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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回 京畿 安山도, 移住民의 섬
京畿 安山도, 移住民의 섬
發刊일 2022年 1月 17日
조나단의 世界는 두 坪 원룸이 全部였다.
어린이집들이 番番이 入所를 拒否하자
移住 속의 移住를 敢行한다.
結局 移住民들은 安山으로 收斂한다.

“九十七, 구십팔, 九十九, 백!” 2021年 12月 6日 京畿 안산시의 한 어린이집 隣近 놀이터. 그네 타기에 한창인 조나단(假名·6)은 韓國語로 크게 數字를 외쳤다. 엄마 와티(假名·39) 氏가 등을 밀어줄 때마다 拍子 맞춰서. 조나단은 인도네시아人 夫婦가 낳은 아이다. “스낭 다탕 크 테카(어린이집 오니까 좋아)? 푸냐 트만 바냑 디 테카(어린이집에 親舊 많아)?”(와티 氏) “이야 스낭(응 좋아). 바냑(많아요).”(조나단) 어린이집은 조나단이 가장 좋아하는 場所다. 조나단은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짹짹이’가 된다. 짹짹이는 어른들이 붙여준 別名이다. 조나단이 好奇心도, 말도 많아서다. 韓國語가 서툰 엄마, 아빠에게 韓國語도 가르쳐준다. “나 化粧室 가요.”(와티 氏) “‘갔다 올게요’라고 해야지.”(조나단) “간지러워.”(아빠) “‘가려워’가 맞아.”(조나단) “어린이집에서 실컷 놀며 에너지를 쏟고 와서 그런지 집에서 잠도 잘 자요. 짜증도 덜 내고요.”(와티 氏) 어린아이를 가진 父母에게는 익숙한 風景이다. 하지만 조나단과 와티 氏는 어렵게 얻어낸 幸福이다. 이들에게는 迂餘曲折이 많았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인도네시아를 떠난 夫婦는 京畿 수원시에 定着했다. 水原은 ‘第2의 故鄕’이 됐다. 하지만 안산시로 다시 떠나야 했다. ‘移住 속 移住’를 敢行해야 했다.

조나단은 인도네시아人 夫婦 舊스티(假名·41) 氏와 와티 氏의 아들이다. 夫婦가 結婚한 지 13年 만인 2016年 5月 수원시에서 낳았다. 조나단이 未登錄 移住兒童이 된 건 夫婦의 國內 비자가 滿了돼서다. 父母가 비자 更新에 失敗하면서 ‘韓國밖에 모르는’ 조나단은 韓國에 滯留할 수 없는 身分이 됐다. 透明人間처럼 살게 됐다. 수원시의 두 坪 남짓한 원룸房. 保證金 300萬 원에 月貰 38萬 원짜리인 조나단 家族의 보금자리. 조나단에겐 이곳이 世界의 全部였다. 未登錄 身分 탓에 어린이집도, 文化센터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나단이 萬 1世가 될 때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걷기 始作하니 집이 漸漸 좁게 느껴졌다. 와티 氏는 조나단을 操心스럽게 데리고 다녔다. 조나단은 다치면 病院조차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洞네 놀이터, 傳統 市場, 어디를 데리고 가든 다칠까 봐 怯이 났어요. 비자가 滿了되고 나서는 保健所에서 豫防 接種조차 拒否當했거든요.” 인도네시아에서 온 信徒들이 다니는 水原의 한 敎會가 그나마 安全한 空間이었다. 비슷한 處地의 未登錄 外國人들이 있었고, 인도네시아語로 疏通할 수 있었다. 이젠 敎會마저 자주 가기 어려워졌다. 2020年 初부턴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擴散으로 出入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며 원룸은 더욱 비좁게 느껴졌다. 아이의 活動 幅이 넓어졌다. 조나단이 말하고 뛰어다니는 데 익숙해진 세 살 무렵이었을까. 와티 氏의 몸과 마음도 지쳐버렸다. 生計까지 어려웠다. 日傭職 勞動者인 구스티 氏의 所得은 일정치 않았다. 한 달에 80萬 원밖에 못 벌 때도 있었다. 와티 氏도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조나단을 맡길 어린이집이 없었다. 食堂에서 門 열기 前 淸掃하는 일을 求한 적은 있다. 午前 7時부터 午前 10時까지 淸掃를 했다. 조나단을 乳母車에 태워 놓고서. 이마저도 코로나19로 3個月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집에서 인도네시아 飮食을 만들어 팔아보려 했지만 놀아 달라고 떼를 쓰는 조나단을 堪當하기가 어려웠다. “繼續 밖에 나가자고 해요. 집에선 TV와 스마트폰만 보려 하고요. 저는 冊이라도 보여주려다가 싸우죠.” 조나단은 인도네시아語로는 말이 많은 아이였다. 그런데 洞네 놀이터에서 만난 韓國人 親舊들에게는 다가가지 못했다. “같이 놀고 싶어 하면서도 어려워하더라고요. 말이 안 통해서 더 그랬던 거 같아요.” 水原 敎會의 先生님 金某 氏는 어린이집을 解決策으로 提案했다. 韓國語를 배우고 親舊들도 사귈 수 있는 空間. “未登錄 이주아東이지만 敎育받을 權利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야말로 꿈이었죠.” 와티 氏 代身 어린이집을 알아봐 준 金 氏가 當時를 回想했다.
“세 살짜리 未登錄 아이가 있는데 받아줄 수 있나요?” “未登錄이 뭐예요?” “父母님이 不法 滯留하는 분의 아이요.” “어휴 저희는 안 돼요.” 單칼에 拒絶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돈을 잘 낼 수 있다’는 말은 입가에만 맴돌았다. “對話가 돈 얘기까지 가지도 않아요. 純化시켜서 ‘未登錄’ 아이라고 하면 어린이집에선 무슨 말인지 몰라요. 그러다 ‘不法 滯留者’라고 하면 氣怯하며 電話를 끊는 패턴이 反復됐죠.”(김 氏) 그렇게 拒絶當한 어린이집이 10餘 곳에 達했다. 어느새 3年이 흘렀다. 와티 氏도 조나단이 繼續 透明人間처럼 지내는 게 싫었다. 2019年 末부터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計劃도 세웠다. 飛行機 篇을 알아보고 짐까지 다 쌌다. 그런데 突然 코로나19街 터졌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코로나 確診者가 增加하고 있었다. “조나단에게 韓國이 더 安全할 것 같았어요. 더 머물 수밖에 없었어요.”(와티 氏)
“未登錄 移住兒童을 받아주는 어린이집이 安山에 있대요.” 조나단의 안타까운 事情을 보던 交友 金某 氏가 代案을 내놨다. 안산시로 아예 移徙를 하는 것이다. “安山에는 未登錄 移住兒童들을 받아주는 어린이집이 많았어요. 保育料를 아예 안 내도 되는 곳도 있고, 조금 싼 곳도 있었어요.”(김 氏) 安山市에는 外國人住民相談志願센터, 글로벌靑少年센터 等 外國人 父母들이 情報를 얻기 쉬운 곳들이 많다. 保育과 敎育 與件이 좋은 便이다. 案山은 移住民 學父母들의 ‘대치동’인 셈이다. ‘인도네시아에서 水原으로 移住해 겨우 定着했건만 水原에서 安山으로 또 移住해야 하다니.’ 移住에 이어 移住를 하긴 正말 쉽지 않았다. 水原에서 쌓아온 걸 모두 버려야 했다. 保健所에서 未登錄이란 理由로 豫防 接種을 拒否當한 조나단을 받아준 病院, 育兒用品이 모자란 조나단에게 用品을 물려주던 집主人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와티 氏는 勇氣를 냈다. 이미 5年째 살아 ‘第2의 故鄕’李 된 水原이지만, 조나단의 어린이집 入所가 가장 重要했다. 安山의 한 어린이집이 2021年 5月 28日부터 조나단을 받아주기로 했다. 安山에서 求한 집에 入住할 수 있는 날짜는 2021年 6月 8日. 조나단의 어린이집 入所日보다 10日假量 뒤였다. 와티 氏는 조나단을 데리고 水原 집에서 安山 어린이집까지 地下鐵로 往復했다. 地下鐵과 徒步로 1時間씩, 往復 2時間이 걸렸다. 조나단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近處에서 기다려야 했다. “‘安山 適應’을 練習했어요. 제가 좀 길치거든요. 새로운 집과 어린이집 近處 길을 映像으로 찍어서 외웠어요. 아직 安山에는 親舊가 없어요. 週末에 水原 敎會를 가서 敎人들을 만나요.”(와티 氏)
水原의 一部 어린이집들이 조나단을 拒否한 理由는 다양하다. 于先 韓國人 子女들이 많은 어린이집은 굳이 移住兒童을 받을 必要性을 못 느낀다. 韓國 學父母들의 反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수원시에서 移住兒童은 韓國人 兒童과 달리 保育費 支援을 全혀 받지 못한다. 父母가 保育料 全額을 내야 한다. 未納하면 어린이집 財政에 問題가 생길 수 있다. 移住勞動者人 父母는 일자리가 不安定한 便이라 保育料를 밀린 채 달아날 수 있단 視角이 있다. 水原市 어린이집 200餘 곳을 會員으로 둔 水原어린이집協議會 側은 未登錄 兒童에 難色을 표했다. “外國人 兒童은 水原市廳이 電算시스템에 直接 登錄해 줘야 入所할 수 있어요. 어린이집이 마음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未登錄 兒童은 團體 傷害保險에 加入도 안 됩니다. 或是라도 다치면 補償을 못 받는 點도 負擔입니다.” 安山의 狀況은 달랐다. 未登錄 移住兒童의 入所를 許容하는 곳이 여럿 있었다. 非政府機構(NGO)가 運營하는 一部 어린이집은 아예 保育料를 받지 않았다. “아이는 登錄이든 未登錄이든 差別받지 않고 敎育받을 權利가 있어요. 안산시도 未登錄 兒童은 保育料를 支援하지 않아요. 그런데 父母가 돈을 낼 수 있다고 하면 똑같이 機會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안산의 한 어린이집 院長) 이 어린이집은 조나단 父母의 旅券과 조나단의 出生證明書만 確認하고 入所를 許諾했다. 全體 兒童의 90% 以上은 移住背景 兒童이어서 先入見이 없었다. 保育料를 未納한 外國人 父母들을 督勵해 본 經驗도 있었다.
幸福했던 期間은 한 달에 不過했다. 코로나19 擴散으로 같은 해 7月 初 어린이집 登院이 全面 中斷됐다. 맞벌이 父母 等 특수한 境遇에만 아이들을 돌봐주는 緊急 保育이 始作됐다. 조나단은 어린이집에 갈 수 없었다. 어린이집이 父母님의 在職證明書를 要求했지만, 비자가 滿了된 舊스티 氏는 在職證明書를 提出할 수 없었다. 每月 所得이 일정치 않아 在職證明書를 代身할 만한 月給 明細서도 내지 못했다. “조나단 아빠가 雇用됐던 企業이 不渡났고, 以後 새로 옮긴 會社에서도 일감이 없어서 繼續 會社를 옮겨 다녔어요.”(목사 아구스 氏(假名)) 이 渦中에 와티 氏에게 둘째가 생겼다. 와티 氏는 입덧이 심해지자 病院 診斷書까지 받아 어린이집에 냈다. ‘제발, 아이를 받아주세요.’ 懇切한 마음이었지만 所用이 없었다. “詩 매뉴얼을 따라야 했어요. 코로나 確診者가 많이 나오는 地域이라 (詩 側에) 저희만 봐달라며 (入所를 許容)할 수가 없었어요.”(안산 어린이집 園長)
2021年 11月 12日. 工事 中인 어린이집을 찾은 조나단은 와티 氏의 손을 잡고 正門 近處에서만 서성였다. 멀찍이 서서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조나단, 어린이집이네. 어린이집 다시 가고 싶어?” 와티 氏가 말을 걸었지만, 조나단은 어린이집을 쳐다보기만 했다. 어린이집은 낯선 모습이었다. 시멘트 外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工事 廢棄物이 자루에 담겨 入口에 잔뜩 쌓여 있었다. 조나단이 없는 사이 全面 리모델링 工事에 들어간 것이다. 緊急 保育 對象인 어린이들은 臨時로 마련된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 조나단은 어린이집 親舊들을 보고 싶지만 어린이집이 어딘지 알 수도 없다.
두 坪 원룸에 다시 갇히다
조나단은 安山의 房 한 칸짜리 원룸에 다시 孤立됐다. 어른 네 名이 앉으면 꽉 차는 空間. 조나단은 이곳에서 먹고 자는 것은 勿論이고 工夫와 놀이까지 다 解決해야 한다. 親舊는 結局 엄마뿐이다.
와티와 조나단이 사는 원룸 內部를 클릭해 살펴보세요.
소파
玄關
부엌
Asset 6
집에서 500m 距離에 있는 公園이 조나단의 唯一한 놀이터다. “公園에 나가자.” 와티 氏의 말에 조나단은 재빨리 일어섰다. 모래놀이龍 삽과 桶을 들고서. 날씨가 좋을 땐 一週日에 두 番 理想을 찾는다. 하지만 겨울엔 이마저도 어렵다.
京畿 안산시의 한 公園을 찾은 와티 氏와 조나단.
와티 氏는 未登錄 身分으로, 낯선 安山이란 都市에서 더욱 움츠러든다. 어느 날 조나단이 熱이 많이 났다. 水原에서라면 자주 가던 病院을 찾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와티 氏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느 病院이 未登錄人 우리를 받아줄까.’ 다른 곳도 함부로 갈 수가 없다. 조나단은 冊을 좋아하지만 地域 圖書館을 아쉽게 지나치기만 한다.
와티 氏 帽子는 둘 다 韓國語가 서투르다. “쉬 안 가? 쉬 안 갈래?” 와티 氏가 韓國語로 묻자 조나단은 “응”이라고만 했다. 서툰 韓國語를 듣고 자란 조나단의 韓國語도 더디다. “조나단이 여섯 살인데 韓國語 水準은 두 살 程度로 보여요. 놀 때 單語들만 말해요. 文章을 만들어서 自己 意思를 傳達하는 건 아직 안 돼요. 인도네시아 말은 되게 잘해서 ‘짹짹이’라고 別名을 붙여 줬을 程度인데 말이죠.” 조나단 家族을 돕고 있는 인도네시아人 牧師 아구스 氏는 조나단의 言語 能力이 걱정이다. 社會性도 떨어지고 있다. 조나단은 火를 주체하지 못하고 모든 걸 自己 마음대로 하려고 했다. “漸漸 애 같지 않아졌어요. 애들은 울거나 떼를 쓰는데 조나단은 어른들처럼 火를 내더라고요. ‘너 가만히 안 둘 거야’ 같은 險惡한 말을 해요. 表情도 어른들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하는 것을 따라 해요.”(와티 氏)
京畿 水原의 단골 魚묵집을 찾은 와티 氏와 조나단(왼쪽 寫眞). 水原의 敎會에서 드럼을 갖고 노는 조나단.
조나단이 韓國을 떠나 인도네시아로 가면 모든 게 解決될까. 조나단은 單 한 番도 인도네시아를 가본 적이 없다. “조나단, 보고 싶어. 인도네시아로 와.” “제 집은 韓國이에요. 인도네시아 안 가요.” 조나단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映像으로만 만나봤다. 그럴 때마다 조나단은 分明히 線을 긋는다. 韓國에서 살고 싶다고. 조나단과 비슷한 處地의 아이들은 많다. 조나단이 다니는 敎會만 해도 未登錄 移住兒童 미카엘(假名·3)과 안나(假名·2)가 있다. 韓國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다. 미카엘과 안나의 父母들도 어린이집에서 繼續 拒否를 當했다. 이제 水原에서 安山으로 理事를 苦悶 中이다. 國家人權委員會에 따르면 國內 未登錄 移住兒童은 約 2萬 名 規模로 推算된다. 人權團體는 規模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豫想한다. 外國 國籍 兒童은 出生 登錄을 하지 않아 統計에 잡히지 않은 兒童들이 있을 수 있다. 이 아이들이 갈 곳은 安山뿐이다. 안산시는 2018年 京畿道에서 처음으로 市 豫算으로 登錄 外國人 住民 子女에게 保育費를 支援하기 始作했다. 2020年에는 全額 支援을 實施하기로 決定했다. 지난해부터 누리過程 保育費 24萬 원을 全額 支援하고 있다. 어린이집들이 保育費 支援을 받으니 移住兒童들도 入所하기 수월해졌다. 狀況이 이렇다 보니 移住民 家族들은 安山으로 收斂한다. 案山은 移住民이 모이는 섬 같은 곳이 됐다. 京畿道의 移住兒童 保育 實態를 調査한 이영아 아시아義昌 常任理事는 移住民 保育 政策이 安山 外의 地域에서도 擴大돼야 한다고 强調한다. “外國人 兒童이 늘어난다는 건 韓國에서 家族을 形成해 살아가는 移住民들이 많아진다는 얘기입니다. 保育 政策은 家族 全體를 도울 수 있어요. 保育費를 支援하는 地方自治團體가 늘어나야 합니다.”
結局 돌고 돌아 安山으로
安山의 ‘移住民 인프라’를 찾아 또 다른 移住를 하는 移住民들은 조나단뿐만이 아니다. 올해 高等學校에 入學하는 누르街셰프 아딜벡(16)은 카자흐스탄에서 온 少年이다. 열 살 때인 2015年, 高麗人 3歲인 어머니를 따라 安山에 왔다. 카자흐스탄 經濟가 惡化돼 더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딜벡 家族은 4年 만에 安山에서 忠北 淸州로 移徙하게 됐다. 아버지가 職場을 淸州로 옮겨서였지만 事實 安山에 남으려면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딜벡은 移住民이 많은 安山 밖 다른 地域에서 스스로 實力을 알아보고 싶었다. “工夫도 熱心히 하고 韓國語도 잘하고, 適應을 잘했어요. 그래서인지 ‘韓國 아이들과 제 實力으로 競爭하고 싶다’는 말도 했었죠.”(임미은 先日中 敎師) 아딜벡이 다니던 安山 先日中은 移住背景 學生이 全體의 50%를 넘는다. 하지만 淸州의 學校에선 移住背景 學生이 한 學年에 서너 名 程度뿐이었다. 아딜벡이 처음 겪어보는 環境이었다. “처음에 애들이 엉덩이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거는 거예요. 카자흐스탄에선 絶對 男子들끼리 密接한 接觸을 안 하거든요. 安山에선 韓國 애들도 中央아시아 出身 애들이 싫어하는 걸 잘 아니까 그런 장난 안 쳐요.” 아딜벡은 文化的 差異에 唐慌했다. 이른바 ‘一陣’ 같은 親舊들은 赤裸裸하게 對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 아딜벡은 갑작스러운 性的 下落에도 唐慌했다. 轉學 온 淸州 學校에서 본 中間考査 點數는 平均 60點臺였다. ‘元來 班에서 3等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는데….’ 試驗 難度가 높아지며 脆弱한 韓國語 實力이 발목을 잡았다. “2學年 되고 나서 놀긴 했지만…. 社會 같은 科目에선 제가 別로 안 좋아하는 敍述形이 正말 많이 나오더라고요.” 아딜벡은 精神이 번쩍 들어 工夫에 매달렸다. 多幸히 이듬해에는 平均 80點 後半까지 點數를 끌어올렸다. 이番엔 高等學校 進學이 問題였다. 아딜벡은 經營 分野에 特化된 特性化高에 가고 싶었다. 카자흐스탄 證券業界에서 일했던 아버지처럼 金融界 進出을 꿈꾸고 있다. 이미 中學校 1學年 때부터 株式 工夫를 始作할 程度로 關心이 많다. 特性化高를 가면 衣類 事業도 試圖해 보고 싶다. 하지만 淸州 近處에는 그런 特性化高가 없었다. 進路 選擇을 相談하고 비자 問題를 相議할 곳이 없는 點도 問題였다. 安山의 선일中엔 多文化部가 따로 있었다. 러시아語에 能通한 先生님이 비자 問題를 詳細히 案內해줬다. 一般 先生님들도 移住背景 學生에게 익숙해 ‘맞춤型 進路相談’을 해주곤 했다. 高等學校에 進學한 移住背景 先輩들도 있어 쉽게 助言을 求했다. 하지만 淸州에선 이 모든 걸 아딜벡이 알아서 해야 했다. 아딜벡 家族은 1年도 채 되지 않아 安山으로 돌아왔다. 結局 安山밖에 答이 없다. 이렇게 移住民들은 安山으로 收斂된다. 案山은 移住民의 섬이다.
섬이 징검다리가 되려면
安山 아이들이 다른 地域으로도 건너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려는 試圖도 있었다. 2019年 京畿道議會에서는 ‘京畿道 移住兒童 條例’가 發議됐다. 條例案은 移住兒童을 ‘大韓民國의 國籍을 가지지 아니한 18歲 未滿의 사람’으로 規定했다. 未登錄이든 登錄이든 關係없이 支援 對象으로 본 셈이다. ‘移住兒童은 出生登錄 될 權利를 갖는다’고 明示하기도 했다. 出生登錄은 移住兒童의 規模를 把握하고 最小限의 福祉 支援을 하기 위한 첫 단추다. 條例案이 通過되면 조나단度 水原에서 어린이집에 갈 可能性이 높다.
하지만 이 事實이 알려지자 ‘文字 爆彈’이 쏟아졌다.
出處: 多文化 反對團體 온라인 커뮤니티
條例案을 主導한 김현삼 議員은 勿論 다른 京畿道議員에게 文字메시지가 쏟아졌다. ‘難民 反對’ ‘多文化 反對’를 외치는 外國人 嫌惡 團體들이었다. 안산시에서는 10次例가 넘는 集會가 벌어졌다. 金 議員 집 앞에서도 示威가 벌어졌다. “團體들과 따로 面談까지 했지만 說得할 수가 없었어요. 反對 團體 분들은 移住民들이 아이를 앞세워 韓國에 들어오고, 結局은 韓國人의 자리를 빼앗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더라고요.” 金 議員은 이 ‘失敗한 條例案’을 씁쓸하게 回想한다. 1980, 90年代 半月工團에서 일했던 그는 工團 狀況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요즘 社長님들이 移住勞動者가 더 必要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 注文量을 못 댄다는 거예요. 內國人은 採用하고 싶어도 오질 않고요. 그런데도 移住民에 對한 認識은 바뀌지 않고 있죠.” 獨逸 政府는 自國에서 태어난 모든 兒童에게 出生證明書를 發給한다. 泰國이나 베트남 같은 開發途上國度 大部分 國籍과 關係없이 出生登錄을 해준다. 政府가 兒童들을 出生登錄 하면 兒童의 人權侵害 與否를 確認할 수 있다. 豫防 接種 같은 基本的인 福祉 支援도 할 수 있다. 日本은 2019年부터 國籍을 묻지 않고 滿 3~5歲 어린이에게 無償保育 및 幼兒敎育을 해준다. 保育 側面에서 支援을 强化하려는 試圖도 있었다. 지난해 京畿道議會는 登錄 外國人住民 子女에게 保育費를 直接 支援하도록 明示한 條例를 통과시켰다.
흔히 外國人 住民이 늘어나면 福祉 負擔도 늘어날 거라는 豫想이 많다. 移民政策硏究院에 따르면 移住勞動者가 韓國 全體의 所得稅收에 寄與하는 額數는 2017年 1兆 원을 넘어섰다. 住民 關聯 政策 豫算은 2018年 基準 8500億 원 規模에 그친다.
稅金을 꼬박꼬박 내도 保育에선 差別을 받는 것이다. Asse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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條例는 通過됐지만 그뿐이었다. 現在 京畿道 內에서 移住兒童에게 保育費를 別途로 支援하는 地自體는 鞍山, 富川, 始興, 軍浦 等에 그친다. 그마저도 詩 自體 豫算으로 解決하고 있다. 京畿道에서는 條例 通過 뒤에도 支援 豫算을 編成하지 않았다. “外國人 保育費 支援은 豫算 規模가 크고, 地自體가 아닌 中央 政府가 해야 할 일입니다.” 現在 保健福祉部는 指針을 통해 保育費 支援 對象을 ‘大韓民國 國籍을 가진 者로서 住民登錄法에 依해 住民番號를 正常的으로 附與받은 萬 0~5歲 兒童’으로 制限한다. 이 指針의 根據가 되는 嬰幼兒保育法을 살펴보면 國籍에 따른 差別이 容認되고 있다. ‘嬰幼兒는 自身이나 保護者의 性, 年齡, 宗敎, 社會的 身分, 財産, 障礙, 人種 및 出生地域 等에 따른 어떠한 種類의 差別도 받지 아니하고 保育되어야 한다.’ ‘國籍’李 文句에서 빠져 있다. 이 條項에 國籍을 包含시키는 嬰幼兒保育法 改正案이 지난해 7月 國會에 發議됐다. 하지만 懸案에 밀려 本格的인 論議는 始作되지 못했다. 게다가 복지부는 國籍 中心으로 設計된 다른 社會保障 制度와 連繫해 論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표류가 끝나는 그날까지
와티 氏에게 安山은 如前히 낯선 땅이다. 하지만 조나단을 위해 適應해야 하는 곳이다. “아직 適應 期間이라 조금 낯선 땅이에요. 實은 아직도 水原을 그리워해요. 언젠가는 家族들이 있는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거예요. 조나단이 韓國에서 中學校, 高等學校를 卒業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와티 氏는 조나단 같은 아이가 더 異常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神이 주신 祝福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아이의 未來에 父母가 걸림돌이 되는 안타까움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위해 사는 곳을 옮기지 않고 本人이 사는 곳에서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는 環境이 되면 좋겠어요.”
어린이집뿐만이 아니다. 조나단 같은 移住背景 兒童들은 學校를 다니면서도 韓國語를 잘하는지, 滯留 資格이 있는지 끊임없이 試驗받는다. 이런 條件을 갖춰도 아이들은 韓國 社會의 ‘下流’에 고일 수 있다는 不安感에 시달린다. 異邦人에서 벗어나기 위해 工夫에 더욱 매달린다. 2009年 우즈베키스탄에서 韓國에 온 少年에겐 高等學校 進學조차 切實하다.
移住民을 위한 사다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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