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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世音菩薩은 왜 바닷가 近處에 살고있을까[전승훈의 아트로드] 여름철에 바닷가를 찾으면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子息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처럼 苦痛받는 衆生들을 救濟한다는 자비로운 觀世音菩薩은 왜 바닷가 近處에 살고 있는 것일까. 韓國의 3代 觀音聖地는 慶南 南海 錦山 보리암, 仁川 江華 낙가산 普門寺, 講院 襄陽 洛山寺 紅蓮癌이 꼽혀 왔다. 이 밖에도 全南 麗水 향일암, 釜山 機長 解凍龍宮社 等 바닷가의 절에는 어김없이 觀音의 傳說이 내려온다. 해수관음상은 所聞난 祈禱處일 뿐 아니라 탁 트인 바다 風景을 眺望할 수 있는 最高의 포인트로 많은 旅行客들이 찾는다. ● 南海 보리암의 日出보리암은 南海의 名山인 錦山 頂上 絶壁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서면 南海 尙州銀모래備置를 中心으로 糊塗, 哀悼, 海運山, 목도, 승치도, 삼여도, 所致도 等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꿈결처럼 떠다닌다. 해수관음상의 微笑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風景이다. 보리암 日出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錦山에 올랐다. 낮에는 錦山 入口부터 運行하는 査察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하지만, 새벽에는 頂上 附近인 第2駐車場까지 乘用車로 올라갈 수 있다. 車에서 내린 後 錦山의 맑은 아침 空氣를 느끼며 15分 程度 걸으니 보리암 뒤便의 대장봉과 화엄봉, 刑吏癌의 깎아지른 바위가 나타난다. 보리암의 第一 양지바른 곳, 南海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場所에 해수관음상과 三層石塔이 서 있다. 해 뜨기 前 새벽인데도,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塔돌이를 하고 있다. 大慈大悲한 觀世音菩薩에게 慈悲와 도움을 請하는 懇切한 몸짓이다. 華嚴經에 따르면 衆生이 온갖 苦惱에 시달릴 때 한마음으로 觀世音菩薩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苦痛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觀世音菩薩, 觀世音菩薩” 하고 끊임없이 속삭이며 祈禱하는 사람들은 大部分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이다. 해수관음상이 바닷가에 많이 세워진 까닭은 예로부터 觀音菩薩이 印度 南東쪽 海岸에 있는 ‘포탈라카’山의 窟속에 살고 있다고 믿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佛敎가 印度에서 티베트를 거쳐 中國 韓國 日本으로 퍼져 나가면서, 民衆은 바닷가 山에 수많은 觀音信仰의 聖地를 만들었다. 티베트의 靈的 指導者인 달라이 라마도 觀世音菩薩의 化身으로 여겨진다. 달라이 라마의 執務室이 있는 라싸의 ‘布達拉宮’도 逋脫라카에서 由來한 이름이다. ‘달라이’는 ‘큰 바다’란 뜻이다. 逋脫라카는 中國으로 傳해지면서 ‘補陀落價(普陀落迦)’라는 漢字로 音借됐다. 中國 저장省 닝보(寧波) 隣近 푸퉈(普陀)山은 代表的인 觀音聖地다. 우리나라에서는 衣裳 大師가 新羅 文武王 11年(671年) 觀世音菩薩을 親見하고 觀音窟을 지었다는 襄陽 洛山寺 紅蓮癌을 最初의 本格 觀音道場으로 본다. 國內 3代 觀音聖地인 襄陽 洛山寺의 ‘駱山’, 强化 普門寺의 ‘낙가산’, 南海 보리암의 ‘步打電’ 等은 모두 ‘補陀落價’라는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리암이 있는 錦山의 風景은 季節에 따라 緋緞으로 수놓은 듯 變化無雙하게 變한다. 錦山을 오르다 보면 雙홍문, 望臺, 檀君聖殿, 坐禪對, 화엄봉과 같은 傳說과 이야기가 담긴 名所들이 櫛比하다. 高麗 末 李成桂가 보리암에서 百日祈禱를 하고 朝鮮王朝를 열었다는 祈禱處도 남아 있다. 特히 슬픈 사랑의 傳說이 담겨 있는 上司癌(想思巖) 絶壁은 보리암을 색다른 角度로 眺望하고, 파노라마처럼 바다 風景을 바라보며 思索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東아시아 海上 실크로드의 觀音聖地 江華 席毛島 낙가산 中턱에 자리한 普門寺 뒤便에는 ‘눈썹바위 磨崖觀音菩薩像’이 있다. 높이 9.2m, 幅 3.3m 規模의 巨大한 해수관음상이 낙가산 中턱에 가로로 길게 튀어나온 눈썹바위 아래 그야말로 눈瞳子처럼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仁慈한 微笑를 짓고 있는 磨崖佛은 暫時도 한눈을 팔지 않고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觀音像의 視線을 따라 내려다본 드넓은 西海 바다는 일찍이 强化 8頃으로 알려졌을 程度로 絶景이다. 新羅時代에 세워진 强化 普門寺는 高麗時代 때 觀音聖地로 크게 繁昌했다. 普門寺의 繁昌은 海上 貿易과 깊은 關聯이 있다. 印度를 出發해 믈라카 海峽과 베트남, 中國 광저우까지 進出한 印度 商人들이 中國 沿岸의 닝보를 거쳐 高麗의 首都 開京의 關門인 碧瀾渡까지 進出했다. 江華島는 碧瀾渡의 關門 役割을 하던 곳이다. 옛날에 배는 物件을 大量으로 輸送할 수 있는 長點이 있어 貿易에 적합한 手段이었다. 그러나 陸路에 비해 難破 等의 危險이 높아 航海는 늘 목숨을 건 冒險이었다. 사람들은 航海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기 위해 많은 神들에게 빌었다. 그中에 으뜸은 觀世音菩薩이었다. 그래서 東아시아 海上 실크로드를 오가던 뱃사람들은 中國 닝보, 江華島 等 바닷가의 山에 觀世音菩薩이 살던 印度의 補陀落家産을 再現해 냈다. 强化 普門寺는 절 앞까지 버스가 到着한다. 그러나 좀 더 드라마틱하게 해수관음상을 만나는 方法은 석모도의 解明産科 낙가산을 넘어서 普門寺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인 전득이고개에서 숲을 파고든 가파른 山길에 오른 지 10分 程度 지났을까. 갑자기 視野가 탁 트인다. 개펄을 쓰다듬는 바다와 점점이 흩어져 있는 無人島까지 西海 特有의 風景이다. 해명산에서 낙가산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稜線길은 順하다. 낙가산 頂上 標識石을 지나 새가리고개를 넘자 普門寺의 殿閣들이 내려다보인다. 너럭바위 바로 아래가 海獸觀音像을 모신 눈썹바위지만, 낙가산 頂上에서 바로 내려갈 수는 없다. 다시 普門寺까지 내려와서 一柱門을 지나 階段을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눈썹바위 磨崖觀音菩薩像에 다다랐다. 蓮꽃 위에 坐定하여 甘露水 甁을 든 普門寺 해수관음상 앞에는 所願을 담은 수많은 燃燈이 걸려 있다. 서울의 關門인 江華島는 宗敎를 비롯해 外來 文物 流入의 最前線이기도 했다. 1876年 江華島條約 以後 草創期 改新敎의 電波 過程에서 核心 役割을 한 곳도 江華島다. 1900年 지어진 强化 聖公會聖堂은 韓屋과 佛敎 寺刹, 西유럽 바실리카 樣式을 結合한 獨特한 建物이라 눈에 확 띈다. 英國 聖公會 宣敎師가 白頭山의 나무를 가져다 지은 이 聖堂은 佛敎의 寺刹처럼 一柱門과 梵鍾을 갖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八作지붕 龍마루에 올라앉은 十字架, 八作지붕 合刻 아래 ‘天主聖殿(天主性戰)’ 懸板, 기둥에 걸려 있는 ‘三位一體(三位一體)’ 柱聯, 祭壇 위에 새겨진 ‘萬有眞原(萬유진원)’ 等 漢字로 解釋한 聖經 句節이 聖堂임을 알게 해준다. 內部로 들어가면 古色蒼然한 샹들리에가 開化期 映畫 세트場에 온 느낌을 준다. 섬 旅行은 강화읍 香나무길 ‘朝陽紡織’ 카페에서 茶 한盞을 하며 마무리하면 좋다. 日帝强占期인 1933年 民族資本이 세운 紡織工場을 카페로 丹粧했다. 1958年 廢業한 뒤 60年假量 제대로 活用되지 않던 建物의 骨組를 그대로 살려 追憶 어린 옛 生必品과 藝術品을 陳列한 빈티지 美術館은 세련된 멋을 찾는 젊은이도, 追憶을 되새기는 어르신도 함께 즐기는 空間이 된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8-06 18:00
바닷가 絶壁에 피어난 한 떨기 蓮꽃… 海水觀音의 微笑[전승훈의 아트로드] 《여름철에 바닷가를 찾으면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子息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처럼 苦痛받는 衆生들을 救濟한다는 자비로운 觀世音菩薩은 왜 바닷가 近處에 있는 것일까. 韓國의 3代 觀音聖地는 慶南 南海 錦山 보리암, 仁川 江華 낙가산 普門寺, 講院 襄陽 洛山寺 紅蓮癌이 꼽혀 왔다. 이 밖에도 全南 麗水 향일암, 釜山 機長 解凍龍宮社 等 바닷가의 절에는 어김없이 觀音의 傳說이 내려온다. 해수관음상은 所聞난 祈禱處일 뿐 아니라 탁 트인 바다 風景을 眺望할 수 있는 最高의 포인트로 많은 旅行客들이 찾는다.》● 南海 보리암의 日出보리암은 南海의 名山인 錦山 頂上 絶壁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서면 南海 尙州銀모래備置를 中心으로 糊塗, 哀悼, 海運山, 목도, 승치도, 삼여도, 所致도 等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꿈결처럼 떠다닌다. 해수관음상의 微笑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風景이다. 보리암 日出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錦山에 올랐다. 낮에는 錦山 入口부터 運行하는 査察 버스(午前 8時∼午後 4時 運行)를 타고 올라가야 하지만, 새벽에는 頂上 附近인 第2駐車場까지 乘用車로 올라갈 수 있다. 車에서 내린 後 錦山의 맑은 아침 空氣를 느끼며 15分 程度 걸으니 보리암 뒤便의 대장봉과 화엄봉, 刑吏癌의 깎아지른 바위가 나타난다. 보리암의 第一 양지바른 곳, 南海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場所에 해수관음상과 三層石塔이 서 있다. 해 뜨기 前 새벽인데도,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塔돌이를 하고 있다. 大慈大悲한 觀世音菩薩에게 慈悲와 도움을 請하는 懇切한 몸짓이다. 華嚴經에 따르면 衆生이 온갖 苦惱에 시달릴 때 한마음으로 觀世音菩薩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苦痛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觀世音菩薩, 觀世音菩薩” 하고 끊임없이 속삭이며 祈禱하는 사람들은 大部分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이다. 해수관음상이 바닷가에 많이 세워진 까닭은 예로부터 觀音菩薩이 印度 南東쪽 海岸에 있는 ‘포탈라카’山의 窟속에 살고 있다고 믿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佛敎가 印度에서 티베트를 거쳐 中國 韓國 日本으로 퍼져 나가면서, 民衆은 바닷가 山에 수많은 觀音信仰의 聖地를 만들었다. 티베트의 靈的 指導者인 달라이 라마도 觀世音菩薩의 化身으로 여겨진다. 달라이 라마의 執務室이 있는 라싸의 ‘布達拉宮’도 逋脫라카에서 由來한 이름이다. ‘달라이’는 ‘큰 바다’란 뜻이다. 逋脫라카는 中國으로 傳해지면서 ‘補陀落價(普陀落迦)’라는 漢字로 音借됐다. 中國 저장省 닝보(寧波) 隣近 푸퉈(普陀)山은 代表的인 觀音聖地다. 우리나라에서는 衣裳 大師가 新羅 文武王 11年(671年) 觀世音菩薩을 親見하고 觀音窟을 지었다는 襄陽 洛山寺 紅蓮癌을 最初의 本格 觀音道場으로 본다. 國內 3代 觀音聖地인 襄陽 洛山寺의 ‘駱山’, 强化 普門寺의 ‘낙가산’, 南海 보리암의 ‘步打電’ 等은 모두 ‘補陀落價’라는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리암이 있는 錦山의 風景은 季節에 따라 緋緞으로 수놓은 듯 變化無雙하게 變한다. 錦山을 오르다 보면 雙홍문, 望臺, 檀君聖殿, 坐禪對, 화엄봉과 같은 傳說과 이야기가 담긴 名所들이 櫛比하다. 高麗 末 李成桂가 보리암에서 百日祈禱를 하고 朝鮮王朝를 열었다는 祈禱處도 남아 있다. 特히 슬픈 사랑의 傳說이 담겨 있는 上司癌(想思巖) 絶壁은 보리암을 색다른 角度로 眺望하고, 파노라마처럼 바다 風景을 바라보며 思索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東아시아 海上 실크로드의 觀音聖地 江華 席毛島 낙가산 中턱에 자리한 普門寺 뒤便에는 ‘눈썹바위 磨崖觀音菩薩像’이 있다. 높이 9.2m, 幅 3.3m 規模의 巨大한 해수관음상이 낙가산 中턱에 가로로 길게 튀어나온 눈썹바위 아래 그야말로 눈瞳子처럼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仁慈한 微笑를 짓고 있는 磨崖佛은 暫時도 한눈을 팔지 않고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觀音像의 視線을 따라 내려다본 드넓은 西海 바다는 일찍이 强化 8頃으로 알려졌을 程度로 絶景이다. 新羅時代에 세워진 强化 普門寺는 高麗時代 때 觀音聖地로 크게 繁昌했다. 普門寺의 繁昌은 海上 貿易과 깊은 關聯이 있다. 印度를 出發해 믈라카 海峽과 베트남, 中國 광저우까지 進出한 印度 商人들이 中國 沿岸의 닝보를 거쳐 高麗의 首都 開京의 關門인 碧瀾渡까지 進出했다. 江華島는 碧瀾渡의 關門 役割을 하던 곳이다. 옛날에 배는 物件을 大量으로 輸送할 수 있는 長點이 있어 貿易에 적합한 手段이었다. 그러나 陸路에 비해 難破 等의 危險이 높아 航海는 늘 목숨을 건 冒險이었다. 사람들은 航海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기 위해 많은 神들에게 빌었다. 그中에 으뜸은 觀世音菩薩이었다. 그래서 東아시아 海上 실크로드를 오가던 뱃사람들은 中國 닝보, 江華島 等 바닷가의 山에 觀世音菩薩이 살던 印度의 補陀落家産을 再現해 냈다. 强化 普門寺는 절 앞까지 버스가 到着한다. 그러나 좀 더 드라마틱하게 해수관음상을 만나는 方法은 석모도의 解明産科 낙가산을 넘어서 普門寺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인 전득이고개에서 숲을 파고든 가파른 山길에 오른 지 10分 程度 지났을까. 갑자기 視野가 탁 트인다. 개펄을 쓰다듬는 바다와 점점이 흩어져 있는 無人島까지 西海 特有의 風景이다. 해명산에서 낙가산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稜線길은 順하다. 낙가산 頂上 標識石을 지나 새가리고개를 넘자 普門寺의 殿閣들이 내려다보인다. 너럭바위 바로 아래가 海獸觀音像을 모신 눈썹바위지만, 낙가산 頂上에서 바로 내려갈 수는 없다. 다시 普門寺까지 내려와서 一柱門을 지나 階段을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눈썹바위 磨崖觀音菩薩像에 다다랐다. 蓮꽃 위에 坐定하여 甘露水 甁을 든 普門寺 해수관음상 앞에는 所願을 담은 수많은 燃燈이 걸려 있다. 서울의 關門인 江華島는 宗敎를 비롯해 外來 文物 流入의 最前線이기도 했다. 1876年 江華島條約 以後 草創期 改新敎의 電波 過程에서 核心 役割을 한 곳도 江華島다. 1900年 지어진 强化 聖公會聖堂은 韓屋과 佛敎 寺刹, 西유럽 바실리카 樣式을 結合한 獨特한 建物이라 눈에 확 띈다. 英國 聖公會 宣敎師가 白頭山의 나무를 가져다 지은 이 聖堂은 佛敎의 寺刹처럼 一柱門과 梵鍾을 갖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八作지붕 龍마루에 올라앉은 十字架, 八作지붕 合刻 아래 ‘天主聖殿(天主性戰)’ 懸板, 기둥에 걸려 있는 ‘三位一體(三位一體)’ 柱聯, 祭壇 위에 새겨진 ‘萬有眞原(萬유진원)’ 等 漢字로 解釋한 聖經 句節이 聖堂임을 알게 해준다. 內部로 들어가면 古色蒼然한 샹들리에가 開化期 映畫 세트場에 온 느낌을 준다. 섬 旅行은 강화읍 香나무길 ‘朝陽紡織’ 카페에서 茶 한盞을 하며 마무리하면 좋다. 日帝强占期인 1933年 民族資本이 세운 紡織工場을 카페로 丹粧했다. 1958年 廢業한 뒤 60年假量 제대로 活用되지 않던 建物의 骨組를 그대로 살려 追憶 어린 옛 生必品과 藝術品을 陳列한 빈티지 美術館은 세련된 멋을 찾는 젊은이도, 追憶을 되새기는 어르신도 함께 즐기는 空間이 된다.남해·강화=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8-06 03:00
“허리 治療받고 눈물로 고마워하시던 시골 할머니에 큰 感動” “99歲까지 88(팔팔)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릎과 허리, 발목 等 뼈와 關節에 對한 管理가 重要하지요. 나이가 들어도 親舊를 만나고, 社會生活을 하고, 運動을 하며 사는 삶이 요즘 幸福의 트렌드이기 때문이죠.” ENA 채널 ‘임채무의 浪漫닥터’는 全國 坊坊曲曲을 돌아다니며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을 無料로 治療해주는 ‘流浪 診療’ 프로그램이다. 俳優 임채무, 이문식 氏 等이 出演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整形外科 專門醫인 이태훈 9988病院 (서울 성동구 往十里)院長이 늘 함께한다. 浪漫닥터 出演陣은 올 3月부터 慶北 榮州 무섬마을, 講院 寧越, 忠南 論山, 全北 鎭安, 完州 비비정마을 等 20곳이 넘는 시골마을을 찾아 診療를 펼쳐왔다. “大部分 病院에 가려면 한두 時間 以上 걸리는 奧地를 찾아갑니다. 平生 밭에서 쪼그려 앉아서 일해 오신 어르신들이 많아서 허리와 무릎, 어깨, 발목, 股關節이 안 좋으신 境遇가 많아요. 天幕 診療所에서 엑스레이와 注射治療를 하고, 캠핑카 안에서는 物理治療, 徒手治療를 해드립니다.” 그는 바쁜 가운데서도 隔週 金, 土 1泊 2日 동안 看護師와 總務課 職員 等 5, 6名과 함께 浪漫닥터 流浪診療에 나선다. 金曜日 새벽부터 土曜日 해 질 녘까지 하루 平均 25∼30名의 患者를 治療해주는 强行軍을 펼쳐야 한다. 마을마다 症勢가 深刻한 어르신 中 한 名은 서울로 招請해 無料로 關節 手術과 治療를 해주기도 한다. “시골의 할머니께서 治療를 받으신 後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살다가 이렇게 큰 裝備를 싣고 온 醫師에게 專門治療를 받은 건 처음이라고. 그러면서 갑자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萬 원짜리 몇 張을 꺼내시는 거예요. 할머니가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주셔서 기다리는 어르신들과 스태프들이 시원하게 먹었던 記憶이 第一 오래 남습니다.” ‘健康 품앗이 旅行’을 모토로 내건 이 프로그램에서는 浪漫닥터 팀이 治療를 해주면 어르신들이 地域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가져와 點心을 함께 해 먹기도 한다. 그는 慶北 尙州에서 할아버지가 가져다 준 ‘곶감 껍질을 먹여 키운 韓牛’, 忠北 堤川 山茱萸 마을에서 먹은 도토리묵, 全北 鎭安에서 맛본 高冷地 수박의 기막힌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임채무 先生이 부른 노래 中에 ‘區區팔팔 내 人生, 이제부터 始作이다∼’라는 曲이 있었습니다. 제가 2017年 開院하면서 特色 있는 이름을 짓고 싶어서 ‘9988病院’이라고 지었습니다. 어느 날 임채무 先生이 지나가다가 病院에 들어오셔서 ‘왜 나한테 商標 許諾도 안 받고 이름을 지었냐’고 하셨어요. 알고 보니 그건 弄談이었고, 事實은 어깨가 아프셔서 오셨더군요. 磁氣共鳴 映像(MRI)을 찍어보니 어깨 회전근이 破裂돼 제가 縫合手術을 해드린 因緣으로 親해졌습니다.” 그는 “林 先生은 아이들을 위한 ‘두리랜드’를 오랫동안 運營해 왔는데 나이 들면 醫療奉仕를 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며 “結局 저랑 意氣投合해서 ‘浪漫닥터’를 始作했다”고 말했다. 現在까지 21回가 進行됐는데, 出演陣人 俳優 이문식 氏랑 ‘앞으로 500回까지 해보자’고 決意했다고 한다. 李 院長은 “많은 분들의 同參으로 醫療 奉仕活動이 1000回까지 繼續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7-27 03:00
“全國 오지 찾아가 어르신들께 醫療 奉仕…健康을 품앗이하죠” “99歲까지 88(팔팔)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릎과 허리, 발목 等 뼈와 關節에 對한 管理가 重要하지요. 나이가 들어도 親舊를 만나고, 社會生活을 하고, 運動을 하며 사는 삶이 요즘 幸福의 트렌드이기 때문이죠.” ENA 채널 ‘임채무의 浪漫닥터’는 全國 坊坊曲曲을 돌아다니며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을 無料로 治療해주는 ‘流浪 診療’ 프로그램이다. 俳優 임채무, 이문식 氏 等이 出演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整形外科 專門醫인 이태훈 9988病院 院長(서울 성동구 왕십리)李 늘 함께 한다. 浪漫닥터 出演陣은 지난 3月부터 慶北 榮州 무섬마을, 講院 寧越, 忠南 論山, 全北 鎭安, 完州 비비정마을 等 20곳이 넘는 시골마을을 찾아 診療를 펼쳐왔다. 캠핑카에 엑스레이 撮影 裝備, 超音波 衝擊波, 物理治療 機械, 徒手治療 裝備, 血壓計 等 各種 醫療裝備를 가득 싣고 바닷가나 논두렁에 커다란 天幕을 치고 진료해주는 奉仕活動 現場 프로그램이다. “大部分 專門病院에 가려면 한두時間 以上 걸리는 奧地를 찾아갑니다. 平生 밭에서 쪼그려 앉아서 일해오신 어르신들이 많아서 大部分 허리와 무릎, 어깨, 발목, 股關節이 안좋으신 境遇가 많아요. 天幕 診療所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注射治療를 하고, 캠핑카 안에서는 物理治療, 徒手治療를 해드립니다.” 이 院長은 激務로 金, 土 1泊2日 동안 病院의 看護師와 物理治療師, 徒手治療社, 總務課 職員 等 5,6名과 함께 同行을 한다. 마을마다 症勢가 深刻한 할머니, 할어버지 中에는 서울로 招請해 無料로 關節 手術과 治療를 해주기도 한다. 金曜日 새벽부터 土曜日 해질녘까지 하루 平均 25~30名의 患者를 治療해주는 强行軍을 펼쳐야 한다. “시골의 할머니께서 治療를 받으신 後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살다가 이렇게 큰 裝備를 싣고 온 醫師에게 專門治療를 받은 건 처음이라고. 그러면서 갑자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萬원짜리 몇張을 꺼내시는거예요. 그 마음이 傳達돼서 저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할머니가 주신 돈으로 기다리는 어르신들과 스태프들이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던 記憶이 第一 오래 남습니다.” ‘健康 품앗이 旅行’을 모토로 내건 이 프로그램에서는 浪漫닥터팀이 治療를 해주면 어르신들이 地域에서 나는 수박, 버섯, 도토리묵 같은 먹을거리를 가져와 셰프가 料理해 點心을 함께 먹기도 한다. 그는 慶北 尙州에서 할아버지 患者가 가져다 준 ‘곶감 껍질을 먹여 키운 韓牛’, 堤川 山茱萸 마을에서 먹은 도토리묵, 全北 鎭安에서 맛본 高冷地 수박의 기가막힌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鎭安에서는 20年 前에 歸鄕한 畫家가 허리 治療를 받고, 卽席에서 梅花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李 院長은 “貴重한 그림을 額子에 넣어서 病院 로비에 걸어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俳優 임채무 氏와의 因緣은. “임채무 先生이 부른 노래 中에 ‘區區팔팔 내 人生, 이제부터 始作이다~’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제가 2017年 開院하면서 特色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아내가 ‘9988病院’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開院 後 임채무 先生이 車타고 지나가다가 病院 이름을 보시고 들어오셔서 ‘왜 나한테 商標 許諾도 안받고 이름을 지었냐’고 하셨어요. 알고보니 그건 弄談이었고, 事實은 어깨가 아프셔서 오셨더군요. MRI를 찍어보니 어깨 회전근이 破裂돼 제가 縫合手術을 해드린 因緣으로 親해졌습니다.” ―‘浪漫닥터’ 醫療奉仕를 하게 된 契機는. “임채무 先生은 아이들을 위한 ‘두리랜드’를 오랫동안 運營해왔는데 나이들면 醫療奉仕를 하는 게 버킷 리스트였다고 합니다. 結局 저까지 意氣投合해서 ‘浪漫닥터’를 하게 됐습니다. 올해 21回가 進行됐는데, 함께 出演하는 이문식 俳優가 ‘앞으로 500回까지 해보자’고 하셨어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坊坊曲曲 流浪診療 奉仕活動이 500回, 1000回까지 繼續되길 祈願합니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7-26 13:22
게와 海草로 끼니 때웠지만…이중섭이 사랑했던 섶섬 風景[전승훈의 아트로드] 提州 西歸浦 앞바다에는 無人島 三兄弟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濟州島를 만든 神이 아름다운 提州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火가 나서 漢拏山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汎섬이 됐다고 한다. 漢拏山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白鹿潭이 됐다. 西歸浦 세 섬은 유네스코 登錄遺産이자 生物圈 保全地域으로 指定된 天惠의 祕境이다. 바닷속은 ‘珊瑚庭園’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世界的인 연산호 群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聖地이기도 하다. 畫家 李仲燮(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家族들과 살았던 가장 幸福했던 瞬間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 그리운 섶섬 風景提州 西歸浦에 있는 李仲燮美術館 屋上에 올라가면 西歸浦 앞바다가 보인다. 畫家 李仲燮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風景’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黃土빛 길과 羅牧, 草家지붕 風景은 콘크리트 빌딩과 道路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門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風景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風景‘은 現在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展示되고 있는 故 李健熙 會長 寄贈 1周年 記念展人 ’어느 蒐集家의 招待‘에서 볼 수 있다. 黃土빛 草家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色 濟州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色彩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西歸浦 生活은 중섭에게 人生의 가장 아름다운 時節이었을 것이다. 1951年 1·4後退 當時 元山에 살던 李仲燮은 家族을 이끌고 避亂해 提州 西歸浦까지 내려온다. 李仲燮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坪짜리 單칸房을 얻어 산다. 實際로 李仲燮 美術館 아래 草家집에는 李仲燮 家族이 머물던 房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配給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李仲燮은 西歸浦 海邊으로 내려가 海草를 뜯어 粥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飯饌을 해 먹었다고 한다. 西歸浦 七十里로 자구리海邊에 가면 展望 좋은 카페와 食堂이 있는 距離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李仲燮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濟州島 風景‘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文化藝術公園에는 담뱃匣 속 包裝知人 은지에 鉛筆로 그림을 그리는 畫家의 커다란 손이 形象化된 彫刻品이 있다. 李仲燮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作家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作品이다. 그러나 李仲燮은 濟州島에 到着한 그해 12月 가난을 解決하지 못해 1年도 채 안 돼 釜山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以後 아내와 아이들도 日本으로 떠나보냈다. 1956年 世上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어 銀箔紙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風景, 銀箔紙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李仲燮美術館에서 西歸浦 올레市場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畫家들의 作業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尙州 藝術家들이 그린 壁畫를 鑑賞한다. 섶섬과 문섬의 風景을 보기엔 西歸浦 正房瀑布 옆에 있는 이왈종美術館도 좋은 포인트다. 畫家 이왈종은 1990年 大學敎授職을 박차고 濟州로 내려왔다. 民畫的인 色彩와 道上으로 構成된 그의 作品 世界는 團欒하다. ’濟州 生活의 中道‘ 聯作에는 冬柏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濟州의 悠悠自適한 風景이 살아 숨쉰다.● 바닷속 곶자왈, 珊瑚庭園 섶섬은 스킨스쿠버 名所다. ’小天地‘와 ’작은 한開創‘, ’큰 한開創‘(濟州 方言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地形을, ’開創‘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地形이라고 한다) 等 有名한 다이빙 포인트가 櫛比하다. 섬이나 바닷가 旅行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地域을 立體的으로 鑑賞하는 效果를 얻을 수 있다. 西歸浦港에서 出發하는 배를 타고 5分쯤 가니 섶섬에 到着했다. 스쿠버다이빙 裝備를 着用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浮力調節裝置(BCD)의 空氣를 排出시키며 徐徐히 下降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陸上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程度로 나무가 빽빽한 濟州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類(soft coral)인 粉紅色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珊瑚, 하얀色 海松까지 地球에 存在하는 모든 珊瑚를 모아놓은 듯하다. 粉紅色, 노란色, 草綠色, 흰色 等 總天然色 ’珊瑚庭園‘이다. 알록달록 華麗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一名 라이언피시)李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餘裕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向해 내려가는 동안 强烈한 原色의 亞熱帶 魚種들이 次例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靑줄돔, 파랑돔, 琥珀돔, 아홉동가리, 黃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群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共生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等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主人公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向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運이 좋으면 龍王의 使臣인 바다거북, 大型 가오리度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代表(다이빙 講師)는 “섶섬 앞바다에는 海松이 많고, 문섬 새끼섬 職壁에는 노란色 演算號가 많다”며 “西歸浦 앞바다는 世界的인 天惠의 珊瑚庭園”이라고 말했다. ● 方舟敎會 & 本態美術館西歸浦港에서 乘用車로 30餘 分 距離에 있는 서귀포시 安德面으로 가서 美術과 建築 旅行을 이어간다.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建築한 ’本態美術館‘과 在日 韓國人 建築家 이타미 준(유동룡)이 設計한 ’方舟敎會‘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空間이다. 方舟敎會는 舊約聖書에 나오는 노아의 方舟 模樣으로 세워진 敎會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方舟처럼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方舟敎會는 지붕의 三角形 金屬조각이 反射하며 빛의 洪水를 만들어낸다. 敎會 周邊은 야트막한 蓮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方舟의 形象이다. 內部로 들어가면 배의 骨格을 본떠 기둥 없는 五角形 돔 構造로 簡潔하다. 壁面 아래쪽에 있는 琉璃窓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操舵室에 該當하는 正面에 十字架가 서 있고, 琉璃窓에서는 强烈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希望의 窓門‘이다. 50名 程度가 앉을 수 있는 작은 敎會지만 누구라도 敬虔해지지 않을 수 없는 宗敎的 雰圍氣가 가득한 空間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本態博物館은 露出 콘크리트 建物로, 韓國의 傳統 흙담 및 庭園과 잘 어우러진다. 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景致가 아름답다. 透明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建物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內部에 들어가면 白南準,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高麗靑瓷와 百字, 小盤, 조각褓 等 東西洋 美術의 다양한 컬렉션을 鑑賞할 수 있다. 전승훈記者 raphy@donga.com} 2022-07-23 17:14
게와 海草로 끼니 때웠지만…이중섭이 사랑했던 섶섬 風景[전승훈의 아트로드] 提州 西歸浦 앞바다에는 無人島 三兄弟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濟州島를 만든 神이 아름다운 提州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火가 나서 漢拏山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汎섬이 됐다고 한다. 漢拏山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白鹿潭이 됐다. 西歸浦 세 섬은 유네스코 登錄遺産이자 生物圈 保全地域으로 指定된 天惠의 祕境이다. 바닷속은 ‘珊瑚庭園’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世界的인 연산호 群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聖地이기도 하다. 畫家 李仲燮(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家族들과 살았던 가장 幸福했던 瞬間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 그리운 섶섬 風景 提州 西歸浦에 있는 李仲燮美術館 屋上에 올라가면 西歸浦 앞바다가 보인다. 畫家 李仲燮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風景’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黃土빛 길과 羅牧, 草家지붕 風景은 콘크리트 빌딩과 道路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門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風景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風景’은 現在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展示되고 있는 故 李健熙 會長 寄贈 1周年 記念展人 ‘어느 蒐集家의 初代’에서 볼 수 있다. 黃土빛 草家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色 濟州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色彩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西歸浦 生活은 중섭에게 人生의 가장 아름다운 時節이었을 것이다. 1951年 1·4後退 當時 元山에 살던 李仲燮은 家族을 이끌고 避亂해 提州 西歸浦까지 내려온다. 李仲燮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坪짜리 單칸房을 얻어 산다. 實際로 李仲燮 美術館 아래 草家집에는 李仲燮 家族이 머물던 房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配給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李仲燮은 西歸浦 海邊으로 내려가 海草를 뜯어 粥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飯饌을 해 먹었다고 한다. 西歸浦 七十里로 자구리海邊에 가면 展望 좋은 카페와 食堂이 있는 距離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李仲燮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濟州島 風景’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文化藝術公園에는 담뱃匣 속 包裝知人 은지에 鉛筆로 그림을 그리는 畫家의 커다란 손이 形象化된 彫刻品이 있다. 李仲燮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作家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作品이다. 그러나 李仲燮은 濟州島에 到着한 그해 12月 가난을 解決하지 못해 1年도 채 안 돼 釜山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以後 아내와 아이들도 日本으로 떠나보냈다. 1956年 世上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어 銀箔紙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風景, 銀箔紙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李仲燮美術館에서 西歸浦 올레市場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畫家들의 作業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尙州 藝術家들이 그린 壁畫를 鑑賞한다. 섶섬과 문섬의 風景을 보기엔 西歸浦 正房瀑布 옆에 있는 이왈종美術館도 좋은 포인트다. 畫家 이왈종은 1990年 大學敎授職을 박차고 濟州로 내려왔다. 民畫的인 色彩와 道上으로 構成된 그의 作品 世界는 團欒하다. ‘濟州 生活의 中道’ 聯作에는 冬柏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濟州의 悠悠自適한 風景이 살아 숨쉰다. ● 바닷속 곶자왈, 珊瑚庭園 섶섬은 스킨스쿠버 名所다. ‘小天地’와 ‘작은 한開創’, ‘큰 한開創’(濟州 方言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地形을, ‘開創’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地形이라고 한다) 等 有名한 다이빙 포인트가 櫛比하다. 섬이나 바닷가 旅行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地域을 立體的으로 鑑賞하는 效果를 얻을 수 있다. 西歸浦港에서 出發하는 배를 타고 5分쯤 가니 섶섬에 到着했다. 스쿠버다이빙 裝備를 着用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浮力調節裝置(BCD)의 空氣를 排出시키며 徐徐히 下降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陸上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程度로 나무가 빽빽한 濟州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類(soft coral)인 粉紅色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珊瑚, 하얀色 海松까지 地球에 存在하는 모든 珊瑚를 모아놓은 듯하다. 粉紅色, 노란色, 草綠色, 흰色 等 總天然色 ‘珊瑚庭園’이다. 알록달록 華麗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一名 라이언피시)李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餘裕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向해 내려가는 동안 强烈한 原色의 亞熱帶 魚種들이 次例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靑줄돔, 파랑돔, 琥珀돔, 아홉동가리, 黃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群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共生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等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主人公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向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運이 좋으면 龍王의 使臣인 바다거북, 大型 가오리度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代表(다이빙 講師)는 “섶섬 앞바다에는 海松이 많고, 문섬 새끼섬 職壁에는 노란色 演算號가 많다”며 “西歸浦 앞바다는 世界的인 天惠의 珊瑚庭園”이라고 말했다. ● 方舟敎會 & 本態美術館 西歸浦港에서 乘用車로 30餘 分 距離에 있는 서귀포시 安德面으로 가서 美術과 建築 旅行을 이어간다.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建築한 ‘本態美術館’과 在日 韓國人 建築家 이타미 준(유동룡)이 設計한 ‘方舟敎會’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空間이다. 方舟敎會는 舊約聖書에 나오는 노아의 方舟 模樣으로 세워진 敎會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方舟처럼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方舟敎會는 지붕의 三角形 金屬조각이 反射하며 빛의 洪水를 만들어낸다. 敎會 周邊은 야트막한 蓮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方舟의 形象이다. 內部로 들어가면 배의 骨格을 본떠 기둥 없는 五角形 돔 構造로 簡潔하다. 壁面 아래쪽에 있는 琉璃窓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操舵室에 該當하는 正面에 十字架가 서 있고, 琉璃窓에서는 强烈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希望의 窓門’이다. 50名 程度가 앉을 수 있는 작은 敎會지만 누구라도 敬虔해지지 않을 수 없는 宗敎的 雰圍氣가 가득한 空間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本態博物館은 露出 콘크리트 建物로, 韓國의 傳統 흙담 및 庭園과 잘 어우러진다. 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景致가 아름답다. 透明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建物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內部에 들어가면 白南準,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高麗靑瓷와 百字, 小盤, 조각褓 等 東西洋 美術의 다양한 컬렉션을 鑑賞할 수 있다. 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7-23 15:00
섶섬이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李仲燮의 그리움처럼[전승훈의 아트로드] 《提州 西歸浦 앞바다에는 無人島 三兄弟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濟州島를 만든 神이 아름다운 提州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火가 나서 漢拏山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汎섬이 됐다고 한다. 漢拏山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白鹿潭이 됐다. 西歸浦 세 섬은 유네스코 登錄遺産이자 生物圈 保全地域으로 指定된 天惠의 祕境이다. 바닷속은 ‘珊瑚庭園’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世界的인 연산호 群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聖地이기도 하다. 畫家 李仲燮(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家族들과 살았던 가장 幸福했던 瞬間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그리운 섶섬 風景提州 西歸浦에 있는 李仲燮美術館 屋上에 올라가면 西歸浦 앞바다가 보인다. 畫家 李仲燮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風景’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黃土빛 길과 羅牧, 草家지붕 風景은 콘크리트 빌딩과 道路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門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風景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風景’은 現在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展示되고 있는 故 李健熙 會長 寄贈 1周年 記念展人 ‘어느 蒐集家의 初代’에서 볼 수 있다. 黃土빛 草家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色 濟州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色彩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西歸浦 生活은 중섭에게 人生의 가장 아름다운 時節이었을 것이다. 1951年 1·4後退 當時 元山에 살던 李仲燮은 家族을 이끌고 避亂해 提州 西歸浦까지 내려온다. 李仲燮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坪짜리 單칸房을 얻어 산다. 實際로 李仲燮 美術館 아래 草家집에는 李仲燮 家族이 머물던 房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配給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李仲燮은 西歸浦 海邊으로 내려가 海草를 뜯어 粥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飯饌을 해 먹었다고 한다. 西歸浦 七十里로 자구리海邊에 가면 展望 좋은 카페와 食堂이 있는 距離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李仲燮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濟州島 風景’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文化藝術公園에는 담뱃匣 속 包裝知人 은지에 鉛筆로 그림을 그리는 畫家의 커다란 손이 形象化된 彫刻品이 있다. 李仲燮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作家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作品이다. 그러나 李仲燮은 濟州島에 到着한 그해 12月 가난을 解決하지 못해 1年도 채 안 돼 釜山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以後 아내와 아이들도 日本으로 떠나보냈다. 1956年 世上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 銀箔紙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風景, 銀箔紙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李仲燮美術館에서 西歸浦 올레市場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畫家들의 作業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尙州 藝術家들이 그린 壁畫를 鑑賞한다. 섶섬과 문섬의 風景을 보기엔 西歸浦 正房瀑布 옆에 있는 曰種美術館도 좋은 포인트다. 畫家 이왈종은 1990年 大學敎授職을 박차고 濟州로 내려왔다. 民畫的인 色彩와 道上으로 構成된 그의 作品 世界는 團欒하다. ‘濟州 生活의 中道’ 聯作에는 冬柏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濟州의 悠悠自適한 風景이 살아 숨쉰다.○ 바닷속 곶자왈, 珊瑚庭園 섶섬은 스킨스쿠버 名所다. ‘小天地’와 ‘작은 한開創’, ‘큰 한開創’(濟州 方言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地形을, ‘開創’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地形이라고 한다) 等 有名한 다이빙 포인트가 櫛比하다. 섬이나 바닷가 旅行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地域을 立體的으로 鑑賞하는 效果를 얻을 수 있다. 西歸浦港에서 出發하는 배를 타고 5分쯤 가니 섶섬에 到着했다. 스쿠버다이빙 裝備를 着用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浮力調節裝置(BCD)의 空氣를 排出시키며 徐徐히 下降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陸上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程度로 나무가 빽빽한 濟州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類(soft coral)인 粉紅色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珊瑚, 하얀色 海松까지 地球에 存在하는 모든 珊瑚를 모아놓은 듯하다. 粉紅色, 노란色, 草綠色, 흰色 等 總天然色 ‘珊瑚庭園’이다. 알록달록 華麗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一名 라이언피시)李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餘裕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向해 내려가는 동안 强烈한 原色의 亞熱帶 魚種들이 次例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靑줄돔, 파랑돔, 琥珀돔, 아홉동가리, 黃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群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共生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等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主人公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向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運이 좋으면 龍王의 使臣인 바다거북, 大型 가오리度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代表(다이빙 講師)는 “섶섬 앞바다에는 海松이 많고, 문섬 새끼섬 職壁에는 노란色 演算號가 많다”며 “西歸浦 앞바다는 世界的인 天惠의 珊瑚庭園”이라고 말했다.○방주교회 & 本態博物館西歸浦港에서 乘用車로 30餘 分 距離에 있는 서귀포시 安德面으로 가서 美術과 建築 旅行을 이어간다.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建築한 ‘本態博物館’과 在日 韓國人 建築家 이타미 준(유동룡)이 設計한 ‘方舟敎會’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空間이다. 方舟敎會는 舊約聖書에 나오는 노아의 方舟 模樣으로 세워진 敎會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方舟처럼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方舟敎會는 지붕의 三角形 金屬조각이 反射하며 빛의 洪水를 만들어낸다. 敎會 周邊은 야트막한 蓮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方舟의 形象이다. 內部로 들어가면 배의 骨格을 본떠 기둥 없는 五角形 돔 構造로 簡潔하다. 壁面 아래쪽에 있는 琉璃窓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操舵室에 該當하는 正面에 十字架가 서 있고, 琉璃窓에서는 强烈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希望의 窓門’이다. 50名 程度가 앉을 수 있는 작은 敎會지만 누구라도 敬虔해지지 않을 수 없는 宗敎的 雰圍氣가 가득한 空間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本態博物館은 露出 콘크리트 建物로, 韓國의 傳統 흙담 및 庭園과 잘 어우러진다. 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景致가 아름답다. 透明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建物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內部에 들어가면 白南準,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高麗靑瓷와 百字, 小盤, 조각褓 等 東西洋 美術의 다양한 컬렉션을 鑑賞할 수 있다. 글·寫眞 西歸浦=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7-23 03:00
“有名 放送 타이틀 그려낸 손끝…내가 글씨를 쓰는 理由는”[전승훈의 아트로드] “글씨는 까만 먹물 속에 있는 가장 하얀 빛을 찾아내는 作業입니다. 그 빛을 發散해 世上에 滋養分을 供給하는 것이 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할 일이죠.” 1世代 캘리그라피 作家이자 20年間 KBS에서 ‘不滅의 李舜臣’ ‘眞品名品’ ‘明見萬里’ 等의 代表的인 放送 타이틀을 써온 作家 장천(章川) 金聖泰. 그는 글씨를 쓰는 理由를 이렇게 밝힌다. 그가 쓴 力動的이면서도 세련된 캘리그라피 作品을 보고 있노라면, 書體의 아름다움을 넘어 글句에 담긴 뜻이 마음 속에 또렷이 살아나는 珍奇한 經驗을 하게 된다. 慶南 居昌에서 태어난 金 作家는 여섯 살에 書藝學院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글씨를 배웠다. 國內 最初의 書藝 專攻學科人 원광대 書藝科 1期 生으로 卒業했고, 東國大 人文大學院 美術史學科에서 韓國書藝史를 專攻했다. 大學院 論文 主題는 ‘고운 崔致遠의 書藝硏究’. 1997年 동아美術祭 入選을 始作으로 1998年부터 2006年까지 大韓民國 美術大展에서 特選 2回, 入選 4回 受賞으로 招待作家가 됐다. 漢文과 한글 分野의 傳統 書藝家의 길을 걸었던 그가 어떻게 캘리그라피 作家가 됐을까. “1997年 어느날, 當時 핫한 드라마였던 KBS1TV 大河드라마 ‘龍의 눈물’을 보면서 나도 저런 放送 타이틀을 쓰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放送 타이틀을 다양한 스타일로 練習하면서 차곡차곡 포트폴리오를 모으기 始作했지요. 그때부터 나의 캘리그라피 人生이 始作됐습니다.”그로부터 6年 後인 2003年. 그는 KBS의 放送美術을 擔當하는 子會社인 KBS아트비전에 公採 3期로 入社했다. ‘不滅의 李舜臣’ ‘太宗 李芳遠’ ‘韓國人의 밥床’ ‘眞品名品’ ‘明見萬里’ ‘傳說의 故鄕’ ‘蔣英實’ ‘同行’ 等 KBS의 굵직한 放送 타이틀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放送 타이틀 依賴가 들어오면 드라마 같은 境遇는 시놉시스를 여러次例 읽으며 苦悶합니다. 以後 演出팀과 論議를 하죠. 演出팀에서는 힘이 있으면 좋겠다, 거칠었으면 或은 깔끔했으면 좋겠다, 세련되고 럭셔리한 雰圍氣를 願한다 等等 여러 가지 注文을 합니다. 그 말을 綜合해서 제가 생각하는 글씨를 여러 가지 試案으로 써나가게 됩니다.”―올해 放映된 大河드라마 ‘太宗 李芳遠’의 글씨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李芳遠을 다룬 史劇이라 戰爭과 權力 爭奪의 스토리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거칠고, 힘있는 글씨가 어울릴 것이다. 그런데 演出팀에서는 타이틀에서 너무 센 느낌은 살짝 줄이면 좋겠다는 意見을 냈다. 이番 드라마에서는 PD家 强力한 王權을 세웠던 李芳遠의 카리스마보다는 그의 人間的인 部分을 再照明함으로써 李芳遠이라는 人物을 再解釋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의 드라마 타이틀 첫 笠峯作은 2003年 TV小說 ‘찔레꽃’이었다. 60-70年代 父母님 世代의 哀歡과 희노애락을 담은 드라마였다. 金 作家는 “누구나 가난했던 時節, 찔레꽃처럼 가시덤불 같은 哀歡과 曲折을 겪으면서도, 하얗게 꽃을 피워내는 찔레꽃의 느낌을 글씨에 담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記憶에 남는 放送 타이틀 글씨는. “‘韓國人의 밥床’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밥床은 固定된 食卓이 아니라, 平牀에서 펼쳐놓고 먹어도, 너럭바위에 앉아서 차려 먹어도 되는 밥床이다. 최불암 氏가 시골 곳곳을 찾아가 숨은 맛집을 紹介하는 프로그램인데, 그 맛집이 장사를 하는 가게가 아니라 洞네住民들로부터 참 飮食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一般 家庭이다. 그런 집을 찾아가 代代로 손맛을 이어온 어머니들의 飮食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끌어내는 프로그램이다. 글씨 自體가 나무처럼 친숙하고 정다운 느낌을 表現하려고 했다. 映像앨범 ‘山’은 山봉우리 모습을 그대로 본뜬 象形文字의 形態로 썼는데, 反應이 무척 좋았다. 現在는 타이틀이 다르게 바뀌었는데, 象形文字 産을 記憶하는 사람들이 많다. ‘明見萬里’는 最初로 講演과 다큐멘터리를 結合한 形態의 프로그램이어서 個性있는 글씨를 願했다. 平素에 자주 볼 수 없는, 끝이 銳利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색다른 글씨體로 表現하려 했다.” 金 作家가 늘 가슴에 품고 사는 말은 ‘依在弼善(意在筆先)’이다. ‘붓질보다 뜻이 먼저다’라는 말이다. 그는 “글씨와 精神이 一致하는 사람으로 記憶되고 싶다”는 바람을 傳한다. 最近 캘리그라피가 流行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감에 따라 자칫 보기에 예쁘고 좋은 글씨로만 캘리그라피를 바라보는 境遇가 있다. 이에 對해 作家는 斷乎하다. “캘리그라피를 單純히 아름다운 글씨라는 外形的인 것만 바라보면 그 眞正한 意味를 理解하지 못한 겁니다. 그저 글을 예쁘게 꾸미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제대로 接近하지 못한 거지요. 아무리 글씨를 잘 써도 그 안에 哲學과 感性을 담지 못하면 그건 그저 글씨일 뿐입니다.” 그는 그동안 忠武公 李舜臣 將軍, 茶山 丁若鏞, 법정 스님, 이해인 修女 等의 ‘名詞(名士) 語錄’을 主題로 한 시리즈 展示會를 열었다. 지난 2011年 仁寺洞 討捕하우스에서 招待展으로 열린 法頂스님 追慕 1周忌 展示會를 準備할 때도 몇달間 깊은 默想을 했다고 한다. “이 時代의 스승이신 법정스님의 향기로운 글을 拔萃해 展示會를 準備하는 期間만 9個月에 걸렸습니다. 紋章 마다 그 意味를 느끼고 作品으로 옮기기 위해 스님의 發刊된 모든 冊을 끊임없이 다시 精讀했죠. 법정스님의 가르침에 맞는 글씨를 쓰기 위해 스님이 머물렀던 松廣寺 佛日癌에도 몇 番이나 찾아갔습니다.” 그는 2013年에는 茶山 丁若鏞 誕辰250周年 記念展을 아라아트갤러리에서 茶山學術文化財團 主催로 열기도 했다. 2014年에는 이해인 修女의 詩文을 선화랑에서 展示했는데 收益金 全額을 小兒癌어린이돕기에 寄附했다. 2016年에는 牙山市 招請을 받아 李舜臣 將軍 語錄을 쓴 글씨를 牙山文化財團갤러리에서 展示했다. 金 作家는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붓으로 배우는 캘리그라피’(德州)라는 冊을 펴냈다. 붓과 먹물, 畫宣紙를 利用해 基本技부터 始作해 完成된 作品까지 따라서 써보며 배울 수 있는 冊이다. 그는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사람에게 基礎인 붓을 다루는 法을 强調한다. ―왜 붓으로 배우는 캘리그라피인가. “캘리그라피의 始初인 書藝를 하는 데 가장 必要한 材料는 ‘文房四友(文房四友)’다. 漢字로 ‘紙筆硯墨(紙筆硯墨)’이라고도 부르는데, 종이·붓·벼루·먹 네가지를 말한다. 요즘에는 傳統的인 道具인 붓이나 畫宣紙를 使用하지 않고 번지지 않는 종이에 펜, 色鉛筆, 나무, 풀뿌리 等 여러 가지 道具를 使用해 캘리그라피를 演出하는 作家들이 늘고 있다. 이런 道具는 다루기가 쉬워 빨리 배울 수 있고 다양한 表現을 할 수 있다는 長點이 있다. 그러나 感性的인 캘리그라피를 表現하는 데 붓만큼 變化無雙한 素材가 없기에, 붓으로 作業해보지 않는 캘리그라퍼들은 그 深奧한 藝術的 무게를 把握하기 힘들다. 붓과 먹물, 畫宣紙가 만나 表現되는 그 힘과 맛은 다른 어떤 材料로도 說明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卽 번지고, 마르고, 潤澤하고, 거칠고 또 淡墨과 濃墨 等 檢定 속에서도 그 色의 깊이가 다양하게 表現되는 魅力이 있다.” 金 作家는 冊에서 붓으로 긋는 劃의 다양한 아름다움에 對해 說明한다. 붓은 누르는 힘 ‘필압(筆壓)’을 調節해 劃의 좁고 넓은 幅의 車를 다양하게 表現할 수 있다. 힘있게 누르면 굵어지고 살짝 누르면 가늘어진다. 그리고 붓에 묻은 먹물의 量에 따라서도 藝術的 感性을 表現해낼 수 있다. ”붓에 물氣가 많으면 번짐 現象이 나타나고, 붓이 마르면 飛白(飛白) 現象이 나타난다. 畫宣紙에 먹물이 100%로 닿지 않고 흰 部分이 생기는 現象인데, 恒常 같은 濃度의 글씨보다는 自然스럽게 먹물이 말라 飛白現象이 나타날 때 글씨는 더 아름답습니다. 또한 붓에 먹물이 거의 없는 狀態에서 筆壓을 加하면 붓이 갈라지는데, 이런 劃으로 驅使하는 筆法을 ‘渴筆(渴筆)’이라고 한다. 또한 먹물의 濃度에 따라 옅은 灰色에서부터 津한 검정色까지 宏壯히 폭넓은 먹色의 弄談을 줄 수 있다. 그리고 小品은 붓펜으로도 充分하지만, 作品性 높은 큰 作品을 하려면 종이, 붓, 먹물을 能熟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는 다양한 캘리그라피 書體를 驅使하기 위해서는 ”한글 版本體의 始原인 ‘訓民正音體’와 筆寫體 中에서 ‘窮鼠’ 正字體에 바탕을 두고 自由奔放한 캘리그라피로 接近을 摸索해야 한다“고 말했다. ―書藝에서 캘리그라피라는 用語로 變遷하게 된 事緣은. “書藝(書藝)라는 말은 大韓民國 政府가 樹立되고, 政府에서 처음 實施한 美術展覽會에 다른 美術品과 함께 글씨 部門이 參與하면서 그동안 日本人들이 부르던 ‘書道(書道)’라는 말 代身 獨自的으로 붙인 名稱이다. 中國에서는 ‘書法(書法)’이라고 부른다. 西洋에서 使用된 캘리그라피라는 用語는 韓國을 비롯한 東洋文化圈에서는 書藝라는 限定된 領域에 屬한 視覺藝術이었다. 그러나 21世紀에 접어들면서 IT의 發展은 大學에서 書藝를 專攻한 專門 書藝人들을 디자인 市場으로 나오게 했고, 그들에 依해 定型化된 書藝의 틀을 넘어 다양한 表現樣式으로 發展하며 自然히 書藝라는 用語 代身 캘리그라피란 用語가 使用됐다.” ―캘리그라피와 書藝의 差異點은? “書藝家 記錄이라는 手段에서 藝術的 領域으로 넓혀간 反面, 캘리그라피는 書藝家 가진 藝術的 領域의 限界에서 벗어나기 위해 始作됐다. 文房四友를 가지고 하는 書藝家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 色을 입고, 다양한 文樣으爐治粧을 하며, 3D로 變形되어 움직이며 立體感이 생겨난다. 甚至於 效果音까지 넣어 文字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캘리그라피는 디자인 市場으로 外延을 넓히고, 放送·映畫·新聞·CI·BI·패키지·出版物·廣告·LED·패션·머그컵·핸드폰케이스·文具類 等 다양한 文化 콘텐츠를 生産해내고 있다.” 現在 캘리그라피는 資格證 試驗을 통해 民間資格證(韓國職業能力開發院 登錄)을 發給하는 機關이 全國에 300곳이 넘는다. 金 作家는 現在 韓國캘리그라피디자인協會 會長과 한국미술협회 캘리그라피 分科 理事를 맡고 있다. 서울 仁寺洞 無憂樹 아카데미와 天安 나사렛대學校 平生敎育院과 等에서 後進 養成에도 힘을 쏟고 있다.그는 커다란 붓과 먹물을 담은 洋동이를 들고 10m 以上의 천에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도 즐겨 한다. 國樂팀의 演奏音樂을 背景으로 3~5分 以內의 時間 안에 미리 밑그림도 없는 千에 글씨와 그림을 척척 써나간다. “글씨 퍼포먼스는 藝術的인 感覺도 必要하지만 무엇보다도 體力이 重要합니다. 쪼그려 앉은 姿勢로 붓과 洋동이를 들고 온 몸으로 글씨를 써 나간다는 事實은, 精神的으로도 肉體的으로도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내야 하는 作業입니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7-20 14:59
“다이빙과 올림픽…韓國손님 맞을 準備됐다” “濠洲 퀸즐랜드價 2年餘의 코로나 팬데믹 期間 동안 많은 準備 끝에 外國 觀光客에게 國境을 다시 開放합니다. 韓國 觀光客들이 다시 찾아올 것을 期待하고 있습니다.” 18日 午後 서울 中區 소공동 웨스틴朝鮮 서울호텔에서 濠洲 퀸즐랜드주 觀光廳 任員들이 來韓해 ‘CEO 투어리즘 미션 코리아’라는 타이틀 아래 미디어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行事를 위해서 리앤 코딩턴 퀸즐랜드주 觀光廳長, 퍼트리샤 誤캘러헌 골드코스트 觀光廳長, 줄리엣 앨러배스터 브리즈번 觀光廳 最高運營責任者를 비롯한 地域 觀光廳 關係者들이 大擧 訪韓했다. 퀸즐랜드주 南東部에 자리限 最大 休養地 골드코스트를 비롯해 2032年 여름올림픽 開催地로 選定된 브리즈번은 새롭게 丹粧한 旅行地를 紹介했다. 코딩턴 퀸즐랜드주 觀光廳長은 歡迎辭를 통해 “퀸즐랜드 州政府는 2022年부터 2025年까지 空港의 全 世界 國際線 路線 및 乘客 擴大를 위한 航空 基金으로 1億 달러를 支援할 豫算을 確保했다”며 航空便 擴充 準備를 마쳤다고 밝혔다. 퀸즐랜드는 올해 ‘Good to Go’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2023年 골드코스트 觀光交易展 開催, 100個 以上의 多彩로운 旅行 商品을 準備 中이다. 코딩턴 觀光廳長은 “이番 第150回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優勝한 캐머런 스미스는 바로 濠洲 퀸즐랜드주 出身”이라며 “퀸즐랜드를 代表하는 골프 테마商品과 워킹홀리데이 商品 開發에 力點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2032年 여름올림픽 開催地로 選定된 브리즈번은 來年 下半期(7~12月)에 브리즈번 中心商業地區 內에 36億 달러 規模로 짓는 世界的인 綜合리조트人 퀸즈 워프를 오픈한다. 다양한 室內外 空間, 레스트랑, 카페, 바, 호텔,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空間이 자리해 있다. 브리즈번 空港은 2020年 7月 새로운 滑走路를 建設했다. 또한 都市와 野生이 共存하는 론波인 保護區域, 蕩竭루마, 스피릿 오브 더 레드 샌드 等에서는 다양한 體驗 活動이 可能하다. 앨러배스터 브리즈번 觀光廳 最高運營責任者는 “브리즈번은 藝術과 美食로드부터 自然環境, 文化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共存하는 都市”라고 紹介했다. 골드코스트는 다이빙 名所인 원더리프가 있는 곳. 올해 末까지 골드코스트 空港 3段階 터미널을 擴張한다. 美術館과 公演場으로 構成된 大規模 文化테마 프로젝트인 ‘호타(HOTA)’와 媤월드, 드림월드 테마파크가 魅力的이다. 誤캘러헌 골드코스트 觀光廳長은 “아름다운 海邊을 잇는 트램과 페리를 利用해 自然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紹介했다. 코딩턴 觀光廳長은 “퀸즐랜드주 觀光廳이 志向하는 글로벌 캠페인인 ‘travel for good’ 메시지는 持續可能하고, 삶에 힐링과 肯定的인 에너지를 주는 旅行을 追求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7-20 03:00
千萬 송이 蓮꽃나라… 3年만에 찾아온 한여름 밤의 꿈 올해로 20周年을 맞은 不여서동蓮꽃祝祭가 3年 만에 새롭게 돌아온다. ‘스무 살 蓮꽃 花園의 初代―빛나는 이야기를 담다’라는 主題 아래 14∼17日 扶餘 薯童公園(궁남지)에서 치러진다. 扶餘薯童蓮꽃祝祭는 궁남지의 아름다운 自然景觀 속에서 코로나19로 지친 市民들에게 治癒와 休息을 提供할 豫定이다. 올해 처음으로 祝祭場에서 백제歷史 너울옛길 觀光據點施設을 거쳐 부여읍 市街地를 循環하는 無料 셔틀버스와 100원 택시도 運行한다. 또 ‘궁남지 野(夜)韓 밤’을 通한 레이저와 照明, 바닥 매핑 및 홀로그램 等 트렌디한 景觀과 感性 포토존을 造成해 雰圍氣 있는 風景을 演出한다. 14日 開幕式에서는 祝賀 公演, 海外 蓮꽃나라 文化藝術 콘서트를 進行해 本格 祝祭의 始作을 알린다. 蓮꽃을 菊花로 하는 海外 8個國 大使와 各國 傳統公演團 招請 公演으로 世界人과 함께 즐기는 글로벌 祝祭로의 跳躍을 알린다. 메인 프로그램으로는 △물 위에서 펼쳐지는 大型 뮤지컬 ‘궁남지 판타지’ △드론 300代의 불꽃과 照明으로 여름밤을 다채롭게 물들일 ‘Lotus 별밤 드론 아트쇼’ △‘薯童 선화 달빛퍼레이드’ 等이 있다. 蓮꽃이 핀 蓮못을 카누를 타고 探險하는 異色 體驗을 비롯해 ‘스무 살 靑春 페스티벌’ ‘사랑토크콘서트’ ‘궁남지 여름밤의 音樂會’ 等도 함께 펼쳐진다. 受賞에서 펼쳐지는 異色的이고 力動的인 公演을 經驗하고 싶다면 祝祭 期間 每日 30分 동안 運營되는 ‘궁남지 판타지’를 注目해 보자. 궁남지價 지닌 場所性과 歷史性을 活用하고 空間的, 時間的 판타지 演出을 위해 出演陣 발목까지 물에 잠기는 受賞 舞臺를 設置한다. 俳優들이 마치 물 위에서 演技하는 듯한 異色的인 느낌을 준다. 또 砲龍政 프로젝션 매핑, 둘레길 버드나무 照明과 다양한 野外舞臺 特殊效果로 더욱 立體的인 舞臺를 선보인다. ‘Lotus 별밤 드론 아트쇼’는 드론 300代가 形形色色의 불꽃과 照明, 希望의 메시지를 펼친다. 華麗한 照明과 함께 西洞 선화 캐릭터의 익살스러운 모습과 사랑과 應援을 담은 메시지로 여름밤을 다채롭게 물들일 豫定이다. 15∼16日에는 天上에서 내려와 蓮꽃花園에 逍風 온 西洞 선화를 콘셉트로 한 퍼레이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신나는 音樂에 맞춰 5∼7個 動線 스폿에 멈춰 팀別 테마에 맞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行使 期間 中 낮과 밤, 自然生態를 考慮한 景觀施設物도 設置된다. 薯童公園을 感性, 사랑, 追憶 等 6가지 테마로 나눠 루미나리에 및 큐브照明 設置와 音響을 椄木한 홀로그램 演出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힐링 空間으로 提供할 豫定이다. 아울러 砲龍政 周邊과 行事場 곳곳에 蓮池 포토존을 造成한다. 體驗 行事도 豐盛하게 펼쳐진다. 가장 人氣 있는 體驗은 蓮池 속 蓮꽃을 헤치며 즐기는 ‘臙脂 카누 探險’이다. 薯童 船貨의 사랑, 연 素材를 活用한 異色 體驗 19種과 蓮잎車 試飮, 年낭 만들기 體驗 等도 準備했다. 不여서동蓮꽃祝祭 關係者는 “3年 만에 正常的으로 치러지는 이番 祝祭는 코로나19로 沈滯한 地域經濟 活性化를 꾀하는 ‘함께하는, 즐기는 祝祭’로 치러진다”며 “蓮꽃이 가장 아름다운 궁남지, 千萬 송이 蓮꽃 香氣가 흘러넘치는 自然親和的 空間에서 家族과 親舊, 戀人들이 좋은 追憶을 萬들길 勸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7-13 03:00
외나무 다리 건너면 隱者의 땅…悠悠自適 걸어볼까[전승훈의 아트로드] 慶北 영주는 小白山 자락에 둘러싸인 隱者(隱者)의 땅이다. 깊은 山과 맑은 물소리, 글을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선비의 땅이다. 朝鮮 最初의 書院이자 賜額書院人 紹修書院에서는 只今도 소나무 숲 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휘돌아가는 江물에 둘러싸인 무섬마을은 17世紀 丙子胡亂 後 出仕를 斷念한 선비들이 忠節과 隱者의 精神으로 들어가 살기 始作했던 마을이다. 그런가하면 6.25以後에는 避難民들이 모여들었다. 北韓에서 내려온 避難民들은 風紀人蔘과 風紀人絹을 地域의 名物로 만들었다. 마을 共同體가 살아 있는 文化都市人 榮州에서 品格있는 선비文化를 體驗하는 旅行을 떠났다.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외나무 다리이른 새벽,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나니 새소리에 잠을 깼다. 江가로 나갔다. 새벽空氣에 江물 위에는 옅은 안개가 끼었다. 金빛 모래가 펼쳐진 들판에는 느릿한 江물이 曲線을 그린다. ‘엄마야 누나야 江邊 살자’는 노래가 저절로 떠올려지는 風景이다. 江물이 山에 막혀 물도리동을 만들어낸 영주의 무섬마을. 무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란 뜻이다. 行政地名은 수도리(水島里)다. 앞은 물로 가로막혀 있고 뒤는 山으로 둘러싸여 섬처럼 孤立된 마을이다. 風水地理上 ‘물위에 핀 蓮꽃(蓮花浮水形)’ 또는 ‘梅花 떨어진 자리(梅花落地形)’로 풀이되는 길지다. 17世紀에 拍手가 丙子胡亂 後 出仕를 斷念하고 이 곳에 들어와 萬죽材를 짓고 살면서 생긴 集姓村이다. 이 마을에 들어가려면 외나무 다리를 건너야 했다. 只今은 널찍한 콘크리트 다리(水道橋)가 놓였지만, 아직도 S字 模樣으로 생긴 외나무 다리(藥 150m)는 그대로 남아 있다. 半圓形으로 자른 나무를 대충 다듬은 뒤 얕은 물길 위에 세운 것이다. 幅이 20~30cm에 不過한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은 짜릿한 스릴이 넘친다. 외나무 다리에서 怨讐를 만나지 말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끔 가다가 삐걱대고, 덜커덩 거리기도 한다. 詩人 位抄하는 ‘무섬幸여나 물여울에 마음을 뺏기면 물멀미가 나고, 均衡을 잃을 수도 있다. 물은 깊지 않지만 옷과 所持品이 젖어 狼狽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걷는 길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렇게 마음이 굽은 듯 외나무 다리를 건너거들랑 물너울에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위초하의 時 ‘무섬 외나무 다리에 서면’) 예전에는 마주오는 사람과 만나면 한 사람이 앉고, 그 위를 넘어갔다고 한다. 只今은 中間中間에 ‘잠깐 비켜다리’를 만들어놔 마주오는 사람과 人事하고 對話도 나눌 수 있다.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는 드라마, 映畫, 廣告 撮影地價 되기도 하고, 韓國의 아름다운 길 100線에 選定돼 名所가 됐다. 다리를 건너서 들어간 무섬마을은 기와집과 草家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이 정겹다. 돌로 쌓은 담牆에는 접시꽃이 한창 피었다. 草家집에는 ‘까치구멍집’이라는 說明이 써 있다. 지붕의 龍마루 兩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까치구멍집이다. 까치구멍은 暖房이나 調理 時 發生하는 煙氣를 外部로 輩出하고 낮에는 빛을 받아들여 집 안을 밝혀주며 通風과 濕度를 調節하는 숨구멍 役割을 한다고 한다. 무섬마을에서는 까치구멍집, 기와집을 골라서 民泊을 할 수도 있다. ●선비文化 體驗할 수 있는 선비世上 무섬마을에서 나와 발걸음을 紹修書院으로 옮긴다. 1542年 풍기郡守 周世鵬이 最初의 性理學者인 晦軒 安享(1243~1306) 先生을 기리고자 백운동書院을 建立한 것이 書院의 始初다. 紹修書院 入口에 들어서니 鬱蒼한 소나무가 반긴다. 書院 앞 죽계천에는 退溪 李滉이 터를 닦고 ‘醉한대(翠寒臺)’란 이름을 붙인 亭子가 그림같이 놓여 있다. 선비들이 푸른 山의 기운과 시원한 물빛에 醉하여 詩를 짓고 風流를 즐기던 곳이다. 죽계천에는 周世鵬이 쓴 ‘卿(敬)’ 字가 새겨진 바위도 있는데, 그 앞에서 검은 가마우지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書院 안으로 들어가니 장맛비 떨어지는 처마 너머로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江學堂 안에는 머리에 宕巾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 두 名이 있었다. 황영회(72) 氏는 “紹修書院을 찾는 訪問客에게 선비精神을 보여주기 위해 地域住民들이 組를 짜서 江學堂에서 글을 읽는다”고 말했다. 紹修書院 隣近에는 榮州의 선비文化를 現代的으로 되살린 테마파크도 들어섰다. 9月3日 門을 여는 K-文化 테마파크 ‘선비世上’이다. 韓屋, 韓服, 한글, 韓國音樂, 韓紙, 韓食村 等 6個 테마別 展示館을 造成했다. 지난달 24日 선비世上의 亭子에서 열린 音樂과 冥想이 함께한 ‘웰니스 숨숨公演’은 비오는 날씨에 더욱 어울리는 힐링體驗이었다. 이 곳에서는 선비의 理想鄕을 主題로 한 沒入型 미디어아트와 韓紙뜨기 및 多道體驗, 한글놀이터 等 多樣한 타깃層을 겨냥한 콘텐츠와 體驗프로그램이 運營된다. 壯元及第 行列을 18m 規模로 具現한 ‘오토마타’ 人形劇이 공연되기도 한다. 敷地 面積만 96萬974㎡ 에 達한다. 영주시는 事業費 1700億 원을 投入, 9年 만에 선비世上을 完工했다. 公式 開館을 앞두고 22日부터 8月 15日까지 每週 土, 日曜日과 光復節에 一般人을 對象으로 無料 臨時開放을 進行한다. 이 期間 中에는 선비世上 퍼레이드 公演과 ‘힙(hip)선비’ 크루의 風流한마당, 뮤직콘서트, 저잣거리酒페스티발夜, 한스타日 플理마켓 等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릴 豫定이다. ●마을共同體가 살아 있는 文化都市 지난달 24日 榮州市內 경북전문대 안에 있는 148아트스퀘어에서는 이여운 作家가 캔버스 천에 水墨畫로 그린 勞動黨舍 그림 앞에서 민경인 재즈피아니스트의 公演이 펼쳐졌다. 100餘 名의 觀客들은 公演이 끝난 後에 열띤 拍手를 보내며 민경인, 이여운, 권무형 作家와 함께 對話하는 時間을 가졌다. 이곳은 한때 煙草製造廠이었던 담배工場 建物을 리모델링해 地域民을 위한 複合文化藝術 創作空間으로 再탄생시킨 곳이다. 가로 100m, 세로 48m를 뜻하는 148아트스퀘어는 公演場(117席)을 비롯해 展示場, 演習室, 북카페, 創作作業室 等을 갖추고 있다. 옛 榮州驛 周邊의 골목길과 中央市場, 365市場, 厚生市場 近處에는 榮州 近代歷史 文化의 거리가 造成돼 있다. 그 中에서 榮州1棟 頭緖길 一帶 ‘館四骨’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곳은 日帝强占期에 영주역에서 勤務하던 鐵道職員들이 居住하던 官司가 모여 있는 마을. 골목길 곳곳에는 담牆 가득 ‘銀河鐵道 999’가 그려져 있는가 하면, 아예 커다란 汽車 造形物이 設置된 壁도 있다. 굽이굽이 마을 길을 오르며 땀이 맺힐 즈음 숨이 확 트이는 展望臺 ‘부용대’가 나타난다. 부용대에서 바라다보이는 小白山 稜線도 아름답지만, 옹기종기 모여 앉은 市街地가 한눈에 보여 都市 夜景을 보기에도 安城맞춤이다. 沙果로 有名한 영주의 시골길에는 草綠色 沙果가 달린 沙果나무를 곳곳에서 만난다. 一部는 한쪽 面이 붉그스레 익어가기 始作했다. 영주의 特産物 中에는 ‘不석태(콩)’도 有名하다. 우리나라 最高의 木造建物인 無量壽殿이 있는 浮石寺 隣近은 ‘콩 마을’로 불린다. 콩世界 科學館에 가면 不석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고, 榮州 부석면에 있는 콩世界 科學館에서는 不석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 隣近 洞네는 ‘콩 마을’로 불린다. ‘不석태 콩타령’을 부르는 ‘콩 할매 合唱團’은 榮州 人蔘祝祭, 謝過祝祭 舞臺에 오르면서 一躍 洞네 스타로 急浮上했다. ‘콩 마을‘은 2020年 慶北道 幸福農村만들기 콘테스트에서 文化·福祉 分野에서 大賞을 受賞했다. 隣近에 廢校된 斧石北部初等學校를 리모델링한 榮州 소백藝術村에는 마을住民들로 構成된 모듬북 打樂팀 ‘落&무‘가 練習과 公演을 한다. 소백藝術村은 ‘劇團 미추’의 마당놀이 資料 保管所와 備品室과 演習室, 衣裳室, 音樂室 等을 갖춘 創作을 위한 空間으로도 活用되고 있다. 小白山 玉女峯 자락에 있는 國立山林治癒願은 숲 속에서 힐링을 體驗하는 施設이다. 山林治癒指導士 80餘 名이 常住해 스트레스 解消와 心身 安定에 卓越한 山林治癒 프로그램을 해준다. 無障礙 데크로드를 따라 숲속 길을 걷고, 소나무 밑에서 해먹에 누워 冥想도 할 수 있다. 數値油센터에선 14가지 種類의 다양한 水壓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亂世를 避해 오는 곳 6.25 戰爭 戰後 영주 풍기읍에는 北韓 黃海道와 平安道에서 내려온 避難民들이 몰려들었다. 民草들이 亂世에 몸을 保全할 最適地는 ‘嶠南洋白(嶠南兩白ㆍ嶺南의 소백과 太白 사이)’이라는 ’鄭鑑錄‘에 豫言된 말을 믿고 風紀로 내려온 避難民들이다. 30~40年 前만해도 風紀의 60代 以上 人口의 約 70%가 北에서 내려온 이들이었다고 한다. 이들 中엔 명주의 本고장인 平安道 寧邊 德川 等地서 南下한 織物工場 經營者와 技術者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무에서 실을 뽑은 人絹絲를 原料로 한 人絹織物을 짜기 始作했다. 以後 風紀에는 人絹을 짜는 집이 한때 2000餘 號를 넘었고, 邑內의 골목에선 ‘철커덕 철커덕’ 織造機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人絹은 시원하고 靜電氣가 생기지 않아 ‘에어컨 이불’ ‘冷藏庫 纖維’로 불리며 요즘 같은 끈적끈적한 여름철에 人氣 滿點이다. 風紀人蔘이 名品 브랜드로 자리잡는 데에도 個性과 黃海道 等地에서의 보다 앞선 栽培技術을 익힌 避難民들의 影響이 크다. 풍기읍內 平壤冷麵집人 ‘西部冷麵’도 避難民들 德分에 생겨난 곳이다. 只今은 全國의 冷麵 마니아들이 꼭 들러야 하는 巡禮地로 꼽힌다. 領主에는 묵집度 많다. 山間 地方이 많은 영주는 예부터 메밀 栽培가 흔해 祭祀나 잔치를 지낼 때 메밀묵이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묵집에는 김치찌개와 비슷한 ‘太平初’라는 多少 낯선 이름이지만 맛이 氣가막힌 메뉴가 있다. 잔칫날 먹고 남은 메밀묵과 돼지고기, 김치를 넣어 끓여 먹은 찌개라고 한다. 먹고 살기 힘들던 時節, 어머니께서 묵을 쑤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던 영주의 鄕土飮食이다. 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7-09 14:00
옛 記憶을 가로질러 건너가면… 追憶 속의 네가 기다리고 있을까 [전승훈의 아트로드] 《慶北 영주는 小白山 자락에 둘러싸인 隱者(隱者)의 땅이다. 山 깊은 골에 맑은 물소리와 글을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선비의 땅이다. 朝鮮 最初의 書院이자 賜額書院人 紹修書院에서는 只今도 소나무 숲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휘돌아 가는 江물에 둘러싸인 무섬마을은 17世紀 丙子胡亂 後 出仕를 斷念한 선비들이 忠節과 隱者의 精神으로 들어가 살기 始作해 생겨난 마을이다. 그런가 하면 6·25戰爭 以後에는 避亂民들이 모여들었다. 北韓에서 내려온 失鄕民들은 風紀人蔘과 風紀人絹을 地域의 名物로 만들었다. 마을 共同體가 살아 있는 文化都市人 榮州에서 品格 있는 선비文化를 體驗하는 旅行을 떠나 보자.》 ○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외나무다리이른 새벽,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나니 새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空氣에 江물 위에는 옅은 안개가 끼었다. 金빛 모래가 펼쳐진 들판에는 느릿한 江물이 曲線을 그린다. ‘엄마야 누나야 江邊 살자’는 노래가 저절로 떠올려지는 風景이다. 江물이 山에 막혀 물도리동을 만들어낸 영주의 무섬마을. 무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란 뜻이다. 行政地名은 수도리(水島里)다. 앞은 물로 가로막혀 있고 뒤는 山으로 둘러싸여 섬처럼 孤立된 마을이다. 風水地理上 ‘물 위에 핀 蓮꽃(蓮花浮水)’ 또는 ‘梅花 떨어진 자리(梅花落地)’로 풀이되는 길지다. 17世紀에 拍手가 丙子胡亂 後 出仕를 斷念하고 이곳에 들어와 萬죽材를 짓고 살면서 생긴 集姓村이다. 오랜 歲月 동안 이 마을에 들어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다. 널찍한 콘크리트 다리(水道橋)가 놓인 後에도 S字 模樣으로 생긴 외나무다리(藥 150m)는 그대로 남아 있다. 半圓形으로 자른 나무를 대충 다듬은 뒤 얕은 물길 위에 세운 것이다. 幅이 20∼30cm에 不過한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짜릿한 스릴이 넘친다. 가끔 가다가 삐걱대고, 덜커덩거리는 외나무다리에서 員數를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幸여나 물여울에 마음을 뺏겨도 안 된다. 물멀미가 나 均衡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마주 오는 사람과 만나면 한 사람이 앉고, 그 위를 타고 넘어갔다고 한다. 只今은 中間中間에 ‘잠깐 비켜다리’를 만들어 놔 마주 오는 사람과 人事하고 對話도 나눌 수 있다.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는 드라마, 映畫, 廣告 撮影地價 되기도 하고, 韓國의 아름다운 길 100線에 選定돼 名所가 됐다. 다리를 건너서 들어간 무섬마을은 기와집과 草家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이 정겹다. 돌로 쌓은 담牆에는 접시꽃이 한창이다. 草家집에는 ‘까치구멍집’이라는 說明이 쓰여 있다. 지붕의 龍마루 兩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 米飮(ㅁ)字形 집이다. 까치구멍은 暖房이나 調理 時 發生하는 煙氣를 輩出하고, 낮에는 빛을 받아들이고 通風과 濕度를 調節하는 숨구멍 役割을 한다고 한다. 무섬마을에서 까치구멍집, 기와집 中에 골라서 民泊을 해보는 것도 특별한 經驗이다.○선비문화 體驗할 수 있는 선비世上무섬마을에서 나와 발걸음을 紹修書院으로 옮긴다. 1542年 풍기郡守 周世鵬이 最初의 性理學者인 晦軒 安享 先生(1243∼1306)을 기리고자 세운 書院이다. 紹修書院 入口에 들어서니 鬱蒼한 소나무가 반긴다. 書院 앞 죽계천에는 退溪 李滉이 터를 닦고 ‘醉한대(翠寒臺)’라 이름 붙인 亭子가 그림처럼 놓여 있다. 죽계천에는 周世鵬이 쓴 ‘卿(敬)’ 字가 새겨진 바위도 있는데, 그 앞에서 검은 가마우지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書院 안으로 들어가니 장맛비 떨어지는 처마 너머로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江學堂 안에는 머리에 宕巾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 두 名이 있었다. 황영회 氏(72)는 “紹修書院을 찾는 訪問客에게 선비精神을 보여주기 위해 地域 住民들이 組를 짜서 江學堂에서 글을 읽는다”고 말했다. 紹修書院 隣近에는 榮州의 선비文化를 現代的으로 되살린 테마파크도 造成됐다. 9月 3日 門을 여는 K文化 테마파크 ‘선비世上’이다. 韓屋, 韓服, 한글, 韓國 音樂, 韓紙, 韓食村 等 6個 테마別 展示館을 갖췄다. 선비의 理想鄕을 主題로 한 沒入型 미디어아트와 韓紙 뜨기 및 茶道 體驗, 한글놀이터 等 다양한 體驗 프로그램이 運營된다. 榮州도령의 壯元及第 行列을 18m 規模로 具現한 ‘오토마타’ 人形劇이 볼만하다. 敷地 面積만 96萬974m². 영주시는 事業費 1700億 원을 投入해 9年 만에 선비世上을 完工했다. 公式 開館을 앞두고 22日부터 8月 15日까지 每週 土, 日曜日과 光復節에 一般人을 對象으로 無料 臨時 開放을 한다. 선비世上 퍼레이드 公演과 ‘힙(hip)선비’ 크루의 風流한마당, 뮤직콘서트, 저잣거리酒페스티벌夜, 한스타日 플理마켓 等 다채로운 이벤트도 열릴 豫定이다. ○마을共同體가 살아 있는 文化都市지난달 24日 榮州市內 경북전문대 안에 있는 148아트스퀘어에서는 이여운 作家가 水墨畫로 그린 鐵圓 勞動黨舍 그림 앞에서 민경인 재즈피아니스트의 公演이 펼쳐졌다. 100餘 名의 觀客들은 公演이 끝난 後에 민경인, 이여운, 권무형 作家와 함께 對話하는 時間을 가졌다. 이곳은 한때 煙草製造廠이었던 담배工場 建物을 리모델링해 地域 住民을 위한 複合文化藝術 創作 空間으로 再탄생시킨 곳. 公演場(117席)을 비롯해 展示場, 演習室, 북카페, 創作作業室을 갖추고 있다. 옛 榮州驛 周邊의 골목길과 中央市場, 365市場, 厚生市場 近處에는 榮州 近代 歷史 文化의 거리가 造成돼 있다. 그中에서 榮州1棟 頭緖길 一帶 ‘館四骨’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곳은 日帝强占期에 영주역에서 勤務하던 鐵道 職員들이 居住하던 官司가 모여 있는 마을. 골목길 곳곳에는 담牆 가득 ‘銀河鐵道 999’가 그려져 있는가 하면, 아예 커다란 汽車 造形物이 設置된 壁도 있다. 마을 꼭대기에 있는 展望臺 부용대에서는 小白山 稜線의 아름다운 風景과 榮州 市內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우리나라 最高의 木造建物인 無量壽殿이 있는 浮石寺 隣近은 ‘콩 마을’로 불린다. 영주의 特産物인 ‘不석태’라는 콩이 나기 때문이다. 콩世界 科學館에 가면 不석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고, 콩마을에는 不석태 콩타령을 부르는 ‘콩할매 合唱團’李 有名하다. 콩할매 合唱團과 地域 住民들로 構成된 모둠北 打樂팀 ‘落&무’는 廢校를 리모델링한 榮州 소백예술촌에서 練習과 公演을 한다. 소백藝術村은 손진책 演出家가 이끄는 ‘劇團 미추’의 마당놀이 資料와 備品이 保管돼 있고, 演習室과 衣裳室 等을 갖추고 있다. ○亂世를 避해 오는 곳6·25戰爭 直後 영주 풍기읍에는 北韓에서 내려온 避亂民들이 몰려들었다. 民草들이 亂世에 몸을 保全할 最適地는 ‘嶠南洋白(嶠南兩白·嶺南의 소백과 太白 사이)’이라는 ‘鄭鑑錄’에 豫言된 말을 믿고 온 避亂民들이다. 이들 中엔 명주의 本고장인 平安道 寧邊 德川 等地에서 南下한 織物工場 經營者와 技術者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무에서 실을 뽑은 人絹絲를 原料로 한 人絹織物을 짜기 始作했다. 한때 風紀에는 人絹을 짜는 집이 2000餘 家口가 넘었다고 한다. 風紀人絹은 시원하고 靜電氣가 생기지 않아 ‘에어컨 이불’ ‘冷藏庫 纖維’로 불리며 요즘 같은 끈적끈적한 여름철에 人氣 滿點이다. 風紀人蔘이 名品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에도 個性과 黃海道에서 앞선 栽培 技術을 익힌 避亂民들의 影響이 크다. 全國 冷麵 마니아들의 巡禮地로 꼽히는 풍기읍內 正統 平壤冷麵집 ‘西部冷麵’도 避亂民들 德分에 생겨난 곳이다. 領主에는 묵집度 많다. 그런데 묵집에서는 김치찌개와 비슷한 ‘太平初’라는 獨特한 묵 메뉴가 人氣다. 잔칫날 먹고 남은 메밀묵과 돼지고기, 김치를 넣어 끓여 먹은 찌개에서 由來한 飮食이다. 먹고살기 힘들던 時節, 어머니께서 묵을 쑤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던 영주의 鄕土飮食이다.글·사진 榮州=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7-09 03:00
디지털 人材, 女性리더 育成… 人事도 빅데이터 基盤으로 [흔히 신한금융그룹을 가리켜 ‘平凡한 사람이 만든 非凡한 組織’이라고 한다. 平凡한 사람들로 構成된 組織이 創業 後 짧은 時間 내 大韓民國을 代表하는 리딩 金融그룹으로 成長하기까지 한결같이 人材 育成에 眞心인 會社였다. 신한금융그룹의 母胎(母胎)가 되는 신한은행은 創業 初期부터 職員들에게 工夫를 많이 시키는 會社, 金融圈 人材士官學校로 名聲이 높았다. 또한 新韓銀行이 最初로 購入한 不動産이 ‘新韓硏修院’일 程度로 職員들의 學習과 成長에 投資를 아끼지 않았다.이런 傳統은 只今도 이어져 신한금융그룹의 中期 戰略 ‘FRESH 2020s’의 根幹이 되는 課題 亦是 ‘Human Talent¤未來를 先導하는 융·複合形 人材 育成’이다. 女性리더 育成으로 리더십의 多樣性 追求신한금융그룹은 그룹 內 리더십 多樣性 確保 戰略으로 2018年부터 쉬語로즈(SHeroes) 프로그램을 運營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金融圈 最初의 女性 리더 育成 프로그램으로 ‘宸翰(SH)의 英雄들(Heroes)’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그룹 코칭과 多樣한 特講으로 構成돼 있다. 只今까지 200餘 名의 女性 部署長들이 修了했고 이들 中 最初 女性 CEO를 비롯한 任員, 本部長 等 最上位 리더를 꾸준히 輩出했다.신한에서 쉬어로즈는 人材 多樣性을 象徵하는 核心 프로그램으로 그룹 CEO인 조용병 會長이 모든 것을 챙긴다. 昨年 코로나 時期에도 會長이 모든 쉬語로즈 리더들을 對象으로 非對面 티타임 形態의 그룹 코칭을 實施했다. 特히 올해는 女性 리더가 그룹의 中心, 未來 持續 成長의 核心이 된다는 意味로 C.O.R.E 育成 原則을 樹立했다. C.O.R.E는 Confidence(自信感과 自負心), Opportunity (成長 機會 擴大), Reinforce(同伴 成長 및 關係 强化), Embrace(包容的 文化 構築)를 뜻한다. 그동안 該當 프로그램을 修了한 쉬語로즈 펠로우즈價 內部 코칭 講師로 參與해 女性 리더들이 現業에서 實質的인 리더십을 發揮할 수 있도록 體系的으로 코칭할 方針이다.그룹 내 人材 交流 통한 經驗 擴大이뿐만 아니라 新韓金融그룹 16個 子會社 間 人力 交流 프로그램을 運營함으로써 職員들에게 職務 經驗 擴張 機會를 주고 있다. 例를 들어 新韓銀行의 리스크 管理 擔當 職員이 리스크 管理 業務를 擔當하는 經驗을 提供함으로써 金融業 全般을 理解할 수 있는 機會를 준다. 이러한 人力 交流는 每年 80¤90餘 名 規模로 實施되고 있다.미래 成長動力 確保 위한 果敢한 人材 投資人材育成 戰略은 時代 變化에 맞게 變化하고 있다. 過去에는 金融專門家 育成에 集中했다면 只今은 그룹의 未來 成長動力 確保를 위해 金融 專門性과 디지털 力量을 함께 保有한 人材를 育成하는 데 注力하고 있다. 代表的인 디지털 專門家 育成 프로그램으로는 고려대와 함께 運營 中인 ‘디지털金融工學 碩士課程’을 꼽을 수 있다. 每年 30餘 名의 그룹 職員이 2年 碩士課程에 入學해왔으며 現在까지 모두 127名이 修了했다. 이들은 그룹 內 디지털 分野 核心 人力으로 活動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宸翰金融은 그룹 次元의 디지털 力量 强化를 위해 旣存의 디지털 硏修 프로그램을 職級別 맞춤型 프로그램으로 改編해 下半期 中 施行할 豫定이다. 經營陣을 對象으로 한 新韓DBL, 次世代 리더級을 對象으로 한 新韓DBS, 實務自給 對象 新韓DU 過程이 8月부터 運營된다. 透明하고 公正한 HR 運營 體系 構築最近 話頭가 되고 있는 공정하고 透明한 HR 運營 體系 構築을 위해 宸翰金融은 昨年부터 다양한 試圖를 하고 있다. 特히 2021年 7月 新韓文化 RE: Boot 宣布 以後 그룹 次元에서 가장 積極的으로 變化를 推進 中인 領域 中 하나다. 그間 HR은 少數 人事 擔當者를 中心으로 意思 決定이 이뤄져 閉鎖的이라는 指摘이 있었다. 이를 改善하기 위해 新韓의 主要 子會社들은 客觀的인 데이터 基盤 人事 運營 體系 構築에 많은 努力을 기울이고 있다.그룹의 代表 子會社인 신한은행은 今年 初 HR 빅데이터 및 AI 알고리즘 基盤의 새로운 人事 電算 ‘S-HR’을 마련했으며, 成果, 力量 評價, 延壽 履歷 等 50餘 個 要素를 活用한 AI 昇進 審査와 移動 配置 알고리즘을 實際 人事에 活用해 公正性을 强化하고 人事의 豫測 可能性을 높였다는 評價를 받고 있다. 또한 신한은행, 신한카드, 新韓金融投資는 사내公募(Open Job Posting) 프로세스 運營 擴大를 통해 職員主導型 經歷管理 體系를 强化했다. 또한 職員의 力量開發 動機附與 및 人事 結果에 對한 受容性을 높이기 위해 非公開로 管理하던 HR 데이터의 職員 共有 範圍를 漸進的으로 擴大하고 있다.인사평가 또한 큰 變化가 進行 中이다. 傳統的으로 金融會社의 人事 評價는 過程보다는 成果 中心의 定量評價 方式으로 運營됐다. 하지만 職員에 對한 常時 코칭 및 目標 達成을 위한 動機 附與를 强化하기 위해 2021年부터 OKR(目標 및 核心 結果 指標)을 活用한 職員 成果管理 프로세스를 本格 運營 中이다. 分期 單位 OKR 設定과 每月 1回 以上 部署長의 常時 피드백을 정착시킴으로써 旣存의 結果를 測定하고 評價等級을 附與하는 手段으로서의 人事評價가 아니라 職員을 成長시키는 常時 코칭 基盤 育成型 人事評價 體系로 업그레이드했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2022-07-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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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化 一般
    7%
  • 經濟一般
    7%
  • 健康
    3%
  • 國際交流
    3%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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