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이게 ‘社會主義’ 아니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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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正 2020.11.12. 午後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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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進行되는 社會主義化의 흐름은 左派 執權의 制度化로 치닫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는 歷史가 말해주고 있다


박정훈 論說室長

‘타다’ 禁止法은 못난 政治가 韓國 經濟에 보낸 絶望의 메시지다. 全 世界에서 共有 經濟가 萬個했는데 우리는 있는 싹마저 뿌리째 뽑아버렸다. ‘우버’나 ‘그랩’에 비하면 別 革新도 아니다. 疊疊山中 規制 속에서 실낱같은 틈을 찾아내 그나마 可能했던 것이 ‘타다’였다. 國際 基準으로 보면 애들 장난 같은 서비스인데 그것마저 못 하게 막는다고 한다. 이게 市場經濟를 하겠다는 나라 맞나.

中國에선 設立 7年 된 新生 企業이 車輛 共有 産業의 꽃을 피웠다. 4億餘 名이 하루 3000萬件씩 利用하는 '中國人의 발'李 됐다. 中國이라고 왜 택시 業界 反撥이 없었겠나. 그렇지만 프롤레타리아 階級 政權인 中國 共産黨 政府는 택시 勞動者의 生存權을 理由로 革新을 毁謗 놓는 짓은 하지 않았다. 妨害는커녕 있는 規制 다 免除해주고 國營 펀드 돈까지 대줬다. 新産業이 胎動하면 中國은 키우고 韓國은 싹을 자른다. 社會主義 中國이 市場 親和的인데 資本主義 韓國은 企業과 革新을 敵對視하고 있다. 기막힌 逆說이다.

韓國 中·高校生이 中國보다 工夫를 못한다는 調査가 나왔다. 國際 學業 成就度 調査에서 韓國 學生들은 5~10位에 그친 反面 中國이 모든 領域 1位를 싹쓸이했다. 우리 靑少年들 머리가 나쁜가? 아니다. 韓國人의 知能이 世界 最高임은 公認된 事實이다. 2004年 英國·핀란드 敎授팀 調査에 따르면 韓國人 知能指數(IQ)는 平均 106으로, 事實上 世界 1位였다. 韓國人의 頭腦 競爭力은 世界가 認定하고 있다.

當時 調査에서 中國人의 平均 IQ는 100에 不過했다. 頭腦는 우리보다 뒤처지는데 工夫는 잘한다는 뜻이다. 結局 아이들 問題가 아니라 敎育 탓이다. 中國은 中·高校도 入試를 치를 만큼 熾烈한 競爭을 시키고 엘리트 敎育에 注力한다. 反面 韓國 公敎育은 어떻게 工夫 덜 시킬지를 硏究하는 平等의 實驗場이 돼버렸다. 敎育 現場을 掌握한 左派 敎育監들이 '無試驗·脫競爭'을 내세우며 學習 不振兒를 量産하고 있다. 社會主義 中國이 競爭과 수월性을 말하는데 資本主義 韓國은 平等 至上主義에 빠져 下向 平準化된 人材를 찍어내고 있다. 어디가 社會主義이고, 어디가 資本主義인가.

이제 韓國은 中國보다 더 社會主義 같다는 말이 異常하지 않은 나라가 됐다. 遠隔診療, 遺傳子造作, 빅데이터, 宿泊 共有 等 中國에선 다 되는데 韓國은 못 하는 分野가 한둘이 아니다. 革新 技術을 開發한 企業人들이 規制에 挫折해 中國으로 떠났다는 式의 얘기가 꼬리를 물고 있다. 베이징 大學街는 創業 카페가 櫛比한 스타트업의 天國인데 서울대 周邊엔 考試村이 陣을 치고 있다. 中國 젊은이들은 百萬長者의 꿈을 꾸고 韓國 靑年들은 公務員 試驗에 靑春을 건다. 中國보다 더 社會主義的이라는 政府 政策과 規制가 이런 地境을 만들었다.

社會主義란 國家가 介入해 分配 平等을 이루려는 理念 體系다. 文在寅 政府 國政은 '國家 主導'라는 點에서 社會主義 性格이 剛하다. 世界에서 가장 强力한 週 52時間制를 强制해 個人의 '더 일할 自由'를 막았다. 過度한 最低賃金을 强要해 '덜 받아도 일하려는' 個個人의 欲求를 妨害하고 있다. 國家가 具體的 生活 領域까지 一一이 規定하고 介入하려 한다. "國民의 삶을 責任지겠다"는 文 政府의 슬로건부터 社會主義的 發想과 다름없다. 5000萬 國民의 삶은 다 제各各일 텐데 政府가 어떻게 一律的으로 책임진다는 건가.

文 政府 國政은 '機會의 公正'을 넘어 '結果 平等'까지 건드리고 있다. 公共 部門 成果給 廢止, 利益 共有制, 自私高·特目高 廢止 等이 그 例다. 分讓價 上限制며 原價 公開처럼 市場價格에 손대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只今껏 이 政權의 責任 있는 사람이 '經濟的 自由'나 '市場 原理'를 말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自由와 市場의 領域을 줄이고 그 자리를 國家 機能으로 채워넣겠다는 것이다.

社會主義의 理想은 달콤하지만 實現할 수 없는 詐欺劇임이 判明 났다. 蘇聯과 東歐圈 崩壞는 國家 主導 計劃 體制의 矛盾에 따른 必然的 結果였다. 南美의 左派 포퓰리즘 亦是 經濟 破綻으로 結末났다. 다 죽은 社會主義가 韓國에서만 포퓰리즘의 탈을 쓰고 復活하고 있다. 이것은 色깔 論爭이나 理念 是非가 決코 아니다. 岐路에 놓인 大韓民國이 直面한 至極히 現實的이고도 실존적인 問題다.

政治마저 社會主義 모델을 따르고 있다. 이 政權이 死活을 건 公搜處는 中國의 監察委員會를 본뜬 政權 直屬 事情(司正) 機構다. 社會主義 一黨(一黨)獨裁처럼 權力의 忠犬을 法制化하겠다는 것이다. 長期 執權에 유리하게 選擧制度를 바꾸고, 落下傘·코드 人事를 통해 곳곳에 左派 陣地(陣地)를 構築하고 있다. 選擧 勝利를 위한 政權의 介入 疑惑까지 불거졌다. 大韓民國 곳곳에서 進行되는 社會主義化(化)는 이제 左派 執權의 永久化·制度化로 치닫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는 歷史가 말해주고 있다.

[박정훈 論說室長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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