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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에서 꼴찌였던 學生, 美大學 敎授 된 뒤... : 29STREET

韓國에서 꼴찌였던 學生, 美大學 敎授 된 뒤...

여성동아
여성동아 2022-01-03 09: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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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大學校 敎育大學院 副學長이자 最高技術經營者(CTO).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職銜을 가지고 있는 폴 金(52) 敎授는 國內에서도 꽤 有名한 敎育工學者다. JTBC ‘差異나는 클라스’를 비롯한 여러 TV 프로그램과 講演 等을 통해 새로운 敎育法을 說破했고, 5年 前에는 ‘敎育의 未來,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라는 敎育 書籍도 펴냈다. 또 非營利 國際敎育財團인 ‘시드 오브 임파워먼트(Seeds of Empowerment)’를 設立했는데, 그곳에서 開發한 프로그램인 質問型 學習 솔루션 ‘SMILE’李 2016年 유엔 未來 革新 學習 모델로 選定되는 等 敎育 分野에서 全 世界的으로 影響力을 미치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懷疑感에 빠져 지내던 時節이 있었다. 몇 해 前부터 폴 金 敎授는 ‘敎育者로서 걸어온 길이 내가 바랐던 그 길인가?’ ‘이 世上에서 果然 몇 名이나 내 論文을 읽고 도움을 얻을까’ ‘나의 理論的 硏究가 只今 當場 가난과 疾病으로 呻吟하는 아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苦悶에 빠졌다. 이 質問의 答을 찾고자 金 敎授는 멕시코를 始作으로 全 世界 開發道上國 아이들을 直接 찾아다니며 敎育 奉仕 活動을 始作했고, 그 過程에서 다양한 學習 모델을 開發하며 人生의 意味를 찾아갔다.
肯定의 피드백, 否定的 피드백, 構成的 피드백
人生의 眞正한 意味를 찾는 旅程의 延長線에서 폴 金 敎授는 새로운 挑戰을 始作했다. 큰 飛行機가 離着陸할 수 없는 奧地에 物資를 실어 나르는 輕飛行機 操縱士 ‘부시 파일럿(Bush Pilot)’ 資格證을 取得하기로 한 것. 2018年 本格的으로 부시 파일럿 訓鍊을 받기 始作한 그는 2019年 視界飛行 資格證을 取得한 데 이어 2021年 4月에는 惡天候나 夜間 飛行과 같이 可視距離가 確保되지 않을 때 飛行機를 操縱할 수 있는 計器飛行 資格證을 取得했다.

이 過程을 單純히 ‘輕飛行機 操縱士 資格證 取得’이라는 짧은 한 文章으로 說明하기는 힘들다. 3年에 걸친 時間 속에서 資格證 以上의 價値를 얻었기 때문. 20年 넘게 謹嚴한 ‘敎授’의 位置에 있던 中年 男性이 다시 가르침을 받는 學生으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폴 金 敎授는 그 過程에서 ‘리런(Relearn)’, 卽 再敎育의 重要性을 깨달았고 人生을 意味 있게 사는 法을 찾을 수 있었다. 이 經驗은 2021年 12月 中旬 發刊된 그의 冊 ‘다시, 배우다(RE:Learn)’에 고스란히 담겼다. 新刊이 나온 지 며칠 뒤, 美國 캘리포니아에 머물고 있는 폴 金 敎授와 畫像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敎授님이 飛行機 操縱을 배운다는 게 想像이 가질 않아요. 쉽지 않으셨을 듯한데 첫 飛行은 어떠셨나요.

구름 속에 들어가면 四方이 온통 하얀色으로 보여요. 어디가 山인지 땅인지 모른 채 오직 計器에 依存해서 飛行을 해야 하죠. 처음 飛行 運轉을 한 날은 구름이 거의 없었고 敎官도 옆에 있었지만, 着陸한 뒤 다리에 힘이 다 빠져서 못 걸었을 程度였어요. 緊張을 너무 많이 했던 거죠. 飛行은 自己와의 싸움이에요. ‘이렇게 神經을 많이 쓰고 不安하기도 한데 繼續해야 하나?’ 하면서도, 그런 狀況에 스스로를 집어넣고 不安함, 두려움, 不確實性, 否定的인 생각 等을 親舊 삼아야 해요. 그러다 訓鍊이 쌓이면서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져 日常처럼 되는 날이 오는 거죠.

奧地로 奉仕 活動을 다니시면서 마땅한 交通手段이 없어 輕飛行機 資格證을 따셨다고 들었어요. 輕飛行機를 實際로 利用해보니 어떻던가요.

移動 時間이 確實히 많이 줄어들어요. 또 一般 商業用 飛行機를 타려면 搭乘 節次 때문에 離陸하기까지 時間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데 輕飛行機는 타서 始動 걸면 바로 出發할 수 있어요. 國境을 넘는 飛行을 할 때도 작은 空港의 境遇, 入國 節次가 아주 簡單하고 파일럿에게는 그리 많은 質問을 하지 않더라고요.

飛行 操縱士 資格證을 取得하는 過程에서 많은 것을 배우셨다고요.

스탠퍼드 大學校에 20年 以上 在職해오면서 특별한 일이 없었어요. 그러다 飛行에 挑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學生으로 다시 돌아가는 過程 自體가 저로선 엄청난 挑戰이었죠. 學生의 位置에 서보니 學生의 感情들과 狀況들을 다시 한番 理解하게 돼 ‘敎育者라면 學生이 되어야 한다’는 眞理를 攄得했죠. 마침 처음 만난 敎官이 저희 大學 學部生이더라고요. 저는 大學院에 있어서 學部生과 함께할 일은 없었는데, 學部生에게 배울 게 너무도 많았어요. 그 學生 德分에 더욱더 學生으로 돌아갈 수 있었죠.

敎育者다 보니, 敎官의 敎育 方式에도 關心이 많았을 것 같아요.

모두 세 名의 敎官을 거쳤는데, 재미있게도 세 名 모두 다른 피드백을 주었어요. 첫 番째 만난 敎官은 新參이라 經驗은 많지 않았지만, 제게 肯定的인 피드백을 많이 줬어요. 稱讚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 “잘한다”는 稱讚은 50代가 되어 全혀 모르는 分野에 뛰어든 제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두 番째 敎官은 正反對로 否定的인 피드백을 많이 줬어요. “그것도 못 하나?” “이렇게 하면 試驗에서 떨어진다”는 式으로 가르치니까 주눅이 들더라고요. 세 番째 敎官은 年歲가 있는 老鍊한 敎官님이었는데, 그분은 正確한 피드백을 주셨어요. 내가 왜 잘못했는지 具體的으로 알려주셨죠. 그런 피드백을 ‘構成的 피드백’이라고 해요. 敎育者로서 肯定的 피드백과 構成的 피드백이 重要한데, 네거티브 피드백은 쓸데가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어요. 이미 알고 있었지만 確信을 가지게 해준 時間이었죠.

學窓 時節에도 ‘네거티브 피드백’을 經驗한 적이 있으신지요.

初中高를 韓國에서 다니며 많이 맞았던 記憶이 있어요. 工夫를 못했거든요. 先生님은 魂을 내시면서 “父母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는데, 그 말은 곧 “封套를 가지고 오라”는 말이어서 더더욱 엄마를 오게 할 수는 없었어요. 그러니 더 맞았어요. 그런 狀況이 反復되자 先生님은 제게 侮蔑感을 주는 말을 種種 하셨지요. 證明寫眞을 提出하라고 해서 提出하면 “바보같이 찍어 왔다”고 하는 式이었어요. 그런 말들은 아직도 꿈에 나와요. 只今도 先生님들 相對로 敎育할 때 꼭 말씀드리는 건 肯定的인 피드백과 否定的인 피드백이 미치는 影響力이에요. 어릴 때는 感受性이 銳敏한데, 이때 받는 피드백들은 人生에 큰 影響을 미치거든요.

飛行機 操縱士 資格證을 取得하는 데 가장 어려웠던 點은 무엇인가요.

視力 테스트가 正말 어려웠어요. 筆記試驗도 쉽지 않았어요. 제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프로젝트를 進行하다 보니, 日程을 消化하면서 工夫하는 건 不可能했죠. 호텔에서 짬짬이 했는데, 集中이 안 됐어요. 記憶力도 예전 같지 않았고요. 1年 半 程度 걸렸는데, 젊은 사람들이 集中的으로 한다면 視界飛行까지 3~6個月 程度 걸리는 過程이에요.

짬을 내서 工夫하다 보면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을 것 같아요.

일과 工夫를 竝行하는 生活이 루틴畫家 됐어요. ‘하루 30分 工夫, 30分 運動’ 이런 式이었죠. 恒常 스케줄이 똑같았어요. 運動이나 工夫는 時間이 남을 때 몰아서 하기보다는 조금씩이라도 持續的으로 했을 때 記憶에 남아요. 몰아서 하면 集中力도 없어지고 時間이 더 많이 걸리지요. 恒常 頭腦를 익숙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짧은 時間이라도 자주 하는 것이 效果的입니다.

飛行機 操縱 免許를 取得했을 때 周邊 反應이 궁금해요.

와이프는 “나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나 挑戰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첫발을 떼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언젠가 해야지’ 생각했지만, 行動으로 옮기기까지 어려웠어요. 재미있는 건 副學長 中 몇몇이 파일럿이더라고요. 테크놀로지와 關聯 있는 사람들이 飛行機 操縱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韓國 學校 劣等生이 美國 大學 優等生 된 祕訣
스탠퍼드 大學 校庭에서.
왠지 생각이 많은 어린 時節을 보내셨던 것 같아요. 어떤 學生이셨나요.

혼자 노는 時間이 많았어요. 막내였는데 兄弟들과는 5, 7年 差異가 났고 父母님은 저를 放牧型으로 키우셨어요. 누나가 읽던 찢어진 冊을 읽으며 자랐어요. 앞뒤가 찢긴 冊을 읽으면서 ‘스토리는 이렇게 始作하겠지?’ ‘冊이 이렇게 끝날 거야’라고 想像力을 發揮하곤 했죠. 初等學校 때 컴퓨터가 나왔는데, 그것에 相當히 關心이 있었어요. 컴퓨터를 살 形便은 아니라 世運商街 컴퓨터 賣場에서 긴 時間을 보내곤 했죠. 컴퓨터 學院에 다니는 親舊들이 있으면 따라가서 窓門 밖으로 뭘 하는지 보는 거예요. 그리고 授業 內容을 적어서 컴퓨터 賣場에 가 코드를 쳐보곤 했죠.

美國 留學을 決心한 契機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려서부터 抑壓的인 雰圍氣 속에 살면서 ‘이게 民主主義가 맞나?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父母님은 “高等學校 卒業하면 땡이다.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式이어서, 初等學校 5學年 때 “미리 나가겠다”고 해본 적도 있지만 勿論 안 됐죠(웃음). 高等學校 卒業하자마자 美國으로 떠나왔어요. 넉넉한 집안이 아니라 父母님은 飛行機票만 사주시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고 하셨어요. 正말 無酌定 美國으로 떠난 거죠. 工夫를 워낙 못했으니 英語도 몰라서 맥도날드 注文을 못할 程度였으니까요.

英語를 잘하게 된 自身만의 祕法이 있을까요.

語學院에 다닐 돈을 벌기 위해 洗車를 하고, 中國집이나 便宜店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ELS(語學院)에서 工夫하며 大學 入學 過程에 必要한 英語를 習得해야 했는데, 그때 어떻게 하면 繪畫를 빨리 배울 수 있을까 苦悶했어요. 亦是 會話를 빨리 배우는 方法은 親舊들을 만나는 거였어요. 그래서 寄宿舍 門에 ‘FREE BEER(麥酒 無料)’라고 써 붙였더니 저희 房에 오려는 아이들이 줄을 鉏더라고요. 親舊들과 이야기할 機會를 많이 만들어서 英語를 빨리 익히게 됐죠. 房에서는 恒常 CNN을 틀어 24時間 英語圈에 있게 했어요. 映畫 ‘어 퓨 굿 맨’을 30番 봐서 臺詞를 몽땅 외워버렸고요.

英語를 아예 못 하던 學生에서 敎授가 되기까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언제부터 工夫를 잘하게 됐나요.

英語를 全혀 모르는 狀態로 美國을 간 거라 美國人 親舊들은 한 番 읽으면 理解하는 內容을 저는 10番은 읽어야 했어요. 圖書館 딱딱한 椅子에 10時間씩 앉아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工夫했죠. 좋은 敎授님을 만난 것도 큰 影響을 줬어요. 初中高 통틀어서 제 成績表는 ‘水’는커녕 온통 ‘兩家兩家’였어요. 大學에 入學해서 ‘어떤 授業을 들을까?’ 하다가 만만해 보이는 音樂 授業에 登錄했는데 失手였죠. 音樂을 듣고 感想文을 5張이나 써내야 했어요. 音樂 感想文은 相當한 想像力을 動員해야 하는데, 英語 形容詞를 잘 모르니까 짧게 몇 줄밖에 못 쓰겠는 거예요. 敎授님이 제 感想文을 받고 “이게 뭐냐? 어느 나라에서 왔냐? 韓國말은 쓸 수 있냐?” 물으시더니, 한글로 써오라고 하셨어요. 한글로 感想文을 써서 가니, 辭典을 찾아가며 한 單語 한 單語 說明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손짓 발짓을 하면서 써온 感想文을 說明하는 걸 들으시곤 “感受性이 좋네. 이 授業은 英語 授業이 아닌 音樂 授業이다. 너의 感受性은 充分히 좋다” 하시곤 A를 주셨어요. 그때 正말 感動받았어요. 正確하게 제 弱點과 短點을 아시고 코칭을 해주신 거예요. 티칭이 아닌 코칭을요. 眞正한 敎育者는 가르치지 않고 코칭을 합니다. 以後 學習 動機가 誘發됐어요. 그다음부터 늘 A를 받고 싶어서 熱心히 했고, 正말로 줄줄이 A를 맞았어요.

正말 感動的인 이야기네요. 敎育이 얼마나 重要한 役割을 하는지 깨달은 契機였을 듯해요.

敎授님 德分에 제 人生이 180度 바뀔 수 있다는 걸 經驗했고, 學生들에게 敎育이 얼마나 重要한지 깨닫게 됐어요. 그때 컴퓨터를 專攻했는데 ‘컴퓨터 工學을 敎育에 活用할 수 없을까?’ 苦悶하던 中 敎育工學 碩士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只今 이 자리까지 왔네요.
“스스로에게 未安해지지 않으려면 

挑戰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
탄자니아에서 敎育 奉仕하는 폴 金 敎授.
2005年 멕시코의 落後된 農場 마을로 奉仕를 나갔다가 敎育 奉仕를 始作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當時 멕시코의 敎育 環境은 어땠나요.

집을 지어주는 奉仕 活動에 따라갔다가 農場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봤어요. 現地人들에게 “아이들이 學校에는 언제 가냐?”고 물었더니, 洞네에는 學校가 아예 없다는 거예요.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苦悶하게 됐어요. 제가 學校를 짓고 運營할 수는 없었으니, 工學 專攻者로서 모바일 敎育을 떠올리게 됐어요. 

마침 모바일 會社 하나가 事業을 整理하면서 디바이스를 모두 處分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가져다가 敎育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冊을 읽어주고 노래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들이었죠. 그렇게 만든 디바이스를 그곳 아이들에게 나눠줬어요. 그 洞네에는 라디오나 TV, 冷藏庫 같은 電子 機器가 없었어요. 當然히 모바일 디바이스를 어떻게 使用하는지 알지 못했죠. 

機器를 처음 본 아이들은 電源을 켜는 것도 모르니, 돌로 부수고 쪼개서 內部를 열어보기도 했어요. 그때 介入해서 “그게 아니야. 이렇게 使用해야 해”라고 하면 바로 受動的으로 바뀌어요. 그래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요. 그랬더니 한 아이가 偶然히 파워 버튼을 눌렀고 畵面에 뭔가가 나오게 된 거예요. 그걸 보더니 아이들이 亂離가 났어요. 먼저 켰던 아이가 다른 아이를 가르쳐주면서 스스로 익히더라고요. 그걸 ‘外界人 學習法’이라고 해요. 아이들을 能動型으로 成長시키려면 絶對 가르쳐주지 않고 發見하게 하라는 理論이죠. 以後 짧은 時間에 아이들이 디바이스 프로그램 專門家가 됐어요. 그게 모바일 敎育의 詩抄예요.

奉仕도 하면서 敎育 프로그램으로 마을을 발전시킬 수 있었겠네요.

이 內容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發表해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기 始作했어요. 펀딩을 했는데 구글에서는 모바일 폰을 5千 臺를 寄贈했죠. 멕시코, 人道를 넘어 全 世界로 퍼져나가게 됐어요. 이 經驗들을 바탕으로 2012年 實驗的 온라인 授業 무크(MOOC)를 開發해 全 世界 1百70餘 個國에 2萬 名이 參與한 새로운 革新 學校 모델을 디자인했죠. 2009年 非營利 國際敎育財團 ‘시드 오브 임파워먼트’를 設立해 全 世界 自願奉仕者들과 敎育 프로젝트를 運營하고 있어요. 運營 過程에서 質問型 學習 솔루션 ‘SMILE’을 開發했고, 圖書 프로젝트인 ‘1001 스토리’도 進行했어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偉人傳을 주고 싶은데 롤 모델이 없었어요. 그래도 ‘分明 스토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洞네에서 누군가 平和를 위해 努力했거나 智慧를 준 사람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蒐集하도록 했어요. 그걸 모아 오면 묶어서 冊을 만들어 膳物을 주는 거예요. 잘 쓴 아이들에게는 奬學金을 줬고요. 只今은 글로벌 敎育協力機關 ‘World Reader’를 통해 開發道上國 6百萬 名이 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製作한 冊을 無料로 普及하고 있어요.

奉仕하며 가장 보람됐던 瞬間을 꼽는다면.

아이들에게 “恒常 質問해라. 내가 살고 있는 社會가 맞는 社會인가 質問해라”하고 强調해요. 자유롭게 質問하고 생각할 수 있는 環境이 必要하죠. 質問이 없으면 社會가 바뀌지 않아요. 에티오피아에 가서 質問 敎育法을 實施했어요. 그랬더니 어떤 아이가 “우리나라에도 女性의 人權을 法律로 規定한 條項이 있습니까?” 하고 質問하더라고요. 그 瞬間 ‘내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긴 하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이들이 自身들을 바꾸는 것을 넘어 果敢히 이 나라를 바꾸는 質問을 하기 始作한 거죠. 質問을 통해서 리더십을 쌓아나가는 모습, 未來의 리더 모습을 봤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敎育은 올바른 方向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 아이들은 相當히 똑똑하고 리더십 敎育을 했을 때도 反應이 좋아요. 그런데 機會가 없어요. 學父母들은 革新 學校가 지어진다고 하면 反對합니다. 敎育의 機會를 빼앗고 있어요. 學父母들은 스스로 먹고살 能力을 키우기에도 바쁜 時期에 ‘修能 點數’라는 올드한 생각에만 머물러 있어요. 敎育 環境만 바꾸어도 全 世界가 따라올 수 없는 人材들이 나올 텐데 안타까워요. 未來는 旣存의 方式으로는 絶對로 살아갈 수 없어요. 只今 存在하는 일자리의 半 以上은 없어지거든요.

最近 出刊된 ‘다시, 俳優다(RE:Learn)’를 통해서 ‘再敎育’의 重要性을 强調하셨어요. 成人들에게 再敎育이 必要한 理由는 무엇일까요.

새로운 技術들이 繼續 登場하고, 世上이 빠르게 變하고 있어요. 이런 世上에서 새로운 知識을 배우면 本人의 力量을 倍加시킬 수 있죠. 그동안 經驗해보지 않았던 領域으로 挑戰하고, 多樣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게끔 해야 해요. 저는 요즘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림을 통해서 배우는 것들이 相當히 많아요. NFT를 만들어볼까, 생각도 하고요. “스스로에게 未安해지지 않으려면 내가 가진 熱望에 따라 挑戰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熱望이 남아 있는 채로 時間이 지나면 나중에 몸이 안 따라서 後悔할 거예요. ‘내가 그때 왜 안 했을까?’ 하며 後悔하지 않기 爲해 더 以上 미루지 말고 오늘 始作하고, 오늘 離陸하세요.

寫眞提供 폴 金
글 두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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