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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極讚 ‘鄕調癌란’ 秋史 作品 아니다|주간동아

週刊東亞 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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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極讚 ‘鄕調癌란’ 秋史 作品 아니다

弟子 조희룡 난 그림 土臺로 僞造…허련의 글씨도 秋史體로 遁甲

  • 이동천 中國 랴오닝城 博物館 特빙硏究院

    入力 2013-07-22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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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홍준 극찬 ‘향조암란’ 추사 작품 아니다

    1 1860年 오은의 ‘花林超존’ 筆寫本. 2 金正喜의 ‘置怨의 시고에 對한 後序 草稿’.

    우리 느낌에 아름답고 親近하면 ‘眞짜’이고, 낯설고 醜하면 ‘假짜’일까. 그렇지 않다. 眞짜와 假짜는 느낌만으론 알 수 없다. 萬若 누군가 當身을 느낌만으로 判斷하려 든다면 어떨까. 當身에 對해 함부로 말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터. 正確한 事實을 充分히 檢證한 後 올바르게 判斷하길 要求할 것이다. 美術品도 마찬가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다. 가끔 내 머릿속 想像의 나래를 펼친다. 하지만 이를 말과 글로 表現할 境遇 반드시 責任이 따른다. 거짓 情報는 요즘 美國 드라마에서 뜨는 ‘살아 있는 屍體’인 좀비(Zombie)와 비슷하다. 썩은 좀비가 繼續 나타나기만 한다면 世上은 어떨까. 美術品 眞僞 感情의 目的은 좀비를 없애는 일과 같다.

    特定 時期 秋史體 배운 허련

    筆者는 ‘週刊東亞’ 896號에서 秋史 金正喜(1786~1856) 가문 사람들의 글씨와 ‘本來 僞造할 目的 없이 金正喜의 글씨를 베낀 筆寫本’이 그의 作品으로 遁甲한 境遇가 적지 않다고 紹介했다. 例를 들어 서울對 奎章閣 韓國學硏究원이 所藏한 書冊 ‘花林超존’(그림1)李 傳해오는 過程에서 萬若 僞造者나 詐欺꾼을 만났다면 김정희 作品으로 遁甲했을 것이다.

    1860年 號가 오은( 隱)인 사람은 淸나라 진문술(陳文述·1771~1843)의 ‘花林(畵林)’을 抄錄한 金正喜의 親筆 書冊을 베끼고, 이런 事實을 ‘花林超존’ 마지막 쪽에 밝혔다. ‘그림1’을 忠南 禮山郡에 있는 김정희 宗家가 所藏한 寶物 第547號 ‘豫算金正喜宗家遺物’ 가운데 金正喜의 ‘置怨의 시고에 對한 後序 草稿’(그림2)와 比較하면, ‘오은의 秋史體’는 자연스럽지만 ‘金正喜의 秋史體’에 있는 特定 筆劃의 强弱을 따라 하지 못했다.



    金正喜의 親密한 弟子인 小癡 허련(1808~1893)의 글씨도 김정희 作品으로 遁甲했다. 순천대 博物館이 所藏한 ‘空欄최난’(그림3)은 金正喜가 아닌 허련의 作品이다. ‘空欄최난’은 1853年 봄에 쓴 김정희 作品이라고 알려졌다. 이를 김정희 原作의 木版囚人本(그림4) 및 板刻 搨本(그림5)과 比較하면, ‘그림3’은 허련이 1853年 秋史體가 아닌 ‘1839 ~1843年 秋史體’로 쓴 것이다. 金正喜의 秋史體는 生前에 끊임없이 發展했지만, 허련은 特定 時期 秋史體만 배웠다.

    유홍준 극찬 ‘향조암란’ 추사 작품 아니다

    3 허련의 ‘空欄최난’. 4 金正喜의 ‘空欄최난’ 木版囚人本. 5 金正喜의 ‘空欄최난’ 板刻 搨本. 6 허련의 ‘領海타운첩’. 7 金正喜의 ‘나街墨硯’.

    이 밖에 ‘허련의 秋史體’가 金正喜 글씨로 遁甲한 例가 더 있다. 아모레퍼시픽 美術館이 所藏한 金正喜의 ‘領海타운첩’은 허련의 筆寫本이다. 하지만 美術史家인 유홍준 명지대 敎授는 ‘阮堂評傳3’에서 ‘領海타운첩’을 김정희 親筆로 알고 “李 簡札妾은 초의가 阮堂에게 받은 便紙를 모은 것이 아니라 阮堂이 초의에게 보낸 便紙를 따로 筆寫해둔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領海타운첩’은 金正喜가 초의선사(1786~ 1866)에게 보낸 便紙 10通을 허련이 筆寫한 것이다. 金正喜의 親筆 元本 便紙는 서울 國立중앙박물관이 所藏한, 金正喜가 초의에게 보낸 便紙 모음 ‘나街墨硯’에 모두 실려 있다. 이 가운데 ‘阮堂全集(卷5)’에 실린 1849年 陰曆 11月 10日子 ‘領海타운첩’(그림6)과 ‘나街墨硯’(그림7) 便紙를 比較하면, ‘그림6’은 허련의 글씨다. 이는 ‘1839~1843年의 秋史體’를 배운 허련의 秋史體로, ‘그림7’을 베껴 쓴 것이다.

    허련은 ‘속軟綠’에 1876年부터 1879年까지 4年間 自身의 行跡을 記錄했다. 1877年 그는 全北 南原과 電柱에서 金正喜의 書藝作品을 나무에 새기고 搨本을 만들거나, 모사하고 表具했다. 허련의 이러한 作業은 一次的으로 스승을 기리는 일이었지만, 製作된 金正喜 글씨를 販賣해 自身의 經濟的 어려움도 解決했다. 이는 또한 金正喜의 假짜 書畫作品을 만드는 僞造者나 詐欺꾼에게 좋은 빌미를 提供했다. 國立中央博物館이 所藏한 金正喜의 ‘般若心經 搨本첩’은 바로 이러한 環境에서 나온 派生商品으로 假짜다.

    假짜로 태어났으면 假짜 作品

    秋史體를 배운 글씨는 많은 데 反해, 金正喜의 난(蘭) 그림을 배운 그림은 적다. 金正喜는 난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따라서 僞造者들은 美術市場의 需要를 充足하려고, 김정희에게서 난 치는 法을 배운 조희룡(1789~ 1866)의 난 그림을 土臺로 金正喜의 假짜 난 그림을 僞造했다.

    金正喜의 ‘鄕調癌란’(그림8)은 바로 趙熙龍의 난 그림을 본받아 僞造한 假짜다. 이를 國立中央博物館이 所藏한 趙熙龍의 ‘묵란’, 서울 성북동 澗松美術館이 所藏한 趙熙龍의 ‘묵란’(그림9)과 比較하면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유홍준 敎授는 ‘그림8’을 ‘阮堂評傳2’와 ‘金正喜 : 알기 쉽게 간추린 阮堂評傳’에서 “阮堂의 蘭草 그림 中 空間 構成의 멋이 最高潮로 驅使된 아름다운 作品”이라고 評하며 讚辭를 아끼지 않았다.

    “阮堂의 그림 中 정法(正法)이 아니라 破格의 墓가 近代的 洗練味로 나타난 作品으로는 斷然코 ‘鄕調癌란’을 들 수 있다. 畵面 오른쪽 上段에서 對角線으로 한 줄기 難葉耳 三電法으로 뻗어 내리고, 疏略하게 잎 몇 가닥과 꽃 두어 송이만 그린 이 淡墨의 蘭草 그림은 餘白의 美가 一品인 데다, 오른쪽에 짙고 强한 금석기의 楷書體로 쓴 話題가 그림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名品이다. 참으로 現代畫家가 그린 作品보다도 더 現代的인 感覺이 나타났다고 할 만하다.”

    흥미로운 點은 趙熙龍이 金正喜로부터 難治는 法을 배웠지만, 그와 全혀 다른 方向으로 發展했다는 것이다. 金正喜는 아들 김상우(1817~1884)에게 쓴 便紙에서 隸書 글씨 쓰듯 亂을 치는 自身과 다르게 趙熙龍이 그림 그리듯 亂을 그린다고 不滿을 터뜨렸다. 金正喜는 文人畫家의 書法(書法)으로, 趙熙龍은 職業畫家의 話法(畵法)으로 亂을 그린 것이다.

    書畫作品의 眞僞는 ‘어떻게 태어났느냐’의 問題다. 假짜로 태어났으면 假짜고, 眞짜로 태어났으면 眞짜다. 傳해오는 過程에서 作家가 바뀐 것은 願作家를 찾거나 創作한 때를 찾아 그 作家나 그때의 眞짜로 鑑定한다. 作品의 眞實은 作品에 있다. 鑑定價는 作品에 담긴 胎生의 祕密을 밝힐 뿐이다.

    유홍준 극찬 ‘향조암란’ 추사 작품 아니다

    8 金正喜의 假짜 ‘鄕調癌란’. 9 趙熙龍의 ‘묵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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