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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言書判’ 兼備한 外交家의 샛별|週刊東亞

週刊東亞 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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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言書判’ 兼備한 外交家의 샛별

뒤늦은 公職 入門 超高速 昇進 거듭 … 소문난 ‘日本通’에 韓半島 問題 專門家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特派員 orionha@donga.com

    入力 2008-06-23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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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月3日 中國 共産黨 臺灣工作辦公室 主任 兼 國務院의 대만사무판공실 主任에 任命된 왕이(王毅·55·寫眞) 外交部 常務部部長은 中國 外交家에서 떠오르는 샛별이다.

    文化大革命(1966年 5月~1976年 10月·以下 文革)으로 뒤늦게 大學을 卒業하고 外交部에 들어왔지만 남다른 努力으로 超高速 昇進을 거듭해 最年少 副部長에 오른 데 이어, 過去와 달리 業務가 莫重해진 대만사무판공실 主任 자리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王 主任은 長官級 以上 幹部 가운데 보기 드문 베이징(北京) 出身이다. 하지만 그의 人生은 順坦치 않았다.

    1969年 9月 高等學校를 卒業하자마자 헤이룽장(黑龍江)性에 知識靑年으로 하방된 그는 7年5個月間이나 農村에서 生活했다. 그는 文革이 끝난 뒤인 77年 2月에야 베이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王 主任은 그해 12月, 文革 以後 10年 만에 치러진 大學入學試驗에서 베이징 第2외국어대 아시아아프리카語學部 日語科에 合格했다. 弄工兵團(農工兵團)에서 일하면서도 熱心히 工夫한 結果였다.



    大學 入學 當時 滿 25歲로 學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는 늘 早熟했고 擧動도 신중했다. 또한 識見이 넓은 데다 論理的이고 主見도 뚜렷해 時流에 흔들리지 않았다.

    王 主任을 指導했던 敎授들은 그의 大學 卒業論文을 只今도 記憶하고 있다. 親밍禹(秦明吾) 當時 敎授에 따르면, 그가 卒業論文으로 提出한 ‘中國과 日本의 歷史 比較’ ‘日本語와 朦朧詩(朦朧詩)의 比較’는 다른 學生들의 卒業論文보다 水準이 지나치게 높아 이를 審査, 評價할 수 있는 敎授가 없을 程度였다고 한다. 朦朧詩란 當時 젊은이들 사이에 流行하던, 社會 不滿을 은유적으로 表現한 無形式의 詩를 말한다. 그의 卒業論文은 일語系 雜誌 ‘일어학습과 硏究’라는 權威紙에도 실렸다.

    1982年 2月 大學을 卒業하고 外交部에 들어간 뒤 그는 昇進街道를 달렸다. 外交部에 들어갈 때는 滿 29歲의 늦깎이였지만, 5年 만에 아시아를 擔當하는 아주사(亞洲司) 處長에 올라 그보다 10餘 年 前 外交部에 들어간 先輩들을 앞질렀다.

    이어 1995年 6月 아주사 社長(司長), 98年 4月 外交部 部長 條理(助理)에 이어 2001年 萬 48歲 나이에 外交部 最年少 副部長(序列 3位)李 됐다.

    誠實 근면한 勤務姿勢 他의 追從 不許

    이 같은 超高速 昇進은 윗사람들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나라를 莫論하고 外交部 職員의 主要 評價能力 가운데 하나는 文章을 잘 다듬어 完成度 높은 演說 原稿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點이었다.

    ‘비터禹(筆頭)’라 불리는 이 分野에서 王 主任은 他의 追從을 不許했다. 1982年 후야오방(胡耀邦) 中國 共産黨 總書記가 日本을 訪問했을 當時 演說 原稿를 起草할 때다. 王 主任이 쓴 原稿 草案을 본 後 總書記는 單 두 곳만 고치고 原稿에 ‘아주 잘 썼음’이라는 批點(批點)까지 찍어 내려보냈다.

    普通 擔當 職員이 草稿를 쓰면 上級者를 거칠수록 빨간色 펜으로 修正되는 자리가 漸次 늘어 外交部長까지 올라가면 原稿가 온통 빨간色人 게 常禮인데, 그가 쓴 原稿는 늘 거의 고칠 데가 없었다고 한다.

    誠實 근면한 勤務態度 亦是 外交部에서 그를 따라올 者가 없다. 밤 12時 넘어 退勤하는 것은 普通이고 바쁠 때는 새벽 2, 3時까지 일을 하는데도 그는 어김없이 午前 6時면 事務室에 나온다.

    愼重하고 謹嚴한 그의 表情은 外交部의 많은 職員들에게 ‘쿨’하다는 評價를 받지만, “사람이 그리 살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는 反應을 보이는 職員도 있다. 平素 테니스를 즐기고 外交部 登山協會 名譽會長으로서 登山도 자주 한다.

    王 主任은 ‘日本通’이다. 大學에서 日本語를 專攻했을 뿐 아니라 駐日 大使 3年을 包含해 7年6個月間 駐日 大使館에서 勤務했다. 또한 1982年 外交部에 들어간 뒤 줄곧 아시아를 擔當하는 아주社에서 일했다.

    臺灣關係 改善 重責 새 試驗臺

    그의 日本語 驅使能力은 日本人이 歎服할 程度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日本 總理와는 私的으로도 가깝게 지내며 아키히토(明仁) 日本 王 夫婦와도 交分이 깊다. 하지만 그가 駐日 大使로 任命된 2004年 9月, 中國과 日本의 關係는 最惡으로 치닫고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前 日本 總理가 야스쿠니 神社를 參拜하면서 兩國關係는 冷却되기 始作했고, 日本의 平和憲法 修正과 最近 共同 開發하기로 合意한 東中國海 가스田 紛爭, 太平洋戰爭 當時 日本軍의 치치하얼(齊齊哈爾) 化學武器 放置事件 等이 겹치면서 兩國關係는 얼음張처럼 차가워졌다.

    그가 駐日 大使로 就任한 지 3個月 만에 日本은 리덩후이(李登輝) 前 臺灣 總統에게 비자를 發給해 中國을 더욱 刺戟했고, 2005年 5月 고이즈미 前 總理가 “올해 안에 또 神社參拜를 하겠다”고 發言하자 訪日 中이던 우이(吳儀) 副總理가 모든 日程을 取消하고 本國으로 돌아가는 일까지 터졌다.

    이런 渦中에도 그는 와세다대 等 여러 民間機關을 돌면서 日本이 지난 歷史를 反省하고 中國과 日本이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는 中國의 基本 外交政策을 說破했다.

    이런 것들이 밑거름이 돼 2006年 10月 아베 新潮(安倍晋三)가 日本 總理로서는 5年 만에 처음으로 中國을 訪問했다. 그리고 지난해 4月 원자바오(溫家寶) 總理가 日本을 訪問했고, 올해 5月엔 후진타오(胡錦濤) 國家主席이 日本을 答訪했다.

    꽁꽁 얼어붙었던 兩國關係가 아베 前 總理의 ‘派빙지려(破氷之旅)’, 元 總理의 ‘融氷지려(融氷之旅)’, 後 主席의 ‘난춘지려(暖春之旅)’를 거치면서 解氷을 넘어 宛然한 봄날 關係로 바뀌었다.

    王 主任은 앞서 2003年 8月 第1次 6者會談의 中國 側 首席代表로서 北韓 核을 푸는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評價를 받았다. 그는 韓半島 問題 專門家이기도 하다.

    王 主任은 이제 臺灣과의 關係 改善과 統一이라는 重責을 附與받았다. 그는 任命 發表 直後 “兩岸關係 發展과 祖國 統一을 위해 努力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이 任務는 그에게 跳躍의 발板이자 또 다른 試驗臺다. 그가 이 試驗臺를 잘 通過해 副總理 以上의 影島自給에 오를지 注目된다.

    왕이 프로필

    ·한족(漢族)

    ·1953年 10月生

    ·베이징 出身

    1969. 9 高等學校 卒業

    1969. 9~1977. 2 헤이룽장(黑龍江)省 農村 鍛鍊

    1977. 2~1978. 3 베이징(北京)으로 돌아옴

    1978. 3~1982. 2 베이징 第2외국어대 아시아아프리카語學部 日語科 卒業

    1982. 2~1984. 9 外交部 아주사(亞洲司) 職員

    1984. 9~1987. 8 外交部 아주사 副處長

    1987. 8~1989. 9 外交部 아주사 處長

    1989. 9~1993. 4 週日 大使館 政務參事官

    1993. 4~1994. 3 週日 大使館 公使參事官

    1994. 3~1995. 6 外交部 아주사 部(副)社長

    1995. 6~1998. 4 外交部 아주사 社長

    1997. 8~1998. 2 美國 조지타운대 外交硏究所 訪問學者

    1998. 4              난카이(南開)大 世界經濟 專攻 經濟學 碩士

    1998. 4~2001. 2 外交部 部長 條理(助理) 兼 政策硏究室 主任

    1999. 9              外交學院 國際關係 專攻 博士

    2001. 2~2004. 9 外交部 部(副)部長

    2004. 9~2007. 9 駐日 大使

    2007. 9~2008. 3 外交部 副部長, 唐朝(黨組)書記

    2008. 3~2008. 6 外交部 常務部部長, 黨조書記

    2008. 6~現在 黨 中央委員會 臺灣工作辦公室 主任 兼

                  國務院 대만사무판공실 主任

                  第17期 中國 共産黨 中央委員會 中央委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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