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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才의 反抗…그도 思春期를 通過 中|週刊東亞

週刊東亞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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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才의 反抗…그도 思春期를 通過 中

16歲 송유근 軍 學問에 沒入 博士學位 論文 準備…남다른 才能 마음 苦生도 커

  • 김지은 客員記者 likepoolggot@empal.com

    入力 2014-01-27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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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의 반항…그도 사춘기를 통과 중

    天才 송유근 君은 現在 UST에서 博士學位 論文을 準備하고 있다.

    最近 ‘知能指數(IQ) 210의 신동’ 김웅용 氏가 51歲 나이로 어렵게 敎授 꿈을 이뤘다는 消息을 接하고 많은 사람이 天才少年 송유근(16) 君을 떠올렸을 것이다. 宋君은 金氏 못지않은 天才로 8歲에 인하대에 入學하는 等 큰 關心을 모았으나 인하대에서 中退하고 한국천문연구원에 入學한 以後 言論에 거의 登場하지 않았다. 한때 韓國 英才敎育 터전이 나빠 宋君이 가진 英才性을 死藏시키는 것 아니냐는 論難이 일기도 했다.

    이에 ‘週刊東亞’가 宋君 近況을 確認해보니 2014年 1月 現在 宋君은 如前히 英才性을 잃지 않은 채 學問에 沒入해 있는 것으로 把握됐다. 宋君은 自宅이 있는 京畿 구리시와 指導敎授가 있는 서울 이화여대, 大田 科學技術聯合大學원臺(UST) 傘下 韓國天文硏究院을 오가며 博士學位 論文 準備에 餘念 없었다.

    宋君과 그의 父母에게 인터뷰를 要請하자 처음엔 水落地 않았다. 어려서 매스컴의 注目을 받는 同時에 疾視, 惡意的 言語 攻擊 等도 받은 터라 인터뷰는 受諾할 수 없다는 反應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나올 또 다른 韓國 英才가 施行錯誤를 거치지 않도록 助言해달라고 說明한 끝에야 어렵사리 인터뷰 許諾을 얻었다.

    178cm 左衝右突 成長痛 겪는 時期

    宋君을 直接 만나니 몇 年 前 TV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成熟해 있었다. 올해로 滿 16歲가 된 그는 키도 178cm로 훌쩍 자라 제법 靑年 티가 났다. 수줍고 조용한 性格만은 예나 只今이나 變함없었지만, 思春期 아이라면 누구나 겪는 크고 작은 마음의 소용돌이度 적잖이 겪었다고 한다.



    아버지 송수진(54) 氏에 따르면 宋君은 한동안 文學에 心醉했다 自轉車에 푹 빠지기도 하고 게임에 미치기도 했다. 父母 處地에선 思春期 熱病에 시달리듯 뭔가에 빠져들었다 또다시 日常으로 되돌아오기를 反復하는 아이 모습이 걱정스러웠지만 그 또한 成長의 한 過程이려니 생각하며 지켜봤다고 한다.

    “난生처음 反抗이란 것도 하더군요. 아빠 練習을 많이 하는 中입니다. 이제는 아이가 父母 손을 놓고 江을 건널 準備를 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언제까지 父母가 따라다닐 수도 없을 테고요.”

    UST에 進學한 後에도 宋君은 如前히 혼자다. 구리와 서울, 大田을 오가며 學業을 이어가는 宋君의 生活은 學校와 學院을 오가는 또래와 사뭇 다르다. 學校에서 또래와 어울리며 自己 正體性을 찾아가는 一般 靑少年과는 다른 方法으로 自身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UST 學生들에 따르면 “宋君 父母가 宋君을 過保護한다” “思春期를 지나면서 좀 더 獨立的으로 學友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宋君 意思가 無視되는 것 같다”는 意見도 있었다. 宋君은 UST 進學 後에도 自己보다 나이가 많은 學友들과의 모임 等에 제대로 參席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一部 學生은 宋君이 “더 자유롭게 學友들과 어울려 學問的 交流를 해나간다면 더 나은 成果를 이루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宋君 父母가 그의 손발이자 充實한 保護膜 구실을 繼續해나가는 데는 여러 理由가 있었다. 무엇보다 宋君에 對한 世上 視線이 그렇게 곱지만은 않다는 點이다. 初校 入學과 卒業 問題를 始作으로 大學 進學과 自退, 學點銀行制를 통한 學點 取得, 大學院 進學에 이르기까지 宋君의 進路 選擇에는 수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問題가 發生할 때마다 사람들은 어린 宋君은 勿論 父母조차 堪當하기 힘든 推測과 非難을 쏟아냈다.

    “이제야 겨우 論文 準備에 集中하게 됐는데 또다시 最近 모습이 言論에 公開되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宋君 어머니 박옥선(56) 氏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等을 통해 떠도는 惡性루머에 宋君이 傷處 받을까 늘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이제야 세간 關心이 많이 줄었는데 또다시 言論에 近況이 公開되면 思春期를 막 지난 宋君을 괴롭히는 또 다른 問題가 發生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털어놨다. 철모르는 어린 時節 TV 出演이나 인터뷰를 꽤나 즐거워하던 宋君이 最近엔 슬그머니 싫은 내色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린 時節부터 짊어져야 했던 ‘天才’라는 타이틀의 그늘에 도사린 危險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나이가 된 것이다.

    천재의 반항…그도 사춘기를 통과 중

    談笑 中인 박석재 韓國天文硏究院 硏究委員(왼쪽)과 송유근 軍과 어머니.

    檢定考試 年齡 制限 ‘뜨거운 감자’

    남다른 才能 때문에 겪어야 했던 宋君의 속病은 初校 入學 무렵부터 始作됐다. 宋君은 7歲에 南楊州市 심석初校 自體 評價를 거쳐 6學年으로 入學했으나 ‘初等敎育法上 早期卒業은 低學年 入學 後 早期進級해야 한다’는 敎育部 主張으로 入學取消 處分을 받았다. 以後 訴訟을 提起해 “義務敎育은 敎育받을 權利가 根本 趣旨로, 6學年으로 入學한 旣得權을 保護하는 次元에서 宋君을 졸업시키는 것이 妥當하다”는 判決에 따라 越班 過程을 거쳐 早期卒業하고 中高校 卒業 檢定考試를 1年 만에 마쳤다.

    하지만 只今까지도 우리나라 各 市道敎育廳은 中學校 入學資格(中입) 檢定考試 應試 年齡 基準을 滿 12歲 以上으로 할 것을 固執한다. 法은 바뀌었지만 市道敎育廳에서 中입 檢定考試 應試願書를 받아주지 않으면 또래에 비해 學業 能力이 優秀한 英才가 檢定考試로 學業 過程을 빠르게 履修할 수 있는 길이 없는 셈이다. 宋君 같은 英才를 둔 父母들은 宋君 事件 以後 10餘 年이 흘렀지만 敎育行政體系는 全혀 變하지 않았다며 不滿을 吐露한다.

    英才를 둔 父母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는 初等學生의 檢定考試 學歷 認定 問題는 現在 大法院에 繫留 中인 狀態로 2年째 進陟이 없다. 訴訟을 낸 當事者는 乳母(10) 君 家族이다. 柳君은 2007年 滿 5歲 나이로 初校에 入學했다가 4學年이던 2010年 9月 個人的 事由로 1年間 休學한 뒤 다시 4學年 過程을 배워야 瑕疵 中입 檢定考試를 準備했다.

    하지만 大田市敎育廳은 中입 檢定考試 凝視 規定이 ‘學年 初(3月 1日)를 基準으로 滿 12歲 以上인 者’인 點을 들어 應試願書를 返戾했고, 柳君 側은 이에 對해 訴訟을 提起했다. 當時 1審에서는 “檢定考試에서 應試 年齡을 劃一的으로 制限한 것은 兒童의 個別的 能力 差異를 考慮하도록 한 法 制定 趣旨에 반한다”며 勝訴 判決을 내렸다. 그러나 2審에서는 “初等敎育 義務는 學校敎育의 原則이고 檢定考試는 補充的 要因에 不過하다”며 “補充的 學歷 認定 制度인 檢定考試에서 그 應試 年齡을 制限하는 것은 當然하고 萬若 原告 請求대로라면 初等敎育 義務는 義務가 아닌 選擇敎育이 된다”며 이를 棄却했다.

    천재의 반항…그도 사춘기를 통과 중

    송유근 君의 어머니 박옥선 氏.

    以後 2012年 6月 大田高等法院 第1行政府(裁判長 심귀섭 部長判事)는 “나이가 어리다는 理由로 中입 檢定考試 應試를 制限한 것은 不當하다”며 柳君이 대전시교육청을 相對로 낸 應試 制限 處分 取消에 對한 抗訴審에서 1審 判決을 取消하고 原告 請求를 棄却했다.

    “事實 속 모르는 사람은 아이가 社會性을 기르려면 初等學校 敎育 程度는 正規課程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유근이 같은 아이가 一般 學校에 가면 오히려 따돌림당하기 十常이에요. 有근이도 學校에 갔더니 같은 班 아이들이 ‘123456789 곱하기 123456789街 얼마야. 모르지. 그럼 天才도 아니네’라는 얘기를 했다더라고요. 아이들은 아직 自身과 다르거나 特出 난 才能을 가진 또래를 理解하고 받아들일 만큼 成熟한 存在가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自身과 다르거나 뛰어난 才能을 가진 아이를 嫉妬와 時期 對象으로 여기는 境遇가 많죠.”(송수진 氏)

    宋氏는 영재는 어느 特定 分野에서 또래보다 뛰어난 才能을 보이는 아이일 뿐, 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잘하는 全知全能한 存在가 아니라고 强調했다. 宋君 境遇에도 物理學에 對한 關心이 유별났고 그 分野에 才能을 보였을 뿐인데, 그것으로 오히려 또래가 經驗할 수 있는 많은 것에서 疏外됐다는 얘기다.

    맨땅에서 蹴球하는 꼴

    천재의 반항…그도 사춘기를 통과 중

    송유근 軍이 블랙홀과 關聯한 數學問題를 푼 메모紙.

    宋君의 境遇 大學生活에 相當한 負擔感을 느꼈다. 宋君 같은 英才가 우리 社會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처럼 自己 才能을 더 積極的으로 開發하려고 어린 나이에 大學에 進學한 또래가 周邊에 全無했기 때문이다.

    “인하대는 英才敎育院 時節부터 친숙해 只今까지도 좋은 記憶이 많은 곳이에요. 박제남 敎授님을 비롯해 많은 분이 저를 熱誠的으로 指導해주셨던 걸로 記憶해요. 다만, 제가 너무 어렸던 탓에 大學 文化에 잘 適應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모임이 있을 때면 先輩, 同期들이 저를 配慮해 피자집에서 만나도 結局 저 혼자 寄宿舍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들과 어울려 麥酒집에 가거나 映畫 觀覽을 할 수도 없었으니까요.”(송유근 軍)

    宋君은 大學 時節 할머니를 많이 따랐는데, 할머니나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結局 그는 獨學으로 早期 卒業이 可能한 學點銀行制를 選擇했고, 入學 後 3年 만에 學點銀行制로 轉換해 電子計算學 學位를 받았다.

    大學院으로 UST를 選擇한 理由는 宋君이 大學에 入學하기 前부터 天體物理學 指導를 擔當해준 박석재 博士가 UST 所屬 韓國天文硏究院 院長으로 在職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UST에 進學하면서 宋君은 天體物理學에 새롭게 눈을 떴다. UST는 硏究中心 大學院이라 많은 分野에서 實質的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點도 宋君에게는 큰 힘이 됐다.

    “언젠가 幼根이가 어렸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自己가 보기엔 木花씨를 들여온 文益漸보다 木花를 栽培하고 實用化한 정천익이란 사람이 眞짜라는 겁니다. 文益漸은 木花씨를 가져오긴 했으나 그것을 싹 틔우거나 키울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가 들여온 木花씨는 無用之物이었고, 오히려 木花를 栽培하고 베 짜는 技術을 傳播한 農事꾼 정천익이 더 重要한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얘기였죠. 저는 유근이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些少한 才能이라도 自己 才能으로 世上에 이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송씨)

    宋君 父母는 金姸兒 選手 이름을 여러 次例 言及했다. 우리나라 같은 洞契스포츠 不毛地에서 金姸兒 選手의 才能을 알아보고 그것을 키워주려고 努力한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宋君 같은 英才에게도 必要하다는 것이다. 英才에게 不必要한 部分은 强要하지 말고 自己 才能을 살리면서 健康하게 자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點도 强調했다. 그래야 英才가 施行錯誤를 줄이고 國家와 社會에 더 크게 寄與할 수 있다는 것이다.

    宋氏는 “比喩하자면 只今 幼根이는 잔디球場 아닌 맨땅에서 蹴球하는 꼴이다. 父母 된 마음으론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지만 그럴 形便도, 與件도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을 아꼈다.

    이런 現實은 非但 宋君에게만 該當하는 얘기가 아니다. 取材 途中 만난 어느 英才 어머니는 “아이에게 주어진 才能이 詛呪가 될 수도 있는 狀況”이라며 눈물을 쏟았다. 그러면서도 괜한 口舌數에 오를까 봐 아이 얘기를 記事化하지 말아달라고 懇曲히 付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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