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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9回 哲學과 社會學을 專攻 | 1980.04.19 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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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壽煥 樞機卿 便 - 第19回 哲學과 社會學을 專攻
金壽煥 樞機卿 便
第19回 哲學과 社會學을 專攻
1980.04.19 放送
金壽煥 樞機卿은 1980年 當時 新軍部에 뺏기기 前 동아放送(DBS) 看板 프로그램의 하나였던 `DBS 招待席`에 4月1日부터 23日間 出演했다. 동아일보 論說主幹이었던 권오기 前 副總理 兼 統一院 長官이 進行했던 이 對談 프로그램에서 金 樞機卿은 留學時節이야기, 宗敎·政治, 여러가지 社會問題에 關한 생각 等을 들려 주었다.
Q) 어제는 東洋 西洋 얘기를 했죠. 그런데 西洋에 가셨다는 게 뮌스터 大學에서 工夫를 하신 얘기를 했습니다만 專攻하신 分野가 社會學으로 되어 있는데요. 神父는 그저 神學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뮌스터大學에서는 哲學을 工夫하셨고 또 社會學, 그런데 新婦가 工夫를 한다고 할 때 어느 工夫는 안하고 어느 工夫는 하는 그런 幅이 存在 하는가요?

A) 勿論 原則的으로는 神學 中心이고요. 또 거기 哲學이 準備過程으로서의 哲學이 있고 그리고 神學을 하는 것이 예전의 方式 이었는데, 요즘에는 그 方式을 따르면서 더 다른 分野도 强化되는데 新婦가 되기 위해서도 人文分野 그러니까 적어도 1,2學年 때는 人文分野가 많이 强調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고요. 勿論 神父는 神學, 聖書學 이런 分野를 主로 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또 그래야만 되겠습니다만, 그러나 神父에 따라서 社會學을 工夫한다든지 或은 다른 科學 分野, 心理學이라든지 여러 가지 自身의 素質이나 趣味에 따라서 工夫할 수 있습니다. 權先生님 質問이 宗敎라는 것이 宏壯히 宗敎 自體의 테두리, 宗敎라고 하면 神學이라든지 그런 것에 局限되는 것처럼 보시니까 社會學, 心理學 같은 다른 分野의 學問을 新婦가 工夫한다면 異常하게 생각하시는데, 物理學徒 마찬가지고요. 다른 모든 分野의 工夫를 新婦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社會學 같은 것은 勿論 工夫를 하게 되면 一般社會學으로 始作했다가 敎會 神學的인 立場에서 보는 社會學이죠.

Q) 그렇게 되면 異常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神學的인 立場에서의 社會學이라는 게 뭔가...사회학은 科學的인 立場에서의 學問 아닌가요?

A) 네 方法論的인 立場에서는 科學이라고 할 수 있지만 社會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對해서는 哲學的인 社會館이라고 할까요. 거기에는 哲學的인 社會官道 있을 것이고 神學的인 社會學徒 있을 거 아닙니까. 特別히 基督敎的인 立場에서 볼 때는 基督敎는 個人的인 救援에서는 아니고 社會全體의 救援觀을 가지고 있는 歷史의 救援觀을 가지고 있는 것이 基督敎的인 社會學 입니다. 全 世界 人類에 對한 救援觀을 가지고 있는 것이 基督敎거든요. 簡單히 말하면 基督敎가 宣布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아래에 모든 人間이 서로 兄弟的인 사랑을 가지는 것. 例를 들면 하나님이 아버지고 우리는 모두 子女들이다. 우리는 모두 兄弟的인 사랑으로 사랑해야 된다. 그것이 結局 理想的인 하나님 나라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實行하는 것이 現實의 基督敎 라는 것이죠. 이것은 그 自體가 벌써 社會的인 側面을 가진 것입니다. 社會的인 것이 바로 基督敎입니다. 萬一 基督敎가 社會全體에 對해서 이와 같은 理念이라 할까 믿음을 宣布하는 것을 抛棄한다면 基督敎가 아니죠. 그러니까 基督敎는 그 自體의 神學에서 社會學이라는 것을 안 가질 수 없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제가 社會學을 工夫한 것이고 뮌스터代學校에서 指導敎授로 계시던 分의 影響이 있었죠. 그길로 간 것도 그분의 影響이 剛했습니다.

Q) 그런데 社會學徒 여러 갈래가 있죠? 프랑스 學風이 다르고 美國의 學風이 다르고 個人 敎授에 따라 다르고 그래서 社會學이 테두리다 분명하지 않은 學問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단 말이죠.

A) 그런데 그때 저는 一般的인 社會學을 하는 同時에 神學徒 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神學과 관계되는 社會學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희 指導敎授님度 神學校에 屬하는 저와 같은 新婦였거든요. 그분도 저와 같은 樞機卿입니다. 그렇게 神學을 하면서 社會學을 했고 거기에서 저의 敎授가 저에게 特別히 要請한 것은 그분의 好奇心도 있었겠지만 "너는 基督敎的인 社會學의 테두리에서 네가 살고 있는 韓國 社會를 한番 硏究해 봐라. 그 中에서도 韓國의 家族制度를 硏究해 봐라" 이렇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테마를 避해보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韓國에 對한 資料도 없고 그래서 學科를 바꾸려고 까지 했죠. 오랫동안 바꾸려고 생각했는데 中間에 제가 다른 일이 있어서 한 2年 넘게 工夫를 中斷해야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韓國에서 敎會 關係者분이 오셔서 獨逸에 訪問 오셨다가 病이 나서 그분 病看護를 해드리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工夫를 中斷했습니다. 아무튼 그 敎授의 主張은 繼續 그것이었어요. 그래서 不得已 거기에 가서 韓國을 더 工夫하는 制限된 資料였지만 거기서 오히려 韓國의 兩者 法에 對해서 알게 되었어요. 韓國에 冊을 사다 달라고 要請했었습니다. 625戰爭에 對한 것도 거기에 가서 더 工夫하게 되었습니다.

Q) 저는 社會學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만 宗敎社會學이라고 해서 부르는 하나의 學問도 있더군요. 法社會學 이라는 말도 있죠? 그래서 假令 法 關係면 어느 나라의 法으로는 "무엇을 한 사람은 罰을 받는다."라는 條文이 있으면 그 條文이 나라에 따라서 文章은 같다고 하더라도 그 法이 執行되는 模樣은 나라에 따라서 다 다르다. 그 法이 執行되는 模樣을 보고 工夫하는 것이 法社會學이고 "條文은 이것이다"하는 것은 法學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듯이 宗敎와 社會學徒 그런 模樣으로 갈리는 것 입니까? "하나님의 敎理는 이런 것이다. 이 敎理는 이러이러한 背景을 가지고 이런 뜻에서 나오는 것이다"하는 그것이 美國에서 論議되는 것과 韓國에서 論議되는 것이 아프리카에서 論議되는 것이 다 다르고 하지 않습니까?

A) 반드시 그런 意味가 아니고요. 例를 들면 韓國에서 韓國敎會가 韓國社會가 어떻게 發展하면 理想的인 社會로 發展할 수 있을까? 그러면 敎會에서 보는 視角이 있다는 것이죠. 아까 제가 말씀드린 데로 韓國社會가 가장 理想的인 모습은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믿는다는 것은 强要된 意味로 믿는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正말 아버지로 믿는다면 모든 兄弟로써 認識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兄弟的인 사랑으로써 돕고 서로 사랑하고 共同體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簡單히 말하면 `코이老泥아`라는 希臘의 表現입니다만 그런 共同體는 사랑의 共同體, 서로 나눠주고 서로 모든 것을 나누는 말이죠. 사랑의 共同體를 이루는 것이 基督敎가 보는 하나의 社會館입니다. 그러면 그런 社會觀을 오늘날 韓國 社會에서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함께 連結시켜 工夫하는 것이 基督敎的인 立場에서 보는 社會學이죠.

Q) 그러면 基督敎的인 立場에서 보는 經濟學, 基督敎的인 立場에서 보는 政治學 等 모든 學問에서 그런 立場이 可能하겠네요?

A) 그것은 技術的인 問題에 있어서 基督敎 政治學이다, 基督敎 經濟學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그 技術을 쓰는 精神의 바탕에 있어서는 基督敎 固有의 것이 있는 거죠. 例를 들면 資本主義도 같은 統計學의 技術을 쓰겠죠. 하지만 資本主義가 統計學의 技術을 쓰는 것과 基督敎的인 社會觀에서 統計學을 쓰는 것은 쓰는 目的과 意圖가 다를 수 있겠죠.

Q) 조금 더 分化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요즘 話題가 되고 있는 樞機卿님 말씀 中에 基督敎 社會, 모두가 兄弟인 社會,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인 社會를 志向한다고 하는데 最近 政治하시는 분 中에 가톨릭교도인 한 분이 어느 公開 講演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어서 예수가 우리 兄님이다"고 얘기 했다는 것이 政治하는 사람 間에 많이 膾炙되고 그것이 듣기 거북하다는 얘기들이 있는데요. 基督敎人이 받아들이는 立場은 무엇입니까?

A) 具體的인 것을 제가 論評하는 것이 적합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原則論 敵으로는 敎會가 "예수그리스도를 볼 때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맏이다"하는 表現이 있습니다. 맏兄이다 는 말이죠. 그것은 聖書的인 立場입니다. 그럴 때는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는 우리 兄이다"라고 하죠. "나의 兄이다"하는 것은 表現의 差異 이겠지만 "우리의 兄이다"고는 할 수 있죠. "나 혼자의 兄"이라고는 할 수 없고 "우리 모두의 兄이다"고는 할 수 있죠. 信仰人의 立場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信仰人의 立場에서 말했느냐 政治人의 立場에서 말했느냐는 別途의 問題이겠고. 저는 그런 意味로는 그 분의 意圖가 不順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韓國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兄이다고 하니까 聖書的인 部分을 잘 모르는데서 오는 誤解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Q) 兄님, 동생의 立場에서 우리 兄은 너의 兄이 아니기 때문인 거죠?

A) 아뇨, 敎會의 立場에서는 오히려 理解하기가 더 쉬운 거예요.

(入力일 : 200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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