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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選擧는 人間을 疲弊하게 만든다”|주간동아

週刊東亞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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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選擧는 人間을 疲弊하게 만든다”

“釜山 出馬는 國民에 對한 忠諫…有權者들 選擇에 할말 없다”

  • 入力 2006-05-19 1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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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는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地域割據政治의 壁에 挑戰해온 민주당 노무현副總裁가 ‘4·13總選’에서 落馬했다.

    그는 韓國政治에서 매우 獨特한 存在다. 그만큼 落選을 거듭하고도 有名稅와 支持度를 오랫동안 維持해온 政治人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落選은 오히려 勳章이었던 셈이다.

    YS(김영삼全大統領)가 이끄는 統一민주당 初選議員이었던 그는 91年 3黨合黨 때 YS를 따라가지 않았다가 92年 14代 總選에서 떨어졌다. 95年 ‘6·27地方選擧’ 때는 민주당候補로 釜山市長에 挑戰했다가 糞瘻를 삼켰다. 以後 98年 7月 서울 鍾路 補闕選擧에 出馬해 어렵게 金배지를 달았지만 16代總選을 앞두고 다시 釜山 北-江西乙로 選擧區를 옮겼다. 하지만 이番에도 苦杯를 마셨다. 더욱이 그로서는 이番 釜山 出馬가 次期大權 挑戰까지 念頭에 둔 會心作이었기 때문에 敗北의 衝擊이 더욱 큰 듯했다. 그는 다시 再起할 수 있을까.

    選擧 바로 다음날인 4月14日 저녁 釜山 北區 덕천동 自宅에서 老父總裁를 만났다. 까맣게 變한 얼굴은 지칠 대로 지친 氣色이었다.

    開票일인 지난 13日 午後 6時 어디에 있었나. 放送의 出口調査 發表는 보았나.



    “집에 있었다. TV를 돌려가면서 봤다.”

    落選으로 나왔을텐데 瞬間 어떤 느낌이 들었나.

    “‘졌구나’ 생각하고 너무 놀랐다.”

    落選하리라는 생각을 안했나.

    “해본 적이 없었다.

    ” 한나라당의 牙城으로 불리는 釜山에 민주당候補로 出馬했는데 落選 可能性에 對한 생각을 안했다는 말인가.

    “經驗的으로 輿論調査는 正確한 科學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갤럽과 또 하나의 輿論調査機關의 여러 次例 反復된 調査 結果를 봐왔는데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앞섰다.”

    마지막 調査는 언제 한 것인가.

    “4月10日에 한 것인데 相對보다 8% 程度 앞섰다. 誤差範圍는 4% 程度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95年 釜山市長選擧 때에도 輿論調査에서는 優勢를 보였으나, 實際 結果는 落選으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그때는 처음 한番 앞선 뒤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確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番에는 浮動票까지 整理돼 나가는 것을 確認했다. 浮動票가 30%에서 40%臺로 增加했다가 10%水準으로 줄었지만 내가 繼續 앞섰다. 相對候補와의 隔差는 4, 5%에서 出發해서 7.2, 8%로 漸次 늘어났다.”

    그럼 全혀 變化의 兆朕이 없었다는 얘기인가.

    “나중에 보니까 마지막날(4月12日) 雰圍氣가 안좋았던 것을 제대로 感知하지 못한 것 같았다. 사람들을 만났을 때 是非를 거는 境遇가 있었다. ‘왜 이때 南北頂上會談을 發表하느냐’는 게 週였다. 그때는 例事로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出口調査 結果를 보면서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頂上會談 發表로 인한 嶺南有權者의 牽制心理를 敗因으로 보는 것 같다.

    “아니면 都大體 說明할 수가 없다. 例를 들면 江西區의 대저동 명지동 강동동은 地域區 人口의 30%를 차지하는 地域인데 내가 9, 10% 지고 있었다. 녹산동 가락동 천가동은 10% 地域인데 팽팽했다. 나머지 60% 地域은 내가 거의 20%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開票結果는 地域差異 없이 15∼20% 진 것으로 나타났다. 輿論調査와는 아무런 相關이 없었던 것이다. 有權者들이 輿論調査까지는 理性的 判斷을 했는데 막판에 牽制心理가 發動한 것 같다.”

    選擧 敗北를 確認한 뒤 어제 오늘(13~14日)에는 무엇을 했나.

    “어젯밤(13日) 12時에 地區黨에 나갔다. 사람들에게 할말도 없고…(이 대목에서 그는 목이 멘 듯 暫時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잊어버리자’고 했다. 오늘(14日) 4個 事務所를 한바퀴 돌면서 解團式을 했다. 그리고 ‘길게 보면 民心이라는 것이 天心을 따라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歷史의 흐름이지만 한 時期 한 瞬間 거꾸로 가는 境遇도 있다. 結局 다 좋은 方向으로 갈 것이라고 믿자. 그냥 한番의 選擧로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과는 連絡이 없었나.

    “오늘(14日) 午後에 김대중大統領에게 電話를 드려 “未安하다”고 말씀드렸다. 大統領은 “다 그리 된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셨다. 恒常 大統領이 딱딱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목소리에서는 아주 哀惜해하는 雰圍氣가 느껴졌다.”

    選擧에 진 後 ‘나는 釜山을 擇했는데 釜山 사람들이 나를 버렸다’는 말을 했다는데….

    “그런 게 아니다. 正確히 이렇게 말했다. ‘釜山 사람들이 새로운 選擇을 할 準備가 돼 있는데도 選擇할 만한 政治人이 없으면 되겠느냐. 그래서 釜山에 내려왔는데 아직 釜山 사람들이 準備가 안돼있던 것 같다.’”

    正말 有權者들의 選擇에 不滿이 없나.

    “有權者들의 選擇에 對해 할말이 없다. 옛날에 忠臣은 賃金한테 듣기 싫은 소리를 한참 하다가 귀양을 가고, 귀양을 가면 아침마다 北쪽을 보고 절을 했다. 그래야 忠臣이었다. 只今은 임금의 자리에 國民이 올라가 앉아 있다. 그런데 敢히 내가 어떻게 섭섭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임금에게 ‘直諫(直諫)한다’ ‘忠奸(忠諫)한다’는 말은 있다. 내가 釜山에서 出馬한 것은 어떤 意味에선 直諫-忠諫으로 볼 수 있다.”

    釜山 出馬의 뜻을 굳힌 契機는 무엇인가.

    “99年 1月 한나라당의 馬山集會를 보고 決定했다. 이회창總裁가 남의 洞네에 와서 (地域感情을 刺戟하는) 異常한 소리를 하기에 ‘都大體 저렇게 政治할 수가 있나. 맞서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보면 ‘鬪志’가 생기나.

    “이런 것도 있었다. 나와 이인제 김근태氏 等이 次期 競爭線上에 있는데 사람들에게 剛한 印象을 줘야 한다고 判斷했다. 不可能해 보이는 難關을 突破하는 過程을 통해 좀더 競爭에서 유리한 立地를 確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選擧運動은 어떤 式으로 했나.

    “9月부터 國會에서 會議가 없는 날은 地域區에서 살았다. 11月末부터는 國會에서 票決이 없는 날에는 會議가 있어도 안가고 地域區를 누볐다. 地域에 標가 좀 있다는 사람은 모두 만났다. 그리고 洞네마다 民願 解決을 안한 곳이 없을 程度로 뛰어다녔다.

    選擧運動을 얼마나 熱心히 했다고 스스로 評價하나. 過去 選擧 때와 比較해달라.

    “比較할 수 없을 만큼 했다. 그렇게 熱心히 地域을 누비고 組織을 꾸린 적이 없었다.”

    當選者가 된 한나라당 허태열候補를 어떻게 보나.

    “普通의 候補였다. 大衆的 知名度나 大衆演說, 살아온 밑천은 내가 훨씬 剛했다. 유감스러운 點은 그가 地域感情을 부추기는 쪽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DJ가 釜山經濟를 죽이려고 삼성자동차와 金融機關을 門닫게 했다고 主張했다. 4月2日 合同演說會에서 그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살림살이가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렇죠? 더 나亞支神 분 계십니까? 손 한番 들어보세요. 아! 저기 몇 分 계시네요. 或是 全羅道에서 오신 것 아닙니까? 하하 弄談입니다.’”

    民主黨 內 有力한 次期 大權走者로 이인제選對委員長, 김근태 노무현副總裁 等 세 사람을 꼽는 이른바 ‘50代 트로이카’라는 表現에 同意하나.

    “大選이 不過 2年 남았다. 세 사람이 가장 有力하게 浮刻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을 것이다.”

    盧副總裁가 세 사람 中 唯一하게 落選했다. 그 때문에 트로이카 構圖에 變化가 생길 것으로 보지 않나.

    “아무래도 나한테 不利해진 게 아니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計劃이 없어서 只今은 展望도 잘 할 수가 없다.”

    金副總裁를 어떻게 評價하나.

    “人品에 對해서 尊敬하고 力量에 對해서도 信賴하고 있다. 그의 後援會에 가서 ‘人間과 歷史에 對한 깊은 省察을 土臺로 해서 哲學과 戰略을 갖고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李委員長에 對해서는 그리 좋은 評價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政治人에게 가장 重要한 것은 歷史를 보는 눈이다. 歷史의 흐름 속에서 意圖하고 實踐하는 것이 어떤 結果를 낳을 것이냐는 데 對한 깊은 洞察이 必要하다. 그런데 이인제氏는 3黨 統合을 따라간 것에 對해서는 아무런 言及이 없다. 나와는 길이 다르다.”

    앞으로의 計劃은.

    “選擧는 人間을 너무 疲弊하게 만든다. 當分間 正말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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