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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錫悅 待望論이 나오는 理由|週刊東亞

人物探究

尹錫悅 待望論이 나오는 理由

‘그는 누구인가’를 통해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19-11-16 1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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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전영한 동아일보 記者]

    11月 8日 文在寅 大統領이 靑瓦臺에서 尹錫悅 檢察總長을 앞에 두고 ‘尹錫悅이 아니어도 되는 反腐敗 시스템’을 注文하고 며칠 뒤인 지난 週末 前職 言論社 社長, 前現職 法曹人과 醫師들이 모인 자리에서 話題의 主人公은 斷然 ‘尹錫悅’이었다. 尹 總長이 45度로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人事한 것이나 大統領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받아쓰기하듯 메모하는 모습 等 두 사람의 106日 만의 만남을 하나하나 擧論했다. 

    이날 모인 10餘 名은 모두 現 政府에 批判的인 사람들이었다. 7月 尹 總長이 檢察寵章으로 任命될 때까지만 해도 ‘權力의 忠犬’이라는 視角을 보였다. 그런데 이날은 한결같이 尹 總長을 應援했다. 마지막 對話는 하나의 質問으로 모아졌다. 只今 같은 亂世에 尹 總長처럼 原則과 程度를 지키는 사람이 必要하다, 그렇다면 尹錫悅은 어떤가. 

    아직은 本人이 政治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이 없어 보이고 可能性도 적다고 할 수 있지만, 어찌됐든 이런 對話들은 몇 달 前까지만 해도 想像할 수 없었다. 바야흐로 ‘曺國 vs 尹錫悅’의 戰爭이 ‘文在寅 vs 尹錫悅’의 戰爭으로 變해가는 形局에서 그를 探究해보기로 했다.

    30年 知己 석동현 辯護士

    석동현 변호사가 제공한 대학 시절 MT 사진. 왼쪽에서 첫 번째가 석 변호사, 두 번째가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 제공 · 석동현]

    석동현 辯護士가 提供한 大學 時節 MT 寫眞. 왼쪽에서 첫 番째가 席 辯護士, 두 番째가 尹錫悅 檢察總長. [寫眞 提供 · 석동현]

    尹 總長의 30年 지기로 알려진 석동현 辯護士를 만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大檢察廳 公報擔當官, 法務部 法務課長, 釜山地方檢察廳腸, 서울東部地方檢察廳長을 거친 席 辯護士는 2012年 部下 檢査와 女性 被疑者 間 스캔들에 對한 管理監督 責任을 지고 스스로 檢事長職을 던졌다. 2016年 政界에 入門해 只今은 自由韓國當 法律諮問을 맡고 있다. 지난해 末 世上을 떠난 李載壽 前 機務司令官과 特別監察班 出身인 김태우 檢察 搜査官의 辯護를 맡기도 했다. 檢察 事情에 밝은 野圈 人士로, 平素 유튜브 出演 等을 통해 尹 總長에게도 直言을 아끼지 않았던 人物이다. 

    席 辯護士는 動機인 尹 總長과 서울法大 本考査 時節부터 因緣이 있었다고 한다. 



    “1979年 1月 내 앞, 앞자리에서 試驗을 보던 사람이 尹 總長이다. 그때 일을 鮮明히 記憶하는 理由는 쉬는 時間만 되면 그의 周邊에 네댓 名이 몰려와 ‘이 問題 答이 뭐냐, 數學이 어려웠는데 어떻게 봤냐’며 服朞했기 때문이다. ‘쟤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當時만 해도 全國에서 난다 긴다 하는 애들이었을 텐데 尹 總長이 그들의 멘토 役割을 하고 있었다. 좋은 言辯과 나긋나긋한 態度가 금세 好感을 갖게 했다.” 

    席 辯護士는 尹錫悅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單語로 ‘豪放함, 섬세함, 硬直이라고 느껴질 程度의 原則注意’를 들었다. 

    “斗酒不辭라는 건 널리 알려진 事實이고. 한자리에서 生麥酒를 1萬cc(500cc 20盞)까지 들이켜는 걸 봤다. 尹 總長과 술을 마신 사람들은 그가 醉한 모습을 別로 못 봤다는 게 衆論이다. 大學 時節부터 좀 남달랐다. 法條文을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殺人者가 怨恨은 있지만 막상 죽이려는 意圖는 없었을 境遇 어떻게 해야 하느냐’처럼 哲學的인 苦悶을 했다. 無骨好人人 것 같으면서도 보스 氣質이 있었다. 으스대고 誇示하는 게 아니라 鎭重하면서도, 그 雰圍氣에 반드시 必要한 役割을 하던 사람이다.” 

    79學番이면 維新 末期인데, 時代를 苦悶하는 大學生이라면 運動圈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니었을까. 

    “그 時節 잣대로 보면 그렇지만, 運動圈이 아니라고 苦悶이 적었다고 斷定的으로 얘기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尹(總長)의 境遇 考試에 늦게 붙었다는 것 自體가 그만큼 苦惱가 컸다는 뜻 아닐까.” 

    한마디로 浪人이었나. 

    “經濟的으로 어려웠다면 浪人이겠지만 늘 베푸는 사람이었다. 서울大 法大에서 위로 10年, 아래로 10年 ‘尹錫悅 모르면 間諜’이라는 말이 돌았을 程度로 有名했다. 오랫동안 試驗工夫를 한 德도 클 것이다. 같이 工夫하는 先後輩들과 交流하면서 姜太公이 낚시하며 歲月을 낚듯 考試工夫를 했으니 말이다. 尹 總長 집이 當時 서울 신촌이었는데 그 時節 가장 ‘핫’韓 곳 아니었나. 구석구석 온갖 군데를 돌아다니며 先後輩들과 어울리고 敎科書 知識에 現場이라는 살을 붙여나가던 時節이었을 것이다.”

    “그가 出世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業과 同時에 司試에 合格한 席 辯護士는 檢察, 尹 總長은 學校라는 다른 空間에서 살다 9年 만에 遭遇한다. 

    “尹 總長이 나보다 8年이나 늦게 司法試驗에 붙어 大邱地方檢察廳에 初任 發令이 났다. 나는 그를 너무 잘 알고 있던 터라 엘리트 意識으로 똘똘 뭉친 檢察 組織에서 너무 萎縮되지 않고, 또 너무 튀지 않게 마음을 썼다. 檢事로서 出發이 워낙 늦어, 檢事長이 된다 해도 還甲이 넘어야 할지도 모르는 나이라 組織 內에서 그가 出世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本人도 早急함이 없었고. 그런데 네댓 機首를 두 番이나 건너뛰면서 結局 總長까지 하고 있으니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지 않은가.” 

    2002年 1月 突然 檢察을 떠나 辯護士(法務法人 太平洋)로 일했고 1年 만에 復歸했다. 왜인가. 

    “理由는 잘 모르겠지만, 늦게 組織에 들어와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尹 總長이 辯護士를 한다고 했을 때 ‘너는 열 個를 알면 열다섯, 스무 個를 表現할 수 있는 뛰어난 사람이니 成功할 것’이라고 應援한 記憶이 있다. 그때만 해도 辯護士로 나갔다 다시 檢事로 돌아오는 것 自體가 異例的인 일이었다. 그만큼 組織에서 認定해줬다는 意味고, 나가보니 辯護士라는 게 檢査처럼 신명이나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아니라는 그의 眞情性이 받아들여졌다고 본다. 

    國家情報院(國精院) 댓글造作 事件 搜査 때 抗命波動으로 시끄러웠지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 程度 苦楚에 나갔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辯護士 일에 對한 幻想도 없었을 테고. 檢査라는 職에 對한 欲心이 없었기에 고비 고비마다 自身을 걸 수 있었고, 自身을 다시 받아준 組織에 對한 생각, 名譽에 對한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尹 總長은 以後 7~8年 동안 大檢察廳 中央搜査部(中搜部) 硏究官, 中搜 1·2課長, 서울중앙지방검찰청 特別搜査部 部長檢事를 거쳐 朴槿惠 政府가 始作되면서 水原地方檢察廳 驪州支廳長으로 갔다. 

    그러다 2013年 채동욱 前 檢察總長과 함께 國精院 댓글造作 事件을 파헤치는 過程에서 채 全 總長이 婚外子 問題로 落馬하고 尹 總長도 조영곤 當時 서울중앙지방검찰청醬의 反對를 무릅쓰고 國精院 職員의 逮捕를 强行해 特別搜査팀場에서 更迭됐다. 尹 總長을 象徵하는, “檢事長님이 到底히 따를 수 없는 指示를 해 따르지 않았다. 나는 組織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해 國會 國政感謝狀에서 나왔다. 

    朴槿惠 政府 時節 내내 地方檢察廳 閑職을 輾轉하던 그는 2016年 11月 최순실 國政壟斷 事件이 터지자 박영수 特別檢事팀의 搜査팀長으로 拔擢되면서 華麗하게 컴백했다. 다시 席 辯護士의 말이다. 

    “채 全 總長이 아니었다면 尹의 復活도 없었을 것이다. 機關長으로 나가 있던 사람을 搜査팀으로 끌어들인 것은 總長의 判斷과 決心이 決定的이다. 다른 總長이었다면 그런 人事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4年 後 朴英洙 特檢이 尹錫悅 檢査를 搜査팀長으로 다시 끌어들였는데, 무엇보다 그의 搜査力量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기서 搜査力量이란 搜査의 脈을 잘 잡고 搜査 對象인 相對方을 說得하는 技術을 말한다. 全體 事件을 큰 그림에서 읽고, 相對를 說得할 때도 無條件 잡아 족치거나 탈탈 터는 式이 아니라, 全體 構圖를 說明하면서 여기까지는 處罰을 면할 수 없다는 式으로 說得하는 것이다.”

    積弊淸算의 두 얼굴

    석동현 변호사. [박해윤 기자]

    석동현 辯護士. [박해윤 記者]

    席 辯護士는 “尹 總長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腸이 되기 前까지만 해도 法曹界에서 그를 否定的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積弊搜査를 하면서 平生 먹을 辱을 다 먹었을 것”이라고 傳했다. 

    “所謂 司法壟斷이라고 해서 大法院長, 大法官 等 100餘 名의 法院 最高 首腦部들을 調査했다. 法臺 위아래 10年 先後輩들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지난 20餘 年間 大韓民國 法院을 事實上 이끌어온 엘리트 判事들을 檢事가 調査하는 過程에서 當然히 侮蔑感, 羞恥心을 느끼지 않았겠나. 그 當時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괴로움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記者에게 “尹 總長에게 第一 가슴 아팠던 일이 뭔 줄 아느냐”고 물었다. 

    “바로 변창훈 檢査다. 大學은 한참 後輩지만 試驗 同期 아닌가. 便 檢事 搜査야말로 檢察의 ‘過激 搜査, 非人格 搜査의 銓衡’이었다. 4~5年 前 職場 일을 가지고 집까지 가 뭘 찾을 게 있었겠나. 더구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同僚 檢事라고 봐주기 搜査를 하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겠나. 이화여대 總長과 敎授들을 잡아들이는 것으로 始作된 積弊數詞는 한마디로 狂氣의 搜査였다. 여기에는 尹 總長 立場에서 理解할 수 있는 部分과 그렇지 못한 部分 두 가지로 나눠 말하고 싶다.” 

    그게 뭔가. 

    “모든 게 그렇지만 搜査 亦是 生物이다. 一旦 始作하면 周邊의 影響을 많이 받아 어쩔 수 없는 狀況이 만들어지는데, 이番 政府에서는 部處마다 雨後竹筍으로 積弊淸算 태스크포스팀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左派運動圈들이 占領軍이 돼 保守右派를 潰滅시키려고 지난 政府의 서버를 다 뒤져 以前 政府의 會議資料와 報告書를 다 훑으며 自己네들 視角에서 問題가 있으면 無條件 告訴, 告發하는 式으로 檢察에 던졌다. 積弊搜査팀들과 對話해보면 自己네들한테 온 山더미 같은 資料 가운데 그나마 選別하고 選別해 搜査하고 있다고 하더라. 어쨌든 全國 各 檢察廳에서 差出된 檢事들이 職制에도 없는 ‘琵琶’(非公式派遣) 形態로 特殊部에 配屬됐다. 

    하지만 資料가 山더미처럼 쌓인 테이블 한켠에는 現 政權을 告發한 事件들도 있었을 텐데, 分明히 優先順位에서 밀렸을 것이다. 過去 政府도 政權交替期마다 前 政權의 非理를 調査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돈이 오간 賂物收受 件을 가지고 實勢들을 잡아넣는 等 基準이라는 게 있었다. 이 政府는 行政府의 通商 業務를 ‘職權濫用’으로 싸잡아 걸었다. 職權濫用을 轉嫁의 報道처럼 썼는데, 이런 式이면 이番 政府는 안 걸릴 것 같나. 司正의 狂風이 불 때 兩날의 칼이 돼 다시 自身들을 向하게 될 것이다. 公搜處(高位公職者犯罪搜査處)를 만들고 全國 檢察廳의 特殊部를 縮小하는 데는 이 같은 칼을 避하려는 邪惡한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尹 總長은 私募펀드 搜査 專門家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尹 總長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張으로 있던 2年餘 동안 대여섯 番 찾아가 만났다. 辯護人으로 간 게 아니라, 積弊搜査에 따른 이런 批判的 輿論을 傳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式이면 檢察 組織 全體가 危險해진다, 彈劾으로 앞 政權을 끌어내린 特別한 政府인데 以前 政府의 肅淸 行爲에 檢察이 利用되고 있는 것이다. 政權은 有限하지만 檢察 組織은 繼續 살아 있어야 한다면서 水位 調節을 當付했다.” 

    當時 그는 뭐라고 答했나. 

    “너도 나를 알지 않느냐, 내가 進步政權의 脾胃를 맞추는 것도 아니고, 내 性向은 오히려 保守고 市場經濟를 信奉하는 사람이다. 左派가 아니다. 政治的 欲心도 없다. 法治에 對한 原則과 所信을 지킬 뿐이라고 했다.” 

    實際로 그의 캐릭터가 그런가. 

    “硬直된 側面이 있다고 생각될 程度로 政務的 判斷을 안 하는 것은 認定한다. 國精院 댓글造作 事件 搜査 때도 ‘댓글 몇 個로 輿論이 움직였을 理 있겠느냐. 게다가 國精院은 軍 以上으로 특별한 組織이니 國民과 國精院을 對決 構圖로 만드는 건 組織을 위해서나 너 自身을 위해서나 過猶不及이 될 수 있다. 네가 犧牲될 수 있다’고 直接 말했다. 

    그러자 그는 ‘選擧에 미친 影響이 重要한 게 아니다. 댓글이 單 몇 個라도 國精院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是是非非를 가려야 한다. 더구나 내가 먼저 搜査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지 않나. 搜査팀이 나를 불렀고, 일을 맡은 以上 左顧右眄하지 말아야 한다. 一旦 搜査를 끝내고 社會的 評價, 法院의 評價를 받아보는 게 맞지, 搜査하기도 전 왜 하는지, 어디까지 할지 재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하더라.” 

    曺國 前 法務部 長官 搜査에 對해 얘기해보자. 조 前 長官의 아내 鄭慶心의 公訴狀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直間接的인 搜査 障礙 要因이 많았음에도 이런 結果가 나온 것에 對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이番 公訴狀에서도 드러났지만 搜査팀으로서는 決定的인 證據를 發掘하고자 매우 緻密하게 處理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初에 搜査는 어떻게 始作됐다고 보나. 

    “尹 總長의 스타일上 大統領에게 報告하지 않았을 것이다. 本人 스스로 判斷해 조 前 長官의 境遇 그 程度가 甚하다고 보지 않았을까. 이런 任命候補者를 밀고 가다 보면 現 政府에 絶對 得이 되지 않는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政府의 公的(公的) 決定 過程이 國民 눈높이에서 벗어나면 大統領 영(令)李 서지 않을 것이라는 判斷 말이다. 萬若 조 前 長官이 一般 敎授에서 拔擢된 사람이라면 搜査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靑瓦臺 民政首席祕書官으로 權力 核心에 있으면서 한 일이라면 問題가 된다고 判斷했을 것이다.” 

    尹 總長이 私募펀드 搜査 專門家라는 말도 있던데. 

    “參與政府 時節 不法 大選資金 事件, 現代自動車 祕資金 事件, 三星 祕資金 事件을 비롯해 부산저축은행 事件, LIG그룹 企業어음 事件 等을 搜査했다. 外換危機 때 론스타度 搜査했다. 私募펀드의 ‘먹튀 手法’에 對해 直間接人으로서 搜査 經驗이 있는 사람이다. 또 現役 中 特殊 搜査를 가장 많이 해본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特殊部 檢事를 25年 以上 하면 大槪 中間에 企劃部署에도 몇 年씩 가고 法務部에서도 일하는데 尹 總長은 한 番도 그런 적이 없다. 오로지 搜査 分野에만 있었다.” 

    檢察總長이 될 때 個人的으로 反對意見을 傳했다고 들었다. 

    “바로 總長으로 가기보다 1年이라도 高等檢察廳이나 暫時 呼吸을 가다듬을 수 있게 閑職으로 가길 바랐고, 그러리라고 봤다. 檢察 生理를 잘 아는 사람 立場에서 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長도 破格이었는데, 大統領 任期가 3年이나 남았으니 總長은 언제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아무도 疑心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무 빨리 가는 건 當事者를 위해서나, 檢察 組織을 위해서나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듣기로는 처음엔 候補群이 아니었다는데, 막판에 靑瓦臺에서 넣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靑瓦臺가 너무 躁急하게 保守를 潰滅시키겠다는 모드를 밀고 나간 性急한 人士였고, 그것이 結局 ‘曺國 事態’로 칼이 돼 돌아왔다. 曺國을 法務部 長官으로 임명해 左派의 민낯을 드러낸 政府나, 檢察總長이 돼 그런 搜査를 指揮한 尹錫悅이나 모두 虎狼이 等에 탄 格이다. 이제 尹 總長이 虎狼이가 돼주길 바란다. 

    어느 政權이나 3年 茶가 되면 內部의 權力 暗鬪를 避할 수 없다. 權力型 非理가 드러날 텐데 尹 總長이 繼續 살아 있는 權力에 對해서도 嚴正함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 檢事들이 매우 파이팅하는 雰圍氣다. 리더의 힘은 이런 데서 나온다. 여태까지 이런 總長은 없었다. 私心이 없고 繼續 野戰에만 있었으며 어려운 고비마다 默默히 자리를 지켰다는 것이 信賴의 背景이다.” 

    이 대목에서 참았던 質問을 던졌다. 

    政治를 할까. 

    “人氣로 보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絶對 안 할 것이다. 政治는 左顧右眄해야 하고 輿論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자리 아닌가. 더구나 檢察總長까지 한 사람이 國會로 가는 건 이제 不可能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尹 總長은 只今까지 自身이 걸어온 길이 政治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尹錫悅의 行步는 ‘시원한 사이다’

    席 辯護士의 인터뷰를 土臺로 檢察 內部 사람들의 좀 더 다양한 意見을 듣고자 檢査場을 지낸 前職 高位 官僚와 現職 法曹界 人士들을 만났다. 이들 大多數는 “尹 總長이 檢察總長이 된 것에 對해 反對輿論이 높았다. 旗手 破壞로 前途有望한 人材들이 떠났고 ‘尹錫悅 師團’도 만들어졌으니 어찌 보면 當然한 일 아닌가. 하지만 只今은 雰圍氣가 180度 바뀌고 있다”고 傳했다. 한 前職 檢察 高位職 人事의 말은 달라진 雰圍氣를 代辯했다. 

    “專門家 集團에서 ‘拔擢 人事’는 結局 無理手 人士다. 組織 內部의 安定을 위해 좋지 않다. 게다가 尹 總長은 經驗이 너무 적었다. 能力에 對해서도 나는 높게 評價하지 않는다. 시끄럽게 搜査하는 사람이다. 뭐든 일處理를 조용하게 하는 사람이 鼓手 아닌가. 그런데 結果的으로 大統領이 임명했다. 어쩌면 曺國 事態는 하늘이 尹 總長을 도운 거라고도 할 수 있다. 積弊搜査로 檢察 內에 적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을 죽어나가게 하고 그 많은 사람을 矯導所로 보낸 데다, 風飛雹散 난 家庭이 어디 한둘인가. 이렇게 怨恨을 많이 샀으니, 曺國 事態가 없었다면 尹 總長의 未來는 어찌 됐을지 아무도 모른다. 本人을 위해서도 曺國 事態는 天運을 만난 것이다. 曺國 關聯 搜査는 原則을 지킨다는 自己 正體性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 할 수 없었을 테다. 正常的인 狀況이라면 大統領이나 法務部 長官과 隻을 지는 檢察總長이라는 게 말이 되나. 이番 事態가 아니었다면 尹 總長이 法曹界 안에서 名譽를 回復할 機會가 없었다. 이番 搜査로 그나마 조금 묻혔다. 어찌 됐든 요즘 우리는 그를 應援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물었다. 조 前 長官은 果然 拘束이 될까. 한 法曹界 人士의 말이다. 

    “이미 政治的으로 죽은 목숨이라 무슨 意味가 있을까 싶지만 尹 總長 立場에서는 重要하다. 특별한 것이 안 나오면 그 壓迫을 어떻게 견디겠나. 政治 搜査를 해봤지만 搜査 當事者가 받는 壓力은 想像을 超越한다. 搜査팀은 只今 拘束을 위해 목을 맬 수밖에 없다. 令狀이 棄却만 돼도 엄청난 傷處를 입을 것이다. 左派들이 오죽한가. 尹 總長을 죽이려 달려들 텐데. 尹 總長 立場에서 最善의 選擇은 이番 搜査를 잘 마무리하고 옷을 벗는 것이다. 어떻든 高位 公職者로서 任命權者의 뜻을 거슬러 싸운 것 아닌가. 나는 尹 總長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가 政治를 選擇할까. 그리고 그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여기에 對해서는 肯定과 否定 兩論이 엇갈렸다. 

    (不正) “政治를 할지 말지는 그의 選擇이지만 于先 法曹界 出身이 政治를 하는 것에 反對한다. 해서도 안 된다. 圖書館에서 司試工夫만 하다 社會 經驗이라고 해봐야 온통 罪人들만 만났으니 國民을 罪人으로 보는 想像力을 가진 사람들이다. 政治 指導者로서는 不適合하다. 게다가 尹 總長은 葛藤을 調整하는 게 아니라 葛藤을 부추기는 兄이다. 國家 指導者로서 適合하지 않다.” 

    (肯定) “사람 나름이다. 尹 總長은 檢察 內에서도 매우 드문 캐릭터다. 말이 아닌 行動으로, 權力에 맞서 모든 것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준 檢察總長은 이제까지 없었다. 先後輩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로 ‘놀랍다’고 생각한다. 政治 感覺이 없다고 하지만 國政感謝狀에서 ‘政治9段’ 朴趾源 議員을 ‘다루는’ 배짱을 보지 않았나. 內部를 똘똘 뭉치게 만드는 리더십도 대단하고. 指導者로서 資質이 充分하고 본다.” 

    尹錫悅 待望論은 아직 이르고 섣부르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솔솔 나오는 背景에는 갈수록 답답해지는 現實에서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는 民心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野圈에 마땅한 候補가 없는 狀況에서, 또 다들 時流에 便乘하고 陣營 論理에 빠져 있는 世態에서 ‘저런 사람이라면 亂麻처럼 얽힌 昨今의 狀況을 突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期待가 엿보였다. 匿名을 要求한 한 政治學者의 말이다. 

    “指導者는 時代가 만든다. 時代가 要請하고 國民이 願하면 누구도 拒否해서는 안 되고 拒否할 수도 없다. 앞에서는 正義를 내세우고 뒤에서는 野合하는 사람들만 득실거리는 狀況에서 잘못된 것을 一刀兩斷하고 未來를 뚫고 나가는 突破力을 보여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熱望이 높다. 가지 치고 얽힌 것을 끊고 舊態들을 剔抉하는 指導者를 想像하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그런 點에서 尹錫悅 待望論은 한 番쯤 꿈꿔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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