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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10年은 過去의 10年과 다르다” , 挑戰 精神 - 企業家精神이 만든 成功의 歷史 | 人事/組織 |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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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固定觀念을 깬 10年 前 SKT의 하이닉스 引受 過程

“앞으로의 10年은 過去의 10年과 다르다”
挑戰 精神 - 企業家精神이 만든 成功의 歷史

배미정,송재용,배종훈 | 330號 (2021年 10月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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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年 前 SKT가 ‘半導體는 안 된다’는 固定觀念을 깨고 다른 企業들이 外面한 딜을 果敢히 성사시킨 背景은 다음과 같다.

    1. 當時 프로젝트 責任者의 새로운 리더십이 스타트업처럼 小規模 프로젝트 單位로 일하는 文化와 水平的인 疏通 文化를 構築해 젊은 職員들의 熱情에 불을 지피고 業務 沒入度를 높였다.

    2. 팀員들은 不可能해 보일 程度로 難易度가 높은 課題에 挑戰하고 사내 經營陣을 說得하기 위해 熾烈하게 苦悶, 討論하는 過程에서 일의 成敗와 關係없이 스스로 學習하고 成長하고 있다는 成就感을 얻었다.

    3. 오로지 目標 達成을 위해 旣存 慣行에서 벗어난 새로운 딜 構造를 만들어 냄으로써 競爭을 없애는 同時에 債券段 等 利害關係者들을 만족시키는 데 成功했다.



    編輯者註
    본 原稿는 서울對 經營大學 敎授陣(송재용, 배종훈 敎授)李 SKT의 하이닉스 M&A프로젝트팀을 이끈 當時 事業開發팀長과 매니저 4名 等 實務팀을 인터뷰해 作成한 事例의 內容과 이를 基盤으로 한 追加 取材를 통해 完成했습니다.

    2021年 4月 박정호 SK텔레콤(SKT) 代表 兼 SK하이닉스 副會長은 SKT 社內 타운홀 미팅에서 SKT를 分割해 半導體와 情報通信技術(ICT) 分野에 投資와 革新을 先導하기 위한 ‘SK스퀘어’를 設立하겠다고 電擊 發表했다. 成長 軌道에 오른 SK하이닉스를 包含한 半導體 部門을 SKT의 旣存 通信 事業에서 떼어내 보다 攻擊的인 投資에 拍車를 加하겠다는 意味다. 2011年 SKT가 하이닉스를 引受해 半導體 産業에 처음 進出한 지 10年 만이다.

    時計를 10年 前으로 돌려 2011年 11月. 國內 最大 移動通信會社인 SKT가 하이닉스 引受 優先協商對象者로 選定됐을 때만 해도 市場의 反應은 싸늘했다. 內需 事業만 하던 通信社가 果然 글로벌 半導體 製造會社를 제대로 經營할 수 있을지 疑心했기 때문이다. 3兆 원 規模의 無理한 引受合倂(M&A)李 結局 ‘勝者의 詛呪’로 돌아올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2020年 末 基準, SK하이닉스는 國內 時價總額 2位, 그리고 인텔, 三星電子를 잇는 글로벌 半導體 賣出 3位 企業으로 跳躍하며 10年 前의 選擇이 옳았음을 證明하고 있다. 지난 10年間 時價總額이 4倍 가까이 成長한 SK하이닉스는 母會社인 SKT의 企業 價値 增大에 寄與했을 뿐 아니라 SK그룹의 位相을 높였다. 內需 中心이던 SK그룹은 하이닉스 引受 以後 半導體 素材 業體인 OCI머티리얼즈와 LG실트론 等을 引受하며 글로벌 半導體 産業의 主軸으로 跳躍했다. 그리고 올해 ‘SK스퀘어’를 新設함으로써 SK하이닉스를 半導體 綜合 솔루션 會社로 育成할 수 있는 基盤까지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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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T의 하이닉스 引受는 지난 10年間 SKT와 SK그룹의 運命을 바꿔 놓은 成功的 M&A로 누구나 認定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成功的인 結果를 만들어 내기까지 經營陣과 實務陣이 숱한 고비를 넘긴 過程은 제대로 注目받지 못했고 仔細히 알려지지도 않았다. SK는 1978年 鮮京半導體를 設立하고 半導體 産業 進出을 摸索했으나 石油 波動으로 事業을 접었다. 그리고 2007年부터 하이닉스 引受를 檢討했지만 莫大한 投資 費用 負擔과 ‘실리콘 사이클’ 1 로 불리는 비즈니스 變動性에 對한 憂慮가 커서 선뜻 決定을 내리지 못했다. 2010年 8月, 當時 SKT 事業開發室長이었던 박정호 現 SKT 代表 兼 SK하이닉스 副會長이 다시 水面 위로 끌어올려 祕密裏에 少數의 實務陣에게 하이닉스 引受 檢討를 指示했을 때만 해도 果然 이 딜이 끝까지 成事될 수 있을지 豫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섣불리 引受했다가 잘못되면 SKT의 生存까지 威脅할 수 있는, 어느 누구도 쉽게 손들기 어려운 딜이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社內 憂慮를 뚫기 위해서는 過去보다 훨씬 더 緻密한 準備가 必要했다. 이런 어려운 條件 속에서 實務陣이 몇 次例 고비를 넘기면서 끝까지 딜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背景에는 朴 室長(當時 職銜)의 目標 志向的 리더십, 그에 발맞춰 끈질기게 딜에 沒入한 팀員들의 熱情, 그로부터 나온 創意的이고 緻密한 戰略이 있었다.

    10年 前 SKT가 ‘半導體는 안 된다’는 固定觀念을 깨고 남들이 外面한 길을 果敢하게 開拓한 過程은 오늘날 新事業 開發로 破壞的 革新을 推進하려는 企業들이 參考할 만한 事例다. 當時 SKT의 하이닉스 M&A프로젝트에 參與한 實務팀 매니저 等을 인터뷰한 內容을 바탕으로 SKT가 하이닉스 딜을 성사시키기까지의 旅程을 DBR와 서울大 經營大學 敎授陣이 仔細히 分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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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事業開發室의 새로운 리더십

    SKT 하이닉스 딜 프로젝트의 始作은 2009年 事業開發室이란 組織의 新設로 거슬러 올라간다. 事業開發室은 當時 박정호 SK커뮤니케이션즈 事業開發部文章이 專務로 昇進 移動하면서 GMS(Global Management Service) CIC(社內 獨立 企業, Company in Company) 傘下에 만든 M&A 專擔 組織이다. 新生 組織인데다 業務 特性 때문에 사내에서 크게 注目받는 組織은 아니었다. 當時만 해도 SKT의 新事業 開發 方式은 M&A를 통한 비유기的 成長보다 內部 力量을 活用한 事業 開發이 主流였다. 더군다나 新事業 開發 組織은 過去에도 생겼다 금세 사라지는 일이 不知其數였다. 事業開發室을 新設한다는 組織 改編 뉴스에 大部分 職員이 시큰둥했던 理由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未來가 不透明한 組織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渦中에도 M&A를 새로운 機會의 領域으로 본 少數의 젊은 職員이 있었다. 서로 다른 出身 部署와 專門性을 갖춘 職員 30餘 名이 新市場 開拓에 對한 好奇心과 熱意로 事業開發室의 門을 두드렸다.

    事業開發室의 業務 方式은 다른 組織과 달랐다. 構成員들은 4個 팀에 所屬됐지만 實際 業務는 全的으로 프로젝트 單位로 進行됐다. 팀 內에서 平常的인 業務를 하다 가도 새로운 아이템이 發掘돼 프로젝트팀이 構成되면 다른 일을 접고 卽時 프로젝트에 올인하는 式이었다. 平均 대여섯 件의 프로젝트가 常時的으로 進行됐다. 여느 部署처럼 職責者 中心의 週間 會議가 있긴 했지만 比重이 크지 않았고 프로젝트別로 隨時로 이뤄지는 會議들이 훨씬 重要했다.

    朴 室長은 成果를 評價할 때도 팀보다는 프로젝트 單位의 目標 達成을 重視했다. 이를 위해 프로젝트 擔當 리더를 신중하게 定하되 그 以後부터는 리더에게 人事를 包含한 프로젝트 運營에 關한 全權을 附與했다. 人事도 프로젝트 리더가 프로젝트 팀員을 直接 골라 推薦하면 室長이 承認하는 式으로 進行됐다. 프로젝트 리더와 所屬 팀長이 同一할 때도 있지만 다른 때는 리더가 팀長을 건너뛰고 室長에게 直接 報告하는 일도 자연스러운 組織이었다. 이처럼 프로젝트 單位로 獨立的으로 일하는 方式은 構成員들로 하여금 旣存의 部署別 業務 形式이나 節次에 介意치 않고 目標 志向的으로(goal-oriented) 業務에 沒入하도록 이끌었다.

    2. ‘수펙스(SUPEX)’한 課題의 發掘

    朴 室長은 SKT의 新成長 動力을 글로벌 單位, 特히 非通信 分野의 M&A에서 찾고자 했다. 이미 成熟期에 접어든 通信 事業은 漸次的으로 收益性이 惡化되는 것이 不可避하다고 判斷하고 先制的으로 對備하고자 한 것이다. 海外 企業뿐 아니라 國內 글로벌 企業까지 物色하던 次에 그의 눈에 들어온 會社가 바로 오랜 期間 市場에서 외면당한 하이닉스였다. 하이닉스는 효성그룹 等 多數의 大企業뿐 아니라 SK그룹 內에서도 數次例 引受를 檢討했지만 그때마다 리스크가 크다는 理由로 結局 保留한 賣物이었다. 하이닉스 引受는 새로운 成長 動力을 確保할 수 있는 엄청난(Super) 賣物이지만 그룹 內外의 憂慮를 拂拭할 수 있을 程度로 뛰어난(Excellent) 方案을 導出해야 成功할 수 있는 難易度가 높은 課題, 말 그대로 ‘수펙스(SUPEX, Super와 Excellent의 合成語)’한 課題였다.

    朴 室長은 成敗를 가늠하기 힘든 어려운 딜임을 잘 알았지만 처음부터 ‘안 된다’는 結論을 내지 않았다. 一旦 課題를 試驗臺에 올리고 事業開發팀長을 통해 祕密裏에 하이닉스 딜을 檢討하는 파일럿 팀을 꾸렸다. 2010年 8月, 事業開發室 매니저 2名이 中心이 된 하이닉스 引受 파일럿 팀이 이렇게 처음 構成됐다.

    팀은 構成됐지만 確定된 內容은 아무것도 없었다. SKT가 하이닉스 M&A를 檢討하기 始作했다는 事實은 外部뿐 아니라 社內에도 徹底히 祕密에 부쳐져야 했다. 이에 파일럿 팀은 會社 隣近 레지던스의 30坪型臺 房을 빌려 事務室로 使用했다. 半導體에 門外漢이었던 팀員들은 이곳에서 國內外 半導體 關聯 資料는 모조리 찾아 읽었다. 사내 經營陣을 說得하기에 앞서 팀員들부터 이 딜이 왜 必要한지를 스스로 納得해야 했기 때문이다. 保安 이슈로 外部 諮問을 받을 수도 없는 狀況에서 最善의 方法은 熾烈한 스터디와 分析뿐이었다. 밤낮없이 資料를 調査하고 그 內容을 討論하는 作業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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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의 最優先 課題는 過去 SK가 하이닉스 投資를 保留한 가장 큰 理由인 메모리 半導體 産業의 極甚한 變動性(그림 1)과 그에 따른 리스크를 精密하게 解剖, 分析하는 것이었다. 尖端 技術이 必要한 메모리 半導體 産業은 ‘실리콘 사이클’이라고 불리는 비즈니스 사이클의 振幅이 매우 큰 産業이다. 비즈니스 사이클의 바닥에서 大規模 投資를 敢行하면 사이클의 頂點에서 큰돈을 벌 수 있지만 그만큼 競爭力을 維持하려면 持續的인 設備 投資가 不可避하다. 더군다나 新製品 出市 週期가 짧아지고 價格 競爭이 熾烈해지면서 上位 會社들이 原價 節減의 出血을 甘受하면서까지 市場占有率을 키우는 치킨 게임이 熾烈하게 展開됐다. 치킨 게임 속에서 孤軍奮鬪하던 하이닉스는 優越한 技術力을 갖추고 있음에도 不拘하고 適時에 投資를 못해 危機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惡循環에 빠져 있었다. 이처럼 실리콘 사이클의 리스크와 莫大한 投資 費用 負擔이 明明白白한데도 不拘하고 SKT가 하이닉스를 引受해야 한다면 그 理由가 무엇인지를 納得할 수 있어야 했다.

    하이닉스를 둘러싼 對內外的인 環境 變化를 綿密히 分析한 結果 파일럿 팀은 메모리 비즈니스 사이클의 밴드가 앞으로 상향될 수 있다는 初期 假說에 이르렀다. 치킨 게임이 持續되고 公正 難易度가 높아지면서 投資 負擔이 커질수록 臺灣, 日本 等 下位 事業者들이 淘汰되는 市場 統合(Market Consolidation)李 빨라질 것이라고 豫想했다. 그렇게 되면 三星電子를 뒤이어 뛰어난 技術力을 갖춘 메모리 半導體 2位 事業者인 하이닉스에 成長 機會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 前提는 SK처럼 資金力을 갖춘 會社가 新規 資金을 投入해 安定的인 經營 基盤을 닦아주는 데 있었다. 이 같은 論理를 바탕으로 팀員들은 “半導體 産業의 앞으로 10年은 過去 10年과 다를 것이다”는 하이닉스 딜의 核心 캐치프레이즈를 設計했다. 이 팀의 初期 意見을 바탕으로 하이닉스의 成長 潛在力을 確認한 朴 室長은 프로젝트팀을 構成하고 本格的으로 追加 人力과 豫算 等의 支援 射擊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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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無謀하리만큼 熱情的인 팀워크

    2011年 1月, 매니저 4名이 새롭게 合流해 7名으로 構成된 하이닉스 프로젝트팀은 서울 江南에 別途의 事務室을 마련해 本格的으로 딜 設計 作業에 着手했다. 새로운 팀 亦是 옆 事務室 사람들도 무슨 일을 하는지 눈치채지 못할 程度로 鐵桶 保安을 維持했다. 새로 合流한 멤버들은 旣存 멤버들이 直接 推薦해 選拔했다. 팀員들은 하이닉스 以前부터 다른 프로젝트를 같이하면서 눈여겨봤던 同僚를 直接 迎入했다. 자연스럽게 이 팀은 當時 基準으로 20代 後半부터 30代 後半까지 눈에 띄게 年齡帶가 낮은, 비슷한 또래의 매니저들로 構成됐다. 當時 事業開發팀長이 70年生, 實質的으로 프로젝트를 리드했던 매니저가 75年生, 막내 매니저가 83年生이었는데 10年 後인 現在 基準으로 보면 80年代生의 팀長 및 프로젝트 리더가 90年代生 팀員과 같이 일한 셈이었다. 오늘날에도 보기 드문, 젊은 組織이 아닐 수 없었다. 팀員의 年齡帶가 비슷하다 보니 水平的으로 疏通하면서 親密感도 빠르게 確保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 팀의 1次 目標는 하이닉스 引受의 必要性에 對한 그룹 및 SKT 經營陣의 同意와 支持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룹에서 몇 次例 檢討된 件이기에 豫想되는 憂慮와 反對 意見에 對한 深層的 分析이 必要했다. 또 經營陣을 說得할 수 있는 새로운 論理를 開發해야 했다. 週末 없이 ‘月火水木金金金’, 一週日에 100時間 以上 일하는 過勞가 持續됐다. 하지만 構成員 中 어느 누구도 不平不滿을 내비치지 않을 程度로 業務에 沒入했다. 會社의 運命을 바꿀 수 있는 大規模 딜을 만들어 가는 過程이었기 때문이다. 目標의 크기가 큰 만큼 엄청난 努力이 뒷받침돼야 하는 게 當然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自負心을 가질 수 있는 意味 있는 課題였기에 팀員들은 모두 過勞를 不辭하며 目標를 向해 내달렸다. 이들은 딜의 失敗 可能性에 크게 介意치 않았다. 팀員들 間에도 리스크를 보는 視角이 제各其 달랐다. 팀 內에서조차 잘못될 境遇 SKT 營業利益 全體를 하이닉스에 投入해야 하는 狀況이 올 수 있다는 保守的인 見解가 提起됐다. 팀員들은 이런 最惡의 狀況을 包含한 모든 시나리오를 열어 두고 서로 討論을 거듭하면서 最善의 方向으로 意見을 좁혀 나갔다.

    朴 室長의 隔意 없는 스킨십度 팀員들의 熱情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當時 朴 室長은 팀員들에겐 管理者이기보다는 멘토 先輩이자 커리어 코치에 가까웠다. 朴 室長은 여느 任員과 달리 平素 隨時로 時間이 날 때마다 最少 一週日에 한 番 異常은 매니저들과 食事를 하며 對話를 나눴다. 年次가 어린 매니저 立場에서는 任員과 直接 만나서 日常을 共有하는 經驗 自體가 新鮮한 刺戟이 됐다. 朴 室長은 처음부터 하이닉스 딜만큼은 팀員들이 自身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음을 認定했다. 그래서 業務를 細細히 指示하기보다 팀員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새로운 質問을 던지면서 그들의 생각에 確信을 심어주는 役割을 했다. 朴 室長은 “집에 가서 9時 뉴스를 볼 時間에 밖에서 9時 뉴스거리를 만들자” “會社에 새로운 歷史를 쓸 수 있는 機會다” “平凡한 職場人이 되지 말자”는 等의 發言으로 팀員들의 挑戰을 激勵했다. 會食뿐 아니라 登山 같은 趣味 活動을 통해 業務 外 時間에도 스스럼없이 對話할 수 있었던 點도 當時 팀員들에게 보이지 않는 動機附與가 됐다. 그는 平社員이었던 時節, 韓國移動通信 M&A에 參與했을 때 두려움 없이 業務에만 沒入했던 經驗 等을 共有하며 팀員들에게 心情的 支持를 보냈다.

    하이닉스 딜이 規模가 크고 重要하다고 해서 하이닉스 引受팀이 다른 팀보다 더 큰 補償을 約束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팀員 누구도 일하면서 補償에 對한 期待나 아쉬움을 吐露하지 않았다. 프로젝트의 成功 與否와 相關없이 會社의 運命을 바꿀 수 있는 重要한 프로젝트에 參與해 스스로 成長하고 있다는 經驗 自體가 그 어떤 補償보다도 큰 動機附與가 됐다.

    그렇게 팀員들이 3個月에 걸쳐 熾烈하게 스터디한 結果가 100페이지 分量의 報告書로 完成됐다. 半導體 産業의 本質부터 하이닉스의 競爭力과 財務的 側面에 이르기까지 多角度로 引受 妥當性을 檢討하다 보니 分量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過去 여러 次例 投資 保留를 決定한 經驗이 있었기에 經營陣에게 “過去 10年과 앞으로 10年은 다르다”는 點을 납득시키는 데 重點을 뒀다. 2011年 3月, 드디어 그룹 會長과 SKT 및 SK㈜의 主要 意思結晶子들에게 이 報告書가 公式 報告됐다. 그룹 全體 經營陣에게 公式的으로 딜 推進 意思를 公開한 것은 이番이 처음이었다. 파일럿 팀이 딜을 檢討하기 始作한 지 8個月 만에 비로소 하이닉스 引受가 公式的으로 公論의 章에 오른 것이다. 다양한 憂慮와 反對 意見이 提起됐지만 豫想된 反應이었기에 팀員들은 落膽하지 않았다. 그동안 서로 討論하면서 하이닉스 引受 推進에 따른 리스크와 憂慮에 對한 어떤 意見도 열린 마음으로 檢討해 消化할 수 있는 팀워크와 自信感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날 深度 있는 質疑와 討論 끝에 于先 外部 資金을 活用해 危險을 最少化한다는 條件으로 引受를 推進하라는 會長 承認이 처음 떨어졌다. 이제부터가 本格的인 딜의 始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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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旣存의 틀을 깨는 戰略

    1) 베테랑 半導體 專門家들과 協業

    처음 그룹이 考慮한 投資 金額은 1兆 원 水準으로 引受 檢討 當時에 必要하다고 본 4兆 원에 크게 못 미치는 水準이었다. 그만큼 딜 以後의 不確實性에 對한 經營陣의 不安感이 컸다. 팀員들은 外部 資金 誘致 必要性을 勘案해 海外의 財務的 投資者들과 接觸하는 한便 보다 精巧한 分析과 引受 論理 및 引受 戰略을 樹立해 經營陣을 說得하고자 했다. 特히 사내 憂慮와 反對가 相當했다. 特히 豫期치 못한 하이닉스의 收益性 惡化가 SKT뿐 아니라 SK그룹 全體에 미칠 衝擊과 當時 하이닉스가 美國 企業과 벌이고 있던 技術 關聯 訴訟 結果가 미칠 波長에 對해 憂慮가 컸다. 그 밖에도 果然 하이닉스가 三星에 버금가는 競爭力을 갖추고 있는지 確信할 수 없다는 意見도 擡頭됐다.

    지난 8個月 동안 미친 듯이 半導體를 硏究한 實務陣이지만 實際 半導體 分野 經驗이 없는 非專門家라는 點이 繼續 발목을 잡았다. 外部에 公開된 데이터, 特히 過去 데이터 分析 結果만으로는 하이닉스의 競爭力을 充分히 理解하는 데 限界가 있었다. 實務陣은 이런 限界를 克服하기 위해 半導體 비즈니스와 하이닉스 內部 事情에 精通한 前(前) 하이닉스 副社長 等 하이닉스 前職 任員을 包含한 半導體 分野 專門家 그룹을 搜所聞해 助言을 求했다. 30年 가까이 半導體 分野에 從事한 베테랑들을 數個月間 每日같이 찾아가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하이닉스의 經營 現況뿐 아니라 外部에서는 알기 힘들었던 仔細한 속事情들까지 속속들이 把握할 수 있었다. 半導體 專門家들의 생생한 證言은 引受팀을 못 미더워 하는 사내 經營陣을 說得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다양한 專門家 助言들이 쌓이면서 하이닉스가 치킨 게임에서 最終 生存者가 될 것이라는 믿음은 漸次 確信에 가까워졌다. 2000年代 두 次例에 걸쳐 熾烈하게 進行된 치킨 게임의 結果, 메모리 半導體 分野에서 世界 5位 안에 들었던 獨逸의 大企業 키몬다가 破産하고, 日本의 엘피다가 深刻한 經營 危機에 빠졌다. 또 여러 臺灣 業體가 DRAM에서 撤收함으로써 DRAM을 中心으로 寡占化가 進行되고 있었다. 下位 事業者의 競爭力 喪失은 中長期的으로 産業 變動性이 縮小될 可能性이 커지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三星과 技術 隔差가 거의 없는 하이닉스에 機會가 될 것이라고 判斷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사내에서는 딜의 肯定的인 潛在力보다 否定的인 리스크에 훨씬 더 敏感해 했다. 이러한 憂慮를 拂拭시키려면 半導體 産業의 사이클이 沈滯期에 들어섰을 때 資金이 얼마나 必要할지, 果然 SKT가 堪當할 수 있는 水準인지에 對한 緻密한 分析이 必要했다. 現金흐름割引法(DCF, Discounted Cash Flow Method)이나 株價純資産比率(PBR) 같은 一般的인 企業 價値 算定 方法만으로는 實績의 振幅이 큰 半導體 企業의 價値를 評價하는 데 限界가 있었다. 이에 따라 實務팀은 수많은 시뮬레이션과 모델링을 活用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하이닉스가 높은 設備 投資 負擔을 自體 現金 흐름으로 充當할 수 있는지 테스트했다. 數百 次例에 걸친 테스트 結果 現在의 事業 構造에서 約 2兆5000億 원假量의 資金을 投入한다면 最惡의 시나리오로 치킨 게임과 같은 衝擊이 두 番 온다고 假定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結論에 이르렀다. 否定的인 리스크가 堪耐 可能한 水準으로 具體化되자 肯定的인 側面에서 挑戰해볼 만한 價値가 더욱 분명해졌다.

    더 나아가 實務팀은 半導體 專門家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半導體 引受 以後의 成長 戰略을 具體化했다. 半導體 밸류체인과 關聯된 追加的인 事業 機會 發掘뿐 아니라 企業 價値를 最大 2.5倍까지 增大할 戰略을 樹立했다. 다만 引受 以後 SKT와의 事業的 시너지는 크게 考慮하지 않았다. 完全 다른 業種인 SKT와의 시너지 要因에만 매달려서는 經營陣을 說得하기에 力不足일 것이라고 判斷했기 때문이다.

    數次例에 걸친 會議와 持續的인 說得 過程이 反復되면서 사내 經營陣의 半導體 産業과 하이닉스에 對한 理解度도 漸次 높아졌다. 崔泰源 會長도 海外 出張 中 따로 時間을 내 半導體 委託 生産 製造 業體 世界 1位인 TSMC 會長, 前 SONY 會長 等과 直接 미팅을 가질 程度로 積極的으로 半導體 産業을 硏究했다. 結局 하이닉스 引受의 長期的인 비전을 높게 評價한 崔 會長 等 그룹 및 SKT의 最高經營陣은 SKT 單獨 入札 形態의 引受戰 參與를 最終的으로 承認했다. 以後 SKT는 本格的인 引受 推進을 위해 財務, 法務, 弘報 等 戰死 各 分野에서 50名 規模의 태스크포스(TF)를 構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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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新株 中心 賣却으로 딜 構造를 바꾸다

    債權團은 2011年 6月 하이닉스 3次 賣却 公告를 냈다. 앞서 2009年 9月 1次 賣却 公告 때 孝誠이 引受意向書를 單獨으로 提出했다가 特惠 非理 疑惑에 對한 負擔으로 撤回했다. 또 같은 해 12月 2次 賣却 公告를 냈으나 아무도 引受 意向을 밝히지 않았다. 그만큼 負擔이 큰 딜이었기에 이番 3次 賣却은 SKT가 單獨으로 入札에 參與할 可能性이 커 보였다. 그런데 去來所가 大企業들에 뿌린 ‘하이닉스 引受說’ 照會 公示 要求에 STX가 檢討하고 있다는 答辯을 내놓으면서 狀況이 急變했다. 結局 7月 SKT와 STX가 入札參加意向書(LOI)를 提出하면서 하이닉스 引受戰은 2巴戰의 競爭 入札이라는 또 다른 局面을 맞이하게 됐다. 競爭 構圖 아래 債權團이 定한 評價 基準에 符合해야만 하이닉스를 引受할 수 있는 狀況이 된 것이다.

    LOI 提出로 SKT의 하이닉스 引受 參與가 뉴스로 첫 公式化되자 市場은 크게 출렁였다. 2011年 初 17萬, 18萬 원臺였던 SKT 株價는 12萬 원臺까지 떨어졌다. 市長은 SKT의 豫想치 못한 行步를 못 미더워 했다. 當場 IR에서 株主들의 不滿이 나오기 始作했다. 實務陣의 心的인 負擔은 커졌지만 그렇다고 흔들리지는 않았다. 오랜 期間 깊이 工夫하고 準備한 內容을 土臺로 한 强力한 確信이 있었기 때문이다. 戰死 TF는 ‘最大限 낮은 價格’에 ‘大企業 特惠 是非 없이’ 引受하는 目標를 세웠다. 이를 通해 投資 收益性을 確保할 뿐 아니라 利害關係者의 同意를 바탕으로 友好的인 環境에서 引受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다.

    引受 以後 追加的인 投資 負擔을 줄일 수 있을뿐 아니라 하이닉스의 未來 成長 側面에서도 舊株보다는 新株 中心의 引受 構造가 유리했다. 實務陣이 앞서 施行한 스트레스 테스트 結果 最小 2兆 원 以上의 新規 資金이 하이닉스에 投入돼야 向後 發生할 危機에도 버틸 수 있었다. SKT는 新株 中心 引受 構造를 하이닉스의 長期的인 競爭力을 强化하는 데 必要한 安全瓣이라고 보고 債權團과의 協商에서 決코 讓步할 수 없는 條件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神主와 舊株를 混合해 經營權을 引受한다는 아이디어는 國內 M&A 歷史上 先例를 찾기 어려울 程度로 複雜한 이슈들을 同伴했다. 于先 賣却 主體인 債權團과 引受 候補 企業 間에 救主, 新株 賣却 比率을 둘러싼 利害 衝突이 發生했다. 그동안 數次例 賣却에 失敗한 債權團은 하이닉스의 長期的 成長보다는 舊株를 最大限 賣却해 當場 資金을 回收하는 게 優先이었다. 債權團은 舊株의 最小 7.5% 異常을 賣却하는 舊株 中心의 賣却을 願했고 神主는 最大 10%로 制限하면서 救主 프리미엄만으로 優先協商對象者를 選定하려 했다. 또 債權團은 特惠 是非가 發生할 것을 憂慮해 最終 引受 持分率을 20% 未滿으로 制限하기를 願했다. 하지만 SKT는 公正去來法上 子會社 義務 持分 比率을 勘案해 20% 以上 引受를 强力히 主張했다.

    債權團과 SKT의 立場 差異가 커지면서 딜은 STX에 有利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引受意向書가 提出된 以後에도 이처럼 SKT, STX, 債權團의 意見 差異가 커지면서 向後 入札 構造가 어떻게 展開될지 모르는 不確實한 狀況이 持續됐다.

    債權團과의 熾烈한 神經戰 속에서 SKT는 半導體가 國家 戰略 産業이라는 點에 注目해 新株 發行을 통해 하이닉스에 2兆 원 以上의 新規 資金을 投入하면 하이닉스의 競爭力이 强化돼 生存 可能性이 높아진다는 點을 이해관계자들에게 積極的으로 呼訴했다. 特히 債權團에는 當場 投資 資金 回收도 重要하지만 引受 代金이 新規 投資에 流入되지 않으면 또다시 不實이 發生해 金融圈이 堪當해야 할 財務的 負擔뿐 아니라 企業 살리기에 結局 失敗했다는 責任도 커질 수 있음을 强調했다. 또 SK그룹이 新規 資金 投入으로 하이닉스를 正常化시킨다면 債權團도 비즈니스 사이클의 頂點에서 只今보다 더 큰 利益을 回收할 수 있을 것이라고 說得했다. 하지만 債權團은 半導體 産業 關聯 經驗이 全無했던 SK의 經營 力量과 SK그룹과의 시너지를 疑心했다. SKT는 SK그룹이 1980年 대한석유공사, 1994年 韓國移動通信 引受 等 異種 産業과의 M&A를 통해서도 成長해 왔음을 强調하는 한便 實務陣이 그동안 半導體 産業과 하이닉스에 對해 硏究한 內容을 바탕으로 하이닉스가 三星에 이은 名實相符한 메모리 半導體 2位 會社로 成長해 나갈 것임을 論理的으로 說得해 나갔다.

    熾烈하게 引受 論議가 進行되던 渦中에 유럽發 財政 危機가 發生했다. 景氣 不確實性이 增幅되고 株式 市場이 얼어붙었다. 相對的으로 財務的 餘力이 不足했던 STX 內部에서 引受 金額 方法과 旣存 事業 포트폴리오와 半導體 事業의 시너지 效果 等에 對한 疑問이 提起되기 始作했다. 結局 景氣 沈滯라는 環境 變化 속에서 하이닉스 引受 危險이 너무 크다고 判斷한 STX는 本入札 參與 抛棄를 公式 宣言한다.

    狀況이 反轉됐다. 競爭社의 公式 抛棄 宣言으로 多急해진 쪽은 債權團 側이었다. 그렇지만 競爭 入札을 통해 公正性을 確保하고자 한 債權團은 入札日을 延期하고 公開 競爭 入札로 變更해 12個 大企業에 追加로 入札 案內書를 發送했다. 하지만 入札 參與를 希望하는 會社는 나타나지 않았다. 結局 債權團과 SKT의 立場 差異가 좁혀졌다. 最終 딜 救助는 救主 7.5%, 新株 14.7% 賣却으로 確定됐는데 이는 新株 10% 以上 發行 및 最終 引受 持分率 20%를 願했던 SKT의 引受 救助에 符合하는 數値였다. 新株 中心 引受 方式이 確定되면서 經營權 프리미엄의 負擔도 줄었다. 딜 構造는 반드시 新株 中心으로 짜서 하이닉스에 新規 資金을 곧바로 投入해야 한다는 實務팀의 固執이 통한 것이다. 더 나아가 SKT는 끝까지 入札을 抛棄하지 않고 國家 半導體 産業을 발전시키려는 責任感 있는 姿勢를 堅持했다는 市場의 評價를 받으면서 大企業 特惠 詩碑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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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最適의 市場 타이밍에 引受

    하이닉스 豫備 實査를 進行하면서 가장 敏感한 部分이 밸류에이션을 통해 適正한 引受 價格을 策定하는 것이었다. 新株 發行 價額은 最近 株價에 달려 있기에 하이닉스의 市勢가 適正 水準에서 維持되는 게 關鍵이었다. 그런데 2011年 4月 하이닉스 株價가 急騰해 3萬7000원까지 上昇했다. 이는 引受팀이 事前에 設定한 PBR 밴드를 웃도는 價格이었다. 더군다나 2011年 2分期 以後 하이닉스 實績이 惡化되면서 SKT 內部의 視角은 더욱 保守的으로 바뀌었다. 景氣 不確實性이 커지는 가운데 引受팀은 “堪耐할 수 있는 價格에서만 산다”는 立場으로 旋回할 수밖에 없었다. 引受 可能性은 더 稀微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中 유럽발 財政 危機가 터지면서 株式市場에 急落場이 展開됐다. 하이닉스 株價도 그해 8月 1萬5000원臺까지 下落했다. SKT 立場에서는 타이밍的으로 좋은 投資 機會가 온 셈이다. 이런 狀況에서도 SKT는 緊張感을 늦추지 않았다. 자칫 SKT 같은 大企業이 하이닉스를 引受한다는 期待感이 市場에 反映되면 株價가 다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理事會 前날까지도 하이닉스 引受 本入札 參與 與否를 祕密에 부쳤다. 最高經營陣과 實務陣 極少數를 除外한 人員, TF 팀員들조차도 果然 會社가 最終的으로 本入札에 參與할지 與否를 알지 못했다. 當時 市場에서는 STX와 마찬가지로 SKT 亦是 引受를 抛棄할 것이란 觀測이 支配的이었다.

    引受팀은 이런 外部의 反應에 徹底히 緘口하며 保安을 維持하는 데 成功했다. 2011年 11月10日 理事會가 本入札 參與를 決定하기 前날까지도 ‘SKT, 引受 抛棄 有力’ 뉴스가 나올 程度였다. 2011年 11月 하이닉스 株價는 2萬 원臺 初盤으로 TF가 策定했던 適正 價格 밴드에 들어왔다. 이에 SKT는 10日 本入札 參與를 公式化했고, 11日 優先協商對象者로 選定됐다. 週當 引受 價格은 救主 2萬4500원, 新株 2萬3000원으로 當時 市場 價格과 거의 近接한 水準으로 策定됐다. 經營權 프리미엄도 平均 10% 程度로 微微한 水準이었다. 崔 會長이 하이닉스 引受를 처음으로 條件附 承認한 2011年 3月 株價가 3萬 원臺에 肉薄했던 點을 勘案하면 最適의 條件으로 引受하는 데 成功한 것이다. 또 過去 1年間 證券社들이 提示한 하이닉스의 目標 株價는 3萬, 4萬 원臺였고 投資銀行이 提示한 適正價格이 2萬 원 後半臺였음을 勘案했을 때 外部 專門 機關이 評價한 하이닉스의 適正 株價에 비해서도 合理的인 水準이었다. 1年 넘게 進行됐던 하이닉스 引受팀의 努力은 이렇게 成功的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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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이닉스 引受, 特別한 旅程의 遺産

    SKT는 2012年 2月14日 하이닉스 持分 引受 契約을 맺음으로써 引受를 最終 確定했다. SKT가 支拂한 最終 引受 代金은 3兆3700億 원으로 新株 發行에 約 2兆3400億 원, 救主 買收에 約 1兆300億 원이 들어갔다. 이로써 SKT는 하이닉스 持分의 21.05%를 保有한 最大株主로 하이닉스 經營에 參與하게 됐다.

    契約 以後 旣存 프로젝트 팀 人員 大部分은 새로 編成된 SC事業戰略팀에서 하이닉스 引受 後 統合(PMI, Post-Merger Integration) 作業에 着手했다. 하이닉스의 自體 競爭力과 內部 속事情을 잘 알고 있었던 팀員들은 本業에 關해서는 하이닉스의 自律性을 最大限 尊重하는 한便 後方에서 支援하는 戰略을 擇했다.

    먼저 SK 經營陣이 直接 나서 오랜 M&A 過程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쳤을 하이닉스 任職員들을 激勵했다. 一例로 3月26日, 京畿道 利川 本社에서 SK하이닉스 出帆式을 마친 崔 會長과 朴室長은 그날 저녁 깜짝 이벤트로 本社 隣近의 호프집 10個를 빌려 1000餘 名의 하이닉스 職員을 招待했다. 그리고 호프집을 一一이 들러 職員들과 直接 乾杯를 하고 밤늦게까지 對話를 나눴다. 2001年 債權團 共同 管理가 始作된 以後 10年 가까이 不實企業이란 烙印에 지쳐 있던 하이닉스 任職員들은 “父母님께서 기뻐하신다” “信用 等級이 올라갔다” “安定된 會社에서 일에만 專念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幸福해 하는 모습이었다. 숱한 苦悶과 고비 끝에 딜을 成事시킨 보람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瞬間이었다. 以後에도 崔 會長과 經營陣은 隨時로 하이닉스 工場을 訪問해 職員들과 疏通하며 士氣를 높이는 데 힘썼다.

    SKT는 이番 M&A가 相互 依存性이 떨어지는 異種 産業 間의 結合이라는 點을 勘案해 PMI 過程에서 SKT의 影響을 最少化하고자 했다. 그 一環으로 SK하이닉스 CEO를 包含한 主要 經營陣에 하이닉스 出身 職員들을 그대로 維持했다. 또 財務, 購買, HR 等 經營 支援 파트를 中心으로 最小限의 SKT 人力만 하이닉스에 派遣했다. 內需 企業인 SKT의 安定 志向的인 性向은 글로벌 競爭이 極甚한 半導體 事業에 毒이 될 수 있다고 判斷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이닉스에 內在된 不屈의 文化, 卽 苦難의 歲月을 이겨낸 ‘헝그리精神’이 SKT에 逆으로 移植되기를 期待했다. 이 같은 基調는 10年이 지난 只今까지도 지켜지고 있는 하이닉스 經營의 原則이다.

    하이닉스 引受價 SKT를 包含한 SK그룹에 남긴 가장 重要한 遺産은 ‘不可能이란 없다’는 自信感이다. 事業開發室, 特히 프로젝트 팀의 旅程은 누구든지 現在 水準에 安住하지 않고 높은 課題에 挑戰했을 때 뛰어난 成果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勿論 成果를 내기까지 수많은 障礙物을 넘는 過程에서 個人的인 犧牲도 뒤따랐다. 하지만 成長에 對한 切迫함과 水平的인 리더십과 팔로어十二 最上의 팀워크를 發揮하도록 이끌었다. 그렇게 旣存 慣行을 깨고 果敢하게 實行한 戰略들은 企業 價値를 提高하는 데 寄與했다. 지난 10年間 하이닉스 引受팀을 이끈 主要 멤버들은 以後에도 굵직한 新事業을 主導하며 SKT와 SK그룹의 成長을 이끌고 있다. 하이닉스 딜의 成功 經驗은 只今까지도 主役들이 새로운 事業에 挑戰할 때 떠올리는 模範 事例이자 더 큰 成長을 追求하도록 만드는 滋養分 役割을 하고 있다. 이처럼 事業開發室과 引受팀이 보여준 獨特한 組織文化와 成功의 經驗을 繼承 발전시켜 더 많은 成功 事例를 排出하도록 이끄는 것이 앞으로 SKT와 그룹의 또 다른 課題다.



    DBR mini box : 成功 要因 및 示唆點
    新事業 開發은 個人 力量만큼 팀워크 管理가 重要


    新事業 開發에 關心을 두지 않는 經營者는 거의 없다. 組織을 改編해 新規事業開發팀을 따로 만들거나, 核心 人材를 迎入하고, 新事業 成果와 補償을 連繫하는 다양한 試圖는 이제 經營의 日常이 됐다. 그러나 新事業 投資는 成功보다는 失敗할 確率이 훨씬 높다. 그래서 新規 事業의 成功 確率을 높이기 위해 어떤 組織的 機制를 導入하는 것이 效果的인가에 對한 많은 論議가 있어 왔다. 2011年 SK텔레콤(SKT)의 事業開發室이 主導한 하이닉스 引受 事例도 그 一環으로 注目할 必要가 있다. 當時 하이닉스는 메모리 半導體 産業의 치킨 게임으로 未來 展望의 不確實性이 높은데다 大規模 赤字로 經營 危機에 빠졌던 企業이었기에 引受 論議 過程에서 SKT 內部는 勿論 SK그룹 經營陣 사이에서 反對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0年이 지난 只今 돌이켜 보면 新成長 動力 確保를 통해 SK그룹과 SKT의 成長에 크게 寄與한 매우 成功的인 딜이었다. 이는 2021年 SKT가 通信會社 ‘SK텔레콤’과 ICT 分野에 投資와 革新을 先導하기 위한 ‘SK스퀘어’로 分割돼 새로운 成長 契機를 圖謀하게 만드는 始發點이 됐다. 以後 SK 事例에 刺戟받은 다른 企業들도 新成長 動力 確保를 위한 引受合倂(M&A)을 擴大하기 始作했다. 新規 組織 中心의 新事業 機會 探索이 成功할 수 있는 一般的 條件을 2011年 SKT의 하이닉스 引受 事例를 통해 살펴보자.

    1. 新事業 開發의 理論的 背景

    新事業 開發 方法論은 經營者의 企業 戰略, 組織 學習, 變化 管理 等 세 가지 役割의 觀點에서 살펴봐야 한다. 먼저 企業 戰略은 商品이 아닌 企業의 成長을 苦悶하는 手段이다. 事業 포트폴리오를 評價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再構成함으로써 새로운 成長 動力을 探索한다. 新事業 開發이 企業 戰略의 主要 課題인 理由다. 通商 經營者에게는 3가지 選擇肢, 自體 開發(in-house development), 戰略的 提携(strategic alliances), M&A가 있다. . i 이를 위해 經營者는 不確實한 未來 市場을 對備하는 企業의 力量, 動的 力量(dynamic capabilities) 或은 核心 力量(core competence)을 키워야 한다.

    다음으로 組織 學習은 現在 市場과 未來 市場 兩者 間의 均衡을 管理하는 體系的 努力이다. 旣存 事業의 收益性을 提高하는 效率性 活動과 未來 市場, 卽 新規 事業 機會를 發掘하는 革新 活動은 相衝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經營者의 役割은 相衝하는 經營 目標를 ‘活用(exploitation)’과 ‘探索(exploration)’의 均衡 側面에서 管理하는 것이다. ii 이를 위한 代表的인 選擇肢는 事業副題 組織과 같은 ‘M-form’ 組織과 兩손잡이 組織(structural ambidexterity 또는 ambidextrous organization) 等이 있다. 開放型 革新(open source innovation), 시스템 設計와 CVC를 包含한 사내 벤처(corporate venturing), 스핀오프(spin-offs) 等도 最近 脚光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經營者는 ‘일하는 方式’을 改善해 組織 效果性(organizational effectiveness)을 向上시키는 變化 管理의 主體이다. iii 일하는 方式의 改善은 새로운 事業 모델 探索을 위한 것인지 與否에 따라 크게 生産性 增大 프로그램과 事業 機會 探索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GE의 식스시그마(six sigma)가 前者의 代表的 事例이며, 삼성그룹의 新經營이 後者의 例이다. iv 要約하자면 新事業 開發은 成長을 위한 企業 力量을 確保하고, 新規 事業 機會를 發掘하며, 그에 相應하는 일하는 方式을 提案하는 活動이다. 그런데 經營者 個人의 特性만큼이나 組織 水準에서 事業 開發을 管理하는 集團의 特性 亦是 新事業 開發에 重要하다. 意思決定 스타일의 特性 側面에서 事業 開發 過程을 유형화하면 다음과 같다.

    意思決定 스타일의 特性은 業務 調律의 方式에 左右된다. 構成員 各自의 일을 戰死 水準에서 統合하는 方式이 結局 企業의 成果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림 1]은 業務 調律의 네 가지 方式을 보여준다. 수직축은 業務 調律의 一次的 權限을 下部 組織에 주는지 與否에 따라 下部 組織이 一次的 權限을 가지면 局地的 最適化(local optimality), 最高經營者가 톱다운 方式으로 主導하면 글로벌 最適化(global optimality)로 區分한다. 水平軸은 業務 調律의 基準에 따라 現行 競爭 優位의 改善과 관계되면 制限된 探索(constrained search), 現行 競爭 優位 改善과 無關한 獨自的 基準을 갖고 있으면 制限 없는 探索(unconstrained search)으로 區分한다. 制限된 探索은 關聯 分野에 新規 進出하는 關聯兄 多角化로, 制限 없는 探索은 非關聯 分野에 進出하는 非關聯型 多角化로 歸結되는 傾向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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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垂直軸에서 最高經營陣을 中心으로 意思決定權이 集中돼 있는 大部分의 會社와 달리 局地的 最適化의 스타일을 따르는 企業은 팀長 或은 部署의 自律的 企劃과 執行을 强調한다. 실리콘밸리의 革新 企業들에서 흔히 觀察되는 스타일이다. 代表的인 方式이 事業副題 組織(M型 組織)으로 業務를 設計하는 것이다. 調律 權限을 集中化하는 技能食 組織(U form)과 區分된다. 事業副題 組織은 情報가 있는 곳에 權限을 주고, 危險이 있는 곳에 補償을 준다는 原則에 따라 設計된 組織 構造다. 個別 事業部 或은 팀은 管理會計上 收益 센터(profit center)로 運營되며, 社業部長 或은 팀長은 收益 創出 活動에 必要한 資源, 卽 生産, 마케팅 等의 機能을 統制하고 部署員에 對한 人事權과 業務 調律權을 附與받는다. 國內에서는 社內 獨立 企業(Company in company, CIC)이라는 形式으로 通用되고 있다. 三星電子, 네이버, SKT가 代表的이다. v 水平軸에서 制限 없는 探索은 戰死 次元의 戰略的 統一性과 無關하게 獨自的인 基準으로 業務를 調律하는 것을 말한다. 製品 設計 次元의 例로 보면 基本 設計가 끝난 다음, 細部 部品 設計를 다른 部品과의 性能 調律을 考慮하지 않고 個別 팀이 自身의 部品만을 最適 設計하는 것이다. 이런 製品 開發 過程에서는 細部 部品 設計가 끝난 以後 關聯 팀長이 모여서 部品의 再設計까지 包含한 追加的인 業務 調律(卽 2次 調律)을 하는 것이 必須的이다. 重複 設計로 開發 費用이 上昇할 수 있다는 短點이 있지만 基本 設計의 趣旨를 가장 잘 反映하는 細部 設計를 事後에 새롭게 發見할 수 있다는 長點이 있다.

    企業 戰略 次元에서 制限 없는 探索은 通常 非關聯 多角化로 理解된다. 새로운 事業은 旣成 事業이 갖는 競爭 優位와 衝突을 일으켜 自己蠶食效果(cannibalization)를 불러올 수도 있다. 新事業의 革新性이 높을수록 企業의 過去 成功 規則 或은 慣行과 兩立하기 어려운 逆說이 發生하는 理由다. 하지만 現 市場에서 成長 潛在力이 限界에 到達해 所謂 ‘블루오션’과 같은 完全히 새로운 事業 機會를 追求하는 境遇 制限 없는 探索이 積極的으로 要求되기도 한다. 最近 流行하는 룬샷(loonshot) 프로젝트 vi 가 代表的이다.

    SKT의 事業開發室을 [그림 1]의 두 가지 次元에서 評價하자면 (1) 制限 없는 探索과 (2) 局地的 最適化의 두 가지 特徵을 가진 新事業 開發 組織이다. 過去 政府가 主導하던 高度成長期 韓國 企業들은 最高經營者, 特히 오너 經營者가 톱다운 方式으로 新規 事業을 推進하면서 글로벌 最適化를 追求하던 方式이 一般的이었다. 하지만 最近에는 兩손잡이 組織 構築이 强調되면서 新規 事業을 專擔하는 別動隊 組織을 만들어서 局地的 最適化를 追求하는 傾向이 늘어났다. 하지만 新規 事業을 專擔하는 別動隊 組織이 成功的으로 新事業을 創出해 낸 事例는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가 않다. SKT의 事業開發室 組織이 2011年 하이닉스 引受와 같은 成功 事例를 만들 수 있었던 條件은 무엇일까?

    2. 事業 開發의 外的 條件: 모두가 알고 있는 不確實性

    不確實性이라는 槪念만큼 新事業 開發의 어려움을 잘 表現하는 單語는 없다. 不確實性을 槪念化하는 一般的 方式은 投資의 結果를 確率 分布로 表現할 수 있는가 與否다. 經濟學者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는 結果의 確率分布를 아는 境遇를 ‘危險(risk)’이라고 했고, 그렇지 못한 境遇를 ‘不確實性(uncertainty)’이라고 區分했다. 結果의 確率分布를 모른다는 것은 (1) 過去 類似한 事例가 없는 投資 (2) 現在 比較 可能한 投資가 없는 狀態이다. 따라서 그 自體로 매우 獨特하고 固有한 性格을 가진 投資이다. 現行 市場에서 競爭 優位를 提高하기 위한 投資는 一般的으로 結果의 確率分布를 어느 程度 計算할 수 있는, 卽 危險한 投資이다. 反面에 新事業 開發은 先行 事例나 레퍼런스를 求하기 어려운 不確實한 投資일 可能性이 높다.

    半導體 産業에서 새로운 成長 機會를 圖謀했던 2011年 SKT의 하이닉스 引受는 不確實한 投資라기보다는 危險한 投資에 가까웠다. 하이닉스는 2000年에 2兆6000億 원, 2001年에 5兆 원의 當期純損失을 記錄했고 2000年 末 金融 負債가 9兆 원에 達해 深刻한 流動性 危機에 빠졌다. 結局 하이닉스는 2001年 3月 不渡가 났고 현대그룹이 하이닉스 經營에서 손을 떼면서 以後 10年間 債權團 管理下에 놓였다. 債權團은 하이닉스의 債務 調整을 통해 經營 正常化 努力을 벌이면서 同時에 賣却을 推進했다. 債權團은 2002年 美國의 메모리 半導體 競爭者인 마이크론테크놀러지와 賣却 諒解覺書까지 맺었으나 價格에 對한 意見 差異와 國富 流出 憂慮 等으로 딜이 霧散되기도 했다. 債權團 管理下에 놓였던 하이닉스는 2007年과 2010年 두 次例, 大規模 치킨 게임의 소용돌이로 들어가 다시 經營上의 어려움을 겪었다. 生存 危機에 몰린 臺灣 業體들을 中心으로 極端的인 價格 引下 競爭이 벌어지면서 1Gb D램 價格은 2007年 1月 12달러에서 2008年 12月 0.8달러로 急落했고 結局 世界 2位 D램 業體인 獨逸의 키몬다가 破産하는 事態로 歸結됐다. 이 渦中에 하이닉스도 2008年, 約 4600億 원의 赤字를 記錄했다. 1次 치킨 게임 後 키몬다의 破産으로 메모리 半導體 業體들은 다시 黑字를 내기 始作했지만 2011年 需要 回復 期待感으로 다시 投資와 增設을 늘리면서 2010年, 2次 치킨 게임이 勃發했고 D램 價格은 1月 2.4달러에서 12月 1달러로 急落했다. 2次 치킨 게임은 2011年 臺灣 企業 프로모스(ProMos)와 파워칩(Powerchip)의 D램 生産 中斷과 2012年 日本 엘피다의 破産으로 마무리됐다. 하이닉스 債權團의 賣却 意志와 달리 이와 같은 메모리 半導體 産業의 深刻性과 그 波及 效果 때문에 引受 意志를 밝히는 企業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脈絡에서 보면 메모리 半導體 産業으로의 進出, 特히 하이닉스 引受는 모두가 不確實性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狀況이었다. 하지만 同一한 企業이라도 누가 引受하는가에 따라, 누가 어떤 企業 戰略으로 引受하는지에 따라 全혀 다른 價値를 가질 수 있다. 企業 戰略 次元에서의 新事業 開發은 結局 通念이 놓치고 있는 새로운 可能性, 卽 結末이 뻔한 드라마를 斬新한 結末의 드라마로 바꾸는 過程으로서 意味를 남길 수 있다는 意味다.

    3. 事業 開發의 內的 條件: 制限 없는 探索

    成功한 企業은 나름의 레거시(legacy)를 가진다. 企業의 成長에 寄與한 經營者로 任員陣이 構成되고, 成功의 노하우가 內部에 組織文化 形式으로 共有되고, 一定 規模의 忠誠 顧客이 競爭 優位의 持續可能性을 높인다. 企業의 戰略的 統一性은 이런 成功 經驗이 만들어내는 企業의 正體性이다. 그러나 過去의 成功은 未來의 變化를 妨害하기도 한다. 企業 內部의 構造的 慣性이 새로운 事業 機會를 認識하는 것을 妨害하기 때문이다. 成功의 逆說인 셈이다. 企業의 變化 管理는 過去의 成功을 前提로 한다. 成功 經驗이 없는 企業에는 適切한 敎育 訓鍊과 外部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移植하는 것으로 充分하다. 하지만 成功한 企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變化 管理를 위한 追加的인 努力이 必要하다. 過去의 成功으로부터 利益을 얻고 있는 組織 構成員, 卽 高聲菓子가 期待하는 組織의 未來와 變化 管理 擔當者가 提案하는 組織의 未來가 恒常 一致하지 않기 때문이다. 戰略的 統一性의 問題는 따라서 모든 種類의 變化 管理에서 恒常 論爭의 中心에 놓인다. SKT의 하이닉스 引受 亦是 例外가 아니었다. 1年이 넘는 社內 論議 過程에서 初期부터 하이닉스 引受는 SKT 및 SK그룹 最高經營陣의 매우 剛한 反對 意見에 부딪혔다. 萬一 하이닉스가 過去와 같이 深刻한 流動性 危機에 빠지게 되면 SKT 立場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持續的으로 資金을 投入해야 하는 狀況으로 몰리게 된다. 이런 面에서 2011年 SKT 事業開發室의 하이닉스 引受 推進 意思決定은 ‘制限 없는 探索’의 典型을 보인다. 當時 引受 過程에 參與했던 事業開發室 構成員들과의 인터뷰에서 共通的으로 確認할 수 있는 內容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이닉스 引受를 ‘제로 베이스’에서 評價했다. 하이닉스는 賣物이 된 지 오래된 會社였기 때문에 2007年부터 사내에서 다양하게 檢討한 바 있다. 하지만 2010年 IB로부터 다시 提案이 들어왔을 때, 事業開發室은 過去의 檢討 結果와 相關없이 제로 베이스에서 探索을 始作했다.

    둘째, 成熟期가 到來한 旣存 通信 事業을 넘어 未來 新成長動力 確保 次元에서 異種 事業을 先制的으로 發掘하겠다는, 當時에는 破格的 判斷을 했다. 移動通信이라는 會社의 主力 事業이 成熟期에 접어들어 成長 停滯가 憂慮되는 狀況에서 會社의 成長 潛在力 側面을 重點 評價했다.

    셋째, 內需 市場 中心이고 서비스 産業이었던 SKT의 組織文化 改善을 위해서라도 글로벌 製造業體인 하이닉스를 引受하는 딜은 魅力的일 수 있다고 强調했다. 이와 같은 制限 없는 探索은 SK그룹의 成長 歷史와도 事實 잘 맞닿아 있다. 1980年 대한석유공사, 1994年 한국이동통신의 引受도 그룹 全體의 體質을 바꾸는 制限 없는 探索의 結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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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事業 開發 組織의 構成/運營: Start-up 方式의 事業開發室

    新事業 開發은 스스로 現金 흐름을 創出하는 收益 中心(profit center)李 되지 못하기 때문에 企業마다 獨特한 地位를 가진다. 過去 成長의 經驗에 따라 다양한 方式으로 企業 戰略과 變化 管理를 遂行해 왔기 때문이다. 新事業 開發은 最高經營者에게 直接 報告하는 獨立된 組織으로 運營하거나 旣存 組織의 部署長의 追加的인 業務로 管理되기도 한다. 따라서 新事業 開發 組織의 性格은 公式的인 組織圖의 어디에 位置하고 있는가보다는 [그림 1]에서와 같이 業務 調律上의 特徵에 따라 左右된다. SKT는 通信 事業 中心으로 持續的으로 新事業 開發 努力을 기울였다. 2004年度에는 新規 事業 部門을 包含한 組織 改編을 했고, 中國과 같은 海外 通信 事業 開發에 集中했다. 2007年 부터 CIC 形式의 組織을 運營하고 있던 SKT에서 新規 事業의 開發은 個別 CIC 事業部長이 맡은 追加 業務로 管理됐다. 特히 中國 市場 進出을 念頭에 둔 글로벌 비즈(Global Biz) CIC에서는 新規 事業 開發 自體 比重이 매우 컸다. 2009年부터 SKT는 세 가지 CIC로 再編됐는데 國內 市場 中心으로 會社의 캐시카우 事業을 總括하는 MNO(Mobile Network Operator), 콘텐츠 및 인터넷 等의 事業에 集中하는 C&I(Convergence & Internet), 戰略企劃/人事 機能 및 海外 事業, 特히 海外 引受合倂을 推進하는 GMS(Global Management Service) 等이 그것이다. 2009年 以前까지 SKT의 組織 構造는 外見上 M-form의 形式을 띠고 있으나 實質的으로는 U-form에 가까웠다. MNO를 除外하고는 獨自的인 收益 創出 力量이 不足했고 會社의 利益 寄與度 側面에서 MNO의 比重이 너무 컸다. 事業部 間의 健康한 競爭보다는 MNO 中心의 사내 政治가 벌어질 可能性 亦是 높았다. 國內 市場에서는 獨占的 地位를 누리는 것에 反해 海外 新規 事業 開發에선 큰 成果를 거두지 못했다. 2008年 美國의 現地 서비스 子會社 헬리오(Helio)의 持分 多數를 버진모바일(Virgin Mobile)에 넘겼다. 2007年 1兆 원을 投資한 中國 事業者 차이나유니콤의 轉換社債 買入 亦是 意味 있는 結果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처럼 國內 外에서 SKT의 新成長 動力 確保를 위한 投資가 잇따라 失敗로 歸結되는 渦中에 事業開發室이 戰死 및 그룹 水準의 投資와 獨立的인 事業 機會를 探索하기 위해서 2009年 GMS 傘下의 組織으로 편제됐다. 事業開發室은 過去 Global Biz CIC의 事業 開發 機能을 大部分 吸收하고, 新規 事業을 위한 引受合倂과 投資를 擔當했던 組織의 機能도 吸收했다. 總 2室 5팀으로 構成된 組織으로 新規 事業 發掘 業務를 擔當했다. 事業開發室은 過去에 類似한 機能의 組織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2009年 사내에서 크게 注目받지 못했으며, 成功 與否가 不確實한 新規 事業 發掘을 擔當했기 때문에 모든 構成員이 羨望하는 ‘酒類 組織’은 아니었다. 다만 그룹 次元의 新成長 動力 確保를 위한 特任 組織의 性格을 지니고 있다는 特徵이 있었다.

    2010年 組織 改編 vii 以後 戰死 次元에서 新規 事業 開發을 하는 플랫폼事業 部門과 長期的인 觀點에서 未來 戰略을 總括하는 總括社長 直屬 組織인 未來經營室도 事業開發室과 類似한 機能을 遂行했다. 그러나 事業開發室은 新規 事業의 範圍가 特定되지 않았기 때문에 醫師決定 裁量의 範圍가 넓었다. 非通信 部門의 新規 事業 發掘 業務는 內部的으로 注目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이닉스 引受와 같은 새로운 事業 發掘을 開始할 때, 事業 初期 上位 組織으로부터 牽制를 받을 可能性이 작았다.

    事業開發室은 本社와 매우 다른, 스타트업과 類似한 組織 文化를 갖고 있었으며 프로젝트 基盤으로 組織이 構成되고 프로젝트 팀長이 프로젝트 오너가 돼 人士 等 全權을 行使했다. 特히 2011年 하이닉스 引受 件의 本格的인 準備를 위해서 팀長과 課長 및 代理級 매니저 7名만으로 構成된 實務陣을 構成한 點을 注目할 만하다. 年齡帶가 비슷한 構成員들 間의 水平的 疏通, 室長에게 直接 報告할 수 있는 組織文化 等이 빠르고 柔軟한 스타트업 文化를 닮았다. 過程보다는 結果를 重要視하는 文化를 바탕으로 매우 높은 成果 基準을 追求했지만 그 結果 業務 强度는 높았지만 다른 部署와 差別化된 補償 시스템을 갖추지도 않았다. 미션 志向的인 組織이 가진 構成員 間의 價値 共有가 매우 强力한 인센티브였다. 事業開發室 構成員들에게 强力한 動機附與가 됐던 要素가 事業開發室長의 리더십이었다는 事實을 斟酌하게 하는 대목이다.

    5. 企業家的인 리더십

    모두가 애니메이션 産業이 斜陽産業이라고 말할 때 픽사(Pixar)는 애니메이션 産業을 革新的으로 再構成하는 데 成功했다. 픽사의 最高經營者 에드윈드 캐트멀(Ed Catmull)에게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에디터가 成功의 祕密을 물었다. 이에 그는 “나는 사람들이 하나의 팀이 돼 일할 수 있는 環境을 만들어 줬을 뿐”이라고 答했다. 캐트멀의 答辯은 新事業 開發의 가장 重要한 要素 中 하나인 企業家的 리더십(entrepreneurial leadership)을 强調한다. 企業家的 리더십은 經營者 個人의 力量에 依存하지 않고 프로젝트 리더에게 充分한 權限을 附與하고 팀員 間에 各自의 作業 過程을 共有하도록 이끈다. 또 明確하고 常時的인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不確實한 新事業 開發을 支援하고 報告하는 ‘庭園師’의 리더십이다. viii 個人이 아니라 組織의 力量을 키우는 리더십人 것이다.

    SKT 新事業開發室의 成功 條件 또한 結果가 알려진 危險을 새로운 비전의 不確實性으로 轉換시키는 企業家的 리더십을 中心으로 整理할 수 있다. 톱다운 方式의 新規 事業 投資家 支配的이었던 旣存 方式과 區分되는 地點이기도 하다. 2011年 박정호 當時 事業開發室長의 리더십은 利害關係者 네트워크의 調律, 內部 構成員의 動機附與 管理, 成功 事例 確保에 對한 强力한 意志 觀點에서 評價해볼 수 있다. 먼저 事業開發室을 局地的 最適化 側面에서 運營한다는 것은 SKT 內部의 다른 組織과 SK그룹 全體와 積極的인 業務 調律이 必要하다는 것을 意味한다. 事業開發室長이 新規 事業 開發이라는 變化 管理 프로그램의 代辯人이 돼야 한다. 制限되지 않은 探索 側面에서 이런 變化 管理 프로그램을 運營하려면 組織 成果에 對한 利害關係者의 期待 水準을 積極的으로 管理할 必要도 있다. 組織이 너무 많은 것을 期待하는 것이나 아무런 期待를 주지 않는 것 모두 豫算 確保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變化 管理 擔當者로서 朴 室長은 事業開發室 新設과 運營과 關聯한 役割과 成果를 두고 그룹의 最高經營者와 積極的으로 疏通했다.

    둘째, 事業開發室을 스타트업처럼 運營했다. 大企業의 特性上 特定 部署의 補償 體系를 戰死 次元에서 벗어나게 運營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構成員의 動機附與는 全的으로 部署長의 리더십, 卽 일하는 方式과 環境에 左右되게 마련이다. 다양한 部署에서 差出된 人員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면서 同時에 旣存의 SKT 文化와 다르게 管理해야 했다. 運營 中心 組織과 事業開發室과 같은 探索 中心 組織의 일하는 方式이 같을 수는 없다. 特히 事業開發室은 프로젝트의 팀長 選定과 構成員 間의 커뮤니케이션 側面에서 水平的이고 速度感 있는 애자일 組織의 特徵을 보였다. 프로젝트 오너를 苦心해 選定하지만 一旦 選定한 以後에는 完全히 權限을 委任했고, 定期的인 會議보다는 非定期的인 對面 報告 中心으로 情報를 共有하고 프로젝트 進行 狀況을 管理했다.

    마지막으로 新事業 開發과 關聯된 組織은 그 成果에 對한 疑懼心을 恒常 받게 돼 있다. 따라서 該當 部署의 機能을 正常的으로 運營하기 위해서는 組織 構成 初期에 작더라도 意味 있는 成果를 만들어내는 것이 重要하다. 2010年度에 하이닉스 引受 件을 檢討하기 始作해 結果를 만들어 내기까지 現實에 安住하지 않고 戰略을 바꾸면서 딜을 진전시켜 나갔다. 이는 事業開發室의 成長과 同時에 SKT 戰死 次元에서 다양한 引受合倂에 關心을 가지게 된 契機가 됐다.

    6. SKT-하이닉스 딜의 敎訓

    그렇다면 組織 管理 側面에서 SKT의 하이닉스 引受가 주는 敎訓은 무엇일까. 新事業 開發은 擔當者 個人의 力量만큼 個人의 力量을 具現할 수 있는 組織의 構築과 管理가 重要하다는 것이다. 事業開發室은 業務 調律의 特性 側面에서 旣成 組織과 差異를 보이는 獨特한 組織의 性格을 지녔다. 新規 事業의 探索과 投資 優先順位 決定 過程에서 높은 水準의 自律性을 附與받아 局地的 最適化를 具現할 수 있었다. 또 通信 事業 中心이었던 SKT의 成長 戰略과 旣存 事業 포트폴리오에 制約받지 않고, 非關聯型 多角化를 包含해 自律的으로 새로운 事業 機會에 對한 制限 없는 探索을 追求했다. 事業開發室의 構成과 運營은 SKT의 組織文化와 質的인 差異를 보였다. 水平的, 開放的 疏通과 柔軟性, 速度感 있는 進行과 같은 스타트業의 文化와 그것을 可能하게 할 수 있는 適正 規模가 維持됐다.

    勿論 事業開發室의 成果物도 最終的으로는 運營 中心 組織에서 收容돼야 했다. 그런 意味에서 事業開發室의 自律性만큼 運營 組織과의 調律도 必要했다. 예컨대 補償 側面에서 事業開發室은 餘他의 SKT 部署와 差異가 날 수없었다. 따라서 事業開發室에 모여든 挑戰的인 性向의 人力들에게 어떻게 動機附與할 것인지가 重要한 課題였는데 그런 面에서 朴 室長의 企業家的 리더십이 組織員들의 挑戰 意識과 內的 動機를 刺戟하는 데 重要한 役割을 했다. 事業開發室의 成功은 自律을 基盤으로 한 集團的 創意性과 挑戰의 結果이다. 새로운 市場 機會를 探索하는 經營者의 時間은 個人의 力量을 集團的 創意性으로 바꾸는 過程이다. 이는 挑戰的인 探索을 위한 制度를 構築하는 過程이기도 하다. SKT의 事業開發室은 大企業 內에도 높은 水準의 自律性과 專門性을 갖춘 獨特한 組織을 構築하고, 挑戰的인 性向의 人材들을 適切히 動機附與하는 리더십과 企業家精神을 發揮한다면 新成長 動力을 確保하는 데 成功할 수 있음을 立證하는 事例다.


    송재용 서울大 經營大學 敎授 jsong@snu.ac.kr
    송재용 서울大 經營大學 敎授는 펜실베이니아對 와튼스쿨에서 博士 學位를 받았다. 美國 컬럼비아대와 延世大 敎授로 在職했으며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Academy of International Business의 碩學終身會員(Fellow), 美 經營學會(Academy of Management) 國際經營分科(International Management Division) 會長(Chair)이다.
    배종훈 서울大 經營大學 敎授 jbae01@snu.ac.kr
    배종훈 서울大 經營大學 敎授는 프랑스 INSEAD에서 組織理論 專攻으로 博士 學位를 받았다. 네덜란드 틸뷔르흐대와 高麗大 敎授로 在職했으며 서울대 벤처經營企業家센터 副센터長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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