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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4回 群山 | 1979.04.14 放送
民族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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港口 - 第14回 群山
港口
第14回 群山
1979.04.14 放送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試圖된 深層報道의 本格的인 녹음構成프로그램으로, 4回에 걸친 開國特輯프로그램에서 聲價를 높인 以後 ‘軍事革命特輯·革命의 발자취’ ‘6月의 政治 風土’‘選擧바람 善心바람’‘學生運動의 이모저모’‘智異山 盜伐事件’等 力作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報道視角과 力量을 誇示했다.
(音樂)

DBS 리포트 港口.

開港 100年의 물결을 따라.

取材와 構成에 社會文化部 金覲 記者입니다.

(音樂)

이 프로그램은 大韓航空, 해태製菓, 味源 共同提供입니다.

(音樂)

(廣告)

(音樂)

오늘은 群山港을 찾아봅니다.

(音樂)

群山은 옛부터 해運이 좋았던 浦口였고 이에 따른 倭寇의 侵略도 끊일 새가 없어 新羅時代 以後

九百스무 番의 倭寇侵掠이 있었다는 記錄이 있습니다. 特히 群山은 背後에 만경平野와 論山平野를 끼고

있어 李朝時代부터 쌀과 因緣이 많았던 곳입니다. 이런 點을 노려 日帝가 1899年 5月 1日,

群山을 强制로 開港시켰던 것입니다. 群山이 開港되기까지의 歷史的 背景에 對해 전은식 群山港灣靑 總務課長이 말합니다.

(音聲 錄音)

開港 當時의 群山港度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全혀 開發되지 않아 갈대 많고 뻘이 많은 浦口였습니다.

日帝의 立場에서 볼 때 빨리 쌀은 실어내가야 되겠고 施設은 없었고 하니 群山港 埠頭工事를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韓日合倂이 된 直後부터 埋築工事를 서둘렀는데

이 工事로 群山에 있던 큰 山이 네 個 半이나 헐렸다고 傳해집니다. 群山港은 다른 港口에

比해 努力이 많이 들었다는 群山의 鄕土史硏究가 차칠선 氏의 말입니다.

(音聲 錄音)

(音樂)

群山은 쌀을 실어가기 위해 몰려든 많은 배들이 빈 배로 올 수 없어서 各種 雜貨를 싣고 入港했기 때문에

雜貨의 集散地로서 有名했고 이 때문에 群山의 商圈은 全羅南北道는 勿論이고 忠淸道 一帶에까지 미쳤습니다.

群山이 이처럼 米穀輸出港으로, 또 雜貨의 集散地로 活氣를 띠자 많은 日本 사람들이 群山에 와 살았는데

只今도 群山은 國內의 어느 都市보다도 많은 日本집들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群山은 亦是 쌀을

取扱하는 港口였기 때문에 米豆市場이 開設돼 많은 逸話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차칠선 氏의 米豆市場에 對한 回顧談입니다.

(音聲 錄音)

全羅道와 忠淸道 一帶의 商圈을 움켜쥐었던 群山에는 돈 많은 日本사람들도 많이 살았지마는 米豆市場 탓으로

亦是 돈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 또한 많이 群山에 머물렀습니다. 自然히 群山은 흥청거리는 雰圍氣였고

이런 雰圍氣에서 술과 女子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어서 遊廓이 繁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群山 遊廓이라면 戰線에서 알아주던 터였고 따라서 가장 有名한 遊廓이 群山에 있었다는 港口合板會長 고판남 氏의 얘깁니다.

(音聲 錄音)

解放을 맞는 것을 契機로 群山港처럼 活氣를 잃은 港口는 없을 것입니다. 日本人과 함께 흥청거리던 港口가

日本人이 물러가면서 活氣를 잃은 것입니다. 쌀의 搬出이 中斷되고 이에 따라 各種 雜貨의 輸入도 끊겨 群山은

갑자기 조용한 港口로 바뀌었고 解放 後에는 금강 上流에서 밀려들어오는 土沙를 浚渫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自由黨 中盤에는 한때 廢港한다는 얘기도 나돌았습니다. 解放 後의 群山港에 對해서 전은식 群山港灣靑 總務課長이 說明합니다.

(音聲 錄音)

群山이 다시 港口로서 기지개를 켜고 발돋움하기 始作한 게 70年代 들어와서부터입니다. 解放 後 6.25를 거쳐 60年代 前半에

이르기까지 群山은 糧穀과 肥料의 輸入項으로서의 命脈을 겨우 維持했고 65年頃부터 合板工場들이 생겨나 原木의 輸入港으로

모습을 바꾸기 始作했습니다. 그 後 70年代에 들어와 合板輸出이 比較的 잘돼 原木의 輸入量도 늘어났고 이에 따라 群山은

原木의 輸入港, 合板의 輸出港으로 面貌를 바꾸면서 多少 活氣를 되찾게 된 것입니다. 昨年에 境遇 30萬 톤에 가까운 合板 輸出이

이루어졌고 原木 輸入 實績은 80萬 톤에 達했습니다. 原木의 輸入量이 이처럼 늘어나자 關稅收入輸出도 따라서 늘어나게 돼

昨年에는 群山稅關이 洗手를 많이 늘렸다고 해서 財務長官의 表彰까지도 받았습니다.

박재수 群山稅關長은-.

(音聲 錄音)

아직까지도 群山港은 事實上 原木과 合板을 얼마間 輸出하고 輸入하는 程度의 閑暇한 港口에 不過합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群山은 沃溝郡 近處에 있는 外港을 開發해서 遜色없는 工業港으로 成長할 즈음에 있습니다.

群像 外航은 200億 원의 資金으로 지난 73年에 이미 工事가 着手돼 今年 末 完工될 計劃으로 現在 마무리 工事가

進行 中입니다. 하지만 大部分의 施設이 다음 달이면 完工돼 6月부터는 實質的으로 貨物船의 입出港이

可能하도록 돼있습니다. 外航은 이만 톤級 한 隻과 萬 톤級 두 隻이 同時에 接岸할 수 있는 能力을 갖게 되고

貨物處理能力은 三百萬 톤에 이르고 있습니다. 群山 外航의 建設과 함께 外航의 工業團地도 85年까지

造成할 計劃으로 準備가 進行 中인 것입니다. 진영일 群山海運港灣廳長이 群山 外航이 開港된 後

달라질 모습에 對해서 說明합니다.

(音聲 錄音)

群山 外航은 今年 末에 竣工이 되더라도 앞으로 더욱 開發될 餘地가 있어 7, 800萬 톤의 貨物을 處理하는

港口를 만들 수 있다는 關係者들의 說明입니다. 따라서 群山 外航은 背後의 工業團地는 勿論이고 全羅北道

一원이 모두 工業化 되도 이를 處理할 수 있는 能力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群山 市民들은 그동안

群山이 너무 沈滯했기 때문인지 群山 外港에 거는 期待가 한層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市民들은 外航이 제 機能을 發揮하게 되면 群山이 크게 發展할 수 있으리라고 期待에 부풀어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고판남 氏의 말을 듣습니다.

(音聲 錄音)

(音樂)

只今까지 取材와 構成에 社會文化部 金覲 記者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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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樂)

DBS 리포트, 味源, 해태製菓, 大韓航空 共同提供이었습니다.

(音樂)

(入力일 : 201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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