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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在寅 5年, 소나기에 흠뻑 젖은 韓國 民主主義|新東亞

文在寅 5年, 소나기에 흠뻑 젖은 韓國 民主主義

[신기욱의 밖에서 본 韓半島] 文과 트럼프 逆走行, 尹錫悅과 바이든 키우다

  • 신기욱 美國 스탠퍼드대 社會學科 敎授·아시아 太平洋 硏究所長

    gwshin@stanford.edu

    入力 2022-04-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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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美 民主主義 退步 結果物

    • 自由主義 學習 못한 運動圈 勢力

    • ‘積弊淸算’은 鮮明한 포퓰리즘

    • 陳永 팬덤, 韓國的 ‘正體性 政治’

    • 尹, 江골檢査·反페미·反中 이미지 벗어야

    신기욱 美國 스탠퍼드대 社會學科 敎授는 歷史社會學, 政治社會學, 國際關係 分野 世界的 碩學이다. 韓美同盟, 東北亞 歷史, 南北關係 等에 對한 政策 課題를 遂行해 美國 워싱턴 政街에서도 知名度가 높다. 美國 및 유럽 有數 言論이 즐겨 引用하는 ‘韓半島 專門家’로 꼽힌다. ‘신동아’는 이番 號부터 새 連載 ‘신기욱의 밖에서 본 韓半島’를 始作한다. 안에서 보는 視角에 갇힌 韓半島論이 바깥으로 擴張되는 知的 즐거움을 膳賜할 豫定이다. <編輯者 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 2019년 9월 23일(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 뉴욕 인터콘티넨털 바클리 호텔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기 전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뉴욕=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尹錫悅 大統領 當選人(왼쪽). 2019年 9月 23日(現地 時間) 文在寅 大統領(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當時 美國 大統領이 美國 뉴욕 인터콘티넨털 바클리 호텔에서 韓美 頂上會談을 갖기 前 손을 맞잡고 記念撮影을 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記者, 뉴욕=박영대 동아일보 記者]

    海外에서 故國의 大選과 政權 引受 過程을 보는 마음은 多少 錯雜하다. 곧 새로운 政府가 들어서지만 希望과 期待로 마음이 설레기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더구나 2022年의 韓國과 2020年 美國의 狀況은 너무나 恰似해 놀랍기까지 하다. 美國 民主主義가 도널드 트럼프 政府 時期를 거치며 退步했다면, 韓國 民主主義 亦是 文在寅 政府를 거치며 後退해 왔다. 그 結果가 大選과 政權 引受 過程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尹錫悅號(號)는 果然 韓國 民主主義를 回復시킬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最近 10年間 進行돼 온 韓國 民主主義의 後退를 比較的 觀點에서 檢討하고, 새로 닻을 올리는 尹錫悅湖의 歷史的 使命을 外部의 視角에서 論하려 한다.

    2020年 美國과 2022年 韓國

    트럼프 對 反(反)트럼프 對立 構圖로 치러진 2020年 美國 大選처럼, 韓國 大選도 現 執權 勢力과 反對 勢力 間 極限 對峙 속에 치러졌다. 애初부터 政策 비전이나 이슈가 論議될 空間은 없었다. 野黨의 聯合戰線이 힘겹게 辛勝한 點도 비슷하다. 조 바이든이나 尹錫悅이 野黨 候補가 된 것은 새로운 비전이나 리더로서 魅力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들이 政權交替의 最適임자였기 때문이다. 韓美 大選에서 共히 極限 네거티브 켐페인이 氣勝을 부렸고 未來에 對한 靑寫眞보다는 現 政府를 審判하는 데 焦點이 모였다. 트럼프가 單任에 그쳤듯 더불어民主黨은 5年 만에 保守 野黨인 國民의힘에 政權을 넘겨줬다.

    두 番째는 選擧 初盤 樂勝이 豫想되던 트럼프가 敗北한 것처럼 韓國의 與黨 亦是 逆轉敗한 點이다. 2020年 初만 해도 트럼프의 再選은 無難해 보였다. 反面 當時 野黨이던 美國 민주당은 候補가 亂立한 狀況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레 들이닥친 팬데믹(pandemic·感染病 大流行)으로 因해 不利한 政治 環境이 造成됐고, 바이든을 總司令官으로 내세운 野黨 聯合軍에 政權을 내줬다. 韓國의 與黨인 민주당은 2018年 地方選擧, 2020年 總選 等 연이은 勝利로 손쉽게 政權을 再創出할 것으로 보였다. 一角에서는 ‘20年 執權論’까지 나왔다. 하지만 不動産 等 民生 政策의 失敗와 ‘내로남不’로 대표되는 道德的 解弛 等으로 民心이 離叛하면서 거센 政權交替의 바람을 克服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바람의 主役이 自身들이 任命한 檢察總長 出身의 候補였다는 點에서 與黨이 받은 衝擊은 더 클 것이다.



    세 番째는 大選 直後 새 政府의 運命을 가를 수도 있는 重要한 選擧가 있다는 點이다. 美國에서는 바이든 政府 出帆 直前 조지아州에서 上院議員 選擧가 치러졌다. 激戰 끝에 민주당이 2席 모두 席卷하면서 下院에 이어 上院을 掌握해 힘겹게 政局 運營의 動力을 確保했다. 韓國에서도 새 政府가 들어선 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時點인 6月 1日 地方選擧가 實施된다. 國民의힘은 大選에서는 辛勝했지만 國會에서는 與小野大 狀況에 處해 있다. 이에 이番 地方選擧 結果는 새 政府의 國政 運營 動力 確保 與否에 큰 影響을 미칠 것이다.

    네 番째는 選擧 敗北를 쉽게 認定하지 못하거나 政權 引受 過程이 매끄럽지 못한 點이다. 트럼프는 訴訟戰을 展開하며 끝까지 敗北를 認定하지 않았고, 極烈 支持者들이 武力으로 議事堂을 占據하는 初有의 事態가 發生했다. 韓國에선 開票가 끝나기도 前에 李在明 민주당 候補가 깨끗하게 承服했다. 이에 韓國이 美國보다 낫다는 安堵感과 希望을 가졌지만 大統領 執務室 移轉, 追更 豫算, 主要職 任命 等 重要 事案마다 新舊 權力이 衝突하며 政權 引受價 매끄럽지 못한 點은 美國과 엇비슷하다.

    마지막으로 法治主義라는 美名 아래 民主的 精神과 規範을 저버린 點이다. 트럼프가 그間의 政治的 慣行을 無視하고 選擧 直前에 大法官 任命을 强行한 것처럼, 文在寅 亦是 政權 移讓期에 監査委員 等 主要 職責을 임명하려 했다. 靑瓦臺의 抗辯처럼 아직은 現職 大統領에게 法的으로 任命提請權이 있는 것은 明白한 事實이다. 그러나 民主的 規範이나 慣行에 비춰보면 次期 大統領에게 權限을 移讓하거나 最小限 同意를 求한 後 任命提請 節次를 거치는 게 맞다.

    韓國 民主主義의 衰落(Democracy Decay)

    大選과 政權 引受 過程에서 나타난 混亂은 一時的 現象이나 偶然이라고 할 수 없다. 韓美 모두 지난 數年間 進行돼 온 民主主義 退步의 結果라는 點에서 深刻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美國 民主主義의 後退는 知識人 社會에서 매우 重要한 話頭다.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프랜시스 후쿠야마 (Francis Fukuyama) 等 筆者가 在職하는 스탠퍼드大 同僚 敎授들도 積極的으로 憂慮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筆者 亦是 그間 韓國 民主主義의 逆行에 對해 深刻한 注意를 기울여야 한다고 主張해 왔다. 2020年 4月號 ‘신동아’ 寄稿에서 韓國 民主主義가 ‘가랑비에 옷 젖듯’ 무너지고 있다고 警告했다. 그해 7月 美國 ‘民主主義 저널(Journal of Democracy)’에서 出刊된 論文에서는 이러한 韓國의 狀況을 ‘民主主義의 衰落(Democratic Decay)’이라는 槪念으로 整理한 바 있다.

    1980年代 後半 以後 아시아에서 先導的으로 民主化를 이끌어온 韓國은 2010年代 以後 民主主義가 退步하는 傾向을 보여왔다. 2013年 出帆한 朴槿惠 政府는 ‘朴正熙式 權威主義’로 後退했고, 結局 大統領 彈劾과 政府의 不名譽 退陣이라는 結果에 直面했다. 21世紀 韓國 社會에서 ‘朴正熙式 權威主義’라는 낡은 모델은 民主化되고 多元化된 市民社會와 내내 緊張할 수밖에 없었다.

    2016年에서 2017年에 걸쳐 進行된 촛불集會는 이러한 緊張關係의 分水嶺을 이뤘다. 1980年代 末 以後 韓國 民主化 過程에서 드러난 特徵이 촛불集會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그것은 ‘國家 對 市民社會의 對決 構圖’의 表出이었다. 卽 政治社會 內 政黨들 間의 對決 構圖라기보다 政治社會를 包含한 ‘國家 對 市民社會의 對決 構圖’였다. 當時 촛불集會를 통해 韓國의 市民社會는 權威主義 國家를 다시 한番 拒否하고 退出시킨 셈이다.

    問題는 촛불集會 以後 登場한 文在寅 政府의 統治였다. 스스로를 촛불革命 政府라고 自負했던 文在寅 政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이 民主主義와 다시 緊張을 이뤘고, 結局 民主主義의 後退를 가져왔다. 이番 大選과 政權 引受 過程에서 나타난 退行的 모습은 이런 歷史的 脈絡에서 理解해야 한다. 더욱 具體的으로는 民主主義 衰落을 가져온 다음의 세 가지 聯關된 이슈를 깊이 省察해 볼 必要가 있다 (*仔細한 論議는 筆者와 김호기 延世大 敎授가 編輯한 冊 ‘Korean Democracy in Crisis: Threats of Illiberalism, Populism, and Polarization’ 參照할 것).

    먼저 自由主義의 貧困이다. 筆者가 ‘韓國 民族主義의 系譜와 政治’라는 著書에서 論議한 대로 韓國은 近代로 履行하는 過程에서 植民地와 分斷을 겪으며 過度한 民族主義를 經驗했다. 集團의 論理와 團結의 힘을 强調하는 民族主義의 힘에 밀려 個人의 自律性과 權利를 强調하는 自由主義는 歷史的으로 뿌리내리기 어려웠다. 過去 權威主義 政權의 反共主義나 文在寅 政府의 國粹主義的 反日主義 모두 매우 剛한 吸引力을 가진 民族主義에 기댄 바가 크다.

    韓國이 1980年代 末 以後 法治的 民主主義를 이룬 것은 分明한 事實이고 過去의 權威主義로 回歸할 可能性은 稀薄하지만 自由民主主義(liberal democracy)를 確立했다고 하긴 어렵다. 政治學者 野샤 뭉크(Yascha Mounk)가 ‘國民과 民主主義(People vs. Democracy)’라는 著書에서 指摘했듯 法治主義(rule of law)가 반드시 自由 民主主義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法治主義라는 節次的 正當性을 確保한다고 해도, 民主主義 精神과 規範(democratic norm)李 지켜지지 않으면 自由民主主義는 維持될 수 없다. 하버드대의 政治學者인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랏(Daniel Ziblatt)李 ‘民主主義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라는 著書에서 한 警告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革命이나 쿠데타가 아니어도 民主主義 節次에 따라 選出된 指導者에 依해 民主的 規範이나 精神이 毁損되면 民主主義는 徐徐히 固辭한다.

    美國도 韓國도 例外가 아니다. 民主的 規範의 核心인 相互尊重(mutual tolerance)과 權力의 節制(forbearance)가 이뤄지지 않으면 形式的 法治主義만으로는 自由民主主義를 지킬 수 없다. 寬容과 妥協보다 憎惡와 對立의 政治가 앞서고, 權力 行事가 均衡이 아닌 濫用으로 미끄러지면 民主主義의 衰落은 必然的 結果가 된다.

    韓國의 境遇 不幸하게도 過去 民主化運動을 했던 勢力에 依해 民主主義가 後退하는 아이러니가 發生했다. 進步的 政治學者인 안병진 경희대 敎授에 따르면 文在寅 政府의 中樞를 이룬 이들은 獨裁政權과 싸워 民主化를 爭取하는 데는 貢獻을 했지만, 自由主義를 學習하거나 經驗할 機會가 없었다. 卽 個人의 自由와 權利, 相互尊重과 寬容 같은 自由民主主義의 規範과 精神을 內在化하지 못했다. 또 多數注意와 民主主義를 混同했다.

    韓國 民主主義 硏究의 權威者인 최장집 고려대 名譽敎授는 過去 運動圈 勢力은 政權을 잡은 後에도 野黨을 國政의 파트너로 삼기보다는 如前히 過去 獨裁政權과 싸우듯이 對하고 對立과 分裂의 政治를 했다고 一喝했다. 韓國 民主化 過程에서 重要한 役割을 擔當했던 進步的 市民社會는 權力 監視機構라는 本然의 모습을 버리고 靑瓦臺와 內閣에 布陣하며 權力의 파이프라인이 됐지만 不動産, 所得主導成長, 脫(脫)原電 等 政策 施行 結果는 悽慘한 失敗였다. 그럼에도 촛불革命 政府를 自處하며 철 지난 道德的 優越感에 醉해 野黨을 비롯한 反對 勢力을 舊惡으로 規定했다. 民主主義를 업그레이드하기는커녕 외려 退行시켰다. 韓國의 政治는 陣營論理에 따라 善과 惡의 진흙탕 싸움터로 變質됐다. 그 結果는 이番 大選에서 無限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더욱 克明하게 드러났다.

    韓國 政治의 포퓰리즘化는 民主主義 腐敗를 가져온 또 다른 重要한 要素다. 世界 곳곳에서 表出되는 21世紀 포퓰리즘은 그 以前의 人氣迎合的 포퓰리즘과는 性格이 다르다. 프린스턴대의 政治理論家人 뮬러(Jan-Werner Muller)는 21世紀 포퓰리즘의 特徵을 半(反)엘리트主義와 反(反)多元主義로 規定했다. 쉽게 말해 旣得權을 攻擊하는 것이 反엘리트主義라면, 다른 勢力과의 共存을 拒否하는 것이 反多元主義다. 反엘리트主義는 다시 政黨政治에 對한 嫌惡로, 反多元主義는 相對 政治勢力의 惡魔化로 나타난다. 여기에 情報社會의 進展과 소셜미디어의 發達로 포퓰리스트 리더와 支持者들 間의 直接 疏通을 可能케 한 ‘直去來主義’ 또한 21世紀 포퓰리즘의 主要 特徵이다. ‘트럼프注意’는 이런 21世紀 포퓰리즘의 代表 事例다.

    積弊淸算의 遺産

    文在寅 政府의 포퓰리스트的 性格을 가장 鮮明히 드러낸 것은 ‘積弊淸算’이다. 積弊란 ‘앙시앙 레짐’을 뜻한다. 낡은 秩序는 當然히 淘汰돼야 한다. 腐敗하고 不法을 저질렀다면 處罰받아 마땅하다. 問題는 政治社會와 市民社會 안에서 낡은 秩序와 새로운 秩序 사이의 境界가 模糊하다는 點이다.

    또 獨逸의 하버마스(Jurgen Habermas)가 말한 ‘自己制限性(self-limitation)’을 가져야 했다. 낡은 秩序를 解體하는 데 반드시 必要한 課題는 推進하되 可及的 빨리 마무리한 뒤 새로운 社會統合을 追求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文在寅 政府의 積弊淸算은 全方位的으로 오랫동안 持續됐고, 이 過程에서 多元的 自由民主主義를 위축시켰다.

    이番 大選은 이러한 政治社會 環境 속에서 치러졌다. 進步的 社會學者인 김호기 延世大 敎授의 主張처럼 이番 大選은 民主化 時代 以後 처음으로 民主主義 代 權威主義가 아닌 新舊 旣得權 間 싸움이라는 프레임을 形成했다. 妥協과 協治를 重視하는 傳統的 意味의 民主主義 指導者보다, 汝矣島 政治 文法과 距離가 멀고 半(反)旣得權 勢力과 싸우는 아웃사이더 ‘스트롱맨’을 選好했다.

    스트롱맨은 對話와 朝廷의 政治力보다 決斷과 推進의 實行力을 重視한다. 李在明, 尹錫悅이 與黨과 第1野黨의 候補가 된 것은 偶然이 아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相對方을 ‘낡은’ 旣得權 勢力 또는 ‘새로운’ 旣得權 勢力이라고 攻擊했고, 相對方과의 共存을 拒否했다.

    進步의 팬덤政治, 保守의 젠더政治

    2008年 金融危機 以後 地球 次元의 話頭는 不平等, 다시 말해 經濟的 兩極化의 江華였다. IMF(國際通貨基金)나 OECD(經濟協力開發機構) 모두 經濟的 兩極化 解消의 重要性을 力說했다. 그런데 經濟的 兩極化 못지않게 注目할 대목은 政治的 兩極化다. 經濟的 兩極化와 銅錢의 다른 面을 이루는 政治的 兩極化에 全 地球가 몸살을 앓고 있다. 韓國도 이러한 흐름에서 自由롭지 못하다. 앞서 指摘한 自由主義의 貧困과 포퓰리즘의 負傷은 政治的 兩極化를 促進했다. ‘文빠(文在寅 大統領의 熱誠 支持 그룹)’와 太極旗 部隊, 瑞草洞 臺 光化門 集會로 나타난 極烈한 對立은 政治的 兩極化가 韓國의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個人 間, 集團 間 相互 不信이 커지고 黑白論理와 陣營論理가 得勢하며 곳곳에서 民主主義 後退의 徵候가 나타났다. 求同存異(求同存異)나 ‘Agree to disagree’라는 多元的 規範은 사라지고 오직 內篇과 네 篇만이 存在할 뿐이다. 非自由主義와 포퓰리즘에 內在한 反多元主義와 反엘리트主義의 結果, 政治社會는 共通의 情緖와 信念으로 武裝한 陣營이 벌이는 權力 爭取를 위한 無慈悲한 戰爭터로 轉換된다. 勝者獨食의 莫强한 大統領制를 갖고 있는 韓國에서 政權 再創出이냐 政權交替냐의 프레임의 强度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陣營 戰爭은 헌터(James Hunter)가 槪念化한 ‘文化戰爭’이나 후쿠야마가 指摘한 ‘正體性의 政治’로 具現된다. 헌터는 ‘決定的 이슈들(hot button issues)’, 예컨대 落胎·正敎 分離·同性愛·銃器 素地 等을 爭點으로 美國 社會가 둘로 나뉘었다고 分析한 바 있다. 文化戰爭의 原因이나 樣相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不平等에 對한 經濟·社會 政策, 少數者에 對한 社會·文化的 包容, 勝者獨食이냐 合意注意냐의 政治制度 間 差異가 그 樣相과 强度를 決定한다.

    이러한 文化戰爭은 ‘正體性의 政治’로 나타나면서 엄청난 爆發力을 發散한다. 正體性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質問에 應答하는 事由·感情·理念을 뜻한다. 宗敎, 人種, 民族, 젠더에 이르기까지 自身의 正體性을 構成하는 要素가 毁損되는 現實에 憤怒하고 抵抗하는 正體性의 政治가 旣存 制度政治를 代替하고 있다. 이는 21世紀에 두드러진 現象이다.

    이러한 正體性의 政治를 考慮할 때에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政治的 팬덤注意’를 제대로 讀解할 수 있다. 21世紀 脫眞實(post-truth)의 時代에는 客觀的 事實보다 主觀的 信念이 重要하다. 政治·文化的 正體性을 構成하는 主觀的 信念은 經濟的 利益 못지않게 市民들의 思考와 行爲에 決定的 影響을 미친다.

    韓國에서도 文化戰爭이나 正體性 政治의 强度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進步陣營의 팬덤政治, 保守陣營의 젠더政治도 이런 脈絡에서 볼 때 놀라운 일은 아니다. 陣營 間 팬덤은 노사모-文빠-개딸이나 박사모-太極旗部隊-이대남 等으로 進化하고 있다. 寬容과 共存, 妥協의 地帶는 漸漸 狹小해지고 있다. 이番 大選의 成敗가 0.73%포인트라는 間髮의 差異로 갈린 點은 兩極化된 韓國의 모습을 赤裸裸하게 보여준다. 政權 延長이냐 交替냐를 놓고 韓國 社會는 完全히 ‘두 個의 나라’로 쪼개진 것처럼 보였고, 兩極化의 深化는 韓國 民主主義의 展望을 어둡게 하고 있다.

    5年 前, “機會는 平等, 過程은 公正, 結果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한 番도 經驗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文在寅 政府, 앞의 말은 틀렸지만 뒤의 말은 맞았다. 韓國은 한 番도 하지 못한 새로운 經驗을 하고 있다. 그 結果로 가랑비에 젖어가던 韓國의 民主主義는 이番 大選 동안 소나기에 흠뻑 젖었다. 어쩌면 巨大한 颱風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스트롱맨 이미지 尹, 改善 必要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이 3월 28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을 하기 위해 녹지원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文在寅 大統領과 尹錫悅 大統領 當選人(왼쪽)李 3月 28日 靑瓦臺 常春齋에서 晩餐 會同을 하기 위해 綠地원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다. [靑瓦臺 寫眞記者團]

    與黨이 上·下院을 掌握한 바이든에 比해 尹錫悅은 훨씬 더 劣惡한 條件에서 任期를 始作하게 됐다. 與小野大의 國會는 勿論 進步的 市民團體, 勞動界 等의 ‘거리 政治’와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政治 베테랑인 바이든에 比해 尹錫悅의 政治力은 아직 證明되지 않았다. 적어도 海外에 비치는 政治指導者로서의 尹錫悅의 이미지도 아직은 그다지 肯定的이지 않다. 그는 江골檢査, 半(反)페미, 半(反)中國으로 投影되고 있다. 바이든과 같은 傳統的 意味의 自由民主主義 指導者像과는 距離가 멀다. 스트롱맨의 이미지가 候補가 되는 데는 도움이 됐는지 몰라도 民主社會를 運營해 나가는 政治指導者로선 바람직하지 않다. 尹錫悅이 國際社會에서 리더로 活躍하기 위해선 이미지 改善은 勿論 이를 뒷받침할 政策 마련이 時急하다.

    于先 尹錫悅은 政治 基盤이 脆弱할 뿐 아니라 海外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人物이다. 지난여름 政治에 뛰어든 後 選擧 過程을 거치며 빠르게 政治人으로 變身하고 있지만 如前히 檢察總長의 모습이 더 어울릴 때도 많다.

    그는 腐敗 淸算과 權力에 屈하지 않는 剛直한 檢事로 人氣를 얻었고 大統領이 됐다. 多元化된 民主社會에선 最高 指導者의 快刀亂麻式 結晶이 여러 副作用을 낳을 수 있다. 大統領 執務室 移轉 問題만 해도 非協調的인 靑瓦臺가 못 마땅해도 輿論을 收斂하고 現 政權의 支援을 얻는 努力을 充分히 했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國政을 遂行하는 데 巨大 野黨과 進步的 市民社會의 莫强한 牽制와 거센 挑戰을 甘受하려면 輿論 收斂, 政治的 協商, 朝廷과 妥協, 權力 使用을 節制할 줄 아는 政治的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任命職 官僚인 檢査와 選出職 政治人인 大統領은 그 役割과 任務가 다르다.

    尹錫悅 政府가 文在寅 政府의 失敗를 踏襲하지 않으려면 ‘法과 原則’을 强調하는 것만으로는 充分치 않다. 法治主義는 民主主義의 必要條件이긴 하지만 充分條件은 아니다. 法治主義에 터를 잡되 相對를 認定하는 寬容과 權力의 節制 等 民主主義 精神과 規範에 對한 깊은 省察과 剛한 實踐 意志가 있어야 한다. 相對를 惡으로 規定하고 處罰하는 神(新)積弊淸算의 誘惑에서 벗어나야 한다. 忍耐를 갖고 國民과 野黨을 說得해야 한다. 求同存異의 姿勢로 國政을 運營해야 한다. 萬若 一部에서 憂慮하듯 새 政府 出帆으로 旣存의 ‘運動圈 共和國’이 ‘檢察 共和國’으로 變한다면 韓國의 民主主義는 더욱 後退하고 말 것이다. 文在寅 政府의 失敗에서 敎訓을 얻어야 한다.

    半(反)페미니스트 이미지에서도 하루速히 벗어나야 한다. 女性家族部 解體를 公約하는 等 젊은 男性들의 票를 얻겠다는 젠더 戰略은 女性票의 離脫을 가져와 結局 成功하지 못했다. 외려 尹錫悅의 ‘反페미’ 이미지만 强化시켰다. 尹錫悅 側에선 민주당과 進步言論의 프레임이라 抗辯할지 모르지만 海外에서 보는 視角은 그렇지 않다. 實例로 프랑스 有力 通信社인 AFP는 韓國 大選 直後 올린 첫 記事에서 尹 當選人을 “反페미 政治 新人”으로 規定했다. 많은 國際 言論도 비슷한 論調를 이어갔다. 글로벌 社會에서 페미니즘이나 性正體性 問題는 매우 敏感한 이슈다. 反페미 이미지가 固着化할 境遇 글로벌 리더로 國際 舞臺에서 活躍하는 데 큰 制約이 된다.

    마지막으로 國粹主義的 半(反)中國의 이미지를 克服해야 한다. 베이징 冬季올림픽 開幕式에서 朝鮮族의 韓服 着用이 論難이 됐을 때 反中國 情緖에 便乘한 것이나 當選이 되면 사드(THAAD·高高度미사일防禦體系)를 더 配置하겠다고 한 强勁 發言 等은 신중하지 못했다. 2002年 大選에서 노무현 候補가 反美 情緖를 刺戟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이로 인해 노무현 政府 初期 韓美關係는 어려운 時期를 보내야 했다. 文在寅 政府가 ‘土着倭寇’ 云云하며 反日 感情을 政治에 利用한 것처럼 尹錫悅 政府가 反中 情緖를 政治에 活用하려는 誘惑에 빠져선 안 된다. 文在寅 政府에서 韓日關係가 最惡에 빠진 것을 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아무리 國民 情緖가 重要하고 中國이 못마땅한 點이 많다 해도 國益 次元에서 차분하게 接近해야 한다. 尹錫悅이 强調하는 實用主義가 外交·安保 分野에도 適用돼야 한다.

    海外서도 韓 民主主義 지켜본다!

    2020年 美國의 바이든처럼 2022年 韓國의 尹錫悅은 社會的 分裂과 政治的 葛藤을 治癒할 宿題를 附與받았지만 政權 引受 過程에서부터 區 權力과의 破裂音이 커지며 執權 初 허니문은 期待하기 어렵게 됐다. 執權 初 70%臺의 支持率을 謳歌하던 前任 政府들과는 달리 尹錫悅 政府에 對한 國民의 期待値도 50%에 못 미치고 있다.

    이는 트럼프의 再執權을 막는 데는 成功했지만 政治, 政策 모두 苦戰하는 바이든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執權 2年째를 맞는 그의 支持率은 40%에 머물며 트럼프에 이어 歷代 두 番째로 最低値다. 이대로 가면 11月 中間選擧에서 敗할 可能性이 크고, 바이든의 失敗가 트럼프를 다시 白堊館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는 憂慮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尹錫悅의 當選이 政權交替를 가져왔지만 반드시 韓國 保守의 勝利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尹錫悅 政府의 失敗는 左派 政府의 復活을 가져올 수 있다. 尹錫悅의 歷史的 使命이 크다.

    이番 大選은 海外 言論에서도 큰 注目을 받았다. 筆者가 인터뷰한 外信만 해도 유럽의 有數한 中道·리버럴 雜誌인 獨逸 ‘슈피겔’, 英國 ‘뉴 스테이츠먼’과 ‘가디언’, 스웨덴의 公營放送 等이 있는데, 이들은 韓國 大選과 關聯한 特輯 分析 記事를 냈다. 西歐 知識人 社會의 談論을 主導하는 이들이 注意 깊게 본 點은 現 政府에서 任命된 檢察總長 出身의 野黨 候補 當選이 韓國 民主主義의 未來에 어떤 意味가 있는지 與否다. 美國과 유럽을 비롯한 西歐 社會에서 民主主義가 威脅에 處해 있는데, 東아시아 民主化의 先導國이던 韓國이 果然 民主主義를 回復할 수 있을지에 對한 關心이 큰 것이다.

    韓國 民主主義를 조금씩 적셔가던 가랑비는 大選과 權力 移讓 過程에서 거친 소나기로 變했다. 尹錫悅號가 그동안 毁損돼 온 韓國 民主主義를 惡性 豪雨에서 救해낼 수 있을지 海外 言論과 知識人 社會에서도 關心 있게 지켜볼 것이다. 筆者의 ‘신동아’ 連載는 英語로도 飜譯해 海外에 널리 알리려 한다. 이를 통해 國內外 知識人들 間에 主要 談論과 이슈를 놓고 建設的 討論과 論爭이 있기를 期待해 본다.


    신기욱
    ● 연세대 社會學科 卒業, 美國 워싱턴代 社會學 席·博士
    ● 美國 아이오와대, UCLA 敎授
    ● 現 美國 스탠퍼드대 社會學科 敎授 및 아시아·太平洋硏究所長
    ● 著書 : ‘슈퍼피셜 코리아: 華麗한 韓國의 貧困한 風景’  ‘韓國 民族主義의 系譜와 政治’ ‘하나의 同盟, 두 個의 렌즈’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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