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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息을 꾸짖지 않고 어떻게 잘 키웁니까?|주간동아

週刊東亞 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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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息을 꾸짖지 않고 어떻게 잘 키웁니까?

대 이은 靑鶴書堂 서재옥 勳章 “道理가 무너져 家庭·學校·社會가 흔들리는 것”

  • 異說 記者 snow@donga.com

    入力 2011-03-07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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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을 꾸짖지 않고 어떻게 잘 키웁니까?
    새 學期가 始作되는 요즘, 上位圈에 오른 네이버 靑少年 檢索語가 妙한 餘韻을 남긴다. ‘親舊 사귀는 法’ ‘새내기 親舊 사귀는 法’. 인터넷 知識人에 사람 사이 親交法을 묻는 10代들이 낯선 한便, 새삼 人性敎育이라는 單語를 곱씹게 된다. 이런 안타까움은 京畿 이천시 마장면 이평리 靑鶴書堂의 서재옥(49) 勳章을 만난 뒤 더욱 짙어졌다. 師弟 間 暴行 等 ‘學校 崩壞’가 深刻한 요즘, 徐 勳章을 만나 處方을 물었다.

    청학동 아버지 利川의 아들

    “安寧하십니까. 깔깔깔.”

    3月 2日 午後 서울에서 自動車로 2時間假量 달려 到着한 靑鶴書堂. 앞마당에 들어서자 꼬마 淑女들이 낯선 손님에게 스스럼없이 배꼽人事를 건넸다. 徐 勳章이 居하는 本館 事務室로 들어가니 몸가짐이 절로 端正해졌다. 跏趺坐를 틀고 앉은 徐 勳章이 봄내 그윽한 菊花茶를 勸했다.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되 鎭重하고, 눈빛은 溫和한 한便 매서웠다.

    “現代 敎育은 받은 적 없습니다. 일곱 살 때부터 漢學者인 아버지 밑에서 漢學을 익혔죠.”



    慶南 河東郡 청암면 묵계리의 청학동은 회초리와 嚴한 ‘勳章 할아버지’로 象徵된다. 徐 勳章의 父親인 서계용(93) 翁은 청학동을 開拓한 人物로 통한다. 鷄龍山 기슭에서 學問을 하다 6·25戰爭 以後 청학동으로 터전을 옮겼고, 最初로 청학동에 洞네 書堂을 열었다. 父親은 只今도 청학동을 지키고 있다. 徐 勳章은 청학동 土박이다.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에게 ‘千字文’ ‘ 小學’ ‘明心寶鑑’ ‘童蒙先習’ ‘擊蒙要訣’等을 배웠다. 스무 살 以後에는 漢學의 代價를 스승으로 모시려 故鄕을 떠났다. 그리고 忠南 扶餘의 서암 김희진 先生 等에게 師事하며 漢學者로 基本技를 다졌다. 그러다 1980年 後半 故鄕으로 돌아와 오늘날 靑鶴書堂의 밑그림을 그린다.

    “故鄕으로 돌아오기 前 外地에서 만난 한 敎授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요즘 司祭 間에는 情이 없다. 當身은 한 사람을 가르치더라도 괜찮은 弟子를 길러라’. 그 이야기를 듣고 청학동 사람이 지닌 傳統을 都市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청학동으로 다시 온 그는 靑鶴書堂의 門을 넓혔다. 漢文뿐 아니라 人性 敎育을 始作하자 하루가 다르게 書堂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特히 初等學生 學父母 사이에서 放學마다 子女를 書堂에 보내는 것이 流行처럼 번졌다. 素朴한 洞네 書堂에서 全國區 書堂으로 變貌한 것이다.

    “청학동이 對外的으로 알려지면서 敎育이 놀이처럼 가볍게 變貌해갔어요. 書堂 本然의 役割을 잊은 私敎育 業體가 雨後竹筍 들어섰고요. 아이들은 즐거워했지만 父母들은 ‘嚴한 敎育’을 아쉬워했죠. 제대로 된 書堂을 다시 내고 싶어 청학동 書堂을 동생에게 맡기고 5年 前 利川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情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 아파도 옳은 것 가르쳐야

    자식을 꾸짖지 않고 어떻게 잘 키웁니까?
    처음에는 多少 썰렁했으나, 5年이 지난 只今 靑鶴書堂 經營은 安定期로 접어들었다. 個人은 勿論 學校 團體 캠프도 잦아 徐 勳章과 5名의 補助敎師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靑鶴書堂은 2泊3日 캠프 코스부터 放學龍仁 1~4週 코스, 그리고 1年間 宿食하며 지내는 長期 코스까지 多樣하다. 記者가 訪問한 날은 開學 直後라 一部 長期生이 書堂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 學生들은 人性·禮節 敎育, 漢文 敎育, 體驗學習, 傳統禮節 敎育 等을 받는다. 그는 “‘兩班은 行動擧止가 점잖고 조용해서 잘 살고, 常놈은 가볍고 賤하게 行動하기에 못 산다. 賤한 行動을 하고 잘되는 놈이 없다’라고 學生들에게 말하면 잘 理解한다. 本人들도 잘 살고는 싶으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徐 勳章의 敷衍 說明은 길어지는 趨勢다.

    “10年 前에는 ‘父母님이 너희를 낳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라고 물으면 ‘孝道해야죠’라고 答했어요. 요즘은 ‘責任져야죠’라고 말해요. 어릴 때 父母가 子息의 그늘이 됐다면, 父母 늙어서는 子息이 그늘 役割을 해야 하는데, 요즘은 父母 犧牲을 너무 當然視합니다.”

    徐 勳章은 무너진 家庭敎育科 學校敎育을 憂慮했다. 그에 따르면 예전에는 1週日 敎育을 받고 나가면 2週日間 다른 아이가 됐다. 只今은 2週 敎育을 받고 나가도 그 效果가 1株를 못 간다. 맞벌이 夫婦가 늘어나 家庭敎育이 망가지고, 一部 使命感과 責任感 있는 敎師의 앞길이 制度的으로 막히면서 學校敎育이 무너졌다는 것. 그는 “父母의 過保護가 가장 큰 問題”라며 父母의 道理를 慨歎했다.

    “요즘 父母들은 돈, 아파트를 남기는 게 父母의 道理인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高等學校까지 보내면 子女를 독립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基本 사람 本만 튼튼히 심어주면, 스무 살 以後는 本人 몫입니다. 基本 敎育을 받은 맨손으로 앞날을 開拓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큰돈을 줘도 금세 蕩盡합니다.”

    子女의 本을 다지려면 父母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徐 勳章이 提示한 處方은 簡單하면서도 實踐하기 어려웠다. 지나치게 情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것. 父母는 子女의 잘못을 100番 나무라서라도 고쳐주는 것이 道理다. 하지만 요즘은 子女가 傷處받을까 마음이 아파 내버려두는 境遇가 많다. 그는 “다듬어지지 않은 모난 돌은 자라서 社會를 오염시킨다”라며 ‘嚴한 敎育’을 强調했다.

    “雪嶽山 大靑峯에서 돌 하나가 여기까지 굴러오면 그대로 모난 돌입니다. 하지만 100個가 서로 부딪치고 깨지며 구르다 보면 몽돌로 變합니다. 本人이 最高인 줄 아는 모난 돌 같은 사람은 社會에 나와서도 周邊 사람 苦生시켜요. 父母는 마음이 아파도 옳은 것은 斷乎하게 밀어붙이는 敎育을 해야 해요. 큰 人物은 傷處를 딛고 나는 法입니다.”

    徐 勳章은 學校敎育에 對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書堂을 지키다 보면 初·中學校 敎師들과 만날 機會가 많은데, 그때마다 거꾸로 가는 人性敎育 制度가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는 “스승의 도는 弟子를 가르치는 것인데, 그 道를 짓밟고 왜 學生이 안 달라지냐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무슨 人權이고 民主化인지 모르겠어요. 西歐圈은 이미 形成된 文化나 制度 안에서 平等을 찾는데, 그것 없이 平等을 외치는 건 옳지 않죠. 弟子를 혼내는 스승의 度가 지나친 사람을 꾸짖어야지, 그 사람으로 인해 全體 敎師를 罵倒하면 敎育이 제대로 설 수 없어요. 아버지, 어머니, 어른, 스승이 다 親舊면 禽獸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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