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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의 이탈리아 칸초네 떼唱에 도밍고도 놀랐어요”|신동아

2022年 8 月號

“아리스의 이탈리아 칸초네 떼唱에 도밍고도 놀랐어요”

[單獨인터뷰] ‘트바로티’ 김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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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記者

    kjy@donga.com

    入力 2022-08-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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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스는 내가 熱心히 살게 하는 原動力

    • 노래하기 前 家事 곱씹는 習慣

    • 人生을 즐기라는 大家의 한 수

    • 初等學校 때 偶像은 비

    • 金範洙 제친 파바로티

    • 工夫와 달리 實力 느는 게 재밌어

    •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 神이 許諾하는 날까지 노래하는 사람이길

    ‘트바로티’ 김호중. [생각엔터테인먼트]

    ‘트바로티’ 김호중. [생각엔터테인먼트]

    6月 9日 召集解除 當時보다 날씬해졌다. 낯빛은 환해졌다. 金髮에 가까워 보일 만큼 밝은 褐色이던 毛髮 色도 自然 褐色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表情과 말套에 餘裕가 생긴 것이 눈에 띄는 變化다. 6月 28日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신동아’와 單獨으로 만난 김호중은 이런 變化의 中心에 그의 팬덤 아리스가 있음을 否認하지 않았다.

    “軍白旗(軍服務로 인한 活動 空白期) 동안 아리스가 보여준 한결같은 愛情이 더 熱心히 活動할 準備를 하게 했어요. 召集解除 以後에도 뜨거운 應援과 支持로 제가 얼마나 福이 많은 놈인지 깨닫게 해줬고요. 아리스는 제가 熱心히 살게 하는 原動力이에요.”

    김호중은 2020年 3月 終映한 트로트 競演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으로 스타 班列에 올랐지만 그해 9月 10日 軍 代替服務를 始作해 팬들과 함께할 時間이 많지 않았다. 아쉬움이 큰 만큼 그를 向한 그리움이 커진 탓일까. 軍隊를 다녀오면 人氣가 떨어지는 게 一般的 樣相이지만 김호중의 境遇는 그 反對다. 첫 番째 正規앨범 ‘우리가(家)’와 클래식 미니앨범 ‘더 클래식 앨범(THE CLASSIC ALBUM)’은 合算 100萬 張 넘게 팔렸고 팬카페 會員 數는 入隊 前보다 約 5萬 名이 늘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轉役 後 그는 놀라운 觀衆 動員力을 보여주고 있다. 6月 11日 講院 鐵原郡에서 열린 ‘2022 平和콘서트 우리, 이곳에서’(이하 ‘平和콘서트’)와 6月 19日 서울 蠶室올림픽主競技場에서 開催된 ‘第1回 드림콘서트 트롯’이 좋은 例. 두 公演은 客席이 그의 팬덤 色깔인 보라色으로 塗褙되다시피 해 김호중 콘서트 같은 錯覺이 들 程度였다. 그가 6月 26日 게스트로 出演한 플라시도 도밍고 來韓 公演에도 아리스가 大擧 몰려 豫賣 開始 2分 만에 全席이 賣盡됐다. 김호중과의 인터뷰는 自然스럽게 公演 얘기로 始作됐다.

    김호중이 6월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신동아’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생각엔터테인먼트]

    김호중이 6月 28日 午前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신동아’와 單獨 인터뷰를 하고 있다. [생각엔터테인먼트]

    아리스의 應援은 感動 그 自體

    鐵原 平和콘서트에서 300m 길이로 겹겹이 늘어선 아리스와 마주했을 때 어떤 氣分이 들었나요.

    “가슴이 벅찼어요. 그런 環境이 그리웠던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저를 보러 오신 것이 놀라웠고 이제야 내가 元來 있어야 하는 자리에 돌아온 것을 鐵圓에서 처음 實感했어요. ‘苦生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너무 좋네요’ ‘사랑합니다’ 等 여러 목소리가 들렸는데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事實 1年 9個月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기가 쉽지 않아요. 決코 짧은 時間이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軍隊 가기 前 만들어놓은 노래를 다 들으시고, 그날 날씨가 엄청 더워 苦生을 많이 하셨을 텐데도 너무도 환하게 맞이해 주셨어요. 眞짜 아리스는 대단하구나. 나를 正말 좋아하고 사랑하는구나. 내가 더 熱心히 할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하는 原動力이 아리스구나. 내가 召集解除된 게 맞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리스가 人間 띠를 이뤄 歡呼하는 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서 저 스스로에게 繼續 되물었어요. ‘넌 正말 福받은 놈이구나. 네가 노래를 抛棄하지 않고 繼續하길 얼마나 잘했나’ 이렇게요.”



    드림콘서트 트롯도 觀客의 70% 以上이 아리스였어요. 엄청 큰 公演場이어서 感懷가 특별했을 것 같아요.

    “첫 曲인 ‘고맙소’를 부를 때는 緊張을 많이 하고 너무 오랜만에 서는 舞臺여서 客席을 볼 餘裕가 없었는데 두 番째 曲 ‘천상재膾’를 부를 때부터 아리스의 보라 물결이 보이더라고요. ‘천상재膾’를 워낙 많이 불러서 緊張感을 덜고, 舞臺 앞으로 나아가니 아리스가 하나하나 보였어요. 우리 應援棒에 나중엔 티 色깔까지 보이더라고요. 率直히 신이 나죠. 신날 수밖에 없죠. 그 德分에 너무나도 幸福했어요. ‘愛人이 되어줄게요’와 ‘태클을 걸지 마’는 그 興으로 노래했어요. 아리스가 그 자리를 빛내러 오셨기 때문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팬들이 ‘걱정하지 말고 노래해’ 하고 말하는 듯했어요. 그래서 저도 ‘알았어요. 걱정 안 할 게요. 熱心히 해볼 게요’ 하고 생각했어요.”

    김호중이 6월 11일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평화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김도균 객원기자]

    김호중이 6月 11日 江原道 鐵圓에서 열린 ‘平和콘서트’에서 熱唱하고 있다. [金度均 客員記者]

    도밍고 來韓 公演이 興行에 成功한 건 김호중의 아리스 德이라는 視角이 많아요.

    “도밍고 先生님은 世界的인 분이니까 많은 觀客이 몰린 거라 생각해요. 저는 게스트日 뿐이에요.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는 世界 3代 테너예요. 어릴 때부터 그들과 함께하는 舞臺를 꿈꿨고 이番에 그 꿈을 이뤘어요.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公演하기 힘들었지만 事情이 나아져 많은 분이 公演場을 찾았어요. 觀客이 많아 좋았고, 도밍고 先生님과 노래해서 正말 좋았어요.”

    앙코르曲 ‘勿忘草(Non ti scordar di me)’를 부를 때 아리스가 떼唱으로 따라 해 도밍고가 놀라워했다고 들었어요.

    “마지막에 앙코르曲으로 그 노래를 불렀어요. 도밍고 先生님과 저, 제니퍼 라울里 셋이 함께요. 제니퍼는 美國 메트로폴리탄에서 活動하는 有名한 聲樂家예요. 그분을 보면서도 배울 點이 많았어요. 아무튼 도밍고 先生님이 앙코르曲으로 提案한 ‘勿忘草’는 제 클래식 1輯 앨범에 收錄된 曲이기도 해요. 그 노래를 셋이 같이 했는데 中間에 오케스트라 看做가 나오는 部分에서 팬들이 ‘Non ti scordar di me~’ 하고 떼唱을 하기 始作했어요. 이게 事實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힐 더 월드’ 같은 大衆的인 팝송도 아니고 이탈리아 칸初네잖아요. 내가 듣는 게 맞는 건지 實感 나지 않을 程度였어요. 晩餐 할 때 도밍고 先生님이 ‘觀客이 떼唱을 해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Non ti scordar di me’를 떼唱으로 따라 하는 나라는 이탈리아 말고는 없을 줄 알았는데 韓國에서 그런 모습을 봐서 경이로웠던 거죠. 그날 觀客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先生님 짤(짧은 動映像)을 보면 韓國에 와서 무척 幸福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公演이 끝나고 뒤풀이를 새벽까지 했는데 그때도 지친 氣色을 보이지 않고 내내 즐거워하셨어요.”

    靑年의 소리

    게스트로 招待된 특별한 契機가 있나요.

    “公演 奇劃社로부터 얘길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主催 側에서 第 클래식 앨범을 들려드리고 유튜브를 통해 제가 노래하는 모습도 보여드렸다고 해요. 도밍고 先生님도 ‘퍼햅스 러브(Perhaps Love)’ 같은 클래식이 아닌 노래를 音盤으로 낸 적이 있어선지 저에 對해 宏壯히 흥미로워하시며 이 사람을 꼭 보고 싶다고 하셨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어요.”

    도밍고와 한 舞臺에서 노래한 所感은 어떤가요.

    “感謝하고 幸福했죠. 어떤 느낌이라고 說明해 드리고 싶은데 마땅한 單語가 없어요. ‘마이웨이’라는 曲을 先生님과 손을 잡고 부르는데 꽃가루가 막 날렸어요. 한 5~10秒間 ‘내가 파바로티인가, 카레라스는 어디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先生님이 제 손을 잡고 막 흔드니까 마치 파바로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도밍고 맞나 싶고, 感激에 겨워 울컥했죠.”

    世界的 聲樂家는 뭐가 다르던가요.

    “소리가 달라요. 나이가 들면 목소리가 老化하고 비브라토度 매끄럽지 못해요. 人間의 몸인지라 오래 쓰면 자연스럽게 故障이 나게 마련이죠. 그런데 도밍고 先生님은 그 年歲에도 靑年의 소리가 나요. 팔을 뻗으면 닿을 距離에서 그 소리를 들어봤는데 왜 代價인지, 월드 클래스인지 알겠더라고요.”

    도밍고가 우리 나이로 81世예요. 本人도 그 나이까지 노래하고 싶나요.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죠. 살아 있는 레전드를 만나다 보니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오래 노래할까 하는 궁금症이 일어 목 管理를 어떻게 하시느냐고 여쭤봤어요. ‘특별한 게 없다. 人生을 즐기라’고 하시더라고요. 여러 代價와 先輩들에게도 목 管理 祕訣을 여쭤봤는데 ‘神이 許諾하는 날까지 노래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正말 좋아하는 聲樂家가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갑상샘癌에 걸려 元來의 목소리를 잃었어요. 全 世界에서도 絶對 實力으로 뒤지지 않는 聲樂家인데 갑자기 그런 試鍊이 닥치더군요. 그래서 저도 神이 許諾하는 날까지 노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날이 오기 前까지는 最大限 즐기자는 마음이에요.”

    노래하기 前 뭔가에 集中하는 모습이 印象的이에요. 祈禱하는 건가요.

    “어릴 때부터 노래하기 前 集中하라고 배웠어요. 精神이 散漫하면 失手하게 되거든요. 集中할 때 祈禱가 나오는 날도 있지만 大體로 冥想을 해요. 3分에서 5分 사이 한 曲을 해야 하는데 精神이 흐트러져 버리면 歌詞를 까먹을 수 있고 發聲이나 포지션이 바뀔 때도 있기에 最大限 妨害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失手해도 탓할 사람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노래하기 前에는 잘 準備하고 가다듬어야만 하죠.”

    김호중이 신동아 독자를 위해 선사한 친필 사인. [생각엔터테인먼트]

    김호중이 新東亞 讀者를 위해 膳賜한 親筆 사인. [생각엔터테인먼트]

    黑歷史와 ‘太陽을 避하는 法’

    그때는 무슨 생각을 主로 하나요.

    “歌詞를 많이 곱씹어요. 그런 過程을 거치지 않으면 舞臺 위에서 失手할 수 있거든요. 한 치도 버릴 時間이 없어요. 伴奏가 바로 나오기 때문에 集中하지 않으면 타이밍을 놓쳐요. 많이 불러본 曲일수록 더 集中해야 하더라고요. 많이 해봤으니까 하면서 교만해지는 瞬間 瞬息間에 큰일이 일어나요. 高等學校 때 實際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콩쿠르에 나가 ‘디 포렐레(Die Forelle)’라는 獨逸 歌曲을 불렀는데 제가 교만해지고 懶怠해져서 2節 歌詞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어요. 1節 歌詞를 다시 하니 땡 하고 떨어졌죠.”

    黑歷史가 있었군요.

    “世宗콩쿠르에서 1等을 하고 나니까 저 스스로 교만하고 懶怠해졌던 거예요. 神이 있다면 ‘한番 된통 혼나 봐라. 이놈아’ 하신 것 같아요. 그 일로 精神이 번쩍 들었어요. 마음 姿勢가 完全히 바뀌었어요. 노래에 正말 眞率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切感했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자고 覺悟를 다졌죠.”

    어릴 때부터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노래 잘한다는 소리보다 ‘저 녀석은 노래를 眞짜 좋아하는 놈이구나’ 했대요. 幼稚園 다닐 때도 선글라스만 딱 끼면 金健模 先生님, 薛雲道 先生님의 노래를 척척 불렀대요. 네다섯 살 때 市場에서 그러고 노래하니까 저만 보면 商人들이 ‘노래하는 꼬맹이 나타났다’고 반기셨다고 해요. 그 德에 제 주머니가 마르지 않았다더라고요. 500원짜리 銅錢을 하도 받아와서요(웃음).”

    그런 노래를 어떻게 알았나요.

    “저야 모르죠. 하하. 初等學校 들어가기도 前에 ‘女子 女子 女子’ 같은 노래를 즐겨 불렀다는 것밖에는. 率直히 記憶은 없는데 몇몇 분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노래해 봐’ 그러면 쑥스러워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대요.”

    어릴 때 트로트만 좋아했나요.

    “노래는 다 좋아했어요. 장르에 相關없이요. 初等學校 4學年인가 5學年 때 라디오 프로그램에 電話해 ‘太陽을 避하는 法’을 불러 1等 한 적도 있어요. 왜 그 프로그램에 電話했는지는 記憶이 나지 않아요. 다음 날 文房具 아주머니가 저를 보더니 ‘好重痾, 어제 너 太陽을 避하는 法 부르는 거 들었다’ 하신 일은 또렷하게 기억나요. 1等 해서 商品도 받았어요. 當時 非 先輩님이 저의 偶像이었어요. 正말 멋졌어요.”

    少年 김호중은 어떤 아이였나요.

    “只今 와서 돌아보면 內省的인 아이는 아니었어요. 勇敢하고, 好奇心과 冒險心이 많고, 따뜻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親舊들에게 뭐라도 사주고 싶어 하고, 親舊를 너무 좋아했어요. 거의 每週 親舊 집에서 잠을 잤을 程度로요. 어머니들이 차려주는 밥床이 너무 좋았나 봐요. 親舊가 놀러왔으니 엄마들이 불고기며 맛있는 飮食을 만들어주셨거든요.”

    親舊들과 사이가 좋았나 봐요.

    “交友關係가 아주 좋았어요. 저도 親舊들을 좋아했고 親舊들도 저를 좋아했어요. 안 좋아하는 親舊를 누가 집에 데려가겠어요. 親舊 집에서 잘 때가 가장 좋았어요. 只今도 連絡하는 初等學校 同窓들이 있어요. 제가 初等學校를 두 군데 다녔는데요. 1學年부터 3學年까지 다닌 學校가 있고, 3學年 때 轉學 가서 卒業할 때까지 다닌 學校가 있어요.”

    ‘네純度르마’는 運命

    [생각엔터테인먼트]

    [생각엔터테인먼트]

    特別히 기억나는 親舊가 있나요.

    “初等學校 1學年 때 文飾이라는 親舊가 있었어요. 小兒痲痹였어요. ‘미스터트롯’에 나가고 나서 文飾이 어머니와 通話한 적이 있어요. 文飾이 짝지를 아무도 안 해줄 때 제가 짝지하겠다고 나섰대요. 文飾이 동생도 ‘그런 兄에게 고마웠어요’ 하는 글을 올렸더라고요. 只今 와서 생각해 보면 김호중이란 아이는 門食餌가 障礙를 가진 것에 介意치 않고 그 親舊를 眞心으로 좋아했어요. 그리고 ‘남이 안 하는 것을 내가 한番 해주고 싶다’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家庭敎育의 影響이겠죠. 몸이 不便한 사람을 도와주라는 가르침이 있었거든요. 文飾이 어머니가 當時 김치도 담가주시고 저를 엄청 챙겨주셨어요. 제가 轉學을 가기 前까지요. 文飾이 어머니 電話番號가 携帶電話에 貯藏돼 있어요. 이 일을 하다 보니 只今은 通話하기가 어렵지만 感謝한 마음만큼은 變하지 않았어요.”

    中學校 때 파바로티의 ‘네純度르마’를 듣고 聲樂에 빠졌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 노래를 接하게 됐나요.

    “김범수 先輩님의 ‘보고 싶다’라는 노래를 너무 좋아해 用돈을 모아 CD를 사러 갔는데 파바로티 노래가 1위더라고요. 잘생긴 歌手도 아닌데 어떻게 1位가 됐는지 궁금해 파바로티의 ‘네純度르마’를 들었는데 너무나도 잘 불러서 ‘와우’ 하는 歎聲이 절로 나올 程度였어요. 그래서 金範洙 先輩님이 아닌 파바로티 CD를 샀죠. 그게 始作이었어요.”

    한창 大衆歌謠를 좋아할 나이인데 클래식의 어떤 魅力에 끌린 건가요.

    “工夫를 하면 進度가 나가잖아요. 저는 工夫를 잘 못하는 學生이었지만 聲樂은 하면 할수록 實力이 느는 게 보이는 거예요. 저 自身이 漸漸 發展하고 成長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서수용 金泉豫告 校長先生님이 天賦的 才能을 알아보고 獻身的으로 이끌어준 걸로 알아요.

    “先生님은 늘 한결같아요. 先生님께 노래도 배웠겠지만 제가 가장 所重하게 생각하는 건 믿음이에요. 先生님 德分에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됐어요. 先生님께 사람에 對한 믿음을 배웠어요. 先生님은 ‘노래도 重要하지만 人性이 더 重要하다’고 强調하셨어요. ‘노래 잘하는 놈은 많아. 근데 싸가지 없는 놈이 되면 안 되는 거야, 알겠어?’ 하고 말씀하셨죠.”

    記憶에 남는 逸話가 있나요.

    “先生님을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노래로 먹고살 수 있을 거다. 내가 壯談할게’ 하셨어요. 그 말씀이 저한테 큰 힘이 됐어요. 노래를 抛棄해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게 했다고 할까요. 先生님이 그 말끝에 ‘내 全 財産을 車馬’ 그러時機에 ‘先生님 全 財産이 얼만데요?’ 하고 물었던 記憶이 나네요. 하하하.”

    金泉豫告로 轉學 가기 前 慶北豫告에 進學한 일이나 進路를 聲樂으로 定한 것을 後悔한 적이 있나요.

    “한 番도 없어요. 聲樂家가 되고 싶었고, 慶北豫告가 너무나도 좋은 學校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다만 進學한 後 ‘내가 여기 낄 자리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學校生活이 흐트러지기도 했어요. (慶北豫告에 다니는 것에 對해) 엄청난 自負心을 갖고 있었죠.”

    肯定의 힘

    [생각엔터테인먼트]

    [생각엔터테인먼트]

    김호중 氏와 서수용 先生님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映畫 ‘파파로티’의 誇張된 內容 때문에 김호중 氏를 誤解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映畫를 통해 사람들에게 希望的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김호중 같은 사람도 다시 人生을 熱心히 살고 있지 않나. 挫折하지 말고 힘들어도 털고 일어나라’ 하고요. 映畫가 그렇게 나와서 좋아요. 實際로 ‘파파로티라는 映畫를 보고 다시 한番 挑戰해 보려 한다’는 連絡을 꽤 많이 받아요. 좀 誇張되면 어때요. 映畫잖아요. 다큐멘터리는 다 믿겠지만 映畫를 누가 다 곧이곧대로 믿겠어요. 設令 다 믿어도 좋아요. 그로 인한 誤解는 事實이 아니란 걸 내가 살면서 보여주면 돼요.”

    獨逸과 이탈리아에서 聲樂 工夫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海外 留學은 어떻게 가게 됐나요.

    “敎會 長老님, 勸士님이 後援해 주셨어요. 제가 뭐라고 밥을 해주시고 집에 재워주셨어요. 서수용 先生님이 ‘好重痾 꼭 레슨 한番 받아봐’ 하고 連結해 주시기도 했고요. 敎會 長老님 집에서 홈스테이 하면서 여러 代價에게 聲樂 레슨을 받았어요. 大家들이 듣기에 다 問題투성이라서 (제 노랫소리를) 綠陰도 많이 하고 가자마자 錄音器 켜고 그것만 듣기도 했어요. 그런 時間이 오늘날의 滋養分이 됐죠.”

    그는 現地에서 意思疏通의 不便함은 겪지 않았다고 했다. 專門用語까진 알아듣지 못해도 基本的인 意思 表現이 可能할 程度로 言語를 빨리 習得한 德分이다. 語學에 素質이 있는 것 같다고 韻을 떼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素質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言語 배우는 걸 좋아해요. 世界 어딜 가든 그 나라 노래 한 曲 程度는 부를 수 있도록 하는 게 聲樂家로서의 目標 中 하나예요.”

    海外에서 돌아왔을 때 聲樂家로 받아주지 않아 살길이 漠漠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작은 音樂會나 結婚式 祝歌를 부르며 生活했다죠?

    “맞아요. 먹고살아야 하는데 (大學 卒業狀이 없는) 저를 누가 써주겠어요. 먹고살아야 해서 한 일이지만 그 안에서 저 나름대로 幸福을 느꼈어요.”

    肯定的인 性格이네요.

    “가만히 있으면 먹고살 돈이 나옵니까. 근데 제가 누굴 祝賀해 주는 거잖아요. 그 안에서도 저는 幸福을 느끼는 거죠. 더군다나 노래로 祝賀해 줄 수 있어서 좋고요. 그 當時 映像을 찾아보면 제가 正말 熱心히 노래해요. 그리고 그 表情이 너무나도 幸福해 보여요. 그래서 저는 저 自身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요. 熱心히 살았으니까요. 只今도 누가 물어요. 작은 데서 公演할 計劃이 있느냐고요. 그럼 저는 이렇게 反問해요. ‘우리가 언제부터 큰 데서 公演했느냐’고요. 맞잖아요. 어떤 舞臺에 서든, 그 舞臺가 크든 작든, 저는 늘 感謝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그 안에서 幸福을 느낍니다.”

    빛이 나는 사람

    [생각엔터테인먼트]

    [생각엔터테인먼트]

    肯定 마인드 德分일까. 그가 걸어온 길에는 힘들 때마다 힘이 돼준 이들이 있었다. 서수용 先生님과 敎會 사람들이 그러하고, 只今은 아리스가 든든한 버팀木이 돼주고 있다.

    ‘미스터트롯’으로 아리스를 얻었어요. 아리스를 한 마디로 定義한다면.

    “‘김호중과 하나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리스 德分에 제가 힘을 얻었듯이 팬들도 저라는 사람을 통해 마음의 傷處를 治癒하길 바라요. 아리스 中에 ‘예전에는 혼자 외롭게 지냈는데 아리스들과 함께 저를 應援하면서 더는 외롭지 않다’는 분이 많아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歌手로서 흐뭇하고 幸福해요.”

    아리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軍에 入隊했어요. 軍 代替服務는 할 만했나요.

    “서울 강남역 近處 障礙人 福祉館에서 1年 9個月 동안 代替服務를 했어요. 發達障礙人 親舊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처음 몇 달間은 適應하지 못했어요. 그 親舊들이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되기 때문에 警戒가 甚해요. 그러다 어느 날부터 親舊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그때부터 저를 ‘先生님’ 或은 ‘호중이 型’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親舊들과 무척 親해졌죠. 召集解除 當日에도 親舊들이 映像을 準備하고 꽃도 傳해줬어요. 그 親舊들을 통해 眞心은 통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眞心으로 누군가를 對하는 法을 알게 됐어요. 福祉館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한 感情을 처음 느끼며 人生 工夫를 했죠. 앞으로도 잊지 못할 所重한 經驗이에요.”

    福祉館 親舊들의 ID카드를 새것으로 바꿔줬다는 美談이 事實인가요.

    “野外活動 授業 때는 福祉카드를 所持해야 觀覽하는 場所에서 惠澤을 받을 수 있어요. 福祉카드가 一種의 身分證 같은 건데 죄다 어릴 때 찍은 寫眞이 붙어 있더라고요. 寫眞을 꼭 바꿔주고 싶어서 入所 前 畫報와 앨범 재킷을 찍어준 作家에게 도움을 請했더니 고맙게도 欣快히 받아주셨어요. 그 寫眞을 아이들 福祉카드와 證明寫眞으로 쓸 수 있게 됐죠.”

    軍白旗에도 팬카페를 통해 아리스와 繼續 疏通했어요. 記憶에 남는 便紙나 메시지가 있나요.

    “服務를 하면서 週末마다 팬카페에 들어가 글을 쓸 수 있는 時間이 許諾됐어요. 德分에 팬들과 꾸준히 疏通할 수 있었는데, 내가 音樂에 對한 苦悶을 많이 하는 게 보였는지 ‘장르를 너무 苦悶하지 마라. 그냥 노래하는 사람으로 와줬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宏壯히 많이 들었어요. 그 말에 勇氣를 얻었던 記憶이 나요. 또 活動 空白期지만 이렇게 疏通하며 우리끼리 더 단단해지는 時間을 보내는 것 같다는 글도 많이 받았고요. ‘健康하게만 돌아와라. 우린 이 자리에 있다’는 말도 큰 慰安이 됐어요.”

    그가 召集解除 後 처음 낸 新曲 ‘빛이 나는 사람’은 팬들과 疏通하는 空間에서 靈感을 얻어 誕生한 自作曲이다.

    “팬들이 자꾸 저한테 빛이 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팬들도 빛이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빛내 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빛이 나는 사람을 主題로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便紙 글을 組合해 歌詞를 만들고 미디를 배워 作曲도 直接 했어요. 元來 召集解除 後 ‘나의 목소리로’라는 노래를 선보일 豫定이었는데 팬들과 더 가까이 交感하고 싶어 ‘빛이 나는 사람’을 먼저 發表했어요.”

    앞으로 굵직한 日程이 많다. 7月 中 畫報 撮影을 위해 이탈리아로 出國한다. 現地에서 팝페라 歌手 안드레아 보첼리와 協業을 進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호중은 “現地에서 變數가 생길 수 있고 具體的으로 傳達받은 게 없다”며 協業 內容을 밝히길 꺼렸다. 代身 “돌아오면 映像으로 보여드리겠다”고 約束했다.

    年末까지 ‘烈日’

    [생각엔터테인먼트]

    [생각엔터테인먼트]

    그는 7月 27日 클래식 正規 2輯 ‘파노라마(PANORAMA)’를 發賣한다. 走馬燈처럼 지나가는 삶 속에 자리한 戀人, 親舊, 팬들에게 김호중이 傳하는 安否 人事 같은 노래들로 채웠다. 正統 聲樂부터 발라드 性向의 크로스오버, 라틴 音樂, ‘浪漫歌客’ 최백호와의 듀엣曲까지 總 16트랙이 收錄됐다. 作曲家 兼 피아니스트로 有名한 이루마의 曲도 들어 있다.

    “첫 番째 클래식 앨범은 오페라 아리아를 主로 담았는데 이番 2輯에는 제가 하고 싶었던 노래, 불러보고 싶었던 曲들을 重點的으로 넣었어요. 이루마 先生님이 써주신 曲은 形言할 수 없을 程度로 旋律이 좋아요. 期待하셔도 좋습니다(웃음).”

    그는 ‘우리家’에 이은 두 番째 트로트 正規 2輯도 準備하고 있다. 9月이나 10月 發賣할 豫定이다. ‘나의 목소리로’는 이 앨범을 내기 前에 선보일 計劃이라고 한다. 또 9月 30日부터 10月 2日까지 서울 蠶室 올림픽體操競技場을 始作으로 年末까지 全國을 돌며 單獨 콘서트를 열 計劃도 세워두고 있다. 秋夕 連休에는 SBS와 單獨 쇼를 펼친다.

    地上波放送과 손잡고 單獨 쇼를 연다는 건 大型歌手 班列에 올랐다는 證據죠.

    “榮光으로 생각해요. 휼륭한 製作陣과 잘 調律하고 準備해 저만이 할 수 있는 音樂과 TV에서 볼 수 있는 唯一性 있는 舞臺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單獨 콘서트에 앞서 展示會도 연다고 들었어요. 뭘 展示하나요.

    “제가 찍은 寫眞도 展示될 豫定이에요. 팬들이 사준 카메라로 趣味 삼아 찍은 小小한 寫眞들이죠. 개미窟度 있고, 濟州島에서 捕捉한 아름다운 風景도 있어요.”

    카네기홀 公演은 언제 할 計劃인가요.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나요. 불러줘야 하죠(웃음).”

    아리스가 善行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김호중 氏에게 善한 影響을 받아서라고 합니다. 學窓時節부터 어려운 이웃을 위해 才能寄附를 한 일이 큰 感動을 준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뭘 줄 수 있는 건 幸福한 일이에요. 저는 준 것이 아니라 나눈 거라 생각해요. 내가 이걸 갖고 있는데 너도 좀 맛볼래? 줘볼까? 이런 次元이지요. 나누는 것이 돈이나 物件이 아니어도 좋아요. 말 한마디도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팬들이 그런 마음으로 나눔에 同參하고 있어 저 또한 感謝해요.”

    人生의 羅針盤 같은 座右銘이 있나요.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只今 幸福해요.”

    10年 뒤 김호중 氏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때의 靑寫眞을 그려본다면요.

    “노래를 하고 있으면 感謝한 일이죠. 그렇게 되도록 달려갈 거고요. 이番에 도밍고 先生님을 보면서 더 切實하게 느꼈어요.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할 때 第一 幸福하구나, 그 모습이 가장 좋은 모습이구나 하고요. 10年 前 호중이를 돌아봤을 때는 잘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고, 10年 뒤 호중이에게는 健康 잘 챙기고 좋은 노래를 傳해 드리는 김호중이 되라는 當付의 말을 傳하고 싶습니다.”

    신동아 8월호 표지.

    신동아 8月號 表紙.



    김지영 기자

    김지영 記者

    放送, 映畫, 演劇, 뮤지컬 等 大衆文化를 좋아하며 人物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文化와 不動産, 流通 分野에도 특별한 關心을 갖고 있습니다.

    신동아 5月號 表紙모델 ‘活魚보이스’ 朴志玹

    只今, 景氣 民心 “一山이 民主黨 뽑는 洞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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