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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憶과 感情에 刻印되는 니치 鄕愁|여성동아

STYLE

記憶과 感情에 刻印되는 니치 鄕愁

誤하니 調香師

2023. 03. 30

남들과 다른 나를 刻印시킬 方法을 摸索한다면 當身에겐 니치 鄕愁가 제格이다. 

最近 몇 年 사이 니치 鄕愁 需要가 急激히 늘었습니다. 니치 香水란 果然 무엇일까요. ‘니치(niche)’는 틈새라는 뜻입니다. 샤넬, 디올 等 大型 패션 하우스와 에스티로더, 랑콤 같은 巨大한 化粧品 會社가 支配的인 香水 市場에서, 差別化되는 製品을 만들려는 調香師들이 작은 틈새에서 탄생시켜 命脈을 이어온 鄕愁를 稱합니다. 그렇다고 單純히 작은 브랜드에서 生産되는 享受를 다 니치 鄕愁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香水는 本來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古代 文明에서 祭禮用으로 쓰였습니다. 그리스·로마 時代에 衛生과 治粧을 위해 王族과 貴族들이 누린 固有의 産物인 셈입니다. 如前히 香水를 만드는 프랑스의 겔랑, 英國의 크리드·펜할리곤스·그로스미스 같은 브랜드는 元來 王家의 香水를 만들던 곳이었습니다. 科學의 發展과 産業革命으로 經濟 成長이 이뤄지면서 身分에 相關없이 鄕愁를 消費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鄕愁 業界는 飛躍的으로 發展했습니다.

20世紀 初盤 프랑스 出身의 事業家이자 操向死因 프랑수아 코티는 特權 階層이 즐기던 鄕愁의 量을 줄이고, 좀 더 低廉한 甁에 鄕愁를 담아 販賣하기 始作했습니다. 1911年에는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가 最初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鄕愁를 出市했습니다. 第1次 世界大戰이 끝나고 1921年 코코 샤넬이 出市한 ‘넘버5’가 大大的인 히트를 記錄하면서 패션 디자인 하우스의 鄕愁 全盛時代가 펼쳐지기 始作합니다. 第2次 世界大戰이 끝난 後인 1946年에는 에스티 로더가 自身의 이름을 딴 化粧品 會社 에스티로더를 設立했고, 1953年 첫 番째 鄕愁를 出市했습니다. 以後 化粧品 會社들이 잇달아 鄕愁를 出市하기에 이릅니다.


特權層 專有物에서 패션 하우스로

왕실에 향수를 납품하지 않았고, 패션 하우스도 화장품 회사도 아니었던 첫 니치 향수 브랜드 ‘라티잔 파퓨메’(왼쪽). 편집 숍, 딥티크의 초창기 모습.

王室에 鄕愁를 納品하지 않았고, 패션 하우스도 化粧品 會社도 아니었던 첫 니치 鄕愁 브랜드 ‘라티盞 派퓨메’(왼쪽). 編輯 숍, 딥티크의 草創期 모습.

이처럼 大型 패션 하우스와 化粧品 企業들이 鄕愁를 내놓는 가운데 巨人들 틈새에서 니치 香水라 불릴 만한 製品을 처음으로 선보인 브랜드가 있으니 바로 1970年代 化學者 張 라포르테가 設立한 라티盞 派퓨메(L’Artisan Parfumeur)입니다. 라티盞 派퓨메는 王室에 鄕愁를 納品하지 않았고, 패션 하우스도 化粧品 會社도 아니었습니다. 映畫 ‘米 비포 有’의 마지막 場面에 登場하는 루브르博物館 맞은便에 자리한 퍼퓨머리_鄕愁 製造소)로 1978年 이곳에서 出市한 뮈르 에 뮈스크(Mure et Musc)는 現在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氣分 좋게 산뜻한 블랙베리와 머스크 香이 淸明하게 登場하는 香水입니다. 비슷한 時期, 딥티크가 1961年 디자인 編輯 숍으로 始作해 旣存의 틀을 깨는 方式으로 1968年 첫 鄕愁 ‘오 드 퍼퓸 로’를 出市했습니다.

니치 鄕愁의 先驅者 舊딸과 니콜리아

패션모델 출신 아닉 구딸(왼쪽)과 장 폴 겔랑의 조카 파트리샤 드 니콜라이는 니치 향수를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패션모델 出身 아닉 舊딸(왼쪽)과 장 폴 겔랑의 조카 파트리샤 드 니콜라이는 니치 鄕愁를 大衆의 腦裏에 刻印시킨 人物로 評價된다.

니치 鄕愁를 本格的으로 사람들의 腦裏에 刻印시킨 브랜드로는 舊딸과 파퓸 드 니콜라이(Parfums de Nicolai)를 꼽을 수 있습니다. 패션모델이었던 아닉 舊딸은 鄕愁의 都市 그라스를 訪問했을 當時 鄕愁에 對한 새로운 熱情을 갖게 됩니다. 當時에는 드물었던 女性 創業者인 舊딸은 1981年 自身의 이름을 딴 브랜드에서 ‘오 드 아드리앙’을 出市하고 파리에 첫 番째 부티크를 오픈합니다. 오 드 아드리앙은 상큼한 詩칠리안 레몬과 自懜에 일랑일랑, 사이프러스가 調和를 이룬 多彩로운 香을 가진 시트러스 系列 香水입니다.



프랑스 王室에 鄕愁를 納品한 겔랑의 最高 調香師 장 폴 겔랑의 조카로 태어난 파트리샤 드 니콜라이는 ISIPCA(프랑스 調香師 專門學校)를 卒業하고 調香師로 일하면서 1989年 自身의 브랜드 파퓸 드 니콜라이를 오픈합니다. 韓國에서 만났을 때 그는 니치 鄕愁의 時代를 열게 된 契機에 對해서 “1980年代 末, 저는 鄕愁 業界에 創造 精神이 매우 缺如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니치 香水는 鄕愁 業界에 새로운 突風을 가져왔고, 제가 이 突風의 先驅者 中 1名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니콜라이의 印象 깊은 鄕愁는 ‘휘그티’로 상큼한 과일 香을 가진 오스만투스 앱솔루트와 달콤함과 優雅함을 가진 재스민 에센스의 조화로움이 느껴집니다. 香을 맡으면 니콜라이와 마테茶 한 盞을 마시는 것 같은 場面이 聯想됩니다. 두 브랜드는 大企業이 아닌 個人이 創業한 鄕愁 브랜드로 異例的으로 큰 人氣를 얻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다양한 니치 향수 브랜드가 탄생했다. 대표적으로 농구선수였던 벤 고햄(왼쪽)이 만든 바이레도, 천재 조향사 프랑시스 커정이 만든 메종 프란시스 커정이 있다.

2000年代 들어 다양한 니치 鄕愁 브랜드가 誕生했다. 代表的으로 籠球選手였던 벤 고햄(왼쪽)이 만든 바이레도, 天才 調香師 프랑시스 커情이 만든 메종 프란시스 커情이 있다.

1990年 英國 런던에서는 皮膚 管理師였던 조 말론이 兆말론런던을 設立합니다. 그 始初는 兆 말론이 平素 親했던 顧客들에게 香이 나는 로션과 보디 午日을 開發해 膳物로 주면서였습니다. 이때 兆 말론이 顧客들에게 건넨 香이 잔잔하면서도 魅力的인 너트멕(肉荳蔲)과 진저(生薑)가 配合된 ‘너트멕 앤드 진저’입니다. 1999年 兆 말론은 에스티로더에 香水 會社를 賣却하고 2011年 兆러브스라는 또 다른 鄕愁 브랜드를 론칭합니다.

2000年代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니치 鄕愁 브랜드가 本格的으로 誕生합니다. 2000年 프레데릭 말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香水를 뿌리는 世態에 不滿을 느낍니다. 香이 아닌 마케팅과 패키징에 더 神經을 쓴 鄕愁에 싫症을 느낀 그는 마스터 調香師들이 香을 만드는 鄕愁 브랜드, 에디션 드 파퓸 프레데릭 말(Editions de Parfums Frederic Malle)을 만듭니다.

이어 2006年 籠球選手 出身 벤 고햄은 自身이 지닌 嗅覺的 記憶을 香水로 만들어낸 바이레도를 設立합니다. 2007年에는 LVMH의 相續者인 킬리안 헤네시가 模倣을 거듭해 千篇一律的인 글로벌 브랜드 鄕愁와는 差別化되는, 럭셔리의 本質에 集中한 ‘바이 킬리안’을 出市합니다. 2009年 實費 間터와 크리스토프 세르바셀은 시트러스 系列 鄕愁가 持續力이 떨어진다는 短點을 克服하고자 持續力이 긴 시트러스 系列 ‘오 드 코롱’을 만듭니다. 이들이 設立한 브랜드가 아틀리에 코롱(Atelier Cologne)입니다. 20代 中盤의 나이에 鄕愁系의 오스카上인 ‘코티上’을 受賞해 天才 調香師로 불렸던 프란시스 커鄭은 自身의 이름을 건 브랜드 메종 프란시스 커情(Maison Francis Kurkdjian)을 세웁니다.

只今은 決코 니치(틈새)하지 않다고 말할 程度로 많은 調香師와 創立者에 依해 다양한 니치 鄕愁가 登場하고 있습니다. 이미 잘 팔리고 있는 鄕愁를 模倣하는 것이 아닌 調香師의 世界觀을 穩全히 담아낸 鄕愁, 市場에서의 反應과 人氣보단 만드는 사람의 正體性을 表現하고자 하는 鄕愁, 마케팅과 廣告가 아닌 鄕愁의 本質에 集中하는 調香師들이 만든 香水가 이른바 틈새 鄕愁인 니치 香水입니다. 香水는 사람들의 記憶과 感情에 影響을 끼치는 存在입니다. 글로벌 디자이너 브랜드의 鄕愁든, 化粧品 會社의 鄕愁든, 니치 鄕愁든 좋은 感情으로 오래 記憶되고 싶은 사람으로 만드는 鄕愁를 만나시길 바랍니다.

#니치鄕愁 #誤하니調香師 # #여성동아

寫眞 게티이미지 寫眞提供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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