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쿠아론 監督은 ‘그래비티’(2013)에서 宇宙人의 孤獨을 表現하며 한 篇의 ‘宇宙 風景畫’를 그려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검은 宇宙’는 긴 呼吸의 撮影과 編輯을 통해 風景 自體가 心理的 드라마가 되는 神祕한 經驗을 하게 했다. 風景을 담는 ‘롱테이크’(컷 없이 길게 찍는 것)의 느린 카메라와 그 속에 사는 사람의 無表情을 비추는 클로즈업은 쿠아론 映畫의 큰 特徵이다. 그러면서 쿠아론의 映畫는 冥想的이라는 色깔을 갖게 됐다.
黑白으로 撮影된 ‘로마’는 쿠아론 監督의 故鄕인 1970年 멕시코시티가 背景이다. 題目은 멕시코시티 어느 區域의 이름이다. 그해는 멕시코에서 월드컵이 開催되고 國家가 世界로 뻗어갔지만, 그 內部는 어땠는지를 한 下女의 視線으로 그리고 있다. 特히 下女 클레오(얄리트社 아파리시오 分)와 안主人 소피아(마리나 데 打비라 分)의 삶이 對照된다. ‘로마’는 이 두 女性에 對한 이야기다. 소피아의 男便은 醫師인데, 最近 出張을 핑계로 자주 집을 비운다. 夫婦關係는 破局 直前이다.
클레오는 이들 夫婦와 어린 네 男妹, 그리고 外할머니 等 大家族이 사는 邸宅에서 함께 生活한다. 그는 當時 入住 家政婦가 大槪 그랬듯, 아침부터 밤까지 집안의 거의 모든 일을 處理한다. 아이들 깨우기, 食事 準備, 아이들의 謄下校 準備, 빨래, 淸掃, 그리고 아이들 재우기까지 每日 反復되는 家事勞動이 클레오의 일이다.
클레오와 소피아의 삶은 人種과 階級으로 對照돼 있다. 下女 클레오는 農村 出身 原住民이다. 反面 소피아는 白人에 가깝고, 親戚 中엔 美國引渡 있다. 클레오와 그의 親戚들이 멕시코 노래를 부를 때 소피아 親戚들은 美國 노래를 듣고 美國人처럼 춤추면서 즐긴다.
白人처럼 보이는 멕시코人은 持株이거나 上層階級이고, 原住民은 그들의 小作人 또는 下女인 셈이다. 클레오의 男子親舊도 地方의 不遇한 家庭에서 태어났고, 멕시코시티에서 安定된 職場을 求하지 못한 채 東洋 武術을 硏磨한다(그의 武術事犯 中에는 韓國人도 있다). 그러나 그의 뒷주머니에 꽂힌 쌍절곤이 클로즈업될 때면 왠지 클레오의 未來까지 不安해진다.
主人과 下女, 階級과 人種이 다른 두 女性이 서로에게 斷絶의 壁을 세우기보다 相對의 傷處에 共感하는 게 ‘로마’의 美德이다. 男性들은 子息을 키우는 責任으로부터 도망치거나, 甚至於 出世를 위해 子息을 죽이는 暴力 集團에 충성한다. 反政府示威를 하는 學生을 때리고, 그들에게 銃을 쏘는 場面은 ‘월드컵 멕시코’의 現實이 얼마나 瘠薄했는지 한눈에 알게 한다.
버려지고 죽는 아이들을 보듬는 人物은 두 名의 女性이다. 이 點에선 主人과 下女, 그리고 階級과 人種의 差異를 超越한다. 쿠아론 監督은 이런 犧牲에 感謝의 마음을 담아 이 映畫를 찍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子息들을 보듬고 키우는 것 말이다. 올해 베니스國際映畫祭 最高賞인 黃金獅子賞 受賞作.
※ ‘한창호의 시네+아트’는 連載를 끝마칩니다. 그동안 愛讀해주신 분들께 感謝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