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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8回 濟州道 | 1979.04.18 放送
民族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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港口 - 第18回 濟州道
港口
第18回 濟州道
1979.04.18 放送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試圖된 深層報道의 本格的인 녹음構成프로그램으로, 4回에 걸친 開國特輯프로그램에서 聲價를 높인 以後 ‘軍事革命特輯·革命의 발자취’ ‘6月의 政治 風土’‘選擧바람 善心바람’‘學生運動의 이모저모’‘智異山 盜伐事件’等 力作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報道視角과 力量을 誇示했다.
(音樂)

DBS 리포트 港口.

開港 100年의 물결을 따라.

取材와 構成에 社會文化部 李珖 記者입니다.

(音樂)

이 프로그램은 大韓航空, 해태製菓, 味源 共同提供입니다.

(音樂)

(廣告)

(音樂)

오늘은 濟州港에 얽힌 說話와 海女의 歷史와 生活相에 關해 알아보겠습니다.

(音樂)

三國史記에 따르면 濟州島는 三國統一時代에 不足國家의 形態를 이루고 農牧社會를 形成했다고 傳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前에도 百濟와 新羅, 또는 中國과의 海上交通이 頻繁한 것으로 記錄에 남아 있는데 韓半島에 처음 隸屬된 것은

高麗 때였습니다. 1105年, 高麗 肅宗 10年 濟州島는 當時 耽羅라는 國號를 버리고 高麗의 한 軍으로서 編入돼 耽羅令이라

불리었고 李朝時代에 목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以後 8.15解放 이듬해, 行政區域上으로 한 個의 道가 됐는데

우리나라 建國神話가 檀君王儉으로 대표되듯이 濟州島의 建國神話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三星說話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濟州道 歷史硏究가 황승만 氏는 三星說話를 이렇게 說明해줍니다.

(音聲 錄音)

濟州島 建國神話에 나타난 세 性은 故, 量, 部, 三 性인데 아직도 濟州島에는 이 세 姓氏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高麗史에는 그 後, 高乙那의 15代孫, 고후, 固請, 고개 三 兄弟가 新羅에 入住했다고 傳하는데 이것이 濟州島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韓半島에 발을 들여놓은 셈인 것입니다. 北濟州郡 항파두리는 三別抄의 神話가 얽힌 곳입니다. 三別抄의 金通精 將軍은

進度를 거쳐 濟州島에 들어와 十五 里에 이르는 土城을 쌓고 隣近 섬들로부터 朝貢을 받으며 海上王國을 建設해서

最後까지 高麗와 蒙古 聯合軍에 抗爭했던 것입니다. 當初 三別抄는 高麗時代 崔瑀가 蒙古의 亂을 避해 强化로

들어갔을 때 私兵으로 組織한 것인데 高麗가 元나라에 屈服하자 叛亂을 일으키고 蒙古에 抗爭을 始作했습니다.

그러나 亂을 일으킨 지 3年 만인 1273年 4月, 高麗와 元나라 合同討伐軍에 依해 三別抄軍은 壯烈하게 玉碎했던 것입니다.

金通精이 玉碎 直前, 自己 손으로 사랑하는 妻子를 죽여 疲勞 黑붉은밭의 붉은 黑은 只今도 그날의 悲劇을 實感나게 傳해주고 있습니다.

바다를 舞臺로 生活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陸地 사람보다 더 큰 危險이 恒常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언제 風浪이 불어와 배를 뒤집고

生命을 앗아갈지 모르는 不安感에서 고기를 많이 잡아 豐足한 生活을 할 수 있게끔 해달라는 起源에서

그들은 바다神에 祭祀를 지내는 것을 익혀 왔던 것입니다. 그 中에서 濟州島에는 陰曆 2月 初하루와 보름 사이에

行하는 儀式으로 영등굿이 有名하다고 제주대학 김형동 敎授는 말합니다.

(音聲 錄音)

이밖에 濟州島 사람들에게 傳해지는 傳說의 섬으로 이어도가 있습니다. 恒常 바다와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는

이어도가 理想이었고 救援의 象徵이었던 것입니다. 홍승만 氏는 이어도에 對해-.

(音聲 錄音)

이어도는 濟州島에서 中國으로 進上品을 싣고 가는데 波濤가 甚해 避身했던 救援의 섬이라고도 하며

風浪에 시달리는 서러움의 象徵으로도 노래 後斂에 붙여졌다는 說도 있습니다.

(音樂)

비바리, 이것은 바로 海女를 가르키는 이름입니다. 잠病이 옷을 입고 물속 깊이 들어가서 全鰒, 소라, 海蔘을 따는

이들을 우리는 비바리, 바로 海女라고 불러왔습니다. 濟州에는 아직도 萬二千餘 名의 海女가 있는데 이 數字는

濟州水産協同組合에 登錄된 것에 不過하고 實質的으로는 아직도 二萬 五千 名에서 三萬 名으로 推定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海女들의 起源에 對해서는 確實한 설이 없다는 김형동 敎授의 얘깁니다.

(音聲 錄音)

海女들은 모두가 海女가 된 理由를 生計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國民學校 2,3學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바닷가에서 全鰒, 海蔘을 따면서 學費를 보탠 어릴 때의 經驗에서 當然히 해야 될 일이라는 觀念이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海女는 職業으로서 確立된 것도 아니고 代代로 傳承되는 것도 아닙니다. 海女들은 能力에 따라 上군, 中軍,

河君 等으로 階層이 定해져 있기도 합니다. 上군은 가장 活動力이 强하며 年齡的으로도 젊고 물속 10미터 以上 들어가서

여러 時間 동안 作業할 수 있으며 하루 萬원 以上의 收入을 올리는 階層을 말합니다. 下軍은 처음 始作한 海女들로

물속 5,6미터밖에 들어가지 못하며 輸入도 三千 원 程度인 部類이며 中軍은 上군과 下君의 中間層인데 大槪가 나이가 많아

隱退를 앞둔 海女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上군 海女들은 하루 여덟 時間 동안 한 番도 물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繼續

作業한다는 想像도 못할 얘기를 濟州 山地 漁村契에 勤務하는 황천자 羊이 들려줍니다.

(音聲 錄音)

海女들은 第1種 共同漁場에서만 作業을 할 수 있습니다. 水産業法에 따르면 第1種 共同漁場은 定着性 動植物들이 棲息하는 것으로

돼있으며 水深은 地域마다 다르나 濟州島는 15미터까지입니다. 그러기에 濟州 海女들은 最高 15미터까지 潛水할 수 있는 能力을

가지고 있다 할 것입니다. 이 海女들은 그들의 作業場을 潛水 배들이 侵犯해 들어오기 때문에 많은 隘路를 겪는다고

西歸浦에서 만난 海女들은 異口同聲으로 얘기해줬습니다.

(音聲 錄音)

海女들에게는 豐富했던 資源이 漸漸 줄어드는 것도 큰 問題인 것 같습니다.

(音聲 錄音)

作業을 今方 끝낸 海女들은 第一 먼저 몸을 녹이느라 暖爐가로 찾아듭니다. 차가운 물속에서의 作業이 얼마나 힘든지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한 海女는 말해줍니다.

(音聲 錄音)

8年 前부터 海女들은 한 番에 4萬원假量 하는 고무 옷을 입고 물에 들어가지만 防寒服이 생기기 前에 그들의 苦痛은

想像以上이었을 것입니다. 海女들에게 共通的인 즐거움은 바다 속에서 큰 全鰒을 땄을 때, 卽, 日當을 많이 올렸을 때라고

大部分이 말합니다.

(音聲 錄音)

이와 같은 海女들에 對한 傳說은 濟州島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理由는 只今과는 달리, 옛날의 海女들은

農事를 겸했고 特別한 血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김형동 敎授는 指摘해주면서 고작 作業하는 사이에 물속에서 龍王을

만났다는 程度의 얘기가 傳해 내려오고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김형동 敎授는 우리나라 海女들이 일찍부터

海外로 進出했다는 事實이 있다고 傳해줍니다.

(音聲 錄音)

19世紀 末부터 外地로 나가기 始作했던 海女들은 10年 前 까지만 해도 主로 迎日灣 일대로 數千 名이 나갔으나

요즘 濟州島에서는 海女 勞動力의 收奪을 막고 安全을 期하기 위해 海女 안 內보기 運動이 펼쳐지고 있는 實情입니다.

洪百箱子 等에다 지고 가슴 앞에 두레박 차고 한 손에 悲愴을 지고, 한 손에 호미를 지고 한 질 두 質 數十 分 물속

虛僞的 虛僞的 들어간다. 이 民謠가 말해주듯이 海女들은 生命을 건 作業을 하는 것입니다. 餘다의 섬, 濟州道.

그리고 濟州女性을 代表하는 海女들, 그들은 濟州島를 이까지 끌고 온 질긴 줄인 것입니다. 바다의 文身이 새겨진 것 같은

그들의 다리에서 傳達되는 强靭한 生命力은 濟州島를 國際觀光地로서 限껏 꽃피울 것입니다.

(音樂)

只今까지 取材와 構成에 社會文化部 李珖 記者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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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樂)

DBS 리포트, 味源, 해태製菓, 大韓航空 共同提供이었습니다.

(音樂)

(入力일 : 201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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