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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3回 靑瓦臺를 물러나던날 政治波動을 위한 첫發言 | 1966.01.24 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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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便 - 第13回 靑瓦臺를 물러나던날 政治波動을 위한 첫發言
윤보선 便
第13回 靑瓦臺를 물러나던날 政治波動을 위한 첫發言
1966.01.24 放送
‘政界野花’는 65年 1月 4日부터 放送한 15分짜리 對談프로그램으로 70年 10月 5日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政界野花’의 元祖格이다. 이 프로그램은 光復 20年과 6·25戰爭 15年을 맞아 企劃한 것으로, 政界의 主要 人物들로부터 自敍傳的인 回顧談과 함께 政界의 뒷얘기를 들려줘 聽取者들의 人氣를 모았다.
(音樂)

이 時間에는 前 大統領 尹潽善 氏와 동아일보 政治部 次長 권오규 氏의 對談으로 보내드립니다.

(音樂)

- 지난 土曜日에는 이제 모처럼 先生님의 記者會見이 있었고 거기에서 말씀하신 것이 政治的으로 若干의 反應을

일으키고 있고 이런 말은 此際이긴 합니다마는 亦是 이 프로를 進行해나가는 過程에서 여기에 關한 言及도 다음에

나올 것으로 생각을 하고 오늘은 亦是 그 後에, 靑瓦臺를 물러 나오신 以後의 이야기. 그러니까 靑瓦臺에 계실 때,

主로 大統領으로서 能動的으로 뭘 어떻게 하신다는 것보다는 環境의 그... 움직임에 被動的인 立場을 取할 수밖에 없었고

또 어떤 決斷이나 行動보다는 에, 苦痛스러운 苦衷이 많았고 苦悶을 하신, 그러한 靑瓦臺 生活을 淸算을 하시고

나온 後에, 에, 그러니까 이제는 에... 野黨 領袖로서의 生活이 始作되는 것입니다마는 그 以後에 이제 行動으로

어, 모든 것을 이끌고, 스스로 이끌고 나가시고 이러한 生活이 始作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근데 처음에 제가 알기로는 에, 下野하신 後에 相當히 오랜 期間, 政治活動이 再開될 무렵까지 거의 杜門不出을

하신 거로 이렇게 記憶을 합니다만. 그때 이야기를 조금 言及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 예, 그때... 내가 靑瓦臺에 나온 後에 에, 아암... 只今 아암... 이... 이... 이... 卷 次長 말마따나 杜門不出 하는 동안에 特異할 만한

別 얘기는 없습니다. 근데 에... 靑瓦臺에 내가 下野 聲明을 내고 事實은 그 週末에 내 靑瓦臺를 떠나서 집으로

올라고 들었어요.

- 네네.

- 들었는데 그때 인제 나한테 무슨 생각이 났는가 하면은 萬一, 이... 革命主體勢力에서 나를 미워하기는 짝이 없이 미워할 테지마는

어... 自己네가 생각하기를, 或 나, 내가 只今 靑瓦臺를 이, 나가는 것이 大統領이란 이... 이... 이름 가진 사람이 下野하는 것인 自己네한테

損害가 될까봐서 나를 디리 붙잡고 늘 것 같으면은 이게 참 퍽 귀찮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 네, 처음에 그런-.

- 처음에 下野할 때 그랬죠.

- 네, 처음에 下野할 때도 그랬고, 그래서, 그래서 豫定을 變해서 말이지. 바로, 바로 집으로 나오기로 했습니다.

- 네, 바로 오셔 버렸군요.

- 그래서 어... 미처 짐도. 그러니까 그 다음날인가, 내가 聲明을 낸 다음날인가, 집으로 온 걸로 생각을 합니다.

- 네.

- 그래서 언제 짐도 쌀 새 없고 집으로 먼저 오고, 짐은 우리가 온 後에 軍警들이 모두 싸서 보냈고 집에 오니까 그때가

午後 點心을 먹고 靑瓦臺로 왔는데 에... 아마 3時나 그렇게 됐을 거예요.

- 네.

- 했는데 거 우리집을 數三 十 名이 둘러싸고 있고 그 森嚴한 것은, 이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 네.

- 所謂 名色이 大統領이라는 사람이 自己 自意에 依해서 下野를 해서 自己집으로 돌아오는데 이,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참, 數十 名이 집을 包圍하고 있나. 아, 이거 나를 큰 國事犯으로 取扱하는 것이 아닌가.

- 네.

- 인제 그렇게 생각도 되고 어... 했으나 그 後에 하는 걸 보면은 어... 그 참 나를 監視하는 것이 물샐 틈이 없었습니다.

- 네.

- 여기 出入하는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이... 家族 乃至는 어... 親戚이라고 하는데도, 하는 사람을 全部 어... 檢閱을 하고 또 내 집은

보시다시피 이 近處에 學校가 많아서 學校에서 들여다보입니다.

- 네, 그렇죠.

- 學校에서 들여다보이는데 그... 듣는 바에 依하면은 내가 가서 보진 못했으니까 듣는 바에 依하면은

거기서 寫眞 機械를 대고 몇 군데서 우리집의 各 군데서, 안팎에서 하는 行動을 全部 寫眞으로 찍고

무슨 또, 어떤 거 멀리 들리는 무슨 錄音器 같은 게 있대요.

- 네.

- 그 錄音器를 가지고 우리집에서 하는 얘기까지도 다... 아... 뭐지. 盜聽을 한다는 얘기도 내가 들었습니다.

- 예, 그때 우리들도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 들으셨어? 그러면 事實은 틀림없는 모냥이로군.

- 그 이야기만-.

- 그런데 그러나 뭐, 우리는, 區, 求愛는 아무, 求愛는 안 가졌습니다.

- 네.

- 왜 그러냐 하면은 아... 뭐 여기서 只今 무슨 革命政府를 顚覆할 무슨 陰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어, 또

假令 非難을 한데도 할 非難을 하는 게고. 우리 食口는 前과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러운 行動을 해왔지만

다만 내가 外出을 안 하고 내 外出을 해서 누구 집을 가고 볼 것 같으면은 그 사람 집에 被害가 되고.

- 네.

- 또 누가 오는 것을 내가 오게 할 것 같으면은 그 사람은 이런 줄을 모르고 내 집에 오지만 올 것 같으면은

그 사람한테 가서 왜 갔느냐, 무슨 일로 갔느냐, 아, 뭐, 여러 가지를 하고 그 사람한테까정 注目을 하니까 一切 사람을 안 받습니다.

또, 말로 어떤 親舊는 보고 어떤 親舊를 안 보고 그럴 수도 없으니까 그동안에 9個月 동안이라는 것은 完全히 참 蟄居生活을 하고

그동안에 에... 집에서 한 일은 나무를 보는, 花草를 보는 趣味가 있어서.

- 네.

- 나무를 麟蹄 솎는 것을 運動 삼아서 또 運動뿐만 아니라 그걸로 消日을 했습니다.

- 네.

- 괜히 여기 있는 나무를 저기로 옮겨 심고, 저기 있는 나무를 여기로 옮겨 심고. 나무가 많이 부대꼈죠. 나한테.

- 네.

- 그래서 나무 옮겨 심는 걸로다가 9個月을 時間을 보내다가-.

- 네, 9個月.

- 아... 저, 그러니까 1923年-.

- 63年.

- 아, 63年.

- 네.

- 63年 12月 20日頃에 내가 그때 記者會見을 하고, 政治發言을 내가 했습니다.

- 그럼 62年이에요.

- 그렇지, 62年이지.

- 네, 그래서 그때는 말이죠. 저희들이, 이제 大統領을 그만두시고 下野하셨다는 것도 그렇지마는 에, 政治活動이 이... 制限을 받지 않은

唯一한 領導者다 하는 立場에서 그 當時에 참, 움직임이라고 그럴까.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또 5.16에 關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리라 이렇게 생각을 해서 이, 只今 異常으로 正말 짙은 關心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 그, 9個月이라는 期間이

相當히 길었다 하는 것을 只今 漠然하게 記憶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그 以後에 政治活動이 再開될 무렵에

只今 이제 先生님 말씀처럼 에, 누구보다도 먼저 에... 참, 在野勢力이 뭉쳐야 된다 하는, 그런 말씀을 하신 記者會見이

있었던 걸 記憶을 합니다. 그게 이제 말씀하신 62年...

- 62年 12月 20日頃.

- 네네. 그렇죠. 그때 事情을 조금 더 말씀을 繼續해주세요.

- 그동안에 누구나 國民이 다 그렇게 생각했지마는 아, 하루速히 이 軍政을 종식시켜야 되겠다는 것이 이, 내 最大의

目標였습니다.

- 네네.

- 그래서 여기서 나 혼자 무슨 소리를 한댔자 그것이... 效果를 나타내지 아니 하니까.

- 네.

- 아... 그때는 인저 어떻게 世上이 밝혀 가느냐 하면은 軍程度 더 오래 끌고 갈 수가 없어서 民政으로 復歸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될 그런 立場에 가까워졌고.

- 네, 그렇죠.

- 政治活動도 오오, 次次 許諾에 따라서 아니 하면 안 되게 될 그런 때가 됐습니다.

- 네.

- 그래서 내가 하루는 記者들을 집으로 오라고 해서 어... 發言을 내가 했는데 에.. 이, 나는 그때 記者들 보고 말하기를,

이, 野黨에 에... 前에 政治를 하던 이들이 自有黨이나 민주당이나 新民黨들이, 野黨政治人들이 汎 野黨으로 이렇게 한데

團合을 해서 어... 이 軍人政府를 對抗을 해서 앞에 오는 選擧에, 에... 軍政을 完全히 名實공이 民政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되겠다.

- 네.

- 그 程度는 아... 우리... 에... 참, 政治人들이 에, 모두 모여서 어, 이 軍政을 只今 없애는 데 에, 한 旗발로 모여서 十字軍이

돼야 되겠다는 것을 내가 말을 했구요.

- 네.

- 同時에 인제 政府에 對해서는 이 政爭法에 묶인 사람들을 다 풀어놔야 된다. 只今 이 政爭法에 묶인 사람으로 말하면 大槪 이 나라에 有數한

사람들이고 어, 특수한 才能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을 多數 이렇게 묶어놓고 했으니까 이 나라 利益을

위해서라도, 이 나라 指導者格에 있는 사람들을 全部 解決을 시켜야 되겠다, 그뿐만 아니라 獄中에 있는 사람까程度

오.. 다 釋放을 해라 하는 얘기를 그때 했습니다.

- 네. 그러니까 제1차적으로 强調되는 것은 亦是 軍政 終熄. 이것이 下野하신 後에 第一, 미리 그렇게 强調하신 點이라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또 다음에 듣겠습니다.

(入力일 : 201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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