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하고 告訴한 三겹살은 韓國을 代表하는 돼지고기 料理다. 三겹살은 1980年代 들어서 우리 食卓에 本格 登場했다. 韓國 外에도 유라시아 全域에서 돼지비계를 즐기는 나라가 적지 않다. 特히 유라시아 草原 西쪽 끝에 位置한 우크라이나에선 염장을 한 生三겹살이 代表 料理로 通한다. 우크라이나 草原地域의 交流와 그 歷史에 對해 살펴보자.》
우크라이나 國民飮食으로 꼽히는 ‘살로(아래쪽 寫眞)’는 돼지비계를 殮葬해서 만든다. 우크라이나人의 돼지비계 사랑은 1000年 前 記錄에도 남아있을 程度로 오래됐다. 위쪽 寫眞은 16∼17世紀 우크라이나 地域에 살던 코사크人을 다룬 映畫 ‘타라스 불바’의 한 場面. 살로의 食文化도 이때쯤 擴散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 캡처·寫眞 出處 PIXNIO
추위를 이기는 高熱量 飮食
우크라이나人들은 살路를 얇게 잘라 버터처럼 빵 위에 얹어 먹는다. 강인욱 敎授 提供
나는 추운 시베리아 地域에서 留學을 했다. 留學時節 零下 30∼零下 40度를 넘나드는 여섯 番의 겨울을 지켜준 飮食 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돼지비계를 鹽藏한 ‘살로’다. 만드는 法은 比較的 簡單하다. 단지에 生돼지비계를 넣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리면 된다. 그 自體로 맛있지만 추운 겨울에 얇게 잘라서 빵과 함께 먹으면 더 좋다. 高熱量人 데다 各種 비타민이 豐富해 추위를 이겨내는 飮食으로 人氣가 높다. 시베리아와 極東 地域에는 우크라이나 出身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들의 飮食은 自然스럽게 시베리아의 土着 飮食으로 여겨지게 됐다.
비계를 먹는 風習은 우크라이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古代 로마에는 ‘라르도’라는 飮食이 있었다. 英國, 그리고 그 影響을 받은 美國에서도 ‘포크 스크래칭’이라는 間食이나 料理를 먹는다. 우리 歷史에서는 추운 北쪽 地方에 살던 挹婁人, 그리고 그들의 後孫인 滿洲族들이 돼지비계 料理를 즐겼다. 다만 大部分 나라에서는 비계를 먹는 것을 그리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돼지비계는 傷하기가 쉽고 逆한 냄새가 强해서 料理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貧困層이나 고기를 손질하는 一部 職業 從事者들만 숨어서 먹는 飮食이라는 認識이 剛했던 것도 事實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人들의 살路에 對한 사랑은 남다르다. 우크라이나를 代表하는 飮食으로 꼽는 것은 勿論 한때 西部 리비우에는 살로博物館이 있었다. 한데 異常한 點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체르노젬’이라는 黑土地帶가 發達한 世界의 穀倉地帶이다. 新鮮한 穀物과 野菜가 豐富한 우크라이나에서 어쩌다 날 비계가 代表 飮食으로 자리 잡았을까. 그 背景에는 다양한 文化가 交叉한 肥沃地帶에서 살아온 우크라이나人의 歷史가 숨어있다.
弱小國의 强靭한 生存力 象徵
우크라이나人들의 돼지비계 사랑은 約 1000年 前 ‘키이우 루시’ 時節의 記錄에도 登場할 程度로 오래 됐다. 키이우 루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人이 大多數를 이루는 슬라브人들이 세운 最初의 나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以前부터 우크라이나 一帶에는 東아시아 草原에서 건너온 遊牧民들이 定着해 살고 있었다.
于先 우리나라 三國時代인 西紀 3世紀臺에 中國에 敗亡한 匈奴의 一派에서 始作된 훈族의 大移動이 이 地域까지 밀려왔다. 그 直後엔 몽골에서 나라를 만들고 高句麗와도 協力했던 유연의 後裔인 아바르族이 이곳에 先進 騎馬文化를 傳播했다. 튀르크 一派가 세운 하자르 칸國道 東유럽과의 交易을 擔當하며 勢力을 키웠다. 여기에 키이우 루시가 滅亡한 直後 몽골이 세운 킵차크한국(汗國)까지 있었다.
이렇듯 東아시아에서 始作된 유라시아 草原의 文化는 우크라이나 古代 歷史의 大部分을 차지한다. 살로라는 飮食의 語源도 東쪽에서 持續的으로 밀려온 遊牧民들의 登場과 關係가 있다. 살로는 말의 ‘鞍裝(Saddle)’이라는 뜻에서 由來했다. 돼지 살 위에 얹어진 地方이 마치 푹신한 安葬 같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살로의 登場은 오랜 外勢의 支配를 받아온 歷史와 關聯이 있다. 16世紀 以後 우크라이나의 歷史는 코사크仁義 發興으로 다시 始作됐다. 强靭함의 象徵인 ‘秋드’(辮髮의 一種)를 한 코사크人들은 獨立을 向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살로도 이때를 起點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널리 流行하기 始作했다. 當時 이 地域을 支配하던 무슬림 튀르크나 유대人들은 모두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自然히 相對的으로 가장 求하기 쉬운 돼지비계를 利用한 料理가 發達한 것이다. 돼지비계는 오랜 期間 周邊 强大國들의 支配를 받던 우크라이나人들의 든든한 熱量 供給源으로 사랑받았다. 마치 6·25戰爭 直後 널리 퍼진 部隊찌개나 곰장어처럼, 다른 이들이 잘 먹지 않는 飮食을 開發한 것이다. 살로가 只今까지 國民飮食으로 사랑받는 것도 그들의 强靭한 生存力을 象徵하기 때문이다.
보드카 곁들이는 最高의 술按酒
三겹살은 1970年代 末에야 서울에서 本格的으로 流行하기 始作했다. 하지만 비계가 낀 돼지고기에 對한 사랑은 歷史가 깊다. 日帝强占期에 나오는 料理冊에서도 “세겹살(三겹살)은 돼지 中에 最高”라 稱할 程度였다. 三겹살 구이는 비계 特有의 雜내 때문에 食卓에 늦게 登場했다. 비계는 고기 中에서 第一 싸고 人氣가 없다. 하지만 냄새를 없애고 비계 사이사이에 고기를 끼워 넣는 種子 改良을 통해 三겹살이라는 飮食이 誕生했다.
韓國과 우크라이나는 모두 地政學的으로 유라시아의 끝자락에 位置해 遊牧 文化의 影響을 剛하게 받았다. 周邊 强大國들 사이에서 苦楚를 겪었다는 共通點도 있다. 이런 背景으로 兩國 모두 農業에 基盤하지만 다양한 고기의 加工文化가 發達했다. 고기는 또 農耕民이 쉽게 接하기 힘든 飮食이다. 가난한 두 나라는 돼지비계 料理를 開發해 不足한 飮食을 補充하려 했던 것 아닐까. 살路와 三겹살에는 또 다른 共通點이 있으니, 最高의 술按酒라는 點이다. 三겹살엔 燒酒처럼 살로엔 보드카다. 그리고 洋배추절임을 곁들인다.
따지고 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言語, 文化, 風習 等 類似한 點이 많다. 두 나라는 2000萬 名의 犧牲으로 히틀러 나치의 攻擊을 막아낸 第2次 世界大戰의 英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서로를 파시스트라 부르며 同族相殘의 悲劇을 演出하고 있다. 泄瀉 러시아軍이 물러간다고 해도 우크라이나에 居住하는 러시아系 사람들과의 內戰 같은 葛藤이 憂慮된다. 6·25戰爭의 깊은 트라우마가 있는 우리로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地獄道日 것이다. 어떠한 名分으로도 暴力은 더 以上 안 된다. 戰爭은 끝나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靑年들이 염장 三겹살에 보드카 한盞을 津하게 마시고 抱擁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강인욱 慶熙大 史學科 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