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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같은 고양이를 그린 아티스트, 루이스 웨인 : 29STREET

사람 같은 고양이를 그린 아티스트, 루이스 웨인

핸드메이커
핸드메이커 2022-03-23 16: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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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記者] 歷史를 통해 傳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朝鮮 19代 王인 肅宗은 ‘執事’였다고 한다. 宮闕에서 돌아다니던 길고양이 ‘금덕(金德)’을 愛之重之했으며, 금덕이 낳은 새끼를 ‘金손(金孫)’이라고 부르며 곁에 두고 恒常 보살폈을 程度다.

西洋史에서도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했던 畫家가 있다. 英國의 畫家인 루이스 윌리엄 웨인(Louis William Wain)은 고양이를 擬人化하여 익살스럽게 그리며 나름의 고양이 사랑을 보여주었다.


不遇했던 어린 時節

1860年 英國에서 태어난 루이스 웨인은 6男妹 中 첫째이자 唯一한 아들이었다. 長男의 責任은 莫重한데 루이스 웨인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다섯 女同生은 모두 結婚하지 않고 함께 살았으며, 그中 女同生 마리는 精神異常 判定을 받고 46歲의 나이에 世上을 떠났기 때문이다.
루이스 웨인 / 위키미디어
그의 試鍊은 끝이 보이지 않을 程度였다. 口脣裂을 가지고 태어났던 루이스 웨인은 10살이 될 때까지 學校에 갈 수 없었다. 醫師의 勸誘 때문이었다. 織物 貿易業者였던 아버지를 따라 런던 一帶를 돌아다녔던 그는 웨스트 런던 藝術學校에 入學해 工夫하며, 짧게나마 敎師로 活動했다고 한다. 웨스트 런던 藝術學校는 英國에서 손꼽는 美術學校 6個 中 하나가 될 程度로 알려진 곳이었다.

그가 스무 살이 되던 1880年에는 아버지를 잃게 되었고, 어머니와 다섯 姊妹의 삶은 모두 그의 몫이 되었다. 그가 배운 것이라곤 美術이 全部였기 때문에 家族들을 浮揚하기 爲해 1881年 집을 떠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活動하기 始作했다.


人生의 轉換點이 된 고양이 ‘피터’


敎師를 그만두고 本格的인 藝術家로서의 길을 걷게 된 루이스 웨인은 그 能力 때문인지 初盤부터 注目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週刊誌 ‘일러스트레이티트 스포팅과 드라마틱 뉴스’라는 곳에서 4年間 活動했는데, 主로 그린 것은 動物과 시골 風景이었다.
루이스 웨인의 初期 作品. 고양이보다는 개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 위키미디어
다양한 動物을 그린 루이스 웨인의 揷畵 / flickr (Silicon Press)
英國의 시골집과 私有地, 農業展示會에서 使用되는 家畜 揷畵 等을 그리며 家族의 生計를 이語感과 同時에 自身의 藝術 能力도 키워갔다.

그러던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는데, 無慮 10살 年上의 家庭敎師인 에밀리 리처드슨이었다. 當時 英國의 社會的 認識으로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하다. 에밀리는 女同生의 家庭敎師였으며 10살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스캔들’로 불릴 程度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루이스 웨인은 에밀리와 結婚해 런던 北部의 헴프스테드로 移徙했다. 루이스가 23살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幸福도 暫時, 에밀리는 乳房癌에 걸렸고 3年의 鬪病 生活 끝에 죽음을 맞이한다.
고양이를 곁에 두고 아꼈던 루이스 웨인 / 위키미디어
그러나 에밀리는 루이스에게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膳物을 주고 떠났다. 그女가 病을 앓던 어느 날, 빗속에서 비를 맞은 채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救하게 된다. ‘兩줍’을 통해 에밀리를 執事로 揀擇한 고양이는 ‘피터’라는 이름을 얻고, 그女와 루이스 웨인 모두에게 慰勞되는 存在가 되었다.
루이스 웨인이 初期에 그렸던 고양이 그림. 事實的이다 / 위키미디어
루이스 웨인은 피터를 熱心히 그리기 始作했고, 에밀리는 그가 피터를 그린 그림들이 出版되기를 勸誘하기도 했다. 고양이 ‘피터’에 對해 루이스 웨인은 “내 經歷의 基礎, 내 初期의 努力, 내 作品의 確立이 그에게 있다”고 評價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初期作 속 고양이는 피터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고양이를 擬人化시켜 그린 첫 作品인 ‘고양이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150마리의 고양이가 있는데, 大部分 피터를 닮은 고양이였으며, 招待狀을 보내거나 공을 잡고 노는 모습, 演說하는 모습 等 다양한 活動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그의 擬人化된 고양이 作品이 始作되었다.


루이스 웨인의 시그니처, 고양이 擬人化

루이스 웨인이 그린 作品의 가장 큰 特徵은 고양이가 사람처럼 行動한다는 點이다. 擬人化시켜 사람들의 行動을 批判하거나 익살스럽게 描寫해 ‘諷刺’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 모습이 매우 사랑스럽기도 하다.
1910年 葉書에 그린 ‘크리스마스 長斫을 가져오는 고양이들’ / 위키미디어
캐럴을 연주하는 고양이들 / 위키미디어
初期에 그린 고양이 作品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걸으면서, 사람의 行動을 따라 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生動感이 넘친다. 平素 루이스 웨인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觀察力이 뛰어난지를 느끼게 한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는 고양이들 / 위키미디어
오페라를 觀覽하는 고양이들 / 위키미디어
市場風景 / flickr (Aussie~mobs)
漸次 그의 고양이 그림은 發展해 사람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當時 빅토리아 時代相을 反映하듯, 옷을 입고 카드놀이를 하거나 파티를 하고, 담배를 피우거나 골프를 치는 等 다양한 모습을 그려냈다. 이런 그의 作品은 큰 人氣를 얻었고, 葉書는 勿論 年賀狀이나 諷刺 揷畵로 種種 쓰였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生動感 넘치는 고양이 擬人化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努力 때문이다. 傳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食堂이나 公共場所에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고양이로 그렸다고 한다. 다양한 모습을 그린 自身의 作品에 對해 루이스 웨인은 ‘내 最高의 유머러스한 作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담배 피우는 고양이 / 위키미디어
카드 놀이하는 고양이 / 위키미디어
골프 치는 고양이 / 위키미디어
루이스 웨인은 作品이 알려진 만큼, 30年 동안 많은 고양이 그림을 그려냈다. 1年에 數百 張을 넘어 100餘 卷의 童話冊에 揷畵를 그렸다고 傳해진다. ‘루이스 웨인 年鑑(Louis Wain Annual)’에는 1901年부터 1915年까지 그린 作品이 실리기도 했으며, 新聞이나 週刊誌, 雜誌 等에 作品이 數次例 揭載되었다.
飛行機를 타고 있는 고양이 / flickr (Will)
고양이 피터로 始作된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 사랑은 單純히 作品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1898年과 1911年에 國立 고양이 클럽 會長을 맡기도 했으며, 우리의 바보親舊 聯盟(Our Dumb Friends League), 고양이 保護協會(Society for Protection of Cats), 生體 實驗 反對 學會(Anti-Vivisection Society) 等 다양한 動物 慈善 團體에서도 活動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努力은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가지고 있던 ‘輕蔑’이라는 認識을 없애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1892年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실린 ‘우리의 藝術家, 過去와 現在’ 揷畵. 루이스 웨인의 모습도 있다 / 위키미디어
그러나 名聲만큼 부는 따라오지 못했다. 그가 그린 揷畵는 葉書로 製作되어 數百 張이 넘게 팔렸지만, 著作權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出版界에서 이용당하기만 했다. 또한, 動物을 좋아하는 만큼 純眞했던 것인지 發明品에 돈을 投資해서 財産을 날리는 境遇도 許多했다고 한다.
루이스 웨인이 만든 고양이 模樣 꽃甁 / 위키미디어 (Auckland Museum)
藝術에 對한 熱望이 뛰어났던 루이스 웨인은 그림에 이어 陶瓷器 作品까지 만들었다. 現在 오클랜드 戰爭 博物館에 展示된 꽃甁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全體的인 綠色 몸에 朱黃色 발, 파란色 머리, 흰色 목으로 各各의 部分이 다른 色으로 漆해져 있다. 몸통에는 X字 模樣의 文樣이 그려져 있다. 마치 로봇 같은 이 作品은 未來를 내다보고 만든 것이 아닐까 推測되기도 한다.


病魔가 가져온 能力의 衰退

뛰어난 能力을 갖췄지만, 루이스 웨인은 78歲의 나이로 世上을 떠나고 만다. 傳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양이가 종숙주人 톡소胞子蟲이라는 寄生蟲에 感染된 것이 病의 原因이라고, 하지만 學者들은 그가 調絃病에 걸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의 女同生도 精神病으로 世上을 떠난 家族歷이 있기에 이런 推測이 이어지는 듯하다.
病院에서 그린 것으로 推測되는 고양이 그림 / 위키미디어
고양이 그림 背景에 抽象的인 이미지가 그려졌다 / 위키미디어
調絃病은 그에게서 能力을 빼앗아 갔다. 1924年, 그의 暴力的인 行動을 견디지 못한 家族들이 루이스 웨인을 精神病院에 입원시킨다. 그곳에서도 그는 고양이를 그렸는데 사람 같던 고양이 그림體가 變化되기 始作했다. 怪常한 모습의 고양이를 그리는가 하면, 背景에 抽象的인 이미지를 그리거나 色彩가 매우 强烈하고 華麗해졌다.
루이스 웨인이 精神病院에서 治療받으며 變化된 그림 스타일 / 위키미디어
漸次 고양이의 形態는 乖常해지는 것은 勿論, 抽象的인 文樣이 되어갔다. 나중에 心理學에서는 그의 그림 스타일이 變化된 모습을 敎科書에 실으며, 調絃病이나 自閉 스펙트럼 障礙(ASD)의 例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精神病으로 인해 그의 익살스러운 고양이 擬人化는 끝이 났지만, 루이스 웨인은 끝까지 自身의 作品活動에 한 劃을 긋게 해준 ‘고양이’만은 잊지 않았다.


그의 삶, 映畫로 製作되다

오는 4月 6日, 루이스 웨인의 삶을 다룬 映畫가 開封한다. 映畫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火가’는 엉뚱한 畫家로 알려졌던 루이스 웨인에게 運命 같은 사랑인 에밀리와 고양이 피터가 찾아오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映畫 포스터 / 네이버 映畫
映畫 스틸컷 / 네이버 映畫
루이스 웨인 役割에는 수많은 作品으로 韓國에도 잘 알려진 俳優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다. 多樣한 스틸컷을 보면, 그의 모습이 實際 루이스 웨인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映畫 스틸컷 / 네이버 映畫
映畫 스틸컷 / 네이버 映畫
映畫 스틸컷 / 네이버 映畫
外貌뿐만 아니라 映畫 豫告篇 映像을 보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나 고양이를 아끼는 모습 等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루이스 웨인이라는 役割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努力을 했을지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의 모습과 함께 루이스 웨인의 生涯를 엿볼 수 있는 映畫가 될 듯하다.

‘怪짜 藝術家’에서 ‘高揚이 畫家’로 알려지기까지, 루이스 웨인은 熱心히, 빠르게 붓질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動物을 사람처럼 그린 畫家일지 모르지만, 그에게 고양이는 삶을 바꿔놓은 生命의 恩人일 것이다. 病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의 고양이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 남아있을지 期待가 되면서도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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