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2洞
桐 由來
응암동은 마을 뒤 백련산 기슭에 있는 커다란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매가 앉아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매바위에서 불리워 왔으며, 朝鮮時代에는 王의 一行이 이곳에 나와 매를 날려 사냥을 하던 곳으로도 傳해지고 있습니다. 응암동은 朝鮮時代 漢城府 北部 聯銀房 미흘산계에 응암동이라는 同名으로 砲反動, 와산동과 함께 屬하였습니다.
過去에는 백련산 기슭 바위 위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 帳幕을 치고 砲手들이 起居했던 곳으로 ‘砲手發’이라고 불렸으며, 백련산 山줄기 끝자락의 模樣새가 緩慢해 마치 산이 누워있는 것 같다 하여 火山 或은 눌뫼라고 하며 와산동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外 冷靜藥水터의 이름을 따 ‘冷靜骨’, 올무를 利用해 짐승 사냥을 많이 해 ‘올無知고개’, 큰 매가 날아와 앉은 듯한 形象이라 하여 ‘매바위’라고도 했습니다. 매바위는 높이 4m, 둘레 25m 程度의 크기였던 것으로 推定되나 只今은 聯立住宅을 建築해 그 痕跡이 一部만 남아 있습니다. 每年 10月 初에는 地域 繁榮과 住民 健康을 祈願하는 매바위制를 백련산 正常 銀評定에서 開催하고 있습니다.
桐 歷史
응암동은 1949年 서울市에 編入되었는데, 1911年에는 抛反動, 응암동, 와산동으로 되었고 1914年 高陽郡 管內로 編入되면서 3個 洞里가 合하여 하나의 응암리로 改稱되었습니다. 1988年 응암 2, 3棟을 응암2, 3, 4洞으로 各各 分洞하였다가, 2008年 6月 응암2,3,4棟을 응암2,3洞으로 統合하여 現在에 이르고 있습니다. 응암2洞은 多世帶, 多家口가 密集한 地域이었으나 再開發, 再建築 事業으로 아파트 團地가 造成되고 있습니다.
主要 現況
保有 現況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