

    現在 勝算마을에는 GS 創業主 허만정 會長과 LG 創業主 九人會 會長, LIG 創業主 구자원 會長과 쿠쿠電子 創業主 구자신 會長 生家 等 國內 有名 大企業 創業主 生家가 오롯이 保存돼 있다. 또한 GS 創業主 허만정의 父親 許浚 先生이 末年에 마음을 修鍊하던 지新正과 丘氏 大宗中의 祭閣 靑江汀, 許氏 大宗中의 祭閣 허연정, 許氏 宗中 齋室 聯産災 等 여러 韓屋 祠堂이 잘 整備돼 있다.

    K-企業家精神의 숲

    옛 指數初校 1層 오른쪽에는 ‘K-企業家精神의 숲’을 主題로 韓國의 經濟 成長史와 企業의 發展史가 網羅돼 있다. 이곳에서는 觀覽客 스스로 自身의 企業家精神 類型을 알아보고, 寫眞 撮影을 통해 自身이 選擇한 內容이 담긴 온라인 名銜을 卽席에서 만들어볼 수 있는 코너도 準備돼 있다.

    옛 지數秒 2層은 企業家精神 敎育을 위한 講義場으로 꾸며져 있다. 센터 運營을 맡은 中小벤처企業振興公團 側은 “앞으로 勝算마을 투어와 連繫해 創業者 및 豫備 創業者를 위한 企業家精神 涵養을 위한 다양한 硏修 프로그램을 마련해 運營할 計劃”이라고 밝혔다.

    勝算마을 뒤便에는 韓屋 宿泊施設 ‘勝算에부자한옥’도 竣工돼 ‘簿記(富氣)’를 받으려는 觀光客을 맞이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富者韓屋은 勝算마을에 있던 旣存 韓屋을 買入해 리모델링한 것으로 안채와 庫間債는 實用的으로 補修했고, 大門채와 舍廊채는 增築해 옛 韓屋의 形態를 維持하고 있다. 子女들과 함께 勝算마을을 찾는 家族 單位 觀光客을 위해 안채는 家族室로 꾸몄고, 舍廊채는 夫婦와 戀人, 親舊 等 2人이 머물 수 있도록 構成돼 있다. 庫間債는 炊事와 洗濯이 可能한 共用 空間으로 造成됐다.

    2018年 韓國經營學會와 共同으로 勝算마을을 ‘企業家精神 수도’로 宣布한 진주시는 GS와 LG等 우리나라 代表 企業家들이 나고 자란 지수면 승산리 一帶를 企業家들의 創業 精神과 挑戰 精神을 涵養할 수 있는 觀光資源으로 開發하고 있다. ‘勝算에부자한옥’에 이어 올 上半期에는 게스트하우스 多目的館 增築度 準備 中이고, 訪問客들이 創業主들의 古宅을 便利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文化探訪路와 駐車場 等 基盤施設도 造成하고 있다.

    支神情 許浚 先生

    허준 선생이 말년을 보낸 지신정.  [홍중식 기자]

    許浚 先生이 末年을 보낸 支神情. [홍중식 記者]

    勝山마을의 兩大 軸을 이루는 ‘許氏’ 門中과 ‘丘氏’ 門中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地域社會 發展에 앞장서 온 것으로 定評이 나 있다. 舊韓末 激動期에 許氏 家門을 부흥시킨 支神情 許浚 先生에 對한 逸話는 晉州를 너머 서울까지 傳해졌을 만큼 有名했다.

    1844年 승산리 本家에서 태어난 許浚 先生은 자투리 종이조차 浪費하지 않을 만큼 平生을 근검하게 生活해 왔지만 財物을 올바른 일에 써야 한다는 信念으로 어렵게 지내는 宗親科 마을 住民들에게 義捐金을 傳했고, 地域 社會를 위한 救護活動에도 앞장선 것으로 有名하다. 特히 日帝强占期 許浚 先生은 近代式 敎育機關 設立의 必要性을 自覺하고 大規模 土地를 喜捨해 일神學當(現 晋州女子高等學校의 前身) 建立의 土臺를 닦았다. 또한 末年에는 갖고 있는 모든 財産을 後孫과 親戚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그中 一部를 出演해 오늘날까지 繼承되고 있는 毅然機構 ‘許氏議長’을 마련했다. 許浚 先生이 私財를 털어 地域社會를 이롭게 한 功績은 1920年 4月 13日子 동아일보 記事로 紹介되기도 했다. 支神情 앞 碑石에는 다음과 같은 동아일보 記事 要約本이 새겨져 있다.

    “許浚 功은 公益에 뜻이 깊어 慶尙道 영창이 비었음을 근심하여 數萬금을 上納하여 영창을 充實케 하였으며, 財産 中에서 子孫들의 生活費만 남기고 나머지 財産으로는 먼저 姻婭族戚과 面內 貧民에게 七八百 斗落의 土地를 分給하였으며, 敎育 事業에도 힘을 써 眞珠女高를 建立하여 國家에 바쳤다.”

    장일영 文化觀光解說師는 “1920年 4月 1日 創刊한 동아일보에 創刊 13日 만에 勝算마을에 사는 許浚 先生의 功績이 揭載됐을 만큼 許 先生의 높은 功績은 晉州와 慶尙道를 너머 全國的으로 빠르게 傳해졌다”고 說明했다.

    42歲 때인 1886年 科擧에 應試해 進士에 及第한 許浚 先生은 當代 儒學者들과 폭넓게 交流했다. 舊韓末 儒學者이자 義兵將인 連載 송병선으로부터 깊은 學問的 影響을 받았고, 老論系 儒學者인 勉庵 崔益鉉, 심석 송병순, 老백헌, 정재규, 奸才, 戰友 等과 交流했으며 當時 文官이자 書藝家로 活動한 석촌 윤용구와도 남다른 關係를 維持했다. 許浚 先生이 末年을 보낸 지新正에는 連載 송병선이 짓고 심석 송병순이 쓴 地選定 헌액이 걸려 있다.

    許浚 先生이 GS 創業主인 아들 만정에게 보낸 便紙 內容을 보면 許浚 先生의 子女敎育觀을 엿볼 수 있다.

    “너의 아비는 언제나 네가 기운이 세차고 性格이 急한 것을 걱정한다. 기운이 洗車面 이기기 좋아하는 病弊가 있고 性格이 急하면 제멋대로이거나 輕率한 弊端이 있으니 두려운 일이지 않으냐. 그래서 모든 일을 반드시 愼重히 살피고 분명하게 判斷해서 日常의 範疇를 벗어나지 말고, 반드시 뭇 사람들을 따르고 윗사람을 따라서 愚昧함을 면하도록 하여라. 옛날 漢나라 때 韓信은 自身의 功績을 스스로 드러냈고 丈量은 自身의 功勞를 숨기려 하였는데 그 結果로 나타난 優劣이 어떠했느냐. 이것은 歷史의 변함없는 龜鑑이다. 하물며 只今과 같은 世態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늙은 너의 아비가 바라는 바가 무엇이겠느냐. 보다 愼重에 愼重을 期하기 바란다.”

    ‘不忘碑’와 ‘不忘塔’

    구자경 LG명예회장이 옛 지수초교에 기증한 강당 상남관. [홍중식 기자]

    구자경 LG名譽會長이 옛 指數초교에 寄贈한 講堂 상남館. [홍중식 記者]

    옛 지수초 1층 왼쪽에는 K-기업가정신의 뿌리인 승산마을에 대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홍중식 기자]

    옛 지數秒 1層 왼쪽에는 K-企業家精神의 뿌리인 勝算마을에 對한 資料가 展示돼 있다. [홍중식 記者]

    상남관 내부는 K-기업가정신센터 개소에 맞춰 도서관으로 변모했다. [홍중식 기자]

    상남館 內部는 K-企業家精神센터 個所에 맞춰 圖書館으로 變貌했다. [홍중식 記者]

    許浚 先生을 비롯한 許氏 門中이 地域社會 發展에 크게 寄與한 것처럼 丘氏 門中도 지수면과 指數초교에 여러 足跡을 남겼다. 상남福祉會館과 指數초교가 代表的이다. 구자경 LG그룹 名譽會長이 會長으로 在職 때 父親 九人會 會長의 遺志를 받들어 2310㎡(700坪) 敷地에 13億 원을 들여 福祉會館을 建立해 當時 晉陽郡(現 晋州市)에 寄贈했는데, 指數面民들은 感謝의 뜻으로 福祉會館 名稱을 具滋暻 會長의 號를 따 상남으로 定하고 ‘不忘碑’를 세웠다. 沐浴湯과 어린이집, 工夫房과 게이트볼長 等 다양한 施設을 具備한 福祉施設은 指數面民은 勿論 隣近 진주시 사봉면과 反省面, 宜寧郡 住民까지 便利하게 利用하고 있다.

    옛 指數初校 敎師도 LG 創業主 燕巖 九人會 會長의 뜻과 精誠이 깃든 곳이다. 指數初校 敎師 바로 앞에는 燕巖 先生의 뜻을 기리기 위해 다음과 같은 ‘不忘塔’이 세워져 있다.

    “高 燕巖 九人會 先生께서 6.25事變 直後 收復 當時 爆擊으로 破壞된 우리 學校의 育成과 後進 敎育 與件 造成에 많은 溫情을 베풀어주신 그 維持를 럭키그룹 會長 具滋暻 先生께서 이어 繼續 推進해 주셨다. 그분의 높고 깊은 뜻을 永遠히 기리기 위해 여기 작은 精誠으로 不忘塔을 세운다.”

    指數初校를 卒業하고 晋州師範大를 卒業한 具滋暻 會長은 指數초교에서 暫時 敎鞭을 잡기도 했다. 丘 會長은 指數初校 敎師 新築뿐 아니라 當時로서는 劃期的인 講堂과 給食室을 指數초교에 建立해 寄贈했다. 丘 會長의 號를 따 상남館이라 이름 붙은 講堂은 現在는 超現代式 圖書館으로 탈바꿈해 地域 住民과 K-企業家精神센터를 訪問한 이들이 자유롭게 利用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충도 指數初校 總同窓會 事務總長은 “상남 先生은 校庭에서 蹴球하던 學生들이 講堂 琉璃窓을 깨뜨릴 걱정 없이 맘껏 뛰어놀라며 講堂의 모든 窓門을 防彈琉璃로 設置해 주셨다”고 回顧했다.

    智慧로운 물 智水

    효주공원(위)과 효주원 머릿돌. [홍중식 기자]

    효주公園(危)과 효주원 머릿돌. [홍중식 記者]

    指數初校 건너便 指數面事務所 옆에는 ‘효주원’이라는 마을公園이 자리 잡고 있다. GS 創業主 허만정 會長이 末年에 起居했던 집 바로 앞에 位置한 ‘효주원’은 故鄕을 사랑한 효주 허만정 先生의 뜻을 기리기 위해 夫人 하위정 女史가 造成했다. 以後 許 會長 子女들이 精誠을 보태 父親과 마을 住民들이 散策하며 休息을 取할 수 있도록 마을公園으로 寄附했다. 효주院은 낳고 기른 父母에 對한 애틋한 ‘孝心’과 함께 幼年 時節 맘껏 뛰놀며 배운 마을 共同體와 自身들이 가진 것을 나누려는 ‘베풂’의 精神이 깃든 空間인 셈이다.

    글로벌 大企業을 일군 허氏와 丘氏 創業主를 輩出한 勝山마을에서는 ‘내 것’에 執着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代身 勝算마을과 옛 指數初校 곳곳에는 ‘나’를 너머 ‘우리’를 向한 富者들의 ‘桶 큰 나눔 精神’李 깃들어 있었다.

    勝山마을이 屬한 지수면은 ‘지혜로운 물’을 뜻하는 ‘智水’다. 支神情 許浚 先生과 燕巖 九人會 會長은 智慧(智)롭게 財物(水)을 使用함으로써 ‘富者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눠 더 크게 만들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몸소 實踐한 先覺者가 아닐 수 없다.

    말씀도움 : 이충도 指數初校 總同窓會 事務總長. 장일영 晋州市 文化觀光解說師
    資料 : 智水(지수면地編纂委員會)




    구자홍 기자

    구자홍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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