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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年 光州, 中東 紛爭地域 現場 지킨 AP記者 잠들다
어린이 뉴스
  • [눈높이 社說] 80年 光州, 中東 紛爭地域 現場 지킨 AP記者 잠들다
  • 전선규 記者
  • 2024-04-25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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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社說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눈높이 社說’李 月, 水, 金 실립니다. 辭說 속 背景知識을 익히고 核心 內容을 文段別로 整理하다보면 論理力과 讀解力이 키워집니다.


앤더슨 前 AP通信 記者가 레바논에서 拉致된 以後 6年 8個月 만에 풀려난 1991年 12月 4日, 當時 6살 딸과 시리아 首都 다마스쿠스에 있는 美國 大使館을 떠나고 있다.  AP뉴시스 資料寫眞



[1] 1980年 5月 光州의 한 모텔에 몇몇 外國人 記者들이 모여들었어요. 모텔 窓門 밖으로 멀리 抵抗에 나선 光州市民들이 보였고, 新軍部(전두환을 中心으로 한 軍人들로 이뤄진 勢力으로, 當時 政治權力을 掌握함) 鎭壓(强壓的으로 억눌러 진정시킴)부대도 隊列을 갖추고 있었지요. 그때 모텔에서 6m쯤 떨어진 옆 建物 屋上에 銃을 든 軍人이 나타나더니 記者들에게 손짓하며 떠날 것을 要求했어요. 暫時 後 모텔房 琉璃窓이 깨지며 銃알이 날아들었지요. 한 記者가 카메라를 꺼내 들고 窓밖 撮影을 試圖했어요. 銃알이 더 날아들자 記者들은 바닥을 기어서 빠져나왔어요. 美國 UPI通信(新聞社나 放送社 等에 뉴스를 提供하는 機關) 記者가 1989年 美國 LA타임스에 쓴 5·18民主化運動(1980年 5月, 新軍部를 糾彈하고 民主化를 要求하며 展開된 民主抗爭) 取材 記錄에 담긴 內容이에요.


[2] 어떻게든 撮影하려고 카메라를 꺼내 든 이는 美國 AP通信 도쿄支局 *테리 앤더슨 記者(當時 33歲). ‘뉴스 現場’을 찾아 韓國으로 건너온 그는 本能的으로 카메라를 내밀었을 거예요. 1980年 光州에선 犧牲者 數를 두고 論難이 컸어요. 新軍部는 初期에 3名이라고 發表했고, 市民들은 261名이라고 主張했어요. 앤더슨 記者는 거리 取材 때 屍身을 直接 셌어요. “그렇게 많은 屍身은 처음 봤다”며 하루에 179球까지 確認했다고 記憶했지요. 왜 굳이 세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記者는 元來 그렇게 일한다”라고 答했을 거예요.


[3] 앤더슨 記者가 지난 21日 美國 뉴욕州 自宅에서 76歲의 나이로 世上을 떠났어요. 그가 世上에 더 알려진 것은 光州 5·18民主化運動 取材 5年 뒤 AP通信 中東支局長으로 일하던 때 內戰(韓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 中이던 西아시아 나라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레바논의 武裝團體)에 拉致된 일 때문이에요. 그곳 首都 베이루트에서 同僚와 테니스를 친 어느 날 그는 怪漢(擧動이나 차림새가 殊常한 사람) 3名에게 끌려갔어요. 이들은 英語로 “걱정 마라. 이건 政治的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로부터 2454日, 6年 8個月 동안 그는 人質(約束을 行하도록 擔保로 잡아 두는 사람)이 됐어요.


[4] 後날 쓴 ‘獅子窟’이란 回顧錄(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記錄)에 仔細한 記錄이 담겨 있어요. 大部分을 눈이 가려진 채 지냈고, 手匣과 足鎖(罪人의 발목에 채우던 쇠사슬)가 채워졌어요. 몇 時間씩 祈禱하며 버텼다고 썼지요. 當時 約婚女는 妊娠 6個月이었고, 그때 태어난 딸은 여섯 살이 되어서야 寫眞으로만 보던 아빠를 만났어요. 그는 歸國 後 헤즈볼라의 背後(어떤 일의 드러나지 않은 裏面)인 이란 政府를 相對로 1億 달러(約 1400億 원)의 損害賠償 訴訟(自身이 입은 被害를 報償받기 위해 法院에 判決을 要求하는 訴訟)을 냈고, 額數가 밝혀지지 않은 큰 賠償金(남에게 입힌 損害에 對해 물어 주는 돈)을 받아냈어요. 그 돈으로 過去 自身이 海兵隊員으로 戰爭에 參與했던 베트남을 위해 學校 50個를 지었지요.


[5] 言論을 떠난 그의 삶은 大學 講義와 慈善事業(남을 도울 目的으로 이루어지는 事業)이었어요. [   ] 그는 레바논 勤務 時節 “紛爭地域 取材는 내 삶에 가장 魅惑的인 일”이라고 했던 대로 ‘現場을 지킨 記者’로 記憶될 거예요. 民主化 示威를 記錄하기 위해 光州를 찾았고, 남들은 避하는 中東의 紛爭地域(政治, 宗敎 等의 問題로 다른 民族이나 나라와 複雜하게 다투는 地域)을 지켰어요. 그의 모습이 담긴 映像에는 왼쪽 가슴팍 주머니에 꽂힌 검은 볼펜과 빨간펜이 눈에 띄어요. 세련된 正裝 차림은 아니었지만 現場 記者라면 누구나 그랬을 모습 그대로예요.


※오늘은 東亞日報 오피니언 面에 실린 칼럼을 社說 代身 싣습니다.


東亞日報 4月 23日 字 김승련 論說委員 칼럼 整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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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東亞 전선규 記者 3q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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