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年 12月22日 國會 農林海洋水産委員會. 湖南의 ‘暴雪’ 被害 對策을 論議하기 위해 會議가 準備됐다. 私學法 無效化를 主張하며 場外鬪爭에 나선 한나라당 議員들은 參席하지 않았고, 與黨 議員들은 ‘暴雪’을 쏟아냈다.
“때가 어느 때인데….”
與圈은 暴雪을 빌미로 攻勢로 돌아섰다. 이병완 大統領祕書室長은 “暴雪 被害 對策뿐 아니라 來年 豫算과 不動産 關聯 法 等 民生 懸案이 山積해 있는데 痼疾的 色깔論을 들고 나와 國會를 跛行시킨 게 納得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一角에서도 박근혜 代表가 小貪大失(小貪大失)의 愚를 犯했다는 主張이 나온다. 고진화 議員이 代表的이다. 高 議員은 “한나라당의 反對 論理엔 敎育은 없고 理念만 있었다”면서 黨內 意思決定 構造가 動脈硬化 症狀을 보이고 있다고 主張했다.
“健全한 私學을 保護하고 非理私學을 淨化하는 政策으로 與黨과 眞劍勝負를 해도 모자랄 판에 舊態依然한 色깔論으로 武裝하고 戰鬪에 臨하는 것은 知彼知己 百戰不敗라는 孫子兵法을 아직도 習得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國民 輿論도 차가웠다. 2005年12月16日 KBS 輿論調査는 改正 私學法에 贊成하는 應答(52.5%)이 反對한다는 應答(38.4%)보다 높았다. 한나라당이 場外鬪爭에 들어간 뒤 反對가 조금씩 늘기는 했으나 輿論은 如前히 싸늘하다.
그러나 박근혜 代表는 强勁했다. 그는 公開席上에서 고진화 議員을 指目해 叱咤했다고 한다. 朴 代表는 “場外鬪爭은 議總에서 決定된 事項”이라며 强攻 드라이브로 少壯派의 反撥 氣流를 잠재웠다.
朴 代表는 “名分 찾아 들어갈 日이었으면 아예 나오지도 말았어야 한다”며 退路를 좁히기도 했다. 朴 代表에게 批判的이던 한 3選 議員은 “朴 代表가 비로소 野黨 代表다운 모습을 보여줬다”며 치켜세웠다.
그러나 私學法 無效化 鬪爭은 한나라당에 크게 得이 되지 않았다는 指摘이다.
于先 황우석 거짓말 事件이라는 빅뉴스가 言論 紙面을 塗褙하면서 對國民 弘報 效果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宗敎團體가 한나라당의 友軍으로 나선 게 도움이 됐지만, 豫算案과 民生 法案을 통과시켜야 하는 時點에서 國會 보이콧이 이뤄졌다는 것도 弱點이었다. 또 朴 代表의 트레이드마크인 ‘民生 政治’와도 場外鬪爭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나라당 한 黨職者는 “아스팔트 위의 朴槿惠는 場外鬪爭을 밀어붙이면서 剛한 指導力을 보여줬다. 黨內 立地도 더욱 鞏固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황우석 事件 等으로 私學法 無效 鬪爭이 注目받지 못했고, 場外鬪爭 名分도 弱해 한나라당이 얻은 건 別로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