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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난 海洋 安全運航 시스템 出港 前부터 沈沒하고 있었다”|주간동아

週刊東亞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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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난 海洋 安全運航 시스템 出港 前부터 沈沒하고 있었다”

인터뷰 | 航海學子·船舶工學子 공길영 敎授가 본 歲月號 沈沒 5가지 理由

  • 최영철 記者 ftdog@donga.com

    入力 2014-05-26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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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 난 해양 안전운항 시스템 출항 전부터 침몰하고 있었다”
    大統領이 울었다. ‘鐵女’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歲月號 沈沒 慘事의 最終 責任을 自身에게 돌리고 ‘海洋警察(海警) 解體’라는 爆彈宣言까지 했다. 하지만 國民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憤怒의 응어리가 남아 있다. 歲月號를 沈沒케 한 直接的 原因이 아직까지 明確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그 어린 生命들을 죽게 한 安全 不感 시스템은 그대로 稼動되고 있기 때문이다. 朴槿惠 大統領의 對國民談話에도 事故 빌미를 提供한 官僚에 對한 處罰과 船舶安全 關聯法 改正에 對한 內容은 없었다.

    反對로 움직인 安全裝置 强化 對策

    歲月號 沈沒 斬死 原因 및 再發防止策과 關聯해 한국해양대 航海學部 공길영(50·工學博士) 敎授는 ‘週刊東亞’와의 인터뷰에서 “세월호는 仁川港을 出發하기 前 海洋安全 擔當 官僚들이 만들어놓은 海運 關聯法과 그 運航 시스템 때문에 이미 沈沒하고 있었다”며 “海洋水産部(海水部)와 海警 官僚들은 모든 시스템을 自身들에게 法的 責任을 지우지 못하게 만들어놓았다”고 밝혔다.

    孔 敎授는 歲月號 慘事 以後 言論에 가장 많이 登場한 專門家 中 한 名이며, 한국해양대 次元에서 事故 原因 및 再發防止策과 關聯한 分析報告書를 만들고 있다. 그는 한국해양대 航海學科를 卒業하고 碩士學位는 船舶設計工學으로, 博士學位는 海事安全工學으로 取得한 航海學者 兼 船舶工學者다. 實際 2級 航海士 免許를 가지고 7年間 배를 타기도 했다. 그中 3年은 1等 航海士를 맡았다. 한국해양대 敎授가 되기 前에는 國防科學硏究所에서 8年 동안 船舶 設計와 關聯한 技術 分析 業務를 擔當했다. 孔 敎授가 다른 言論 인터뷰에서 밝히지 않은 것들만 따로 整理했음에도 衝擊的인 內容이 적지 않았다.

    “구멍 난 해양 안전운항 시스템 출항 전부터 침몰하고 있었다”
    ▼ 歲月號 慘事의 前兆가 있었다고 했는데.



    “1996年 만들어진 海水部가 2008年 이명박 政權이 들어선 後 없어졌다. 그즈음부터 海洋事故가 500餘 件에서 700餘 件으로 急增한다. 이番 政權에서 海水部가 다시 復活했지만 이런 大型 慘事가 벌어졌다. 海洋事故가 急增한 데는 다 그만한 理由가 있다. 問題는 그 前兆를 無視했다는 點이다. 西海훼리호 事故 以後 20餘 年 동안 各 政府가 세운 海洋 災難事故 防止策은 安全措置 强化와는 正反對쪽으로 움직였다. 事實 歲月號 慘事는 그 結果物이라고 봐야 한다. 세월호는 이미 우리 社會의 安全 不感症이 낳은 時限爆彈을 싣고 바다를 누비고 있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 旅客船 出港 前 安全點檢은 누가 하나.

    “1993年 西海훼리호 沈沒 事故 以前에는 建設교통부 傘下 各 地方 海洋港灣廳이 모든 沿岸旅客船의 出港 前 安全點檢을 했다. 그런데 西海훼리호 事故 以後 安全點檢에 對한 指導 및 監督을 海警으로 떠넘겼다. 海警도 맡아서 해보니 每番 確認하기 부담스러우니까 船社 모임인 한국해운조합(運航管理室)에 出港 前 安全點檢 業務를 떠넘긴다. 月給을 船舶 主人인 船社들로부터 받는데 제대로 安全點檢이 되겠나. 그러고선 運航管理者 數만 70餘 名으로 늘린다. 그 後 只今까지 運航管理者가 出港 前 安全點檢을 하고 있다.

    海警은 運航管理者에 對한 指導 및 監督權만 갖는다. 海警 側 論理는 一旦 運航하게 하고 以後 問題가 생기면 團束하겠다는 거다. 무척 잘못된 發想이다. 旅客船은 陸上 交通手段과 달리 事故 被害가 엄청난 데다 出港 地點이 定해져 있다. 當然히 警察이든, 海水部 職員이든 直接 가서 出港 前 安全點檢을 一一이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過積을 했는지, 貨物 結縛(古朴)은 제대로 했는지 直接 確認하고 未備한 部分이 發見되면 出港 停止를 하는 等 責任을 지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어야 한다.”

    ▼ 事故 原因과 關聯해 海警과 海水部 官僚에 對한 檢察 搜査가 進陟이 되지 않는다.

    “모든 關聯法과 制度 等 船舶安全과 關聯한 指導 및 監督 시스템에서 自身들이 法的 責任을 지지 않도록 만들어놓았다. 세월호의 境遇 2012年 10月 日本에서 들여와 上部 構造 變更을 한 다음 2013年 3月부터 運航을 始作했다. 一旦 배가 運航을 始作하려면 船舶安全法上 上部 構造物 變更에 따른 復元性 關聯 審査를 韓國船級으로부터 받고 承認書를 받아야 한다. 그다음에는 이 承認書를 바탕으로 船舶 會社가 作成한 運航管理規定을 海警으로부터 審査받아 海水部에 提出하고 最終 運航 許可를 받는다.

    대충 보고 出港 許可 내줘

    “구멍 난 해양 안전운항 시스템 출항 전부터 침몰하고 있었다”

    2003年 3月 仁川海洋警察署腸이 내준 세월호의 運航管理 規定 審査證明서(왼쪽)와 運航管理規定에 나온 세월호의 勸告 航路.

    運航管理規定에는 韓國船級이 내준 復元性 關聯 檢査 承認書를 바탕으로 船舶에 搭載할 수 있는 貨物 무게, 車輛 臺數 및 古朴 方法, 그리고 坪型數는 얼마나 실어야 하는지 等等 船舶의 安全運航과 關聯한 各種 指針이 담긴다. 海警은 禪師로부터 運航管理規定을 받아 妥當性을 審査한다. 여기서 問題가 터진다. 海警이 韓國船級의 承認書를 確認하지 않은 채 禪師가 任意로 作成한 運航管理規程만 審査하고 確認書를 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海警은 自身이 審査한 運航管理規定을 船社들이 違反하지 않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出港 前 現場 安全點檢 責任을 한국해운조합 運航管理者들에게 떠넘겼다. 運航管理者들은 대충 만재 吃水線(배가 잠기는 깊이)만 雙眼鏡으로 보고 出港 許可를 낸다.

    더욱 氣가 찬 대목은 海水部의 運航 許可 過程이다. 海水部는 韓國船級이 船舶의 安全運行을 위해 先師에 提示한 이러저러한 條件을 全혀 모르는 狀態에서 韓國船級의 復元性 關聯 資料가 제대로 反映되지 않은, 禪師가 自己 입맛에 맞게 짜 맞춘 運航管理規定을 根據로 運航 許可를 내주고 있다.”

    ▼ 어쨌든 運航 許可를 海水部가 내주니 法的 責任이 있는 것 아닌가.

    “現行 海運法上 運航 許可 過程은 韓國船級이 檢査할 當時 提示한 安全措置 强化 條件을 禪師가 充分히 숨길 수 있는 構造로 돼 있다. 禪師가 船舶의 存在 事實만 證明하면, 卽 船舶이 登錄돼 있으면 許可가 난다. 安全 關聯 基準과 指針이 제대로 反映됐든, 안 됐든 運航管理規程만 提出하면 된다. 海洋事故는 大部分 韓國船級의 檢査가 제대로 되지 않은 境遇, 또는 그 檢査에 對한 海警 側 心思가 제대로 되지 않은 境遇, 아니면 禪師가 船舶을 運航하면서 運航管理規定대로 運航하지 않은 境遇에 일어난다.

    그런데 海水部는 韓國船級의 安全 關聯 檢査 結果를 모르고, 이를 제대로 反映하지 않은 運航管理規程만 提出받아 運航 許可를 했으니 法的 責任이 없다는 거다. 아니,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놓고 이 許可 過程과 關聯한 理解 關聯 團體에 海水部 官僚가 줄줄이 代表나 任員으로 내려가는 게 말이 되는가. 運航 許可를 내줬으면 責任도 지는 게 옳다.”

    ▼ 2009年 海水部는 船社들의 要請에 따라 海運法上 20年(安全措置 後 25年)으로 制限돼 있던 仙靈을 30年으로 늘렸다. 이것을 세월호의 操舵機 고장 等 直接的 事故 原因으로 보는 視角도 있다.

    “當時 關聯 報告書를 다 읽었다. 海運組合이 强力히 要求해 船齡이 바뀐 것으로 안다. 當時 仙靈 制限을 段階的으로 5年에서 10年으로 늘린 根據는 海水部가 한 設問調査였다. 海水部 官僚, 海運組合 關係者, 船社 職員, 船舶 運航者, 船舶 檢査機關의 技術者들이 그 對象이었다. 設問調査 結果 全體 60% 程度가 贊成했다. 贊成한 이는 大部分 先史나 海運組合, 海水部와 關聯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船舶 檢査機關 技術者의 60% 程度가 反對했고, 나머지 34%도 仙靈 延長은 하되 安全檢査를 補完하는 條件으로 贊成 意見을 냈다.”

    ▼ 仙靈을 延長하면서 安全 條件이 强化됐나.

    “結局 安全檢査를 補完하는 條件으로 船齡이 延長됐다. 그런데 補完된 檢査 基準을 보면 安全 條件이 제대로 反映되지 않았다. 船體 外販이나 電氣設備, 火災探知 分野만 補完돼 있을 뿐, 老後 船舶의 安全運航에 가장 威脅이 되는 엔진, 操舵裝置, 航海裝備 等에 對한 檢査 强化 內容은 없다. 合當한 檢査 基準도 마련하지 않고 仙靈을 延長했다는 얘기다. 自動車가 鐵板만 두껍다고 安全한가. 歲月號 慘事에서 問題가 되는 것도 操舵機 아닌가. 萬若 引揚 後 調査過程에서 操舵機 故障이 急激한 船舶 回轉과 沈沒의 直接的 原因 中 하나로 밝혀진다면 이런 背景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보면 된다.”

    ▼ 그렇다면 日本은 왜 歲月號를 18年 만에 팔았나.

    “韓國과 中國을 除外하고, 日本을 비롯한 船舶 先進國의 境遇 船舶 仙靈 制限 自體가 없다. 日本은 沿岸旅客船의 安全檢査 基準을 國際 旅客船 檢査 基準에 맞추게 돼 있다. 檢事가 宏壯히 까다롭다. 日本 船主들에게 물어보면 船舶이 15年이 넘어가면 檢査 基準을 맞추는 데 修理費가 너무 많이 들어가 오히려 새 배를 만드는 게 낫다고 말한다. 15年 以上 되면 팔려고 애쓴다.”

    ▼ 세월호는 慘事 當時 運航管理規定을 제대로 지켰나.

    “세월호의 첫 番째 不運은 안개로 出航 時間이 遲延됐다는 點이다. 세월호는 慘事 前날인 4月 15日 저녁, 出航 時間이 짙은 안개 때문에 2時間 30分 程度 遲延됐다. 氣象廳 資料에 따르면 當時 可視距離는 800m 程度였다. 그런데 規定上 可視距離가 1000m 以下면 出港 停止하게 돼 있다. 規定을 어긴 것이다.

    다음 不運은 國內에서 潮流가 빠르기로 소문난 맹골水路를 지나갔다는 것이다. 내 判斷으로는 세월호가 運航管理規定에 나온 勸告 航路를 벗어난 듯하다. ‘제 航路를 지켰다’는 海水部의 主張은 ‘海圖上에 나타난 勸告 航路를 간 것은 아니지만 旅客船 通航 禁止 航路를 利用한 것은 아니다’라는 뜻일 것이다. 海圖上 勸告 航路를 利用하지 않은 理由는 濟州 入港을 서두르기 위해서였다. 航海 時間이 넉넉했다면 어느 船長도 危險한 맹골水路를 지나가려 하지 않는다.

    檢査 基準 없이 船齡만 延長

    船長이 時間에 쫓기고 있었다는 點은 세월호가 慘事 當時 速度가 19노트로 엄청나게 過速하고 있었다는 點을 보면 알 수 있다. 運航管理規定上 最高速度는 20노트로 나와 있지만, 實際 그 速度로 달리는 배는 없다. 平素에는 17노트가 最大다. 그 以上 速度를 내면 燃料 消耗量이 엄청나게 增加한다. 기름값이 많이 들기 때문에 絶對로 그렇게 빨리 運航하지 않는다.”

    ▼ 老後 船舶인 세월호가 그렇게 過速하면서까지 달릴 수 있나.

    “배가 가벼워져 그렇다. 仁川에서 事故 地點까지 갔을 時點에는 燃料價 20~30t 消耗됐을 거다. 乘客들과 船員들이 씻을 때 쓰는 淸水도 적게 잡아 50~60t 消耗됐을 테고 食品 等을 합쳐 約 100t이 消耗됐을 거다. 燃料나 淸水, 食品은 배 밑바닥에 貯藏탱크(발라스트 탱크)가 있어 平衡水와 함께 기울어진 배를 바로 잡는 機能(復元力)을 한다. 船長은 이것들이 비는 量만큼 바닷물(海水)로 平衡數를 채워야 한다. 그런데 船長은 平衡數를 채우지 않았다. 波濤가 크게 일지 않고 배가 기울어질 可能性도 없다고 判斷한 船長은 潮流가 거세기로 有名한 맹골水路의 危險性을 看過한 것이다. 어쨌든 배가 가벼워져 19노트로 過速하다 事故가 났다는 點은 分明하다.”

    “구멍 난 해양 안전운항 시스템 출항 전부터 침몰하고 있었다”

    공길영 敎授는 “歲月號 沈沒 前 닻(怨 안)에 크레인만 걸었어도 人命救助와 搜索이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 事故 原因 中 過積이 큰 問題로 指摘되고 있다. 세월호 增築 後 海警 審査 過程에서 問題는 없었나.

    “淸海鎭海運이 海警의 審査를 받은 運航管理規定을 보면 큰 問題가 發見된다. 甚하게 말하면 海警이 눈 감고 審査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배 밑바닥에는 燃料탱크와 淸水탱크, 平衡水탱크 等이 있다. 이들은 平衡水와 함께 배 均衡을 잡는 데 決定的인 機能을 한다. 세월호는 日本에서 처음 만들어질 때 실을 수 있는 貨物 總量인 載貨重量(全體 重量에서 倍 무게를 뺀 것)李 3981t이었다.

    以後 淸海鎭海運이 韓國으로 들여와 構造 變更을 하면서 배 自體 무게인 敬賀重量이 187t 늘었다. 그렇다면 실을 수 있는 全體 貨物의 무게인 載貨重量 許容量은 그만큼 줄어 3794t이 되는 것이 當然하다. 그런데 審査 後 承認이 난 運航管理規定上 載貨重量 許容量은 3963t이 됐다. 日本에서 처음 배를 만들 當時 載貨重量에서 18t밖에 줄지 않았고, 韓國船級의 檢査 結果 許容値보다 173t이나 많이 策定된 것이다.

    쉽게 말해 倍 무게가 늘어나면 싣는 貨物을 줄여야 배가 가라앉지 않고 安全하게 航海할 수 있다. 그런데 173t이 왜 重要하냐면, 平素에도 過積을 慣行처럼 일삼아온 세월호의 境遇 貨物을 3794t 꽉 채운 狀態에선 單 몇 t만 더 실어도 배가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을 꽉 채운 바가지에 물 몇 방울만 떨어져도 바가지 全體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과 같은 理致다. 歲月號에게 超過된 173t 載貨重量은 ‘毒藥’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모두가 海警의 審査와 海水部의 許可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海警은 그런 말도 안 되는 運航管理規定을 왜 承認한 것인가.

    “淸海鎭海運이 海警의 運航管理規定 審査를 받으면서 세월호 構造 變更 後 韓國船級이 줄여놓은 載貨重量 許容値를 全혀 反映하지 않았거나, 檢査 結果 承認書 自體를 보여주지 않은 것으로 推測된다. 그렇다면 海警의 審査 過程에서 걸러져야 하는데, 參與 審査委員들이 왜 圖章을 찍어줬는지도 疑問이다. 當時 審査에는 海警은 勿論, 海水部 官僚와 韓國船級, 船舶安全技術公團 專門家들도 參加한 것으로 알고 있다.”

    ▼ 檢警合同搜査本部의 搜査 過程에서 청해진해운 濟州知事의 職員이 事故 直後 本社에 貨物量을 操作하라고 한 情況이 드러났다.

    “바로 그 部分이 173t이다. 事故가 나니 保險 支給 與否에 影響을 미칠 것 같으니까 當場 고치라고 한 거 같다. 職員이 貨物量을 180t 줄이라고 한 걸 보면 얼추 맞아 들어간다.”

    ▼ 아직도 歲月號 慘事로 因한 失踪者가 남아 있다. 引揚 얘기가 조금씩 흘러나온다.

    “船體를 플로팅 도크 위로 完全히 들어 올려 陸地로 옮기는 引揚은 失踪者 家族의 同意가 없이는 不可能하다고 봐야 한다. 失踪者를 찾는 게 急先務다. 하지만 事故 初期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完全히 가라앉기 前 海警이 失踪者 搜索을 위한 船體 浮力 維持를 하지 않은 點은 안타깝다.”

    ▼ 船體 浮力 유지란 무엇인가.

    “배를 完全히 空中으로 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가라앉지 않도록 배 一部만 水面 위에 떠 있게 잡아주는 方法이다. 세월호는 4月 16日 아침 事故 發生 後 18日 正午 무렵까지 選手가 떠 있었다. 배 안에 남아 있는 乘客을 救助하려면 떠 있는 배가 가라앉지 않게 잡아주는 게 最優先이었다. 船體가 繼續 물속으로 잠기면 潛水師가 船體에 接近하기도 어렵다. 選手에 보면 兩쪽에 앵커(닻)가 있고 바우스러스터(曳引船 없이 港口에 接岸하려고 選手에 設置한 작은 프로펠러)에 큰 구멍이 있다.

    歲月號 水面 가까이 끌어 올려야

    배가 가라앉기 前 앵커 체인에 海上 크레인만 걸어뒀더라도 배는 가라앉지 않았고 人命救助와 搜索이 容易했을 것이다. 完全 引揚은 時間도 많이 걸리고 일도 複雜하다. 事故 直後 潛水師가 보트를 타고 가서 크레인을 앵커 체인에 걸어두기만 하면 作業이 끝나는 狀況이었다. 當時 寫眞을 보면 海警 隊員이 實際 選手 앵커 위에 올라가 있는 컷도 있다.

    세월호가 完全히 가라앉을 當時 3600t級 크레인 2臺와 2000t級 크레인 等 總 3代의 海上크레인이 現場에 到着해(4월 18日 새벽) 있었는데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크레인이 到着한 것을 보고 ‘아, 앵커 체인과 連結해 배가 가라앉는 걸 막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海上크레인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都大體 海警이 海上크레인을 왜 불렀는지 疑問이다.”

    ▼ 當時 到着한 海上크레인으로 歲月號 무게를 견딜 수 있었겠나. 앵커 체인은 倍 무게를 堪當할 수 있나.

    “流入된 바닷물 等을 합쳐 歲月號 倍 무게가 1萬t이라 하더라도 當時 選手는 浮力을 받고 있는 狀態이고, 선미가 海底에 닿아 있어 水面 위로 살짝 들어주는 일은 아무리 計算해도 3600t 海上크레인 1代면 充分했다. 앵커에는 스토퍼라는 裝置가 있어 運航 中에는 完璧하게 固定된 狀態라 몇千t은 거뜬히 견딘다. 거기다 배가 浮力을 받아 倍 무게를 充分히 堪當할 수 있다. 只今이라도 늦지 않았다. 現在 船體 狀態에서는 失踪者를 全部 찾는 일이 어려울 뿐 아니라 時間도 많이 所要된다. 배를 水面 가까이 끌어 올려 나머지 失踪者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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