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在寅 大統領 夫人 金正淑 女史가 重要無形文化財 107號 김해자(69) 누비腸(匠)으로부터 누비 옷을 購買한 事實이 確認되면서 그의 作品 世界에 對한 關心도 커지고 있다.
‘누비’는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털·종이 燈을 넣거나 때로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홈질해 만든 옷을 가리키는 말. 누비는 방한성 및 耐久性, 實用性이 뛰어날 뿐 아니라 빼어난 아름다움까지 지니고 있다. ‘누비腸’은 바로 이런 옷을 짓는 匠人에게 附與하는 稱號로, 김해자 누비腸은 裁縫틀 擴散 以後 事實上 命脈이 끊겼던 傳統 누비를 되살린 人物로 評價받는다.
傳統 누비를 오늘에 되살린 김해자 누비腸. [박해윤 記者]
젊은 時節 바느질 工夫에 沒頭, 40代 初盤 ‘名匠’ 班列
一平生 바느질에 鍛鍊된 김해자 누비醬의 손. [박해윤 記者]
1953年 慶北 金泉에서 태어난 金 누비腸은 어린 時節 아버지를 여의었다. 以後 삯바느질로 살림을 꾸리는 어머니를 거들며 바느질의 世界에 入門했다. 韓服 財團 技術을 익혀 生計 基盤을 마련한 뒤엔 本格的으로 누비 技術 硏磨에 나섰다. 金 누비腸은 2013年 月刊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15年 동안 慶南 昌寧에서 누비를 硏究하면서 바느질만 하며 살았다. 生計는 有名 韓服디자이너나 서울 韓服집의 ‘作品’을 注文받아 代身 바느질해주는 것으로 解決했다”고 밝혔다.
김해자 누비醬의 디자인으로 만든 누비옷. 고운 色感과 精巧한 바느질 솜씨가 一品이다. [박해윤 記者]
그 努力이 빛을 發한 건 1992年, ‘技術이 알려지면 注文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傳承工藝大展에 出品한 金 누비醬의 옷이 國務總理賞을 받으면서부터다. 시골에 박혀 바느질만 해온 ‘무명의 機能인’ 솜씨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새삼 누비의 價値에 注目했다. 그때서야 文化財廳은 關聯 文化의 復元이 切實하다고 느끼기 始作했고, 1996年 10月 40代 初盤의 나이에 國家無形文化財 第107號 누비腸 保有者가 됐다.
김해자 누비腸이 만든 色동 저고리(왼쪽)와 18世紀 坡平 尹氏 家門 遺物을 再現해 만든 조끼. [박해윤 記者]
現在 慶北 慶州에서 ‘누비攻防’을 運營하며 衣裳 製作 및 弟子 養成에 힘쓰고 있는 金 누비醬의 옷은 韓國을 넘어 世界의 注目을 받고 있다. 日本 代表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金 누비醬의 팬을 自任할 程度다. 端雅한 色感과 機械보다 精巧한 바느질로 有名한 그의 옷은 2005年 파리 프레打포르테 100回 記念 韓服 展示會에 紹介됐고, 中國·日本·베트남 等 아시아 各國 市場에도 進出한 狀態다.
世界가 認定한 누비옷, 大衆化 기다려
文在寅 大統領 夫人 金正淑 女史가 2017年 6月 30日(現地時間) 美國 워싱턴 駐美大使官邸에서 열린 서울-워싱턴 女性協會 招請 懇談會에서 선보인 粉紅色 코트는 김해자 누비腸 作品이다. 參席者들이 金 女史의 衣裳에 讚辭를 보내는 모습. [寫眞提供 靑瓦臺]
金正淑 女史가 2017年 6月 美國에서 열린 ‘서울-워싱턴 女性協會’ 懇談會 參席 當時 입은 粉紅色 코트도 金 누비醬의 作品. 洪化(紅花)물을 들여 고운 빛을 뽐낸 이 옷은 金 女史가 그 자리에서 前 駐韓美國大使 夫人 조앤 許버드 女史에게 ‘깜짝 膳物’해 큰 話題를 모으기도 했다. 같은 해 G20 頂上會議가 열린 獨逸 함부르크에서 金 女史가 各國 令夫人들과 先常套語를 즐길 當時 입은 하늘色 겉옷도 金 누비腸이 지은 것이다.
金 누비腸이 만든 옷 價格은 ‘누비腸 김해자’ 公式 사이트 基準 17萬~1250萬원 代. 攻防 關係者에게 金 女史 外에 金 누비醬의 衣裳을 입은 有名人士가 있는지 물었으나 그는 “모르겠다”고만 答했다.
40年 동안 한 땀 한 땀 自身의 길을 일궈온 김해자 누비腸 所願은 ‘누비의 大衆化’다. 그는 金正淑 女史가 입은 粉紅色 코트로 世間의 注目을 받을 때 ‘每日經濟’와 한 인터뷰에서 “韓國의 服飾 文化가 世界에 더 많이 알려져 누비옷이 글로벌 名品 班列에 오르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성동아 #김해자 #김정숙女史
글 이진수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